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45화
인이어 생각에 빠져 있다가 뒤늦게 나는 룰렛을 확인했다.
[새로운 룰렛을 열 수 있습니다]
[현재 동시 사용 가능한 룰렛은 1개입니다]
[새로운 룰렛을 확인합니다]
[히든 미션의 달성으로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슈퍼 아이돌의 퍼플룰렛)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현재 사용 중인 룰렛은]
[(히트곡 메이커의 레드룰렛)입니다]
[룰렛을 교체하시겠습니까?]
[※선택에 유의해 주세요]
음…….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이구나.
조금만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면 지금 당장 나에게 가장 필요한 건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거다.
그걸 아는데도 나는 잠깐 선택을 미뤘다. 적어도 정규 앨범이 완성될 때까지, 나는 최대한 작곡에 집중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쫄렸다. 대중의 마음이 움직인다는 게, 나에게는 나쁘게만 작용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나는 좀 여유를 가지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은 후 뮤직비디오 촬영을 이어갔다.
* * *
뮤직비디오 촬영 직후, 예정된 컨셉 트레일러를 기다리며 퍼스트라이트의 팬들은 이번에 공개될 자체 예능, 퍼스트라이트 컴퍼니와 함께 추측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번 컨셉도 센 건가?]
[연달아 센 건 아닐 듯]
[정장 또 입어주면 좋겠는데ㅠㅠㅠㅠ]
[난 애들 다 성인 되면 정장은 실컷 볼 것 같아서 교복…….]
[이제 슬슬 지호가 스포 해주러 올 때 됐는데!!!!!]
그렇게 팬들이 술렁거리고 있을 때, 팬들의 기대대로 X버스 알람이 울렸다.
[민조 : 햇살이들 컨트 기다리고 있지!!!!!!!!!??????????????]
[민조 : 우리도 연습하면서 기다리는 중!!!!!!!!!!!!!!!!!!!!!!!!!!!!]
[민조 : 두근두근두근두근]
[안주원 : 지호 신났네ㅋㅋㅋㅋㅋ 햇살이들이 좋아해 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정확히 자정.
59초짜리 컨셉 트레일러가 업로드되었다.
어둡던 화면에서 페이드인 되며 넓은 창문 너머 바다를 배경으로, 침대에 누워 있던 안주원이 보였다. 침대에서 일어나 휴 한숨을 쉰 안주원이 머리를 긁적거리고 무릎에 상당히 귀여운 쿠션을 놓은 후, 그 위에 큼지막한 노트를 올려놓고 메모를 이어갔다.
[예상 질문
1. 잘 잤어?
2. 야구 이겼어? (또 물어볼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3. 퍼스트라이트 신곡 들어봤어?
4. ……또 뭐 있지?]
4번에 밑줄을 그어가며 고민하던 안주원이 메모장을 던져버리고 쿠션 위에 널브러졌다.
그리고 야구 경기장이 등장하며 각자의 고유번호가 적힌 유니폼을 차려입은 세 명의 멤버가 지나갔다. 나머지 세 명의 멤버는 안주원이 있는 숙소의 옥상, 언덕, 바닷가에서 촬영한 개인 컷으로 지나갔다.
[청춘+청량이야?]
[미쳤다]
[아니 애들 얼굴]
[얼굴]
[자연광…… 자연광이 이런 거구나…….]
[자연광도 좋은데 애들 표정 진짜 밝다ㅠㅠ 촬영 재미있었나봐ㅠㅠ]
[새벽이 저런 표정 진짜 처음 봐…….]
[진짜 새벽이가 청량해 보일 수 있구나ㅋㅋㅋㅋ]
* * *
내가 언뜻 살펴보기에도, 컨셉 트레일러는 빠르게 조회 수가 올라가고 있었다. 아직 선주문이 시작되기 전이지만, TRV에서는 이전보다 높은 물량을 예상하고 있었다.
물량이라는 또 너무 많이 만들면 남고, 너무 적게 만들면 모자라니까. 최대한 근접하게 예상을 뽑아내면 좋겠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닌 모양이다.
게다가 지난번에 디지털 싱글 이후 좋은 반응이 이번 곡에도 유지될지 알 수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많이 쫄린다.
이번 앨범이 진짜 중요하겠구나, 싶었다. 타이틀곡은 이미 믹싱까지 마쳤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믿지도 않는 신에게 비는 것뿐이다.
무사히 11월에 있을 콘서트 장소도 정해졌다고 들었다. 웬일로 모든 게 수월하게 진행이 되고 있다. 물량과 콘서트 관객 수 예측만 잘 된다면…….
……회사가 알아서 잘했겠지? 그래도 TRV가 짬이 있는데……. 그치?
나는 내가 너무 회사를 못 믿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빨리 잊어버리기로 했다.
“반응 어때? 괜찮냐?”
내가 유튜브 댓글을 보고 있는 황새벽에게 물어보니까, 황새벽이 핀잔했다.
“네가 직접 봐.”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전체적으로 반응이 괜찮은 모양이다.
나는 다시 유튜브를 띄운 후에, 굳이 한 번 또 인기 동영상에 있는 걸 내 눈으로 보고 싶어서, 인기 동영상 카테고리로 들어갔다.
컨셉 트레일러 바로 위에 TYT 새 서바이벌 더 써틴의 영상이 있었다.
평소에는 ‘더 써틴’ 관련 영상을 무시하는데, 오늘은 썸네일이 좀 신경 쓰였다. 연습생의 불만 많은 표정과 눈빛이 영 익숙하다.
그리고 그게 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짜깁기 논란이 신경 쓰여서 나에게 따로 연락까지 했는데, 또다시 이렇게 대놓고?
내 핸드폰이 멈춰 있는 걸 봤는지 황새벽이 말했다.
“야. 그걸 왜 신경 써.”
“어.”
나는 일단 그냥 화면을 이동해 퍼스트라이트의 정규 앨범 컨셉 트레일러를 확인했다. 그래도 한동안 그 장면이 잘 사라지지 않았다.
* * *
[더 써틴 악편 미쳤네]
[책임 피디 누구냐]
[↳박경석? 국선아 때 악편도 이 피디인듯]
[미친 새끼 아니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연습실로 이동하며 댓글을 확인하던 신지운이 찡그린 얼굴로 옆자리에 앉아 과제 중인 안주원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아예 그냥 악편으로 컨셉을 잡네.”
“뭐가……. 어, 그러네.”
정해원의 편집 짜깁기에 대한 논란으로 공격이 들어오자, ‘더 써틴’의 책임 PD인 박경석은 아예 대놓고 자극적인 편집을 시작했다.
시청자들은 이 편집본에서 짜깁기의 흔적을 찾아냈고, 출연자들 역시 악편에 대해서 거리낌 없이 거론하기 시작했다.
-저 이거 악편 당하는 거 아니에요?
-죄송해요, 이거 편집해 주세요. 제발요.
-아니, 지난번에요. 제가 그 표정이 순위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악편을 컨텐츠로 삼은 셈이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간혹 정해원의 이름도 거론되었다.
-해원 선배님 심정이 이해가 가요.
-선배님, 악편 안 당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계속해서 거론하다 보니, 국선아 때의 편집이 점점 더 가벼운 일처럼 보였다. 신지운이 핸드폰을 던져 놓으며 말했다.
“피디님이 열심히 고민하셨네.”
“지운아, 저거 고소 못 하나?”
“아니, 내가 법조인이 아니고 부모님이…….”
“너 올해 수능 보잖아.”
“수능을 보기만 하지.”
신지운의 말에 운전하던 매니저 박중운이 말했다.
“너희 부모님은 수능 잘 보셨겠다.”
“잘 봤으니까 좋은 대학들을 갔겠죠. 근데 진짜 수능 꼭 봐야 되나. 나 오래 앉아 있는 거 힘든데.”
그러자 음악을 듣고 있던 한효석이 말했다.
“형, 제가 도시락 싸드려요?”
“풀떼기만 먹일 거잖아.”
“닭가슴살 넣어드릴게요.”
“세상에나 감사합니다.”
“왜요, 소화 잘되고 좋을 것 같은데.”
한효석이 어깨를 으쓱이고 다시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그리고 할 말이 다시 생각났는지, 이어폰을 다시 뽑고 말했다.
“저 소속사에 같이 있던 친구가 지금 ‘더 써틴’ 출연 중인데, 요즘 분위기 진짜 이상하대요. 서로 악편 당하려고 애쓴다던데. 그게 무대보다 화제가 잘 된다고.”
그 말에 신지운과 안주원이 혀를 찼다. 그리고 예상대로, 여론은 정해원에게 좋게만 흘러가지 않았다.
[어쨌든 악편도 화제성이긴 해]
[능력 없어도 방송 분량은 X나 풍족했잖아. 그 덕에 실력 없어도 지금 데뷔조들이랑 같이 활동하고ㅎㅎㅎ]
[↳그래도 무대는 잘했어]
[↳↳엥 전혀 못 느꼈는데]
[↳↳↳그러니까 국선아 편집이 문제였던 거지]
[예전엔 차라리 내 픽 안 나오는 게 낫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더 써틴 보니까 악편이어도 분량 생기는 게 이득이더라…….]
[솔직히 정해원도 그래서 어그로 졸라게 끈 거 없잖아 있을 듯]
[↳국혐이 악편으로 피해 본 게 있나? 하면 사실 없음ㅎㅎ]
어느 순간 ‘까도 되는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하면 좀 더 쉽게 악플이 달렸다. 그래도 나름으로 반박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는 게 긍정적이라면 긍정적이었다.
안주원이 박중운 매니저에게 말했다.
“형, 회사에서 더 써틴 쪽으로 좀 말하면 안 돼요? 해원이 굳이 거론하는 거, 우리 팀 이미지에 안 좋을 것 같은데.”
“말은 해보겠는데, 알잖아. VMC가 워낙 쪼잔한 데까지 신경 쓰고 불이익 주는 거.”
“……그렇긴 하죠.”
퍼스트라이트의 멤버들 모두 그 회사의 예능에 출연자들이니, 그곳 분위기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능력 얘기하니까 지난번에 정해원 작곡도 뭐 말 나오지 않았나…….]
[↳그거 끝난 지가 언젠데. 양이형이 사기꾼이라고 쌍욕 했잖아.]
[↳↳그니까. 이런 애들은 업데이트 안 함ㅋㅋㅋㅋ 설명해 줘도 지가 보고 싶은 것만 보잖아]
[이번 퍼라 정규에도 정해원 수록곡 있다던데]
[↳솔직히 정해원 작곡 기여도는 이번 앨범 나와봐야 알 듯]
그 후에도 댓글 반응을 확인하던 신지운이 말했다.
“어쨌든 이번 앨범 나오면 작곡 가지고 트집 잡던 새…… 친구만 우스운 꼴 되겠네.”
“피아노 세션 진짜 좋더라.”
안주원이 맞장구치고 있을 때, 한효석이 어떻게 들었는지 이어폰을 빼고 말했다.
“투 빌런즈도 진짜 좋죠?”
“알았다고. 너희 곡 좋은 거 받았다. 됐냐.”
“네.”
한효석이 씩 웃으며 대답하고 다시 이어폰을 끼웠다.
* * *
“끝났다…….”
마지막 디테일 수정과 일부 스트링 편곡까지 끝. 이제 내가 할 일은 진짜 끝이었다.
내가 그대로 엎드리려 하니까, 양이형이 말했다.
“저장 누르고 좋아해라.”
“어, 그러게.”
창작을 업으로 삼는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 당연히 백업이다.
다행히 양이형이 옆에서 매번 나에게 저장의 소중함을 각인시키고 있었다. 내가 양이형에게 말했다.
“형 덕분에 저장을 생활화하는 어른이 됐어.”
“지금 안 했잖아, 새끼야.”
“지금 형한테 욕 처먹고 저장을 생활화하는 어른이 됐어.”
“고맙겠네. 한우 사.”
“나 거지잖아.”
“이번 앨범 나오면 거지 탈출할 거 아냐.”
탈출할 수 있나…….
6월에 나온 ‘불을 켜’의 음원 사이트 수익은 11월에 나온다는 모양이다. 작곡가들의 월급날은 23일이라고 들었다.
이번에는 수록곡이 꽤 되니까, 내년에는 저작권료가 좀 나올지도 모르겠다.
“장비 바꿀 만큼 나오면 좋겠는데. 욕심인가?”
“뭐 얼마나 좋은 장비를 쓰려고.”
“아니, 확실히 좋은 장비가 좋긴 하더라.”
특히 나는 장비를 제일 싸게 맞췄기 때문에, 처음에 양이형의 장비를 쓰고 깨달음을 얻었다. 작곡가들이 장비 별로 안 중요하다고 말하는 건 본인이 재산 탈탈 털어 좋은 장비를 쓰고 있기 때문에, 안 좋은 장비를 쓰는 게 어떤 느낌인지 잊어버리거나, 애초에 모르기 때문이라는 걸…….
양이형이 말했다.
“하긴, 넌 귀가 좋아서 더 차이가 크게 느껴지겠다.”
“그렇게 말하면 되게 천재 같아 보이는데, 그렇지는 않아.”
“아니, 이상하게 대학까지 가서 음악 배운 건 난데, 네가 곡 만들고 있으면 배운 티가 난다니까. 이게 클래식이 주는 그 있어 보임이 있어.”
그 있어 보임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내가 클래식 악기에 대해서 좀 더 잘 아는 건 사실이다.
이번에 작업을 하면서 타이틀곡인 ‘아침만 기다렸어(Q&A)’는 물론, 전반적으로 사랑스러움을 표현하는데 클래식 악기를 꽤나 이용했다. 내가 직접 녹음한 피아노 세션은 물론, 글로켄슈필과 플루트 소리도 들어갔다.
아무튼 빨리 하이라이트 메들리라도 빨리 공개됐으면 좋겠다. 음원 공개까지 계속 이렇게 긴장하면서 기다릴 생각을 하니 벌써 막막하다.
나는 남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작업하느라 미뤄둔, 컨셉 트레일러 공개된 날 저녁에 업로드된 자체 예능, 퍼스트라이트 컴퍼니의 새로운 편을 보기로 했다.
작업실 접이식 침대를 펴놓고 영상을 틀었는데, 비 오는 밤의 교정과 함께 음산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나는 바로 영상을 껐다.
“……숙소 가서 봐야겠다.”
역시 공포물의 백미는 음악과 효과음인 것 같다. 음악이 깔리니까 찍을 때 내가 느꼈던 것보다 더 무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