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50화
지난달까지만 해도, TRV는 불러만 준다면 언제든 달려올 것처럼 저자세였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태도가 달라진 걸 보니, 소속 아티스트의 라이징의 냄새를 맡은 모양이었다.
하필 이번 <더 써틴>으로 새로운 서바이벌의 반등을 기다리던 VMC의 임원진이 촬영장에 와 있었다. 특히 뮤직 콘텐츠 본부 김주철 본부장이 누가 봐도 신경이 곤두선 표정으로 촬영장을 보고 있었다. 박경석 피디에게는 가장 어려운 사람이었다.
촬영이 종료되고, 김주철 본부장과 박경석 피디는 대화를 나누었다. 퍼스트라이트의 행보에 관한 대화였다.
* * *
컴백 당일 새벽.
우리는 사전 녹화를 위해 방송국으로 이동했다.
‘불을 켜’ 활동부터 정규 앨범 발매까지 워낙 준비 시간이 짧았기 때문에 우리는 방송국에 도착할 때까지 하나같이 잠이 들어 있었다.
주차장에서 내려보니, 9월 초 날씨가 여전히 더웠다. 다음 주에 한 차례 비가 오면 그 후에야 선선해진다는 모양이었다.
청량 컨셉을 가지고 온 우리로서는 날씨 운이 좋은 편이다. 다만 나는 땀이 별로 많지 않은 편이라 괜찮지만, 땀이 많은 멤버들은 메이크업을 지속시키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나는 멤버들과 리허설을 위해 의상을 갈아입었다. 더위를 많이 타는 멤버들은 반소매 위주로 레이어드를 하거나, 해서 입고 나는 흰색 긴소매 셔츠와 청바지를 받았다.
“레이어드보다 이게 더 시원할 것 같은데.”
“그러게.”
오늘 제일 덥게 입은 안주원이 동의했다. 안주원은 흰 티에 모범생 같은 긴소매 카디건을 입고, 거기에 도수 없는 은테 안경을 썼다.
“넌 좀 덥겠다.”
내 말에 안주원이 자기 옷을 보며 말했다.
“너드룩이래.”
“이게? 그냥 잘생긴 놈이 안경 쓴 건데.”
내 말에 옆에서 여자 스태프들이 말했다.
“해원아. 정확해. 그게 너드룩이야.”
“그니까! 잘생긴 애가 안경 쓴 거!”
“……아?”
새로운 배움을 얻었다.
아무튼 퍼스트라이트의 스타일리스트인 이예영이 여름에 남자아이돌에게 코디하기 편할 날염과 하와이안 셔츠를 안 좋아해서, 사실 그냥 여름옷 자체를 안 좋아했기 때문에 우리 의상은 초가을 의상에 가까웠다.
더위를 많이 타는 민지호도 민소매를 입긴 했지만, 거기에 트윌리를 하고 있었다.
멤버들은 힘들어하면서도 팬들이 좋아하니 다들 그럭저럭 만족하고 옷을 받아 입었다.
그나저나 거울을 한번 확인해 보니 연한 갈색 머리에 흰 셔츠가 확실히 좀…….
“……밋밋해 보이지 않아요?”
내가 샵 직원에게 물어보니, 정색하고 대답했다.
“너는 진짜 어쩌라는 거야. 탈색을 하려고 하면 쎄해 보인다고 싫어하고, 이젠 또 밋밋해 보인다고 그러네. 이뻐, 이뻐. 넌 뭐 나랑 다른 거울 보니?”
“아니이…….”
내가 뭐라 하기도 전에 옆에 있던 직원이 말했다.
“해원이는 꼭 저렇게 지 불리할 때만 애교를 부려.”
“불리할 때만 부리다뇨. 유리할 때도 부리는데 누나들이 못 느끼는 건데.”
“저리 가, 이제.”
나는 흐흐 웃으며 떠밀리는 시늉을 했다. 저렇게 매정하게 말한 것 치고는 무대에 올라가기 직전까지 어차피 올라가면 헝클어질 머리를 다시 손봐줬다.
무대에 올라가 보니 바닥의 스크린에서 파도가 치고 있었다.
“오, 이쁘다.”
돈 쓴 느낌이 빵빵하게 느껴지는 무대였다. 방송국에서도 좀 신경을 써줬지만, TRV에서 돈을 꽤 쓴 모양이었다.
내가 바닥을 보며 서 있으니 안주원이 옆으로 와서 물었다.
“해원아. 괜찮지?”
“응? 괜찮지. 왜?”
팬들 쪽을 안 보고 바닥을 보고 있어서 그런가 보다.
“바닥 신기해서 본 거야.”
“응.”
나는 고개를 들고 팬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세 달 만에 만나는 햇살이들이 반가웠다. 나는 딴청 하고 있는 황새벽의 팔을 툭 쳤다.
“첫 사녹이니까 네가 인사해.”
“어.”
하여튼 안 시키면 내가 할 때까지 기다린다. 저런 지독하게 내성적인 사람이 잘도 밴드부 활동과 아이돌 할 생각을 했다.
어쨌든 황새벽의 인사를 시작으로 우리는 촬영이 시작되기 전까지 햇살이들과 짧은 이야기를 나눴다. 박선재가 물었다.
“아직은 새벽인데도 덥죠?”
“선재야, 더워!”
“선재 오늘 너무 예쁘다.”
팬들의 반응을 보니 오늘 코디가 다들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다행이다.
“해원아!”
날 부르는 소리도 들려서 그쪽을 돌아봤다. 지난번 ‘불을 켜’ 활동 때 유일하게 내 이름을 응원봉에 달고 있던 팬이었다.
내가 가서 쪼그리고 앉아 물었다.
“그거 이제 회사에서 내줬어요?”
그때 내 팬이 한 명이라 당연히 기억하는 건데, 그 햇살이가 화들짝 놀란다.
“내, 내줬어…….”
“다행이네. 제가 회사에 가서 내 것도 내달라고 졸랐어요.”
별로 웃긴 말도 안 했는데 그 근처에 있던 팬들이 웃어서 나도 웃음이 나왔다. 사운드 체크를 하느라 팬들과 대화가 잘 안 돼서 내가 두 손을 포개서 자는 시늉을 하며 ‘졸려요?’ 하고 물었더니 팬들이 동시에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게 귀여워서 나는 아예 크게 웃음이 터졌다.
긴장이 풀린다.
* * *
오후 한 시.
음원 발매와 동시에 ‘아침만 기다렸어(Q&A)’의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다. 그리고 음악방송이 막 끝났을 시간, 실시간 차트에 72위로 진입했다.
[뭐야 72위야? 진짜야?]
[미쳤다ㅠㅠㅠㅠ]
[햇살이들 가자!!!!!!!!!!!!!!!!!!!!!!!!]
[70위 프리징……?]
[어……? 왜 되지……?]
[뭐지? 원래 이러는 거야? 음원 차트라는 거 그냥 월급처럼 스치고 나오는 거 아니었어……?]
[퍼라 실차 70위 프리징이래]
[국내 팬덤 많이 붙었나보네ㄷㄷㄷㄷㄷ]
[근데 일단 타이틀을 진짜 잘 기깔나게 뽑았더라]
[↳아까 음방 봤는데 무대랑 가사가 다 X나 귀여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이게 안주원이 썼다는 게 진짜 안 믿긴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니까ㅋㅋㅋㅋㅋㅋㅋㅋ안주원 잘생기긴 했는데 아이돌로서는 모르겠다고 생각한 편견 박살남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얼굴로 저런 너드 같은 가사를…… 하 안주원 나쁘다…….]
[무대도 미쳤더라 청량청량]
[↳팬 아닌데도 기분이 확 좋아짐]
[↳이번 무대 보니까 퍼라 애들 어린 거 확 알겠더라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커플링곡도 봤니 진짜 귀여워ㅠㅠㅠㅠㅠㅠ]
[팬들이 탑백 어떻게든 올려만주면 이용자 수 더 붙을듯]
[↳타이틀 누구 곡이야?]
[↳↳국혐+안주원 작사]
[↳↳↳이것 좀……. 이렇게 다는 애들은 악플이란 자각이 없나]
[↳↳↳그니까ㅎㅎ]
* * *
컴백 직후부터 거의 스케줄에 끌려다니는 기분으로 활동이 이어졌다. 나도 정신이 없고, 그보다 더 정신이 없는 건 회사였다.
회사 분위기가 희한했다. 좋은데 가라앉은 분위기라고 해야 하나.
매일 초동이며 음원 순위를 가장 꼼꼼하게 체크하는 한효석이 이유를 알려줬다. 토요일, 첫 팬사인회 장소에 도착해 한효석이 TRV 직원에게 물었다.
“출하량 괜찮아요? 햇살이들 걱정하던데.”
“네? 어…….”
직원들이 난처해하는 사이, 메이크업을 수정하던 민지호가 말했다.
“햇살이들 송장 안 찍힌다고 그러던데요? 왜 안 찍혀요?”
그러니까 핸드폰을 보던 신지운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출하량이 안 괜찮은 거지.”
“어? 그래도 돼?”
“초동에 좀 문제가 있겠지.”
신지운의 말에 분위기가 조용해져서 할 수 없이 내가 말했다.
“너희가 이번에 잘하고 있다는 증거인 거지. 햇살이들한테는 좀 미안한데, 초동보다 사실 총판이 중요하잖아.”
내가 대신 변명을 하니 직원들은 표정이 밝아지고, 반대로 박선재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구시렁거렸다.
“저 형은 저런 얘기할 때 꼭 ‘너희’라고 하더라. 남 얘기야?”
엇.
내가 멈칫하자 옆에서 한효석이 말했다.
“내 말이.”
“아주 섭섭해, 내가. 어?”
“그니까. 섭섭해, 아주.”
“지가 직원이야, 뭐야.”
“그래도 형은 붙여 주자.”
“지금은 안 되겠어, 내가 속상해서.”
“그것도 그래.”
둘이 무슨 만담 하듯이 얘기하니 사람들에게서 웃음이 슬쩍 터지며 직원들과 멤버들의 심각하던 분위기가 좀 풀렸다.
예상한 초동을 웃도는 분위기니 분명 좋은 일이다. 직원 하나가 나에게 말했다.
“대신 설명해 줘서 고마워요, 해원 씨.”
“초동은 이미 할 수 없고……. 콘서트장은 충분하겠죠?”
“아…… 다시 확인할게요.”
초동 예측이 많이 틀린 걸 보니, 콘서트장 규모도 빡빡할지 모르겠어서 일단 말해봤다.
회사에서는 콘서트장에 관객석이 많이 남는 것보다, 작은 걸 매진시키는 게 홍보 면에서 좋을 테니 쉽게 늘려주지는 않을 것 같다. 내가 가서 따져봐야겠다.
그렇게 팬사인회까지 대기하고 있던 중에, 또 한 가지 문제가 터졌다. 힐끔 복도를 보니 TRV 홍보팀 직원이 욕을 하며 머리를 쥐어뜯는 게 보였다. 소중한 모발……이 아니라.
멤버들 쪽을 보니 다들 핸드폰으로 기사를 확인하고 있었다. 내가 가까이 있던 민지호 핸드폰으로 기사를 보니, VMC에서 낸 기사였다.
[퍼스트라이트의 예능 진출. 공중파 횡포 어디까지…….]
[TYT에서 데뷔한 아이돌이 KQS의 서바이벌로?]
내가 병원에서 들었던 공중파의 새로운 서바이벌에 관한 내용이었다.
“형, 우리 KQS 서바이벌 안 하기로 했잖아요.”
황새벽의 말에 박중운 매니저가 얼른 복도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홍보팀 직원과 이야기하고 오더니 말했다.
“TYT에서 그냥 막 기사 터뜨렸나 봐. 뭐 KQS에서 아직도 퍼스트라이트 섭외하려고 하는 건 사실이니까…….”
“가해자의 사연팔이네.”
신지운이 중얼거려서 내가 핀잔했다.
“넌 말조심하고.”
“넹.”
신지운이 대답하며 손으로 자기 입을 틀어막는 시늉을 했다.
아무튼, 이건 한편으로 나에 대한 대중의 의견이 약간은 국선아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니까, 국선아의 제작사와 제작진들이 자기들이 약자이자 피해자 행세를 하려고 하는 모양이다.
나는 일단 의자에 앉아 눈을 감았다. 팬미팅이 남았으니, 정신을 잘 추슬러야 한다. 지난번처럼 과호흡 증상이라도 왔다가는 그룹에 그보다 민폐가 없다.
그나저나, 나름으로 TYT에서 KQS의 새 서바이벌을 견제하는 모양이었다. 아직 섭외가 다 안 돼서 편성까지 밀린 서바이벌을.
아무래도 ‘음악 서바이벌’하면 ‘TYT’라는 확고한 이미지를 구축하고 싶은 모양이다. 모든 방송사는 드라마이든, 예능이든 자신의 색깔을 가지고 싶어 한다. 후발주자인 TYT는 더할 것이다.
홍보팀 직원은 바로 회사와 KQS에 번갈아 연락하고 있었다.
KQS의 새로운 서바이벌에 대한 참가 여부는 사실상 작곡이 가능한 멤버인 나에게 달려있다고 봐야 한다. 내 멘탈이 안 따라주니까, TRV에서도 거절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하, 머릿속이 복잡해지네…… 누가 내 등을 떠밀고 있는 것도 아닌데, 괜히 부담스럽다.
일단 지금 당장은 내 멘탈부터 수습해야겠다.
팬사인회가 시작되기 직전, 나는 상태창을 확인했다.
[2. 외모에 대한 인지 부조화를 정상적으로 수정합니다]
[선택이 완료되었습니다]
……이러면 좀 덜 쎄하게 보이나? 그래야 될 텐데. 팬사인회에서 팬과 대면하면, 조금이라도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다.
내가 거울로 내 얼굴을 볼 땐 변화가 없으니, 지금 당장은 아무런 차이도 못 느끼겠다. 나는 팬사인회 테이블 쪽으로 가다가 신지운에게 물었다.
“나 혹시 뭐 달라 보이거나 그런 거 없냐?”
“엇, 모르겠고, 관심도 없는데.”
“그치? 물어볼 사람을 잘못 골랐네.”
“응, 그런 듯.”
그렇게 이야기하며 신지운과 낄낄거리고 나서, 나는 제일 끝에 있는 내 자리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