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44화
X버스에 뭐라고 올릴까 예시를 백 가지는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민지호와 한효석이 옆에서 굉장히 귀찮게 굴었다.
“형 느낌표 써줘!”
“얘 말 안 들으셔도 돼요. 그런데 제 말은 들어주세요.”
귀찮은 것들…….
둘이 곡을 따로 받아서 트랙리스트에 포함된 이후부터, 아주 둘이 절친이 됐다.
숙소에서 잠시 쉬고, 우리는 거실에 모여 받아 놓은 안무 시안을 확인했다. 이틀 뒤가 바로 뮤직비디오 촬영이라, 시간이 많지 않았다. 일단 눈으로 먼저 안무를 익힐 생각이었다.
안무 영상은 TRV의 연습실에서 찍은 영상으로, 이번 안무를 주도적으로 만든 민지호와 곡 특성상 너무 빡센 안무가 되지 않게 눌러주는 역할을 한 한효석, 그리고 UO가 함께 했다.
우리 멤버 수보다 많은 댄서들이 함께 참여하는 무대로, 이전까지의 퍼스트라이트가 시도하지 않았던 청량 그 자체의 퍼포먼스였다.
내 이름표를 단 댄서 형이, 내 파트에서 잔망을 떨고 사라졌다.
“……너 저거 할 수 있어?”
지금까지 이런 귀여운 컨셉은 처음이라, 역대급으로 쫄아 있던 황새벽이 나에게 물었다. 나는 뻔뻔하게 대답했다.
“응, 왜 못 해?”
“야, 내가 저걸…….”
“애교가 뭐가 어려워, 안…….”
“귀여운 게 문제지. 애교는 쉽다고. 그래그래.”
내가 말하던 걸 황새벽이 끊어서 뺏어갔다. 내가 국선아 때도 이 말을 많이 했던 모양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은근 짜증을 유발하는 놈이긴 했다.
안무 영상이 끝나고, 민지호가 누가 봐도 칭찬을 바라는 표정으로 눈을 반짝반짝거리며 멤버들을 보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일부러 무시하고 말했다.
“아, 피곤하네. 잘까?”
내 말에 황새벽이 바로 알아듣고 대답했다.
“야식 먹자, 새벽부터 연습해야 되는데. 야식 먹을 사람.”
“형, 닭발 시키자.”
“그래, 그것도 시키고.”
야식 먹자는 말에 멤버들이 다 알았다고 대답하고, 먹고 싶은 걸 말하고 있으니까 민지호가 못 일어나게 박선재와 신지운을 잡아 앉혔다. 누가 봐도 섭섭한 표정이라 결국 황새벽이 입을 열었다.
“진짜 솔직히, 쟨 천재야.”
“어, 칭찬해 주기 싫은데, 솔직히 천재는 천재야.”
내가 대답하고 나서도 여전히 민지호가 두리번거렸다. 그래서 안주원이 민지호의 등을 두들기며 말했다.
“좋다구. 진짜 대단하다, 너. 애들이 놀리느라 반응 안 해준 거야.”
안주원이 하는 말에 멤버들이 다 낄낄대니까, 그제야 민지호가 놀리려고 칭찬 안 해준 걸 알고 안심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아, 하지 마. 나 진짜 안무 별로인가, 해서 쫄았단 말이야.”
그 말에 한효석이 핀잔했다.
“저게 별로일 수가 있냐? 왜 쫄아.”
“너도 솔직히 은근 쫄아 있었잖아.”
“……솔직히 여기서 안 쫄 수가 있냐고.”
“형들, 여기 프리코러스 안무 효식이가 만들었어.”
“그래? 진짜 몰랐어. 평소 효석이 스타일이 아니라. 진짜 잘 만들었다.”
“내 말이. 튀는 부분 없이 그냥 쭉 신나네.”
멤버들이 다들 마음에 들었는지 시끌시끌 좋았던 부분에 대해서 떠들었다. 칭찬을 실컷 받은 민지호가 가장 시끄러웠다. 그러는 와중에 틈틈이 수정하고 싶거나, 추가하고 싶은 부분에 대하여 상의하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멤버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적고 나서, 우리는 한 번 더 안무 영상을 돌려 보았다.
아마 각자 머릿속으로 무대 위에 섰을 때를 상상하고 있을 것 같다. 우리의 직업이 그런 거니까.
나도 무대를 머릿속으로 상상하다가, 도중에 깜빡 잠이 들어 멤버들이 깨웠다.
“형, 야식 먹어.”
“너네 먹어. 난 잘래.”
멤버들이 야식을 먹으려고 소파에서 내려와서, 내가 소파로 올라가 한쪽 구석에서 잠을 청했다. 멤버들이 어이없어하며 한마디씩 했다.
“아, 들어가서 자.”
“싫다고.”
“왜 굳이 저기서 자는 거야. 하여튼 우리보고 모여 있는 거 좋아한다더니, 지가 제일 좋아해.”
신지운이 모함하는 소리가 들렸다. 졸려서 방에 들어갈 체력이 없는 거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럴 힘도 없다. 이상하게 음식 냄새와 멤버들이 떠드는 소리, TV에 켜놓은 드라마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렸다.
* * *
안무는 보기에는 쉬웠지만 힘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가는 동작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특히 더 힘든 건 이번에 밝은 곡 분위기에 맞게 표정 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이틀 동안 내내 밤을 새워가면서 연습했기 때문에, 뮤직비디오 촬영을 위해 이동하는 차 안에서는 멤버들 모두 거의 기절한 것처럼 잠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영 잠이 오지 않았다.
설레서.
“마지막으로 바다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네…….”
이번 뮤직비디오는 대부분 스튜디오 촬영인데, 일부 바닷가 촬영이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바다를 본 게 언제인지 기억을 떠올려 봤다. 아무튼 누나가 유학을 간 이후에는 바다에 가본 적이 없으니까, 열 살 이전이었을 것이다.
그때마다 가족과 함께 놀았던 기억이 좋은지, 내 머릿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촬영장은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 카페 건물이었다. 건물을 일주일 동안 대여를 했고, 촬영팀에서 집처럼 꾸며놓았다. 요즘 좋은 장소에는 다 카페가 있는 모양이다.
아무튼 촬영을 위해 이미 준비가 끝나 있는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멤버들의 표정이 들떴다.
“와, 바다 진짜 잘 보인다.”
민지호의 말에 멤버들이 우르르 따라갔다.
나도 오랜만에 바다를 실컷 구경했다. 날이 워낙 좋아서 하늘이 꼭 보정한 것처럼 색이 선명했다.
이번 뮤직비디오에는 풋풋한 첫사랑의 스토리라인이 있는 가사에 맞춰서, 연기 파트가 있었다.
스토리 주인공은 안주원이었다.
“안 배우, 안 배우.”
옆에서 멤버들이 둘러싸고 놀리니까 안주원이 지금까지 본 것 중에 제일 괴로운 얼굴로 우리를 떠밀었다.
“아, 제발 쫌…….”
우리는 흐흐 웃으며 좀 더 놀리다가 물러났다. 안주원은 우리 소속사의 신인 여배우와 바닷가 길을 걷는 연기를 했는데, 우리가 보고 있어서인지 한 번에 끝냈다. 멤버들 앞에서 두 번은 연기하고 싶지 않다던 안주원의 바람이 이루어졌다.
나머지 멤버들 역시 건물 안과 근처에서 개인 촬영을 하다가, 바다를 배경으로 놓고 처음으로 멤버들이 처음부터 안무를 할 차례가 되었다. 황새벽이 모처럼 리더답게 말했다.
“첫 무대라고 생각하고 집중해서 가자.”
“오, 리더다.”
신지운의 말에 내가 말했다.
“놀리지 마, 놀리면 다시 안 할 수도 있어.”
“아, 그러네. 다신 안 놀릴게.”
황새벽은 짜증 내기도 체력 아깝다는 듯이 꺼지라고 손을 휘젓고, 바로 안무가 시작되었다.
좋은 날씨에, 근사한 배경 속에서 안무를 시작하는 순간. 아마 나는 바로 햇살이들이 이 뮤직비디오를 좋아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안무 중에 페어 안무가 많아서 멤버들과 자주 눈이 마주쳤는데, 그때마다 멤버들 표정에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읽혔다. 경쾌한 안무 속에서 멤버들의 열정이 느껴진다.
안무가 한 바퀴 돌고 나서, 스태프들이 첫 번째 관객이 되어 박수 치고 환호를 해줬다.
“퍼라 멋있다!”
“와, 이거 진짜……. 이건 된다.”
우리는 그렇게 신이 난 상태로 촬영을 마쳤다.
* * *
바닷가 촬영만 이틀이 꼬박 걸렸다. 멤버들은 촬영장 구석에서 돌아가면서 잠을 청했다. 그때 상태창이 떴다.
[돌발!]
[해당 영상 ‘좋아요’가 10만에 근접하고 있습니다]
[해당 영상 ‘좋아요’ 10만 달성 시 새로운 룰렛이 열립니다]
[미션 달성까지 남은 좋아요 345]
[미션 달성까지 남은 좋아요 342]
[미션 달성까지 남은 좋아요 337]
진짜 얼마 안 남았는데 줄어드는 속도가 좀 느렸다.
나는 슬그머니 내 핸드폰을 꺼내서 유튜브를 켰다.
유튜브 첫 화면을 보니, TYT의 새로운 서바이벌 <더 써틴>의 영상들이 추천으로 떠 있었다. 새 서바이벌이 진행 중이었다.
나는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 빨리 맑은 날의 영상으로 들어가 ‘좋아요’를 슬쩍 눌렀다. 그리고 돌아다니며 멤버들과 스태프들에게도 ‘좋아요’를 누르라고 종용했다. 다행히 다들 순순히 눌러줬다. 허허허…….
[…….]
[…….]
[…….]
[해당 영상 (맑은 날)의 ‘좋아요’가 10만을 달성했습니다]
[새로운 룰렛을 열 수 있습니다]
[현재 동시 사용 가능한 룰렛은 1개입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엇, 잠깐만.
이러면 지금 못 열잖아?
그래도 무슨 룰렛인지 확인이나 해보려는데, 갑자기 TRV 직원 하나가 선물 포장이 된 상자를 들고 나타났다.
“해원 씨. 원래는 컴백 직전에 드리기로 했는데……. 회사에서 아무래도 빨리 드리는 게 어떨까 해서요.”
“뭔데요?”
내가 궁금해하니까 TRV 직원이 나에게 선물 상자를 건네줬다.
안 그래도 내 차례 기다리느라 잠이 오고 있었는데, 뭔지 몰라도 신이 나서 잠이 깼다. 나는 직원이 건네준 칼로 포장을 뜯고 상자를 확인했다.
커스텀 인이어였다.
내가 순간 할 말을 잃고 보고 있으니까 멤버들이 몰려왔다.
“빨리 꺼내봐!”
민지호가 재촉해서 나는 내 커스텀 인이어를 꺼냈다.
오묘한 보라색 보석 디자인이었고, 왼쪽에 ‘바다’라고 한글이 적혀 있었다.
“어…… 이거 어떻게 알았어요?”
내가 물어보니까 직원이 말했다.
“멤버분들이 해원 씨 보라색 좋아하시구, 어릴 때 키우던 고양이 이름이 바다였다고 알려주셔서요.”
그러고 보니 그런 이야기를 한 기억이 난다.
어릴 때, 가족 여행으로 바다에 갔을 때 그 바닷가에서 고양이를 만나 집으로 데려왔다. 고양이 이름은 바다로 지었다. 그때도 이미 꽤 나이가 있었던 것 같고, 그 후에도 우리와 5년을 더 살았다.
나에게 바다는 친구이기도 하고, 어떨 때는 오히려 어른이기도 했다. 상당히 어른스러운 고양이였다.
원래 나는 그 고양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 사교적인 녀석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바다와 친해진 건, 그 고양이가 제일 좋아하던 사람인 우리 누나가 스무 살에 영국으로 떠나고 나서였다.
누나가 보고 싶을 때 나는 누나 침대에 가서 울었던 것 같다. 아마 열 살짜리 인생의 첫 번째 상실감을 견디기 힘들었나 보다.
내가 거기서 잠들었다가 깨보면 바다가 옆에 자고 있었다. 나는 바다와 같이 자는 것에 점점 익숙해졌다.
아무튼 최애가 떠나서인지 바다는 나와 곧잘 놀아줬고, 그 친구가 떠난 이후에 나는 다시는 동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니까 바다는 내 인생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고양이다. 언젠가 그 고양이에 대한 노래를 만들고 싶었다.
“아, 기분 진짜 이상하네……. 아니, 인이어 볼 때마다 울컥하면 안 되는 거 아냐?”
내가 괜히 툴툴거리니까 신지운이 말했다.
“거봐, 내가 보나 마나 또 좋으면서 싫은 척할 거라고 했잖아.”
“내가 언제 싫은 척했어. 그냥 좋은데.”
“참 좋아하는 사람의 태도다, 그치?”
아니, 뭐 얼마나 더 좋아하라고…….
나는 그냥 무시하고 내 커스텀 인이어를 살폈다. 너무 화려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수수하지도 않은 정도가 딱 내 취향이었다. 귀에 껴보니 딱 좋다.
“아, 너무 좋네. 감사합니다. 너네도 약간 고맙고.”
나는 말하며 멤버들이 약간이라는 말에 트집 잡기 전에 빨리 인이어를 빼서 인이어를 관리하는 박중운 매니저에게 넘겨줬다.
“빨리 무대 서고 싶다.”
내 말에 민지호가 ‘나도’ 하고 소리 지르려 했는데 그전에 한효석이 빠르게 입을 막았다.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