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53화
민지호는 아직도 그룹이 해체되던 날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의 숨 막히는 분위기. 어른들의 끊임없는 싸움.
멤버들은 그때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고 있었다. 설마 그룹이 데뷔하자마자 사라지겠나, 생각하며 연습을 하고 있을 때 연습실로 그때 소속사였던 VVV의 직원이 들어왔다.
그룹 활동이 ‘종료’되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눈치 빠른 멤버들도 ‘종료’가 해체를 의미한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멤버들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또 만나자든지, 우린 잘될 거야, 같은 무의미한 말을 하지 않고 각자의 짐을 챙겼다.
민지호는 그날 말없이 떠나는 멤버들을 보면서, 여기 정해원이 있었다면 적어도 인사는 나눴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그 이후, TRV에서 다시 만나는 날까지 서로 연락 한 번 안 하고 지내지는 않았으리라 믿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금은 언급 금지 수준이 된 데뷔조의 이름 ‘소년들’도 정해원이 첫 번째 조별 미션을 하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정해원은 보컬 실력 때문에 처음부터 등급이 뒤로 밀려 있었는데, 그때 그 조 대부분이 등급을 낮게 받은 참가자들이었다.
거기 실력과 의욕이 둘 다 없는 참가자가 몇 있어서 거의 촬영 내내 빡쳐 있었다고, 나중에 같은 조였던 신희범에게 들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성격이 엄청 더러운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완성된 무대를 보니 아니었다.
그때 그 무대 시작 전에 신희범이 말했었다.
‘국선아를 상징하는 곡이 ‘더 킹’이잖아요? 데뷔라는 왕좌를 차지하자는 의미에서. 그런데 저희는 등급이 낮은 멤버들이 모였는데요. 저희는 여기가 누구나 왕좌에 앉을 수 있는 곳이 되어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평범한 보통의 소년들도요. 그래서 저희 팀명은 ‘보통의 소년들’입니다.’
아이돌로서 이렇다 할 특기가 없던 신희범이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그 멘트 덕분이었다. 그 멘트가 국선아의 상징이 되었으니까.
그때 그 기획을 한 정해원이, 국선아 참가자 중 가장 연장자라 데뷔가 급하던 신희범이 대신 말하게 한 거란 걸, 나중에 신희범과 같은 조가 되어서야 들었다.
아무튼 그렇게 팀이 해체된 후, 민지호는 소속사로 돌아갔다. 지금 TRV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대형 가수들을 여럿 보유하고 있는 소속사였고, 그래서 연습생들 수도 많았다.
소속사는 인지도가 높아진 민지호를 데뷔가 확정된 팀 ‘IMX’의 멤버들과 함께 데뷔를 준비하게 했다. 그런데 한 번 데뷔를 하고 돌아온 민지호를, 그 멤버들이 반기지 않았다.
민지호가 국선아를 준비하는 사이에 서로 너무 친해져 있었고, 소속사의 생각과 달리 멤버들의 생각에는 소속사의 푸쉬와 본인들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무엇보다, 멤버들이 그리는 무대에 민지호가 없었다.
[형아들♥ 어디양?]
[대답 좀 해줘어어어]
[여기 나 혼자 있나?]
[이제 이 단톡방은 제 겁니다]
[진짜 없어?]
[대답 좀 해주세여 흑흑]
자기 발로 소속사를 나오기까지, 민지호는 숙소에서도 연습실에서도 멤버들과 잘 지내보려 애썼다. 이번이 아니면 다시 데뷔의 기회가 없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결국 소속사를 나왔다. 소속사에서도 민지호를 같이 데뷔시키려 한 것이 판단 미스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려움 없이 떠나게 해주었다.
그 후 다시 퍼스트라이트로 데뷔하게 되었을 때, 민지호는 IMX를 이기고 싶은 마음과 타인에 대한 신뢰도 하락으로 날이 바짝 서 있었고 다른 멤버들과 계속해서 충돌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정해원이 민지호의 운동화를 콱 밟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며 나쁜 기억에서 벗어났다.
“아, 왜에!”
“멤버들 다 동의하면 하고,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안 해.”
“……진짜? 근데 하다가 형 죽으면 어떡해? 힘들어서?”
“아니 넌 왜 한다는 사람한테 재수 없는 소리를 하냐.”
“걱정돼서 그러지.”
민지호가 말하며 핸드폰을 꺼내 단톡방에 글을 올렸다.
[멤버들!!!!!!!!!!!!!!!!!!!! 민조에게 소원이 있어!!!!!!!!!!!]
[지우니 형 : 안 돼]
[잘 들어바아❤]
[쭈워니 형 : 일단 들어나 주자]
[리더님 : 뭔데]
[효식 : 빨리 좀 말해]
[선재 동생 : 아, 카톡 하던 사람 어디 갔나?]
주르륵 돌아오는 톡을 민지호는 바라보며 자기도 모르게 흐흐 웃었다. 그러더니 정해원을 보며 활짝 웃었다.
“형, 우리 오래 가자!”
“답이나 좀 해.”
“아, 맞다.”
[‘더 라이징’에 나갑시다!!!!!!!!!! 해원이 형 허락받아와써!!!!!!!!!!!!!!!!!!]
[효식 : 해원이 형, 이런 거 들어주시면 안 돼요]
[리더님 : 정해원 단명이 꿈이냐?]
[선재 동생 : 형 오래 살아야지…….]
“형, 도와줘!”
민지호가 재촉하자 정해원이 누가 봐도 귀찮은 표정으로 핸드폰을 들었다.
* * *
[그냥 하자]
[안쭈 : 단명이 꿈 맞나봐]
[황새 : 주원이가 이 정도 말하면 욕한 거다]
나는 그렇게 톡을 하고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민지호는 여전히 핸드폰을 보며 히히 웃고 있었다. 민지호가 단톡방에 느낌표가 난무하는 내용을 쓸 때 늘 저렇게 신이 난 상태였나, 싶었다.
“다들 하겠대!”
표정이 느낌표다.
새로운 서바이벌에 곧바로 이어질 콘서트까지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했다. 그래도 민지호가 너무 즐거워 보여서 나도 실없이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좋냐. 엄청 스트레스받을 텐데.”
“우승은 안 해도 돼. 오래 살아남는 것도 싫고. 근데 우리 멤버들이랑 잘 지내는 건 보여주고 싶어.”
아…… 그게 보여주고 싶은 거였구나.
민지호가 이번에는 표정을 단호하게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설렁설렁 안 할 거야. 내가 하자고 한 거니까, 내가 진짜 죽을 때까지 춤을…….”
“진정해. 나대지 마.”
어우, 벌써 피곤하다.
* * *
[퍼스트라이트, ‘더 라이징’ 출연 확정]
[????]
[이거 결국 해?]
[안 한다는 얘기 많더니ㅎㅎ]
[진짜 VMC가 죽쒀서 공중파 줬네]
[근데 정해원 무대 공포증 있다고 하지 않았나 서바이벌을 또 나오네]
[자본주의 치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냥 사연팔이한 거라니까]
[↳퍼라 팬들이 새 멤버를 욱여넣는데 비교적 유했던 거 무대 공포증 때문이었는데]
[↳원래 한국인이 정에 약하잖아]
[근데 퍼라 여기 나올 급 되나? 나머지 확정된 팀은 진짜 라이징들인데]
[↳ㅎㅎ급 타령 나올 때 됐지]
[↳이번에 퍼라 초동 7만장 나갔어 라이징이지]
[↳↳요즘 같은 뻥튀기 시장에서 7만장이……?]
[↳↳↳그래도 실차 들었던데. 남돌은 실차 들기도 어려워]
[아무튼 일단 개인 인지도는 여기서 퍼라가 제일 높을 듯]
* * *
나는 무대 위에서 정신적인 압박을 덜 느끼기 위해 내 나름으로 루틴을 만들었다. 우선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 항상 같은 음악을 들었다.
곡은 두 개, 박희영의 ‘사랑해 당신’과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 빅 블루의 ‘나도 알아’이다. 트로트를 들으면 확 기운이 올라오고, ‘나도 알아’를 들으면 여유가 생긴다.
덕분에 오늘로 정규 1집 활동 종료.
마지막 날을 우리는 미니팬미팅으로 마무리했다.
돌아보니 우리가 타고 온 차에 스태프들이 카메라를 설치하고 있었다. 진짜 활동 종료하자마자 ‘더 라이징’의 촬영 시작이었다.
나는 잠깐 차를 돌아보고 다시 팬들 쪽을 봤다. 나는 방송을 하는 동안 최대한 말을 하지 않고, 방송에서 내주는 과제에 집중하기로 했다.
우리가 출연한다고 하니 KQS에서는 물론, 우리 회사에서 많이 좋아했다. 특히 출연 확정을 하고 KQS 음방을 가니 분위기가 거절 중일 때와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반겨줬다. 방송사들이 이렇게 쪼잔하다. 허허…….
“햇살이들! 그럼 이제 우리 가볼게! 보고 싶을 거야!”
민지호가 마무리 인사를 하자 팬들이 무척 아쉬워했다.
그때 황새벽이 나한테 마이크를 주며 말했다.
“너도 한마디 해. 한마디도 안 했잖아.”
“아.”
나는 마이크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뭐라고 말할까 생각하는데 할 말이 하나밖에 없다.
“진짜 상투적이긴 한데…… 새벽이가 진짜 체력이 없거든요.”
“갑자기 왜 날 공격해?”
황새벽이 어이없어하는 걸 무시하고 나는 말을 이었다.
“평소에는 거의 쓰러져 있는데, 무대 올라가서 햇살이들 보면 바로바로 살아나는 걸 보면서. 새벽이도 그렇고, 다른 멤버들도, 당연히 저도 그렇고. 햇살이들이 정말 우리가 무대에 올라가는 이유고 힘이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마이크를 내렸다가 얼른 다시 들었다.
“아, 고마워요.”
그렇게 인사하고 미니팬미팅이 끝났다. 그리고 멤버들과 함께 붙어 있는 포스트잇을 떼다가 나는 노랫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우리 손을 꼭 잡고 해가 뜨기를 기다릴까?
햇살이들이 우리에게 맑은 날을 불러주고 있었다.
-너는 나의 영원한 햇살이야. 끝없는 어둠과 빗속에서도 내가 너를 만날 때, 세상은 맑은 날이야.
다른 멤버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해서 그대로 얼어 있었다. 나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자리에 쪼그리고 앉았고, 신지운이 바로 마이크를 들었다.
“저기요, 당신들이 햇살인데 우리한테 불러주면 어떡해?”
“퍼라도 맑은 날이야!”
팬의 대답에 나는 이미 확 올라왔던 눈물이 결국 쏟아졌다. 망했다.
“와, 햇살이들 노래 엄청 잘한다!”
“오늘 날씨랑도 잘 어울리고. 고마워요, 햇살이들.”
그래도 다행인 건 그렇게 겨우겨우 말하고 있는 다른 멤버들도 울거나, 적어도 눈가가 벌겋기는 하다는 것이다. 나는 인사를 하고 얼른 차로 돌아갔다.
그리고 거기서 침착하게 감정을 추슬렀다. 나쁜 팬들 같으니라고. 사람을 막 울리고 그런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뒤늦게 카메라가 있다는 걸 떠올렸다.
나는 어차피 이런 장면들은 다 잘릴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건 상관이 없었다. 카메라가 너무 가까이에 있다는 게 문제지.
“카메라 엄청 많네.”
나는 카메라가 많다는 걸 오히려 잊으려고 카메라 수를 세기 시작했다. 그때 다행히 멤버들이 돌아와 차에 탔다. 박선재가 내 뒤에 앉으며 말했다.
“오, 이제 더 라이징 시작이야?”
“그런가 봐.”
“이거 미션인가 보다.”
박선재가 자리에 놓여 있던 태블릿을 들었다.
태블릿을 화면을 켜자마자 레전드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두 명의 MC가 나타났다. 08년 데뷔한 걸그룹의 메인댄서 이희세, 09년 데뷔 보이그룹의 리더 강윤석이었다.
“아, 선배님들이다.”
“우와, 신기해. 안녕하세요!”
우리가 신기해하며 태블릿을 보는 사이에 두 사람이 번갈아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이희세, 강윤석입니다.
-지금부터 6주 동안, 여러분은 라이징 스타로서의 자질을 시험받게 됩니다. 저희가 방송 시작 전에 각 참가팀의 멤버들에게 가장 많이 받은 의견이 뭐였죠, 희세 씨?
-팬덤의 노동력을 이용하지 말아 달라는 거였죠.
-맞습니다. 저희도 아이돌로서 공감하며, 제작진분들께 같은 의견을 드렸었죠. 그래서 이번 심사는 팬덤과 상관없이, 일정한 연령대의 랜덤으로 정해진 임원이 심사를 하게 될 겁니다.
자막으로 연령대의 비율이 지나갔다. 10대부터 40대까지가 각 20%, 그리고 50대 이상이 나머지 20%였다.
다들 말은 안 했지만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뭔지 모르게 공중파스러운 진행이라고.
-첫 번째 미션은 뭔가요, 윤석 씨?
그러자 강윤석이 큐 카드를 넘겼다. 그리고 화면에 보여주며 말했다.
-첫 번째 미션은 하나의 곡, 두 개의 팀입니다. 지금부터 여섯 팀의 멤버분들은 두 그룹씩 세 팀으로 나뉘게 될 거구요, 두 그룹, 그러니까 한 팀이 한 곡의 무대를 준비하게 됩니다.
첫 방송은 무난하게 팀 색깔을 보여주는 무대인 줄 알았는데. 역시 서바이벌 초보 방송국이라 무난한 진행이라는 게 없다.
나는 나머지 다섯 팀을 가늠해 보았다. 피하고 싶은 건 두 팀, 우하정이 있는 MII, 그리고 민지호의 전 소속사의 데뷔팀 IMX.
그리고 내 개인적으로 안 하고 싶은 팀은 INO였다.
INO를 피하고 싶은 이유는 하나다. 멤버 수.
INO 멤버 11명…… 우리 7명…… 18명의 의견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 한숨이 나온다.
-퍼스트라이트와 함께 미션을 진행하실 팀은 INO입니다.
그치. 세상이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지,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