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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43화 (43/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43화

양이형의 작업실이 있는 건물은 통째로 양이형이 소속된 작곡팀의 건물이었고, 가장 위층에 보컬 연습실이 있었다.

매일 당연하게 지하로만 내려가서 위로 올라가 본 건 처음이었다. 여기서 작곡을 가르치기도 해서 수강생들이 가끔 드나들었다.

실제로도 계단을 올라가다가 수강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몇 명 만났다. 그리고 보컬 연습실에 도착했다.

장석훈은 먼저 내 음역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같은 음을 여러 번 반복해서 내게 했다. 그리고 신기해하며 말했다.

“디렉팅할 때도 느꼈지만, 음감은 진짜 좋네요.”

음감만 좋은 게 다들 신기한 모양이다. 허허…….

워낙 어릴 때 악기를 시작해서 그럴 테니, 역시 예체능은 나이가 깡패다.

장석훈은 예시를 들어서 표현해 주는 타입이었다. 나는 그 덕에 오랜 시간 노래를 한 사람들도 여전히 더 노래를 잘하기 위해 여러 가지 변화를 시도한다는 것을 배웠다.

지금까지 내가 뭐라고 처음 보컬 트레이너에게 배운 한 가지 스타일을 고집했는지 모르겠다. 연습을 많이 했다고 내 스스로 생각했지만, 이제 보니 사실 불성실했던 거다.

음역을 확인했더니 순식간에 목이 쉬었다. 장석훈이 어처구니없어하며 말했다.

“두 곡 연달아 못 부르겠구나……. 콘서트 전까지 어떻게든 해야겠네요.”

“아, 그러네요.”

파트가 많은 것도 아닌데 콘서트에서 두 곡 부르고 목이 쉬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진짜.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서 장석훈이 문 쪽을 보며 말했다.

“쓰고 있어요.”

내 또래로 보이는 수강생이 안 나가고 힐끔 보고 있었다. 나는 습관적으로 모자를 눌러썼고, 잠시 후 문이 닫혔다.

* * *

그때 뭔가, 약간 불안하긴 했다.

그래도 내가 워낙 잘 긴장하고, 잘 불안해하니까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장석훈과 보컬에 대한 여러 조언과 주의사항을 들은 후, 작업실에 돌아가 보니 양이형이 핸드폰을 보며 욕을 하고 있었다.

“형, 왜?”

“……이 새끼 봐봐.”

그래서 나에게 핸드폰으로 누군가의 SNS를 보여줬는데, 내 사진이 있었다. 모자를 눌러쓰고 있고, 흐릿하지만 나라고 하면 나인 건 분별할 수 있을 정도로는 나왔다.

[오늘 비트 배우러 갔다가 국혐 봄ㅎㅎ]

[↳엥ㅋㅋㅋㅋ진짜 국혐이네]

[↳거기 왜 있냐?]

[↳↳몰라 근데 아무튼 X나 싸가지없더라. 다른 작곡가 형들 다 거기서 사는데 국혐 실제로 온 거 오늘 처음 봄ㅋㅋㅋ 딱 봐도 작곡팀에서 작곡 다 해주는데 선두에 이름 올리네. X나 뻔뻔함]

그렇게 쓴 것이, 몇몇 커뮤니티에 내 작곡 문제로 말이 올라와, 평소에도 대형 커뮤니티를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TRV에서 바로 누구인지를 파악하려고 양이형에게 연락한 모양이었다.

차라리 그냥 악플이면 몰라도, 작곡 관련해서는 아예 틀린 말이니까 소속사에서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예전 소속사에서는 악플이 달리거나 말거나, 그냥 넘어가는 게 최선이라고 나를 설득했었다. 그때는 그게 맞는 말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소속사에서 밀고 있는 멤버가 내가 악역이어야만 할 수 있는 역을 맡고 있으니 내가 조용히 해주길 바랐을 것 같다.

아무튼 지난번엔 이런 일이 생기기 전에 상태창이 위기 상황을 알려주더니 이번엔 안 떴다.

그 정도의 위기가 아닌 모양이었다. 아니면 오히려 이득이 되든지.

양이형이 핸드폰을 다시 가져갔다. 그리고 잠깐 생각하더니 본인 아이디로 거기다 댓글을 달았다.

[YANG_222 : 야 X 같은 새끼야. 그 친구가 아이돌이라 말 못 하니까 내가 대신한다 이 사기꾼 새끼. 얘가 작업실을 안 와? 안 온 날을 셀 수도 없어, 안 온 날이 없어서, X새야.]

그리고 자기 계정에다가 글을 남겼다.

[YANG_222 : 햇살님들 해원이 햇살이들 들려주려고 진짜 밤새도록 정규앨범 수록곡 작업하고 있어요~ 맑은 날 비하인드 말해줄까요^^? 해원이 팬송 진짜 오래 고민하다가, 샵에서 갑자기 떠올려서 촬영장 이동하면서 작업하고, 비 맞고 촬영하고 작업실 돌아와서 바로 또 작업하다가 병원행……ㅠㅠ]

“형, 이중인격이야? 무섭네.”

“시끄러워, 새끼야.”

TRV는 정말 빠르게 대처했고, 수강생 인스타그램에는 바로 내 사진이 내려가고 사과문이 올라왔다. 아마 본인도 자기 글이 이렇게 커뮤니티에 올라갈지 몰랐을 것 같긴 하다.

아무튼 모처럼 소속사가 있다는 사실에 안심이 된다.

잘 해결됐는데도 트라우마인지 내 약한 멘탈이 괜히 출렁거려서 양이형에게 말했다.

“나 오늘 좀 일찍 갈게.”

“어, 가.”

“나 가면 형 혼자 심심해서 어떡하냐?”

“제발 꺼져, 미친놈아.”

나는 흐흐 웃으며 매니저 형에게 연락했다. 그리고 계단에 서서 회사에서 출발하는 박중운 매니저를 기다리고 있을 때.

상태창이 떴다.

[돌발!]

[해당 영상 ‘좋아요’가 10만에 근접하고 있습니다]

[해당 영상 ‘좋아요’ 10만 달성 시 새로운 룰렛이 열립니다]

‘불을 켜’ 뮤직비디오 같은 경우에는 이전에 ‘좋아요’가 10만을 넘었지만, 처음에 프로모션이 일부 들어가서인지 이런 상태창이 뜨지 않았다.

이어서 맑은 날을 눌러보니 ‘좋아요’가 10만에 근접하고 있었다. 팬송이라 그런지, 다른 영상에 비해서 조회 수 대비 ‘좋아요’를 누르는 비율이 높았다.

“……새로운 룰렛이 뭔데?”

내가 혼잣말하고 있을 때, 단톡방 알람이 울렸다.

[민조 : 형들ㅠㅠㅠㅠㅠㅠ 클나써…….]

* * *

[민조 : 으악]

X버스에 올라온 두 글자에 팬들이 술렁거렸다.

[지호 글에 느낌표가 없어!?????]

[지호야 무슨 일이야!!!!!!!!!]

[아니, 진짜 걱정되네]

그리고 십 분 정도가 지난 후, 민지호가 다시 글을 올렸다.

[민조 : 햇살이들……. 숙소에 대형 벌레…… 어떡해…….]

[아이고ㅠㅠㅠㅠㅠ]

[지호야 미안해……. 누나도 못 잡아…….]

[안쓰러운데 귀여웤ㅋㅋㅋㅋㅋㅋㅋ]

[형들 없어???]

[막내 : 형들 없구 지금 지호랑 저랑 둘이 오들오들 떨고 있어요ㅠㅠㅠㅠ]

[민조 : 진짜 소름끼치는 거…… 지금 없어짐…… 아무 형아나 이거보면 빨리 숙소 와…….]

[안주원 : 혹시 새벽이 없어? 방문 열어봐 자고 있을지도 몰라]

[↳민조 : 이미 열어봤는데 없어ㅠㅠㅠㅠㅠ 형아 어디야? 살려조ㅠㅠㅠㅠ]

[↳안주원 : 학교! 금방 갈게]

[아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열어봤냐고ㅋㅋㅋㅋㅋㅋㅋㅋ]

[새벽이 퍼라에서 어떤 존재인 건뎈ㅋㅋㅋㅋㅋㅋㅋㅋㅋ]

[주원이 학교 갔구나 성실하다ㅠㅠㅠㅠ]

[막내 : 지운이 형 왔다!]

[다행이네!!]

[벌레 잡았어?]

[민조 : 햇살이들…… 이제 세 명이서 오들오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운아 그 벌레가 태어나서 본 인간 중에 제일 클 텐데 네가 무서워하면…….]

[↳지우니 : 근데 쟤도 내가 태어나서 본 벌레 중에 제일 커…….]

[민조 : 효식이 왔다ㅠㅠㅠㅠㅠ]

[민조 : 근데 효식이랑 매니저 형도 무섭대……. 클났다…….]

[아니ㅋㅋㅋㅋㅋㅋㅋㅋ매니저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남자 다섯 명이 벌레 한 마리 때문에 떨고 있냐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효석 : 저 정도 크기면 벌레 아니고 동물이라고 불러야 돼요]

[효석아ㅋㅋㅋㅋㅋㅋㅋ 과장이 심하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알았어 우리 효석이 겁 안 많은데 벌레가 너무너무 커쪄?]

[↳효석 : 진짜 크단 말이에요ㅠㅠ]

[퍼라에 벌레 잡을 수 있는 멤버가 있긴 한 거야???]

[당근 올려…….]

[민조 : 해원이 형이랑 새벽이 형 왔어ㅠㅠㅠㅠㅠㅠㅠ 04 형아들이 잡아주는 중ㅠㅠㅠㅠㅠㅠ]

[민조 : 힝 벌레가 대천재라서 안 잡혀ㅠㅠㅠㅠㅠ]

[대천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벌레여도 인정할 건 인정해주는 남자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민조 : 앗 잡았따!!!!!!!!!!!!!]

[민조 : 햇살이들!!!!!!!!!!!! 이제 우리 숙소에 벌레 없어!!!!!!!!!!!!!!!!!!!!!]

[민조 : 헷♥ 난 이제 가볼게 햇살이들 같이 무서워해줘서 고마워♥]

[느낌표 바로 돌아왔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형들은 벌레 별로 안 무서워하나봐 다행이네ㅋㅋㅋㅋㅋ]

[안주원 : 04들도 벌레 무서웠나봐요 집에 와보니까 둘 다 뻗어 있어요ㅋㅋㅋ]

[↳새벽 : 네가 봤어야 돼 진짜 컸다고…….]

[↳지우니 : 내가 장담하는데 안주원이면 절대 못 잡았다]

벌레 소동 후에도 한동안 X버스가 시끌시끌했다. 한 명만 제외하고 모두 엄청난 양의 글을 올려댔기 때문에 나머지 한 명을 은근히 기다리는 댓글이 올라왔다.

[해원아 해원이는 안 무서웠어?]

[해원이는 안 와ㅠㅠ?]

[해원아 뭐하고 있어?]

팬들이 드문드문 찾아서인지 자정 직전에 정해원이 글을 올렸다.

[해원 : 사실 무서웠어요ㅠㅠ 햇살이들 저 안아주세요…….]

* * *

[1년 만에 다시 만난 퍼스트라이트와 컨셉 포토 촬영 끝! 더 멋있어져서 놀랐다ㅠㅠ 컨셉 포토 기대해요 햇살이들! 그리고 해원 씨는 이번에 처음 작업인데 성격이 정말 어른스러워서 스무 살이란 거에 충격…… 근데 팀원들이 귀엽다고 할 때 부끄러워하는 거 보니까 스무 살 맞더라구ㅠㅠ]

며칠 전 퍼스트라이트의 컨셉 포토 촬영을 한 한 스태프는 그렇게 글을 올려놓고, 잠을 청하다가 다시 벌떡 일어나 스스로를 달랬다.

“희은아? 일과 덕질은 분리해야지…….”

지금까지 아이돌을 수도 없이 봤는데, 심장이 떨려서 잠이 안 온 건 처음이었다.

이런 게 입덕인가?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은 그렇게 많은 촬영 경력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눈에 띄게 잘난 얼굴들을 가지고 있었다. 어차피 잘생긴 건 일곱 명이 다 잘생겼기 때문에, 얼굴은 그렇다 치고.

작년에 퍼스트라이트 멤버가 여섯 명일 때도 촬영을 했었는데, 그때와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특히 작년에는 ‘잘생긴 애새끼들’의 느낌이라 약간 육아하는 듯한 지침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시작부터 정해원의 리드로 구호와 인사를 하면서부터 비즈니스적인 분위기가 딱 잡혔다.

깔끔하게 일만 할 수 있게 도와주니 스태프들 입장에서 안 고마울 수가 없었다. 이미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촬영에 들어갔다.

가지고 있던 선입견과 달리, 정해원은 웃음이 많은 편이었다. 촬영 내내 스태프들이 호응해 주면 겨울처럼 생긴 얼굴로 봄처럼 웃었다.

“하. 짜증 나. 잠 안 와.”

혼잣말을 하고 다시 누우려는데 핸드폰이 켜지며 X버스 알람이 떴다.

퍼스트라이트 촬영 이후에 홀린 듯이 퍼스트라이트 X버스에 가입해 놨더니 오늘 하루 알람이 쉴 새 없이 울렸다. 어차피 정해원이 지금까지 X버스에 글을 올린 건 한두 번이라, 차라리 알람을 끌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확인해 보니 웬일로 정해원이었다.

[해원 : 사실 무서웠어요ㅠㅠ 햇살이들 저 안아주세요…….]

“아니…… 이럴래?”

댓글을 보니 예상대로 법원에서 보자는 거친 표현이 난무하고 팬사인회를 뚫을 테니 두고 보자는 이야기가 선전포고처럼 달려 있었다.

그러다 그녀는 신기한 사실을 발견했다.

여전히 정해원이 올린 글에 달리는 댓글 수는 다른 멤버들이 글을 올릴 때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었지만, 유의미한 숫자의 변화가 있었다.

퍼스트라이트 팬들은 그룹 특성상 특히 인기 줄 세우기에 민감해서, X버스에 ‘좋아요’와 같은 기능을 하는 ‘응원봉’의 숫자도 지금 팬덤에서 낼 수 있는 수치인 7천에서 8천 정도를 맞추는 편이었다.

그런데 오늘 정해원의 글에, 다른 멤버에 비해서는 분명 느리지만 팬덤이 숫자를 맞추고 있는 추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인간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팬과 아이돌 사이에서도 노동력은 사랑의 표현이었다. 팬들이 노동력을 투자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곧, 정해원을 퍼스트라이트의 멤버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의미였다.

“이걸 본인이 알아야 하는데!”

자야 하는데 오히려 더 가슴이 울렁거려 잠이 오지 않았다.

결국 지난번 활동기를 다 찾아보고, 일당백인 짤계까지 팔로우했다.

그리고 공식 트위터를 팔로우했을 때, 계정에 글이 올라왔다.

[퍼스트라이트 컴퍼니 2]

지난번에 호평받은 퍼스트라이트 컴퍼니의 두 번째 시리즈 예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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