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46화 (46/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46화

숙소로 돌아가 보니 아무도 없었다. 누구 하나는 있을 줄 알았는데.

평소에는 일곱 명은 한집에 살기에 너무 많다고 생각했는데, 한 명도 없으니까 또 집이 지나치게 휑하다.

소파에 혼자 드러누워도 멤버들과 가위바위보를 해서 차지할 때만큼 좋지 않다. 아무래도 경쟁체제에 지나치게 익숙해진 것 같다.

나는 멤버들만 있는 단톡방을 켰다.

[숙소에 왜 아무도 없냐?]

[안쭈 : 나 작업실 왔는데 너 없네?]

[민조 : 연습실! 빌런즈 안무 짜고 이써!!!!!!!!!!!!]

[효식 : 저도요]

[막내♥ : 난 쟤네 끝나면 같이 밥 먹고 가려구!]

[신지운 : 나 촬영 곧 끝나. 근데 새벽이 형 숙소에 있을걸?]

나는 핸드폰을 보다가 일어나서 황새벽의 방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황새.”

“어어…….”

방 안에서 황새벽의 잠꼬대 같은 소리가 들렸다. 진짜 인기척 안 내고 생존하는 데 도가 튼 놈이다.

워낙 작은 방이라 뭐가 딱히 있지는 않지만, 기타 세 개 쭈르륵 놓여 있다.

이번에 내가 녹음한 피아노 세션은 그대로 들어갔지만, 기타 세션은 대부분 프로가 와서 새로 녹음을 했다. 그걸 보더니 황새벽은 자기가 세션을 녹음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며 본가에 가서 기타를 가져오고, 무지하게 비싼 일렉 기타 하나를 새로 샀다.

“나랑 일라운드 같이 봐주라. 무서워.”

“꺼…… 어어…….”

황새벽이 돌아누우며 말해서 내가 기타로 가서 말했다.

“야, 기타 좋다. 좀 쓴다?”

“건들면 뒤진다.”

방금 전까지 ‘꺼져’ 두 글자도 제대로 말을 못 하던 황새벽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제 황새벽 깨우는 건 일도 아니겠다. 히히.

황새벽은 잠이 확 깬 얼굴로 방에서 나오며 나에게 말했다.

“아직도 안 봤냐?”

“바빴어.”

“그래, 뭐, 네가 바빴다면 할 말이 없지.”

황새벽이 말하며 밖으로 나왔다. 자다 깨서 배고픈지 황새벽이 과자 봉지를 가져오는 사이, 나는 퍼스트라이트 자체 예능을 틀었다.

[퍼스트라이트 컴퍼니 시즌2 #1]

스산한 음악이 흐르고, 멤버들이 폐교에서 각자의 이능력을 찾아다니는 장면이 나왔다. 나와 황새벽이 과학실을 뒤지는 장면을 보며 내가 말했다.

“우리 엄청 쫄아 있었는데, 되게 멋있어 보이게 편집해 주셨네.”

“나머지가 너무 쫄보라 우리라도 멋있게 해주셨나.”

동생들이 워낙 겁쟁이라 우리가 맏형 라인의 의무감으로 과학실로 향하고 있다는 게 자막으로 구구절절 설명이 나왔다.

언제나처럼 나는 그렇게 많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스토리 진행상 보여줘야 하는 부분에서는 다 나와, 내 생각보다는 분량이 낙낙했다.

그리고 방송은 막내즈가 미술실을 찾고 있는 장면이 나왔다. 세 사람은 벽에 걸려 있는 액자 주변을 보고, 들춰보기도 했지만 딱히 수확이 없었다.

박선재가 워키토키에 석고상에 대하여 말했다.

-여긴 아무것도 없는데…… 아, 머리가 세 개 있어…….

-머리라니까 더 무서운데? 줄리앙 아그리파 비너스일 거야. 데생할 때 도움 주시는 분들.

박선재와 안주원이 대화하고 있을 때, 한효석이 다시 미술실 벽으로 이동하는 것이 보였다. 한효석은 아까 들춰본 액자의 글씨를 바라보고 있었다. ‘ballon’이라고 쓰여 있었다.

-공중…… 아, 위.

혼자 중얼거리던 한효석이 의자를 끌고 와 그 위에 올라섰다. 그렇게 올라선 한효석의 눈높이에, 액자 틀 위에 적힌 글자가 보였다.

[우리만 아는 비밀이야]

그리고 그 글자 옆에 돌돌 만 작은 종이가 붙어 있었다. 한효석이 그걸 떼서 바로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한효석이 실소하는 장면에서 페이드아웃 되고, 검은 화면 위로 발롱에 대한 설명이 나왔다.

[ballon : 고전 무용 용어. 공중에서 포즈를 유지하는 힘. 공중에 가볍게 뛰어오르고, 부드럽고 유연하게 착지해야 한다]

“뭐야. 끝이야?”

“어, 끝.”

1편이 끝나고 나는 감탄하며 황새벽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안주원한테는 미술로 힌트를 주고, 한효석한테는 발레 용어로 힌트를 준 거야?”

“어, 그랬더라고.”

“민지호는? 자기가 빌런인 거 어떻게 알았어?”

“그걸 내가 아냐? 다음 편을 봐야 알지.”

“아, 다음 편 아직 8일 남았는데. 좀 매주 하지.”

“외주 주지 않는 한은 어렵지.”

내가 답답해하는 사이에, 황새벽이 배달 어플을 확인하며 물었다.

“넌 야식 안 먹지?”

“응, 안 먹을 것 같은데.”

“야식을 안 좋아하냐, 희한하게.”

“좋아해.”

“뭘 좋아해, 먹는다고 말만 하고 맨날 안 먹잖아.”

황새벽이 말하며 야식메이트인 신지운에게 전화해서 먹을 걸 정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이번 자체 예능에서 빠져 있었다.

“이번 편 재미있다.”

내 혼잣말에 전화하던 황새벽이 말했다.

“넌 거의 나오지도 않는데, 되게 몰입했네.”

“이 정도면 많이 나왔지. 그리고 내 취향이야. 반응 좋지?”

“엄청 좋지.”

“이제 열두 시 넘었으니까 우리 컨셉 포토도 공개됐겠네.”

“어, 그것도 반응 좋더라.”

“좋으면 한번 볼까?”

내가 말하며 핸드폰을 드니까 황새벽이 곧바로 뺏어서 내렸다.

“아니. 신지운이 좋은 댓글 찾아서 보내줄 텐데 뭐하러 봐.”

엇…….

요즘 반응이 괜찮을 땐 직접 보라고 말하던 황새벽이 이러는 걸 보니, 분위기가 안 좋은 모양인데.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게 표정에 드러났는지 황새벽이 말했다.

“아니야. 반응은 좋아. 좋은데.”

“그래, 알았어. 왜 네가 미안한 표정이야. 네가 댓글 다냐?”

“미안한 게 아니고 그냥.”

미안한 건 솔직히 내가 미안하지.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그렇게 말하면 부담될 것 같으니까.

나는 화제를 전환하려고 핸드폰 대신 리모컨을 들고, 넷플릭스를 켜서 요즘 멤버들이 즐겨 보는 드라마를 검색했다.

“요즘 너네 이거 진짜 열심히 보더라. 재미있냐?”

“재미있어. 너 빼고 세상 사람들 다 봤을걸.”

“나도 봐야겠다.”

말은 그렇게 했는데, 1편 틀자마자 피곤해서 잠이 쏟아졌다. 이제 정규 앨범 작업도 완전히 내 손을 떠나서 여유가 생겼다.

드라마가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그냥 들어가서 잘까, 생각하는데 황새벽이 전화를 끊고 말했다.

“신지운이랑 얘기했는데, 그래도 너도 알긴 아는 게 낫겠다.”

“뭐가.”

“TYT 새 서바이벌 있잖아. 더 써틴. 거기 피디가 박경석 피디님이잖아. 기억나지? 국선아 때.”

“어. 그 피디님이 왜?”

“방송에서 계속…… 그니까 막 악편을 좀, 수면 위로 끌어올리려고 한다고 해야 되나?”

“……아.”

나로서는 생각도 못 해본 방식이다.

“그래서?”

“그래서, 그렇게 막 좀…… 뭐라고 설명해야 돼, 이걸. 아, 그래. 신지운이 말한 그대로 옮기면 악편의 컨텐츠화. 피디가 같고 그러다 보니까 아무래도 연습생들이 네 이름 얘기도 하고 그랬나 봐.”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고 나서, 유튜브를 켰다. 황새벽이 난처해하며 물었다.

“보려고?”

“어, 뭔 소리 하는지는 봐야지.”

머릿속에서 뭔가 핑 도는 것 같다.

유튜브에서 더 써틴을 검색해 보니, ‘악편’을 제목에 넣은 파생 영상들이 있었다. 영상을 눌러보니 국선아 때와 더 써틴의 악편을 교차로 편집해 놓았다.

나는 영상의 댓글들을 확인했다.

한동안은 악플은 안 보는 게 내 정신 건강에 좋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덮어놓고 피하기만 하면 어떻게든 무대는 설 수 있었다. 가끔 스스로를 속이는 내가 편집증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정작 또 음악이 시작되면 좋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내가 아예 안 찾고, 안 보는 사이에 내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는 걸 알고 나니 피하는 것만이 답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내 영상이 편집되어 있으니 나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악편이 불쌍하다는 댓글이 절반, 나머지는 욕이었다.

인상과 인성에 대한 욕이다. 간만에 원색적인 욕들을 보고 있으니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겠다.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부정적으로 여기는지에 대해, 내가 한동안 잊어버리고 살았다는 것.

뭐. 그건 그렇고.

“그래도 댓글 방어해 주는 분들 엄청 늘었다.”

“……어, 뭐.”

“햇살이들이겠지?”

“아이디랑 프로필 보면 그래 보이네.”

퍼스트라이트의 팬들이 대부분 내 편이 아니겠지만, 내 편을 들어주는 건 대부분 퍼스트라이트의 팬이다.

“속 쓰린 와중에, 또 감동받아서 울컥한다.”

내가 웃으며 말하는데 황새벽이 미친놈 보듯이 날 봤다. 그리고 결국 입으로도 내뱉었다.

“미친놈. 완전 또라이야, 이거.”

“돈 많냐?”

나는 말하며 낄낄거렸다. 그리고 유튜브 영상을 다시 바라보며 말했다.

“박경석…… 아, X 같은 새끼…… 엇.”

무심코 말하고 내가 빨리 황새벽을 보며 말했다.

“한 문장이니까 만 원만 받자. 응?”

내 말에 황새벽이 갑자기 박수를 치더니 말했다.

“야, 내가 내줄게. 욕 실컷 해.”

“……진짜? 감사합니당.”

내가 말하는데 막 신지운이 들어왔다. 오면서 사 오라고 했는지, 손에 신지운의 개인 활동을 담당하고 있는 소속사 근처의 맛집 봉투가 들려 있었다. 황새벽이 신지운을 보자마자 말했다.

“지운아, 정해원이 박경석보고 X 같은 새끼래.”

“아, 진짜? 이만 원 내가 내줄게.”

“내가 똑같은 소리 했어. 우리 만 원씩 내주자.”

뭐, 얘네는 내가 욕하기만 기다렸나 보다. 그럼 진작 말을 하지.

아무튼 한동안 더 써틴에 대해서 말도 못 하던 멤버들은 이제야 좀 후련해 보였다.

[근데 국혐 눈빛은 악편으로 만든 게 아니잖아 X나 기분 나쁜데]

[↳인상이 여지를 준 거지]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현답이네]

나는 멤버들과 좀 더 잡담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내 목덜미를 손으로 문질렀다. 방금 본 댓글들이 내 목덜미를 쿡쿡 찌르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이번에 컨셉 포토는 쎄해 보이지 않게 해달라는 내 부탁대로 스태프들이 정말 많이 신경 써서 메이크업을 하고 스타일링을 해줬다. 솔직히 좀 자신 있다. 스태프들이 촬영 내내 오구오구 해준 덕에 자신감이 확 붙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서 내 방으로 와 침대에 누웠다.

“아.”

정신이 팔려서 멤버들에게 들어간다고 말도 안 하고 들어왔다. 또 이런 걸 은근 신경 쓰는 묘하게 섬세한 놈들이라 나는 단톡방에 글을 썼다.

[나 작업 다 끝났으니까 연습까지 쭉 잘 거야. 깨우지 마]

그 후에 핸드폰을 던져 놓았다

이제 내일부터 컴백까지는 지옥의 연습 일정이 잡혀 있다. TRV가 날짜를 기가 막히게 잘 잡아서, 우리가 컴백 하는 주에 컴백 하는 그룹이 우리뿐이다. 덕분에 우리는 타이틀곡과 커플링곡을 모두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좋은 일이다. 힘들어 뒤질 것 같아서 그렇지.

아무튼, 나는 울적함보다 박경석과 VMC에 화가 났다.

국선아 때 크게 문제가 된 건 조작이었지만, 나 개인에게 더 큰 일은 박경석 피디의 악의적인 편집들이었으니까. 그리고 잠깐 그걸 멈췄을 때, 계속하라고 종용했을 윗선도…….

[히든 미션의 달성으로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슈퍼 아이돌의 퍼플룰렛)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현재 사용 중인 룰렛은 (히트곡 메이커의 레드룰렛)입니다]

[현재 동시 사용 가능한 룰렛은 1개입니다]

[룰렛을 교체하시겠습니까?]

[※선택에 주의해 주세요]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대중의 마음이 부정적으로 움직일까 봐 걱정했다는 게, 갑자기 어처구니없게 느껴진다.

대중의 마음은 나에게 이미 부정적이다. 내가 인터넷을 피해서 잠시 잊고 있었을 뿐.

나는 나의 두려움의 근원을 안다.

나는 무대에 서지 못하는 게 그 어느 것보다 무서웠다. 그리고 지금처럼 대중의 반응이 나쁘기만 한다면, 올해가 끝난 후에는 다시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다.

[룰렛을 교체합니다]

[(슈퍼 아이돌의 퍼플룰렛)에서 사용할 수 있는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퍼플룰렛 A급 티켓×1]

그렇게 꿈꾸던 무대 앞에서, 내가 여전히 두려움을 느낀다는 사실이 싫다.

가짜여도 상관없다. 한 번쯤, 짧은 순간이라도 대중의 마음을 얻어보고 싶었다.

나는 룰렛을 돌렸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