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55화 (55/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55화

악마 사냥꾼 컨셉을 시각적으로 상상해봤다.

인트로부터 아웃트로까지 머릿속으로 쭉 한 번 정리해 본 후에, 가져온 맥북을 켜고 INO의 멤버 올리버에게 한쪽 이어폰을 줬다.

“인트로를 이런 식으로 성가 느낌이 나게 DEMON을 편곡해서…….”

미니 건반을 꺼내서 가상 악기를 오르간으로 설정하고 연주를 했다. 올리버가 옆에서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끄덕거렸다.

“그리고 인트로가 끝나도 오르간 연주는 이 코드로 계속 이어지고, 여기다가 신스가 이렇게…… 들어가면 좋을 것 같은데요.”

“…….”

“DEMON이랑 불을 켜 코드 진행이 같은 곳이 있잖아요, 이 부분 비트 좀 만들어주시면 안 돼요?”

“해원아, 굳이 나한테 작업 나눠주려고 안 해도 돼.”

“네?”

“아니, 안 하겠다는 말이 아니고. 해도 너만큼 퀄리티가 안 나올 것 같다는 거야. 만들어는 올게.”

“……형 왜 이렇게 겸손하게 말하세요?”

“나 교재로 한국어 배워서 그래. 그리고 겸손한 거 아니고, 진짜야. 내가 머리 쥐어짜면서 몇 시간 걸려서 만들 걸 한 번에 찍어버리네…….”

희한하게 INO는 팀은 말을 안 듣고, 개인은 협조적이다. 이래서 저 대인원이 잘 굴러가는 것 같다.

올리버는 내가 가지고 있는 미국인에 대한 선입견과 달리, 내 프라이버시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냥 스피커로 작업하면 안 돼? 바로 들려줘야 퍼포먼스 작업하지.”

아니면 개인 프라이버시가 없는 INO 멤버들이 일반적인 한국인이라고 잘못 배운 걸 수도 있겠다.

올리버가 너무 재촉해서, 나는 스피커로 음악을 틀었다.

흘러나오는 DEMON의 오르간 반주 소리에 INO의 메인보컬이 허밍으로 노래를 얹었다. 거기에 화음을 쌓지 않으면 죽는 직업병을 가진 나머지 보컬들이 아카펠라를 만들었다.

“……보컬 합이 좋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어서 신스가 더해지고, 락 버전의 불을 켜로 연결되었다. 지금은 그냥 이어붙인 거라 연결이 어색했다. 이 부분은 좀 많이 고민해 봐야겠다.

가부좌 자세로 앉아 매서운 표정으로 음악을 듣던 민지호가 말했다.

“열여덟 명이잖아요, 형들.”

그러더니 멤버들을 일으켜 자리를 잡아줬다. 민지호가 안무를 짤 때는 말 걸기 무서울 정도로 냉정하고, 자기의 의견에 대한 강한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악마를 공격하는 거예요. 음악으로.”

“오, 좋다, 좋다. 나 드럼!”

“나 건반!”

INO의 멤버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악기들을 채갔다.

그 후 민지호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형, 불을 켜에서 두 마디 전부터 틀어줘.”

내가 민지호가 원하는 부분부터 음악을 틀고, 민지호는 악기를 연주하는 시늉을 하는 멤버들 사이를 통과하며 점점 약해지는 악마의 모습을 안무로 만들었다.

합이 딱 맞아떨어졌을 때, INO의 멤버들이 펄쩍펄쩍 뛰었다.

“야, 좋다! 짜릿해, 짜릿해.”

처음에는 시끄러워서 피곤했는데, 퍼스트라이트에서는 겪어본 적 없는 격렬한 리액션을 받으니까 은근 활력이 생기고 좋다.

그래도 기가 빨리긴 빨렸는지, 그날 집에 들어와서는 정말 머리를 기대는 순간 최근 들어 가장 빨리, 가장 깊이 잠들었다.

* * *

그리고 이틀 뒤, 더 라이징 첫 번째 스튜디오 촬영.

민지호는 촬영에 들어가기 전부터 은근히 긴장한 상태였다.

지금 내 생각으로는 민지호가 세상 어떤 무리에서든 배척당한다는 게 상상 가지 않는다.

KQS 방송국 주차장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기 전, 민지호가 단톡방에 연락했다.

[민조 : 회의 요청!]

[안쭈 : 우리가 갈게]

우리는 멤버들끼리 ‘회의 요청’이라고 하면 피곤하든, 바쁘든 무조건 회의를 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일곱 명이 같은 숙소를 쓰고 있으니 거의 매일매일 싸우는데, 그렇게 싸우고 나면 본인이든 다른 멤버든 회의 요청을 하면 모여서 반강제로 화해를 하기로 한 것이다.

근데 요즘은 그거 믿고 더 싸우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매니저 형이 내리고, 다른 차에 있던 세 명이 우리 차로 왔다.

멤버들이 다 모여 문을 닫은 후, 민지호가 말했다.

“나 IMX 형들이랑 친한 척 못 하겠어.”

여러 소속사에서 모인 데다, 나머지 다섯 팀이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만큼 거의 모든 그룹에 한 명씩은 소속사가 겹치는 멤버가 있었다.

그리고 그 멤버들은 모두 같이 준비한 연습생들을 친하고 애틋하게 여긴다.

민지호는 자기 때문에 다른 멤버들이 다른 팀과 친하게 못 지내는 것도 싫고, 반대로 자기가 친한 척하는 것도 못 하겠다고 했다. 내 생각에도 민지호는 그런 연기를 할 성향이 못 된다.

“아예, 경쟁 느낌으로 가자. 라이벌 느낌으로!”

민지호의 말에 잠깐 생각하던 신지운이 대답했다.

“여기서 라이벌 이미지 잡히면, 그 이미지가 방송 끝나고도 계속 갈 텐데 괜찮겠어?”

“아, 그건 좀 그런가…….”

다른 멤버도 동의하며 민지호가 시무룩해졌다. 내가 말했다.

“우리가 라이벌 소리도 안 나오게 크면 되지.”

내 말에 멤버들이 갑자기 내 쪽을 봤다. 희한하게, 이제 슬슬 멤버들이 볼 때는 좀 부담스럽기는 해도 긴장되지는 않는다. 얘네를 은근히 믿나 보다.

현재 성적은 우리 두 팀이 비교할 성적이 아니다. 일단 IMX는 일간 100위 안에 곡을 집어넣은 팀이다. 대중이 IMX의 곡을 듣는다는 말이었고, 그건 초동이 70, 80만이 되는 팀도 못 하는 일이었다.

그나마 음원 차트에서 성적이 잘 나온다는 게 이번에 실시간 차트 70위 권에서 어느 정도 버티다가 차트아웃된 우리였다.

한효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래요.”

“맞아, 그럼 되겠다.”

안주원도 옆에서 동의하자 민지호가 흥분을 가라앉히려고 심호흡하고 말했다.

“빨리 크자, 우리!”

그 말에 조용히 있던 신지운이 말했다.

“천천히 커도 돼. 크기만 하면.”

그러자 웬일로 황새벽이 손을 모아 달라고 내밀었다. 멤버들이 손을 모으자 황새벽이 말했다.

“그럼 라이벌 이미지 한번 가보자. 그리고 천천히든 빨리든 멈추지 말고 크자, 우리. 서드 세컨.”

“퍼스트!”

구호를 외치고 나서 차에서 내리며 박선재가 히히 웃으며 말했다.

“아, 이 형들 오늘 왜 이렇게 멋있는 말 하지.”

“그러니까!”

민지호가 맞장구치고, 한 걸음 뒤에서 걷던 한효석이 말했다.

“해원이 형은 웬일로 ‘우리가’라고 하고.”

그 말에 내가 한효석을 돌아보니, 한효석이 어깨를 으쓱였다.

나는 그냥 흐흐 웃었다.

두 번의 활동을 하고 나니, 나는 내가 여기에 쭉 있게 될 거라는 여유가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설마, 이제 와서 TRV가 나를 쫓아내겠어? 분명 무사히 재계약을 하고, 이 멤버들과 쭉 활동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히 그렇게 될 거다.

* * *

대기실에 들어가서 준비하려니 대기실에 걸린 벽걸이 TV에 6분할 화면이 보였다. 그리고 분할된 화면에 여섯 개 팀의 로고가 떠 있었다.

우리 일곱 명은 TV 앞에 서서 6분할 화면을 보고 있었다.

다들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고민하느라 조용하니까, 이럴 때 의무감으로 진행하는 박선재가 말했다.

“같은 소속사였던 팀들 있지? 나랑 새벽이 형은 배드원 형들.”

원래 황새벽은 배드원의 막내가 될 뻔했다가 무산되고 국선아에 출연하게 되었다. 아마 배드원이 사장 마음에 그렇게 차지 않아서, 사장 눈에 많이 잘생기고 보컬 능력도 좋은 황새벽을 새로 만드는 그룹에 넣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모두의 예상을 깨고 배드원은 처음부터 인기를 끌어모았고, 회사는 연습생을 키우는 것보다 배드원의 프로모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인생은 참 이상한 이유와 방향으로 갈라질 때가 있다.

여전히 배드원 멤버들과 무지하게 친한 황새벽이 말했다.

“내가 배드원으로 데뷔했으면 막내였잖아? 난 맏형이 좋아.”

그 말에 내가 어이없어서 물었다.

“이게 좋아하는 거였냐?”

“몰랐냐. 리더만 안 맞고 맏형인 건 좋아.”

황당하긴 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안 맞는 리더 역할을 꾸역꾸역 하고 있으니 고마운 마음이 크다.

“전 뉴데이즈요.”

한효석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민조는 IMX 형들이랑 같이 데뷔 준비했었어요.”

그 말에 민지호가 어떻게 반응할까 우리 모두 약간 긴장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믿었다. 민지호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격과 달리 의외로 선을 잘 지키는 사람이니까.

민지호가 버럭 소리쳤다.

“근데 그 형들보다 무대 잘하고 싶어!”

그 말에 황새벽이 ‘시끄러워…….’라고 중얼거리고 한효석과 박선재가 입을 틀어막았다. 민지호가 그 둘을 뿌리치고 말했다.

“나는 좀…… IMX 형들 보면 묘해. 이게 막 누가 잘못하고 그런 건 아닌데, 내가 국선아 나갔다가, 형들 이미 데뷔 준비 중인데 갑자기 내가 합류하고 또 나가고 이러면서 서로 어색해졌거든.”

그러자 황새벽이 말했다.

“하긴, 그럴 수 있지. 나도 배드원 먼저 데뷔할 때 잠깐 섭섭해서 어색했었어. 형들이 맛있는 거 진짜 많이 사줘서 풀리긴 했는데.”

그래서 내가 대답했다.

“그치, 너한테 먹을 거 사주는 것만 한 해결책이 없지.”

“그니까. 그 형들이 날 너만큼 잘 알아.”

그렇게 어색한 관계를 황새벽이 살신성인해서 그럴 수도 있다고 포장한 후, 민지호가 불이 들어와 있는 카메라 앞으로 가서 선전포고했다.

“IMX 형들! 나에게 라이벌은 있어, 없어. 여기 있어.”

‘나에게 라이벌은 있어, 없어’라는 IMX의 가사 중 한 부분을 써서 만든 말이었다.

그렇게 선전포고를 한 후, 내가 민지호에게 귓속말했다.

“저쪽이 안 받아주고 친한 척하면 어떡해?”

“에이, 내가 미리 연락해 놨지. 형 나 프로야.”

“그래? 고생했네.”

하긴, 방송에 있어서 민지호는 믿을 수 있으니까. 마음이 안 좋았을 텐데, 방송을 위해 먼저 연락하는 게 정말 프로답다고 생각했다.

* * *

IMX 대기실.

멤버들은 민지호가 초대한 단톡방을 보았다.

[형아들 우리가 같이 방송해서 할 수 없이 나 차단 풀었찌? 다 알아♥]

[내가 중간에 투입된 게 싫은 건 당연해 누가 그걸 이해 못 한대?]

[근데 정도라는 게 있잖아 형들은 네 달 동안 나랑 대화 한 번 안 해줬어 그리고 어떻게 밥을 한 번도 같이 안 먹어줄 수가 있어? 같이 사는데]

[꼬우면 지가 나가든지 왜 데뷔하고 싶었던 내가 나가야 돼?]

[아무튼 다들 내가 입 털까바 쫄아 있겠찌??? 회사 나갔는데 또 데뷔해서 천재작곡가 영입하고 여기 나타나서 놀랐찌???]

[내가 적당히 조절해서 말할게 나는 프로니깐]

[대신 우리는 이제 라이벌 컨셉으로 갈 거니까 잘 받아조야대????]

[두고 볼게 내 맘 알지♥]

[우리 친한 척은 하지 말자~]

[이 톡방은 민조가 원하는 게 있을 때 다시 열려요♥]

[민지호님이 나갔습니다.]

[채팅방으로 초대하기]

잠깐 침묵이 흐르다가, 멤버들이 다시 유쾌하게 말했다.

“아, 다른 팀 로고 보니까 긴장되네.”

“편집 너무 무섭게 하지 마세요. 저희 진짜 상처 잘 받는단 말이에요.”

그리고 로고가 뜬 화면을 보며 각 팀에 대해서 한마디씩 하다가 퍼스트라이트까지 왔다. 잠깐 침묵이 흐르고, 리더인 박상현이 말했다.

“지호네 팀이네.”

그때 화면이 잠깐 바뀌고, 민지호가 ‘IMX 형들! 나에게 라이벌은 있어, 없어. 여기 있어’라고 선전포고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리고 IMX 대표로 최재빈이 인터뷰를 했다.

“아무래도…… 지호랑은 아직 조금 어색해요. 저희끼리 데뷔 준비하다가, 지호가 국선아 하고 돌아와서 갑자기 합류를 하게 돼서 지호도 어색하고, 저희도 어색하고……. 그런데 여기서 지호 다시 만나니까 너무 좋구요, 오히려 아는 사이니까 더 이기고 싶은 마음 있잖아요. 선의의 라이벌로 함께 성장해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