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54화
‘더 라이징’ 두 명의 MC는 랜덤 뽑기로 나머지 두 개의 연합팀을 뽑아냈다.
-MII와 함께 미션을 진행하실 팀은 NEW days입니다.
-Bad one과 함께 미션을 진행하실 팀은 IMX입니다.
여섯 개의 팀, 세 개의 조합을 보고 나니,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겠다.
이 세 조합 중에 가장 임팩트가 약한 팀은 우리와 INO라는 걸.
나머지 네 팀 모두 퍼스트라이트보다 빠르게 성장세를 보이며 라이징의 흐름을 탄 팀들이었다. 그리고 해외 팬들을 압도적으로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 그 해외 팬덤의 규모는 초동으로 드러났다.
MII, NEW days, Bad one은 모두 초동이 높았고, IMX는 초동은 우리와 비슷했지만 음원 성적이 달랐다. 여기 여섯 팀 중에 유일하게 음원 차트 일간 순위에 음원을 꽂아 넣을 수 있는 팀이었다.
전 연령대를 대상으로 한다면 가장 유리할 팀이 저 IMX일지도 모른다.
* * *
스튜디오 촬영은 이틀 뒤였다. 편집으로는 우리가 미션을 받기 전에, 스튜디오 편집이 들어갈 것이다.
무대까지 남은 시간은 얼마 없기 때문에, 우리는 ‘더 라이징’ 측에서 받은 가이드라인을 읽으며 INO의 소속사로 향했다.
TRV에는 18명이 동시에 연습할 공간이 없었기 때문에 장소 선택권이 없었다. INO의 소속사 연습실이 국선아 때 연습실보다 더 컸다.
함께 모인 INO의 멤버들은 정말로 말이 많았다.
“발라드 가자, 발라드!”
“발라드, 발라드.”
오히려 INO 멤버 열한 명이 떠드니까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은 안 그래도 낯가리는데 장소까지 가려서 다들 말이 없었다. 평균 키는 INO 멤버들보다 훌쩍 큰 놈들이 구석에 구겨져 있었다. 애들은 낯가리는 건데, 얼굴 때문에 가오 잡는 것처럼 보인다. 걱정이 크다…….
아무튼 지금까지 경연 프로그램을 생각했을 때, 또한 나 개인의 취향을 생각했을 때 가장 효과적인 건 락이라고 생각한다.
관객 반응 때문에, 후반부에 가면 자동적으로 락적인 편곡이 많아질 거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락.
나는 그 말을 하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와, X발 내가 이렇게 쫄보였나. 한국어 기준 한 글자를 못 내뱉어서…….
발라드도 좋지만, 아무래도 우리를 모르는 분들에게 발라드를 부르면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전부 메보감이 아닌 이상…… 이라는 말을 예쁘게 하고 싶다.
“저 아무래도…… 저기. 저기요. 아무래도…… 발라드도 좋긴 하지만…… 멤버분들?”
부드럽게 말하려고 하니 발언권을 얻을 수가 없었다. 퍼스트라이트 놈들은 낯가려서 내 말이 안 들리는 것 같고, 저기는 열한 명이 떠들고.
“지운아, 그럼 발라드 가?”
INO의 미국인 멤버 올리버가 물었다. 그랬더니 신지운이 내 쪽을 본다.
“형. 뭐할까.”
퍼스트라이트 놈들의 문제는 그와중에 말도 안 듣는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옆에서 INO 멤버들이 온갖 잔망을 떨며 발라드로 가는 분위기를 잡아놨더니 이 새끼들은 앞에 대화가 다 웃자고 한 말이었던 것처럼 말하는 것이다. 다행히 INO 멤버들이 산만하지만 착한 친구들이라 뭐라고 하지 않고 다시 떠들기 시작했다.
나는 도저히 이 분위기에서 부드럽게 말한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결국 국선아 때 같은 말투가 튀어나왔다.
“발라드는 지루할 것 같아요.”
좋게 말하면 무대 욕심이고, 솔직히 말하면 아집 같다. 편집이 어떻게 될지 대충 알면서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게.
그제야 INO가 드디어 조용해지며 내 쪽을 봤다. 나는 말을 이었다.
“관객분들께요. 우릴 모르는 분이 많으실 텐데. 우리가 전부…… 제가 노래를 잘하는 편이 아니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요.”
갑자기 열일곱 명, 서른네 개의 눈동자가 나를 보고 있다. 갑자기 식은땀이 확 났다.
“……저, 죄송한데 제가 무대 공포증이 좀 있는데 몇몇 분은 다른데 좀 봐주시면 안 될까요.”
내가 말하니까 농담인 줄 알고 INO 멤버들이 웃었다. 그 덕에 긴장이 좀 풀렸다. INO의 리더 강한우가 말했다.
“그럼 해원이는 뭐가 하고 싶은데?”
“저는 개인적으로 락…….”
“락 좋지. 그럼 합쳐서 락발라드?”
“락발라드…… 락발?”
“닭발 먹고 싶다.”
저 팀은 진짜 한마디가 한마디로 끝나는 법이 없다. 거의 무슨 돌림노래다.
나는 어차피 시작부터 내 이미지는 망했다는 걸 확신했다. 이번에는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이게 내 천성인 것 같다.
나는 서바이벌 스타일의 편집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이번 방송도 어떻게 나갈지 대충 눈에 선했다.
아무튼 주어진 시간은 짧고 결과는 내야 할 때. 분업이 좋은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 무대는 아무래도 저희 그룹의 소개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저는 다른 가수분의 곡 말고, 우리 두 팀의 곡을 매시업하는 게 어떨까, 싶어요.”
“아, 좋지, 좋지!”
“그럼 일단 나뉘어서 얘기할까요. 보컬, 댄스, 랩 이렇게요.”
무엇보다 소그룹으로 쪼개면 퍼스트라이트 놈들이 덜 낯을 가릴 것이다. 육아도 아니고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다행히 INO 멤버들은 남의 의견에 잘 따라줬다. 아마 열한 명이 득실득실하게 살면서 체득한 덜 싸우는 방법인 것 같다.
“보컬반 어린이들 오세요.”
“춤 가자!”
“지운아, 너만 일로 오면 돼.”
열여덟 명이 겨우 보컬 여덟, 댄스 여섯, 랩 네 명으로 나뉘었다.
* * *
‘더 라이징 첫 방송.’
퍼스트라이트 분량에서 제일 먼저 나온 것은 팬송을 듣고 난 정해원의 반응이었다. 먼저 차로 돌아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우는 장면이 자막과 함께 흘러나왔다.
[해원이 저렇게 많이 울었어?]
[미팬 때는 그냥 눈물만 고인 것 같았는데…….]
[아니 왜 혼자 가서 울어 마음 아프게?]
[요즘 정해원 아주 신경 쓰여…….]
그리고 이어서 미션 발표 이후 퍼스트라이트와 INO가 한 연습실에 모였다.
[더 라이징 여섯 팀 다 분위기 진짜 다르다]
[퍼라랑 아이노가 제일 극단적으로 다른 듯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퍼라 멤들이 가오잡고 있으니까 아이노 멤들이 더 시끄럽게 구는 것 같은데]
[은근히 기싸움 살벌하게 하네]
[↳아무래도 여기서 기선을 제압당하면 한 팀이 끌려갈 수밖에 없으니까]
[새벽이 멤버들이 하도 피곤한 사람 취급해서 잠깐 잊어버렸는데 저기 있으니까 분위기 진짜 어렵다…….]
[↳실제로 만나면 절대 말 못 걸 듯…….]
그 상황에서 정해원이 몇 번 부드럽게 의견을 말하려다 아이노 멤버들의 목소리에 묻히는 장면이 나왔다.
-저 아무래도…… 저기. 저기요. 아무래도…… 발라드도 좋긴 하지만……. 멤버분들?
[정해원 말을 몇 번을 씹히는 거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였으면 이미 빡쳤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부러 씹는 것 같은데]
[↳당연히 일부러 씹는 거지]
-발라드는 지루할 것 같아요.
[아이돌이라 잘 참네 나였으면 욕 한 번 했다]
-……저, 죄송한데 제가 무대 공포증이 좀 있는데 몇몇 분은 다른데 좀 봐주시면 안 될까요.
[아이노는 다 웃는데 퍼라는 안 웃는데……?]
[진짜 무대 공포증 있는 거 아님?]
[무대 잘만 하던데]
‘더 라이징’ 첫 번째 편의 편집은 순한 맛이었다.
* * *
내가 댄스 그룹 쪽으로 들어가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INO의 랩 멤버 올리버가 내 쪽으로 왔다.
“해원아. 우리는 편곡 얘기 따로 할까?”
“아, 네.”
아이노 쪽에도 작곡을 하는 멤버들이 몇 명 있지만, 수록곡을 넣는 멤버는 없었다. 올리버는 믹스테이프를 낸 적이 있는 멤버였다.
부모님이 한국인이지만 미국인으로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올리버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에 비해서 한국어가 약했다. 그래도 음악에 관련된 이야기는 막힐 이유가 없었다.
올리버가 물었다.
“작곡한 거 있잖아. A&R분들한테 전부 들려줘?”
“네, 저는 웬만하면 다 데모 보내요.”
“나도 그래야 되나.”
함께 편곡 작업을 하게 될 수 있으니 올리버와 편해지려 대화를 나누고 있던 중, 민지호가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모여 있던 멤버들에게 물었다.
“형들, 가? 이거 가봐?”
“가자, 민조!”
확실히 공통 관심사가 있는 멤버들끼리 묶여 있으니 대화가 잘 통하긴 했던 것 같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합의점을 찾은 건 댄스 파트였다.
“댄스반에 의견이 있습니다!”
민지호의 말에 신지운이 흐흐 웃으며 말했다.
“유치원이야?”
“응, 거기는 랩반.”
랩반이라는 말에 INO의 이수한이 말했다.
“랩반은 왜 이렇게 안 귀엽냐? 보컬반이랑 댄스반은 유치원 같은데.”
섞여 있을 때는 몰랐는데, 같은 전공끼리 뭉쳐 놓으니까 분위기가 확 다르다. 특히 랩퍼들이 모여 있는 곳은 하나 같이 저음이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귀여운 거에 집착한다. 미친놈들 같아 보이게…….
아무튼 민지호가 말을 이었다.
“아이노의 ‘DEMON’과 퍼스트라이트의 ‘불을 켜’를 매시업하고 싶습니다!”
“…….”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전 연령을 대상으로 하는 무대에서, 우리 두 팀의 곡 중에 제일 난해한 곡을 뽑아오는 생각의 흐름을 한 번에 납득하지 못했다.
‘불을 켜’는 오로지 퍼스트라이트라는 팀을 기억에 남게 만들겠다는 목적, 그러니까 거의 어그로를 끌려고 만든 곡에 가까웠다.
그리고 DEMON은…….
올리버가 옆에서 물었다.
“해원아, 이 노래 모르지?”
“에이, 알죠.”
“수록곡인데 알아?”
“저 신곡은 웬만하면 다 한 번씩 들어봐요.”
“하, 노력형 천재 짜증 나네.”
DEMON.
EDM에 가사가 거의 들리지 않게 뭉개지는 음악으로 기억한다. 해외 작곡가에게 받은 곡인데, 작곡비를 주고 고용했더니 자기 예술세계를 펼치고 갔다.
그래서 곡이 나쁘냐 하면 그건 아니지만, 무대에서든 음원에서든 힘을 쓸 수 있는 음악인가, 하면 아니다.
내가 난해해하는 사이 댄스부 멤버들이 한마디씩 덧붙였다.
“무대를 찢으려고!”
“어, 찢어버려!”
그리고 다행히 개중 나처럼 정리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한효석이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변환해 줬다.
“관객분들이 좋아하시고, 좋은 점수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형이 아까 말한 것처럼 우리가 이런 팀이다, 보여주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서요. 그러니까 기억에 남는 거요.”
점수보다, 우리 두 팀을 기억시키자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곡이 아니라, 팀이 기억에 남게 하는 게 목표라는 거지?”
“네.”
그러자 강한우가 황새벽에게 말했다.
“새벽아, 너희 팀은 정리가 잘 된다.”
“우리도 효석이 혼자 정리할 때는 정리 안 됐어요.”
사람들은 다시 이 두 곡에 대해서 떠들었고, 나 역시 매시업이 가능할지 각을 잡아봤다.
‘DEMON’의 가사는 우울증에 관한 것이었다.
[악마가 내 생명을 삼키고 있어. 나는 지옥 같은 슬픔에]
그리고 ‘불을 켜’는 퍼스트라이트가 이 무대를 불태우고, 찢겠다는 내용이다.
합치면…….
악마(우울증)를 찢어버리겠다…….
그러니까 악마 사냥꾼…….
……드럽게 난해하지만, 나름 괜찮을지도?
내가 가져온 노트에 끄적끄적 적고 있는데, 올리버의 목소리가 들렸다.
“악마, 괄호하고 우울함을 찢어버리겠…… 와. 악마 사냥꾼 컨셉이라고? 좋은데?”
“아, 혀엉.”
내가 쓰고 있는 걸 그대로 읽어버리는 올리버에게 칭얼거리며 고개를 들었는데 또 서른네 개의 눈동자가 날 보고 있다. 아, 울렁거려.
“아니, 그냥 한번 생각을 해보는 중인…….”
“해원아! 좋다!”
“악마 때려잡으러 가보자!”
“우와아아!”
심지어 금방 INO에게 낯가림의 벽을 허문, 내향적인 사람 중에서는 외향적인 민지호와 박선재, 그리고 의외로 외향적인 안주원까지 동화되어 같이 시끄러워졌다.
정신없어서 표정 관리가 안 된다. 내 이미지는 이번에도 망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