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42화 (42/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42화

한효석은 연습실로 사라지고, 민지호는 녹음실에 들어가서 연습을 시작했다.

나는 헤드셋을 끼고 잠을 청했지만, 약 기운이 완전히 돌지 않아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그래서 몸을 일으켜 민지호가 잘 연습하고 있는지, 녹음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UO와 안무를 짜다가 와서, 연습복 차림으로 녹음실 바닥에 앉아 핸드폰으로 음악을 반복해서 듣고 있는 모습에서 말 그대로 독기가 느껴진다.

내가 보고 있다는 것도 모를 정도로 집중한 상태였다. 춤뿐만 아니라, 노래도 반드시 잘해내겠다는 뚜렷한 목적의식이 민지호에게는 있었다. 정말 아이돌이 잘 어울리는 녀석이다.

그러다 민지호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문으로 오더니 흠칫 놀라며 말했다.

“아, 뭐야. 형 거기서 뭐 해, 놀랐잖아.”

“뭐 필요해?”

“펜! 나 여기 더블링 해봐도 돼?”

“아. 응.”

나는 펜을 꺼내서 건네줬다.

그렇게 한 시간이 딱 지났을 때, 한효석은 컨트롤룸에 도착했고 민지호는 한 번만 더 연습하겠다고 하다가 시간은 무조건 지켜야 하는 거라는 한효석에게 끌려 나왔다.

나는 두 사람의 악보에 필기해 놓은 것을 번갈아 보고 웃음이 터졌다.

“너희 뭐 뇌를 공유하냐?”

“형, 어떻게 그렇게 심한 말씀을 하세요.”

한효석은 투덜거렸지만, 내가 건네준 민지호의 악보를 받아 들고는 휴 한숨만 쉬었다.

둘이 적어 놓은 의견이 똑같다.

[헙!!!!!!!☆☆☆☆☆]

[호흡 짧게]

표현 방법만 다를 뿐이다.

두 놈이 너무 다르니까 좀 웃겼다. 같은 말인데도 서로 바꿔 읽으면 이해를 못 할 것 같다.

아무튼 그중에서도 신기한 건 가사였다.

[이 밤이 끝나도 우리의 세상은 끝나지 않아]

내가 쓴 이 가사 아래 둘 다 코멘트를 달아 놨다.

[형아 밤이 왜 끝나??????????? 안 끝나는데……♥]

[해원이 형. 다음 가사에서 더 이상 태양이 안 뜬다는 말이 나오니까, 밤은 끝나지 않을 것 같아요.]

“너희가 왜 싸워대는지 알겠다.”

사고 구조는 비슷하고, 표출 방식은 정반대.

나는 두 사람의 성향을 고려하며 ‘이 밤이 끝나도’ 부분을 고쳤다.

“이건 어때.”

[반대로 달려도 우리의 세상은 끝나지 않아]

가사를 본 민지호가 약간 멍한 표정을 하니까 한효석이 대신 설명했다.

“지운이 형이 ‘불을 켜’에서 우리가 태양을 따라서 같은 방향으로 달려서 계속 백야라고 가사를 썼었잖아.”

“어.”

“그런데 여기에서는 태양과 상관없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달려도 계속 밤인 거야.”

“아, 태양이 완전히 사라진 거구나?”

“……아, 그러네.”

“형, 이거야. 이 가사가 어…….”

“논리적이에요.”

“논리적이야! 그리고 이거 뮤직비디오 찍고 싶어. 그러니까 우리가 사장실 가서 획득해 보자, 효식아. 어…… 획득 맞나?”

“설득해서 획득하자고. 대충 맞지 뭐.”

민지호는 정보량이 너무 많아서 중간중간 컴퓨터 오류 나는 것처럼 멈추는데, 한효석은 한 가지씩 순서대로 출력한다. 안 맞는데, 잘 맞는다.

나는 두 사람의 대화를 보며 옆에서 내내 낄낄거렸다. 겨우 두 살 차이인데, 왜 이렇게 많이 동생 같아 보이는지 모를 일이다. 우리는 가녹음을 하다가도, 또 한바탕 낄낄거리며 아이디어를 교류했다.

* * *

며칠 뒤, 컨셉 포토 촬영 스케줄이 있었다.

현장에 함께한 A&R 박건후가 나를 포함한 멤버들에게 확정된 정규 1집 트랙리스트를 보여줬다.

트랙리스트를 쭉 확인하던 신지운이 나에게 말했다.

“내 생각에 이 정도로 일을 시켰으면 형이 회사를 고소해야 돼.”

“그냥 내가 많이 만든 건데? 난 내 곡 많이 써주면 좋지.”

“그렇게 말하는 순간 고소는 틀렸네.”

그 말에 내가 웃으니까 신지운이 정색했다.

“농담 아니야.”

멤버들마다 일 많이 한다고 뭐라고 한다. 지들도 바쁘면서 잔소리하니까 어이는 없지만, ‘불을 켜’ 활동이 끝나던 날부터 컨셉 포토를 찍는 오늘까지 진짜 인생에서 제일 빡세게 살기는 했다.

아직 편곡과 믹싱이 남았지만, 트랙리스트가 나왔으니 이제 앨범의 윤곽은 확실하게 잡혔다.

나는 이번 타이틀곡의 제목을 확인했다.

‘아침만 기다렸어(Q&A)’

‘아침만 기다렸어’와 ‘Q&A’가 계속해서 아이디어가 갈렸다. Q&A는 이미 너무 많이 사용된 제목이라 정규 1집의 제목으로는 아쉽다는 게 아침파의 주 의견이고, 아침만 기다렸어는 너무 기억에 안 남는다는 게 큐앤에이파의 의견이었다.

그래서 두 개를 합쳐, 부제가 Q&A가 되었다.

나는 저게 뭔 차이인가, 싶었는데 트랙리스트로 보니 좀 그럴듯해 보이기는 한다.

이번 정규 앨범은 지난번 디지털 싱글과 완전히 분위기가 달라서, 멤버들의 스타일링이 상당히 많이 바뀌었다.

정규 1집 컨셉은 학교가 끝나고 반과 성향이 달라도 우르르 몰려가 밥을 먹으러 가고, 속으로 좋아하는 여자애가 생겨서 잠들지 못하는 청소년들이었다. 그래서 나를 비롯한 모든 멤버들이 머리 색을 어둡게 바꿨다. 아마 교복이 컨셉이 되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나도 모처럼 다시 갈색 머리로 돌아왔는데, 거울을 보니 뭔가 너무 평범한가 싶기도 하다.

앨범은 두 개의 버전으로, 화이트 버전과 나이트 버전이 나올 예정이라고 했다. 화이트 버전은 야외 촬영이고, 나이트 버전은 실내 촬영인데 오늘은 실내 촬영이었다.

7월 말, 40도에 육박하는 날씨에 멤버들은 카디건과 니트, 그리고 파자마를 입고 촬영을 했다.

어쨌든.

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고, 이번 촬영장에서 꼭 해놔야 하는 일정이 생겼기 때문에, 핸드폰을 들고 대기하다가 각종 화보 경력으로 순식간에 촬영이 끝난 신지운을 붙잡았다.

“같이 찍자.”

“뭘…… 아, 포토 카드 셀카?”

신지운이 핸드폰을 들었다.

특히 셀카 장인인 민지호를 제외하고도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은 대체로 셀카를 괜찮게 찍는 편이라서 더 부담스러웠다.

“분홍 머리일 때 진작 찍어 놨어야 되는데, 계속 미루다가.”

“뭐하러 그때 찍어. 이번 앨범 컨셉에 맞게 가야지.”

“그때가 더 외모에 자신감이 있었거든……. 인마.”

신지운은 내 핸드폰을 가져가서 자기 셀카만 찍었다. 아니, 이 새끼?

“이거 잘 나왔다. 형, 보내줘.”

“아, 나를 도와주라고. 널 찍지 말고.”

셀카가 잘 나오긴 해서, 핀잔하는 중에 셀카를 앨범 제작팀에 보내주긴 했다. 사진을 다 보낸 후 신지운이 말했다.

“부담스러우면 뭐 소품이라도 들고 찍어. 어, 저거 귀엽네.”

신지운이 말하더니 촬영 스태프와 이야기한 후 촬영 소품 중에 곰인형 쿠션을 가져왔다.

“이거 안 쓰신대.”

“오, 귀엽다.”

내가 어느 정도 주변을 인지할 수 있을 나이에 이미 누나가 중학생이었기 때문에, 집에 이런 인형이 있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인형이란 것 자체가 무지하게 생소하다.

나는 곰인형을 한 팔로 안고 이리저리 각도를 찾아보았다. 그러다가 보고 있는 신지운에게 말했다.

“야, 꺼져.”

“와, 바로 팽 당하네. 우리 형 성격 참 좋아?”

아니, 보고 있으면 귀여운 척을 못 하잖아…….

“형, 일단 사진을 최대한 많이 찍어. 형이 못 고르면 직원분들이 골라주실 테니까.”

“알았어.”

다행히 나의 비즈니스를 위해 신지운이 멀어졌다.

나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 다시 사진을 찍었다. 그때 옆에서 스태프들이 꺅 소리를 내는 게 들려서 움찔하며 돌아보니 스태프들이 날 보고 있었다.

“왜, 왜 그러세요?”

“너무 귀여워서요…….”

“아…….”

우리 회사 스태프들은 언제나 그렇지만, 이번 컨셉 포토 촬영팀도 사진 한 장 찍을 때마다 호응을 진짜 잘해주신다. 전혀 안 귀여울 텐데, 프로들이시다.

“아, 귀여워.”

“해원 씨, 인형 조금만 더 들어봐요. 더, 더. 딱 그 정도!”

아니, 왜 이렇게까지 도움을 주시…….

“윙크하는 것도 하나 남겨야 되는 거 아니에요? 손 하트도!”

……는지 모르겠지만 감사합니다.

스태프들의 격렬한 리액션과 디렉팅 덕에 나는 잘 나왔는지는 몰라도 다양하게는 셀카를 찍었다. 그리고 그 리액션은 내가 컨셉 포토를 찍을 때도 계속 이어졌다.

“해원 씨 이번 컨셉 진짜 찰떡이다…….”

“역시 세상은 귀여운 게 다인 것 같아.”

솔직히 촬영 때문에 엄청 걱정하고 긴장했는데, 주변에서 하도 떠들썩해서 촬영 내내 혼이 빠져나가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도움이 될 수밖에 없는 게, 나는 옆에서 잘한다, 잘한다 해주면 속으로 은근 좋아한다. 단순한 인간이다. 허허…….

개인 컷을 다 찍은 후에 마지막으로 단체 사진을 찍었다.

다른 멤버들이 자기들이 찍은 사진을 확인하는 게 좀 프로페셔널해 보였기 때문에, 나도 일단 따라 했다. 가서 사진을 구경하는데 이 말이 절로 나왔다.

“와…… 어떻게 이렇게 잘 나왔지?”

“이래서 프로인 거죠.”

촬영 감독이 말하며 하 웃는다. 호탕한 사람 같다. 촬영 감독이 말을 이었다.

“아, 근데 퍼스트라이트가 진짜 다 잘생겼다. 뭐 대충 찍어도 잘 나와.”

“그냥 작가님이 잘 찍어서 잘 나오는 거 같은데.”

“물론 그것도 없지 않지.”

이상하게, 지금 한 달 반 동안 거의 숙소에 안 들어가고 작업만 했는데 그때는 앨범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사진을 보니까, 이제 앨범 만드는 게 실감이 나요.”

내 말에 A&R 박건훈이 물었다.

“곡을 그렇게 많이 만들었는데, 이제 실감이 나?”

“네.”

내가 이 팀의 멤버구나, 라는 실감이 사실 그렇게 자주 나는 건 아니다. 그러다가 우리 단체 사진을 보고 있으니 이제 진짜 내가 이 팀에 소속되어 있다는 실감이 났다. 이래서 사람들이 추억으로 사진을 남기는 모양이다.

이 단체 컷을 끝으로 퇴근인 멤버들이 몇 있어서, 내가 멤버들을 붙잡았다.

“단체 셀카 찍고 가.”

“아까도 찍었잖아?”

황새벽의 말에 내가 대답했다.

“그냥 또 찍고 싶어서.”

“네가 먼저 사진 찍자는 거 처음 듣는다.”

그래서인지 멤버들은 긴 촬영에 지쳐 있었는데도 군말 없이 다들 모여줬다. 단체 셀카는 언제나 그렇듯 팔다리가 다 제일 긴 신지운 담당이었다.

“찍는다, 둘 셋.”

하고 사진을 찍었다.

지금 이 순간이 나중에 기억해보면 내 인생에서 제일 빛나는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활동 기간 동안 사진을 많이 남겨놔야겠다.

나는 야외 촬영이 남아서 나가려는데 룸메이트인 신지운이 물었다.

“형, 오늘 숙소로 오지?”

“나 작업실 가야지.”

“촬영하고 또 일해?”

“바쁘잖아.”

내 말에 신지운이 핀잔했다.

“형, 그것도 사실 무기력 상태인 거야.”

“뭐가?”

“뒤 생각 안 하고 지나치게 일하는 거. 일에서 안 헤어나오는 무기력 상태인 거라고.”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

일 중독과 무기력은 너무 다른 말 아닌가?

나는 생각하며 야외 촬영을 하기 위해 밖으로 향했다.

* * *

컨셉 포토 촬영을 끝내고 앨범 마무리 작업을 위해 다시 작업실로 돌아왔을 때 손님이 와 있었다. 코러스 녹음을 해준 헤이, 장석훈이었다.

“어, 헤이 형.”

내가 인사하니까 양이형이 말했다.

“아니, 얘가 학교 다닐 때 보컬 트레이너 알바했거든. 얘가 유난히 성대 약한 애들을 많이 가르쳐가지고, 거의 전문가야.”

“오.”

내가 소파에 앉았더니, 장석훈이 말했다.

“성대 약한 애들 가르쳐 보니까, 목 아끼려고 말을 안 하면 성대가 더 약해지더라구요.”

“아, 진짜 그래요.”

국선아 때 내가 말을 점점 안 했더니, 뒤로 갈수록 점점 더 목소리가 안 나오던 기억이 났다. 장석훈이 말을 이었다.

“근데 또, 그런 애들이 말을 많이 하면 목이 쉬더라구.”

“……와.”

내가 딱 그렇다. 그 X 같음을 이렇게 알아주는 사람 처음 본다. 눈물이 난다, 진짜.

“그러니까 말을 너무 해도 안 되고, 안 해도 안 되고. 목을 쪼여서 소리를 내도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공기 섞어서 소리를 내도 안 되고.”

“네.”

“그 중간을 찾아야 돼요.”

그리고 실제로, 장석훈은 명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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