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49화
정해원의 전화를 받고 양이형의 작업실로 가기 전, 박중운이 지나치게 빡센 연습으로 연습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멤버들에게 물었다.
“진짜 해원이 데리러 가도 되나? 좀 더 쉬라고 할까?”
그러자 지친 멤버들 중에서도 제일 심하게 지쳐서 뻗어 있던 황새벽이 대답했다.
“아뇨, 정해원 거기다 냅두면 또 자기 연습해야 되는데 안 깨웠다고 성질내요.”
“해원이가 성질을 내나? 못 봤는데.”
박중운 매니저의 말에 멤버들이 전부 그가 있는 쪽을 보았다. 날 티가 줄줄 흐르는 아이돌 여섯 명의 열두 개의 눈동자가 확 쏠리니 무지하게 어려워졌다.
신지운이 입을 열었다.
“그 형 성깔…… 그게 형이 직원이라 숨기는 거예요.”
“맞아. 숨기는 거야. 녹음도 멤버 녹음할 때랑 다른 분이 녹음하실 때랑 태도 다르잖아.”
민지호가 맞장구치고 한효석이 덧붙였다.
“어, 멤버한테 훨씬 빡세시지. 이번에 녹음 때도…….”
“나도! 진짜 나 녹음하면서 우리가 벌금 건 게 그때만큼 고마웠을 때가 없어. 벌금 안 걸려 있었으면 그 형 나한테 한 번은 욕했을걸.”
“해원이 착하지 않나…….”
“착하죠, 착한 거랑 기 센 거랑은 별개라 그렇지.”
드센 멤버들 중에서도 가장 기가 세 보이는 신지운이 저렇게 말하는 게 매니지먼트 직원 입장에서는 상당히 의외로 느껴졌다.
아무튼 방금 과호흡 증상을 보이던 사람이 곧바로 연습에 복귀하겠다고 하니, 정작 회사는 뒤집혔는데, 반대로 퍼스트라이트의 멤버들은 물론이고, 양이형까지도 바로 연습에 복귀하겠다는 정해원을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건강이나 멘탈 관련된 걱정보다, 빨리 안 데려오면 화를 낼까 봐 걱정이었다. 다들 같은 생각을 하는 걸 보니 국선아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가진 정해원에 대한 뚜렷한 이미지가 있는 듯했다.
잠시 후 작업실로 가보니 정해원이 계단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 형.”
“아침에 상담 선생님 모셔오기로 했어.”
그 말에 정해원이 징글징글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 진짜? 엔터 회사랑 연계하면 안 되겠다. 밤에 막 연락하네.”
“웬만하면 안 하지. 아까 회사 완전 난리였어. 다 얼마나 놀랐는지 아냐?”
“아니, 그게……. 계속 댓글이나 반응들 안 보다가 오늘 갑자기 하라메 댓글 반응이 너무 궁금한 거야. 내가 많이 참여했잖아.”
그야 그렇긴 하겠지만. 평소 은근히 능구렁이 같은 데가 있어서, 자기 편한 대로 변명하고 넘어가는 데 능숙하다 보니 진짜 하이라이트 메들리를 보려고 댓글을 확인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정해원은 방금 전에 복도에 쓰러져 있던 사람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멀쩡한 얼굴로 먼저 차로 가서 빨리 오라고 성화를 했다.
* * *
빨리 연습을 쫓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내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거의 달리듯이 연습실에 도착했는데, 정작 멤버들은 누워 있었다.
“너희 왜 벌써 쉬냐?”
내가 황당해서 물어보니 황새벽이 대답했다.
“쉬긴! 여태 했다, 연습. 민지호가 누워 있는 거 보면 모르겠냐.”
그 말에 안무 연습을 할 때 가장 늦게까지 체력이 남아 있던 민지호가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섰다.
“아니, 나 일어났어!”
민지호의 열정이 폭발하는 말에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터졌다.
“아, 민지호 다시 누워…….”
“제발 좀 쉬자고!”
안무가 쉬워 보이면서 무지하게 어려웠다. 거기다 커플링곡 Get set ready는 아예 컴백 첫 주에 에너지를 다 터뜨려 버리자는 목표로 안무를 만들었기 때문에, 곡 대부분이 공중에 떠 있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뛰어오르는 동작이 많았다.
연습하는 김에 새벽에 아예 안무 영상을 찍을 계획이었다. 그런데 안무가 워낙 힘들어, 다들 제일 체력 좋을 나이라 안무는 어떻게든 해내도 표정 연기까지 하는 게 불가능했다. 나는 혼이 빠져나간 얼굴로 앉아 있는 멤버들을 보았다.
그래도 좀 쉬고 온 내가 어떻게 분위기를 올려야 할 것 같아서, 황새벽에게 말했다.
“황새, 나 드럼 가르쳐 주라.”
“너? 드럼 치잖아.”
“잘은 못 치잖아.”
황새벽은 밴드부에 중학교 시절을 올인했기 때문에, 밴드부에서 사용하는 모든 악기를 어느 정도 다룰 줄 알았다. 한효석이 일어나며 말했다.
“저도요.”
“형, 나도!”
그리고 멤버들이 전부 일어나 우르르 드럼이 있는 연습실로 이동하니까 안무팀 형누나들이 우리를 무지하게 이상하게 보며 말했다.
“쟤네가 젊긴 젊다.”
“우리도 젊어, 쟤네가 어린 거지…….”
그렇게 말하는 안무팀을 뒤로하고 연습실에 우르르 들어갔다. 황새벽이 드럼 앞에 앉자 신지운과 민지호가 기타를 들었다. 내가 박선재와 한효석에게 마이크를 건네주는데 안주원이 나에게 말했다.
“해원아, 나 키보드밖에 못 하는데.”
“나 베이스도 배웠어.”
“너는 진짜…… 천재구나?”
쓸데없는 소리 하는 안주원을 뒤로하고, 나는 코드부터 시작해, 간단한 곡을 작곡했다. 어쩌느니 저쩌느니 해도, 멤버들은 음악을 할 때 가장 활력이 넘쳤다. 그때 민지호가 말했다.
“라방 켜자!”
“야, 지금 새벽 세 시야.”
“그래도 켜자! 이거 햇살이들 보여주고 싶어. 잠깐 켰다가 끄지 뭐.”
새벽 세 시에 이래도 되나, 민지호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과 직원들이 고심했지만 정말 잠깐만 켜보기로 했다. 직원들이 라이브방송을 위해 카메라 위치를 조정해 준 후, 민지호가 라이브방송을 켰다. 그리고 카메라 앞에 가서 말했다.
“우리 보여요? 들어오고 있어요?”
그러자 핸드폰을 확인 중이던 신지운이 말했다.
“들어오셨다.”
그때 안주원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까 우리 이거 처음 아냐? 이렇게 스케줄 없이 갑자기 켠 거.”
“어, 그러네?”
박선재가 생각해 보더니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민지호가 말했다.
“햇살이들, 우리 컴백 준비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여기 와서 놀고 있었거든? 근데 너무 재미있는 거야. 그래서 햇살이들도 같이 놀자고 켰어.”
그래서 켜자고 했구나…….
우리는 이제야 납득했다. 하여튼 민지호는 우리에게는 조리 있게 말을 못 해도 팬들에게는 비교적 조리 있게 말한다. 정말 아이돌이 아니면 뭘 했을까, 싶은 녀석이었다.
민지호가 돌아보며 물었다.
“햇살이들한테 뭐 연주해 줄까? 새벽에 자다 깬 햇살이가 있을 수 있으니까 다시 잠들 수 있는 걸로…….”
그러자 기타 조율이 안 되어 있는 민지호의 기타를 집어 든 신지운이 말했다.
“맑은 날 하자.”
“어, 딱이네.”
황새벽이 맞장구치고, 신지운이 나에게 기타를 가져왔다.
“형, 이것 좀 조율해 줘. 튜닝기를 못 찾겠어.”
“응.”
내가 기타를 들고 조율을 하는 사이에 황새벽이 맑은 날의 코드를 멤버들에게 빠르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나는 민지호에게 튜닝한 기타를 돌려줬다.
우리는 즉석에서 밴드 버전 맑은 날의 연주를 시작했다. 박선재의 청량한 목소리와 한효석의 다정한 목소리가 악기 연주에 녹아들며 원래 버전보다 벅찬 분위기의 맑은 날이 완성되었다.
멤버들은 다들 연주와 노래를 부르느라 댓글 반응을 전혀 확인하지 못했지만, 그냥 지금 상황만으로도 신이 나서 다들 얼굴에 웃음기가 있었다.
나도 지금까지 카메라 앞에 선 중에 가장 상태가 좋았다. 오히려 벅찬 감정이 드니까, 억지로 긴장을 풀려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좋다. 벅참이 긴장을 뒤덮는다.
“끝!”
민지호가 말하고 달려가서 라이브를 끄려다가 말했다.
“햇살이들 깨워서 미안해, 잘 자.”
그리고 멤버들도 다 손을 흔들고 잘 자라고 인사한 후 15분 남짓한 라이브방송이 끝났다. 한바탕 연주를 하며 신이 난 멤버들은 다시 연습실로 돌아가 안무 영상을 촬영했다.
* * *
[새벽에 깼다 잠들어서 너무 피곤한데…… 너무 행복하다…….]
[우리 애들 컴백 준비하다가 쉬면서 음악하고, 그게 신나서 햇살이들 들려준다고 라방 켠 거야……?]
[그리고 즉석에서 불러준 게 팬송…….]
[눈물 나서 눈 부었어…….]
[새벽 세 시에 라이브방송을 했다고????? 내가 자는 동안?????]
[아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햇살사회 빡세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행히 아침에 다시 보기가 올라왔다.
15분의 라이브방송은 바로 팬들의 손에서 재편집과 자막이 입혀져 유튜브에 업로드되었다. 이 영상은 퍼스트라이트 팬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화제를 불러왔다.
[새벽 세 시에 냅다 팬송 라이브하는 남돌]
[아니 새벽 세 시에 누가 라방을 하나 했더니 퍼라네]
[새벽 세 시 라방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아는 국선아 때 이미지가 아닌데ㅋㅋㅋㅋㅋ]
[↳내 말이 보통 옆에서 말리는 멤이 더 많을 분위기였는데]
[미쳤다 진짜 간만에 벅차]
[15분 내내 애들 눈빛이 반짝반짝하네]
[얘네 진짜 음악이랑 팬들 사랑하는구나…….]
[정해원 튜닝기 없이 조율하는 거 신기하다]
[↳이거 X나 멋있더라]
[↳내가 튜닝기로 하는 것보다 더 빠르네ㅎㅎ 하 ㅅㅂ재능충…….]
[↳라이브로 절대음감 증명함ㅋㅋㅋㅋㅋㅋㅋ]
[↳퍼라 하라메 들어보면 진짜 쌉천재임]
[근데 국선아 박선재랑 황새벽은 보컬 좋은 거 알았는데 한효석도 메보급이네? 춤멤아님?]
[↳서바로 올라간 애들이라 하나 같이 재능충임]
[↳한효석 국선아 촬영한 해에 명문 예고 입시 통과함ㅋㅋㅋㅋㅋㅋㅋ그냥 천재지ㅋㅋㅋㅋㅋㅋㅋ]
[↳↳이게 가능하냐고…….]
[근데 팬송 진짜 좋다]
[↳ㅇㅇ퍼라팬 아닌데 위로 받는 느낌]
[↳원곡은 좀 더 애틋한데 밴드 버전은 맑은 날!!!!!!!!!!!!!!!! 느낌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거넼ㅋㅋㅋㅋㅋ]
[↳↳지호 버전이냐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건 진짜 팬들한텐 ‘우리가 이렇게 음악과 팬들을 사랑한다’고, 팬 외의 사람들한텐 ‘우리가 재능충이다’이건듯ㅋㅋㅋㅋ]
* * *
하이라이트 메들리와 업로드 세 시간 후에 올라온 팬송 라이브로 하루 종일 SNS와 커뮤니티에서 퍼스트라이트에 대한 언급량이 압도적으로 늘어났다.
<더 써틴> 촬영장의 분위기는 평소와 조금 달랐다. 일부러 시청자가 알아차릴 정도로 허술한 악편을 통해서 분량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런 편집을 하기 좋게 말하고 행동하던 연습생들이 오늘은 상당히 조용했다.
평소와 달리 조별로 모여서 미션을 준비할 뿐, 내세워서 편집할 수 있는 장면이 나오지 않았다.
박경석 피디를 위시한 편집팀은 난감한 상황이었다.
“갑자기들 왜 이렇게 조용해?”
“애들이 정해원 전화 연결 이후에 인터넷 분위기 봤나 봐요.”
박경석 피디는 정말로 조별 미션에만 집중하고, 괜한 싸움을 피하려고 입을 다물어버린 참가자들 때문에 식은땀이 흐를 지경이었다. 어느 주인들 중요하지 않겠냐마는, 시청률 상승 중이던 이번 주가 시청자를 잡는 데는 더더욱 중요한 주였다.
정해원이 등장하는 것으로 예측할 수 있는 화제성은 잡았지만, 그 직후 참가자들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었다.
‘나처럼은 되기 싫죠?’라는 말은, ‘나처럼 될 수도 있다’라는 말이라는 걸 참가자들이 알아들은 게 문제였다.
‘아, 그 자식은 왜 쓸데없는 소리를 해가지고…….’
박경석 피디는 대책이 필요했고 사람은 급할수록 익숙한 것을 찾았다. 급할 때 생각나는 게, 퍼스트라이트의 <더 써틴> 출연이었다. 그리고 그 출연 의향을 묻기 위해 TRV에 연락을 한 막내작가가 돌아왔다.
“어…… 피디님, 컴백 첫 주라, 어렵겠다고 하시는데요?”
예상하지 못한 즉시 거절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