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57화 (57/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57화

공연장에서 나가는 사람들은 전 연령대에 걸쳐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스포하고 싶다!’

[어땠어?]

[스포하면 법적조치 어쩌구…….]

[딱 여기다가만 말해봐.]

[애들이 참 잘하더라구~]

[근데 문제는 이걸…… KQS 카메라가 잘 담을 수 있을까?]

세 무대가 모두 좋았다. 특히 앞에 두 팀의 보컬의 공연장을 뚫을 것 같은 고음은 가슴을 상쾌하게 만들었다.

보컬에 대한 취향으로 갈릴 뿐, 어느 팀이든 뛰어난 무대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그리고 세 번째 무대.

관객들은 핸드폰을 든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3번에 투표하든, 투표하지 않든.

마지막에 뇌리에 남는 것은 그것이었다.

* * *

우리는 순위 발표와 마무리 촬영을 위해 무대로 올라갔다.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 박선재, 황새벽과 같이 데뷔를 준비하던 배드원 멤버들이 우리 쪽으로 왔다.

배드원 리더, 최정호가 말했다.

“난 아직도 새벽이가 리더라는 게 상상이 안 간다. 아직도 우리 눈에는 애긴데.”

“잠은 신생아만큼 자요.”

내가 대답하니까 배드원 멤버도, 우리 멤버들도 흐흐 웃었다.

황새벽은 어느 면으로 보나 데뷔가 확실한 연습생 중 하나였다. 그러다 데뷔가 무산되었을 때, 딱히 말은 안 해도 황새벽의 속이 말이 아니었을 것 같다.

연습생이 가장 많이 포기할 때는 아무래도, 한 그룹이 데뷔를 할 때이다. 이 소속사에서 그룹을 내기까지, 아무런 기약이 없다.

국선아 초기에 모인 묘한 모습들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데뷔를 했든, 못했든 누구나 사연은 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 자리로 가려는데 우하정이 말했다.

“해원아, 인사 좀 하자.”

“우린 인사보다 화해를 해야지.”

그러니까, 데뷔를 했든 못 했든 연습생 생활을 한 누구나 사연은 있다.

나도 그랬고, 우하정도 그랬기 때문에 언제 올지 모르는 모든 기회를 마지막 동아줄처럼 여겼다.

어쨌든, 이해를 하는 것과 용서는 다르다. 애초에 사과도 안 하는 놈에게는 더더욱.

“그럼 화해를 하면 되겠네.”

우하정이 뻔뻔하게 말했다.

“아니, 이…… 새친구야.”

“……새친구?”

“내가 넓은 마음으로 화해라고 한 거지, 이…… 새친구야. 잘못은 네가 했는데 왜 화해냐.”

우하정이 묘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뭔지 몰라도 뉘앙스로 기분 나쁜 느낌을 감지한 것 같다.

내가 새친구 타령을 할 때마다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은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이어지는 첫 번째 주 순위 발표. 3위는 MII와 뉴데이즈였다.

“2위는…… 아이노, 그리고 퍼스트라이트입니다.”

자동으로 1위는 IMX와 Bad one의 무대였다.

MC 이희세와 강윤석이 각 팀의 무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적힌 큐 카드를 받았다. 키오스크에 투표를 한 후, 무대에 대한 감상도 한 마디씩 쓸 수 있게 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며 감상을 읽어줬다. 그리고 이희세가 2위인 우리 팀에 대한 관객의 감상을 읽었다.

“무대는 시각적인 충격이었고, 음악은 서사였다.”

그 말이 나오자마자 INO와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이 모두 와서 내 등을 두들겼다. 본인들은 한 대씩이지만 열일곱 대를 맞으니 척추가 펴지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INO와 같은 승점을 나눠 가졌다. 바로 스케줄이 있는 INO가 먼저 퇴근해서, 우리는 서로 악수와 포옹을 했다. 나도 올리버에게 달려갔다.

“형, 진짜 고생했어.”

“응, 고생했어. 천재랑 작업하는 거 참 속상하더라…….”

“아니, 나한테는 자존감…….”

“나는 자존감 높아. 해원아, 웬만큼 자존감 높지 않으면 너랑 작업 못 해. 멘탈 깨져서.”

올리버는 그렇게 말하며 나와 악수를 하고 같이 밥 먹자고 얘기한 후 떠났다.

그리고 우리는 대기실로 돌아가자마자 두 번째 미션을 받았다.

대기실 TV에 두 명의 MC가 보였다.

나는 양이형, 그리고 INO 프로듀서 김성민과 작업하는 중간중간, 나름 다음 미션을 추측하며 어느 정도 대비를 해놨었다. 첫 번째가 팀전이고, 곡이 아예 정해져 있지 않았다.

두 번째는 반대로 곡을 미리 정해줄 거라는 게 세 사람의 공통 의견이었다.

첫 번째 주만 열흘의 여유 시간이 따랐지, 다음 주부터는 짤 없이 일주일 안에 미션을 해내야 했다. VMC는 이럴 때 방송의 전체적인 퀄리티를 위해 미션을 미리 귀띔해주곤 했는데 KQS는 마지막 주가 완전 자율 주제라고 알려준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이래서 옛 조상님들이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을 한 것 같다.

이희세가 말했다.

-지금 제 손에는 몇 달 전 인터넷에서 진행했던 한 투표 결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강윤석이 말했다.

-이번 두 번째 미션은, 여기 이 투표 결과로 결정됩니다.

-그렇습니다. 뭐에 대한 투표였죠, 윤석 씨?

-바로, 각 그룹이 가장 소화하기 어려울 것 같은, 이미지가 상반되는 커버곡입니다.

그거.

나름 일리 있는 미션이네…….

MC가 있던 화면이 다시 각 팀의 로고가 있는 6분할 화면으로 바뀌었는데, 무대 전과 순서가 달랐다.

Bad one과 IMX, 우리와 INO가 붙어 있는 걸 보니, 방금 전 무대 순위로 정렬한 것이었다.

캬, 역시 선무당…….

-동일 등수에서는 연차로 순서가 결정되었습니다.

보통 알파벳 순 아닌가. 약간 꼰대 기질이 있네.

나는 말을 속으로 삼키며 로고를 바라보았다. 이희세가 말했다.

-배드원, 탱고 탱고 탱고.

배드원은 지금까지 ‘영원히 자라지 않는 악동’의 이미지를 가지고 활동해왔다. 그런데 성숙미 가득한 가사를 가진 곡이 주어졌다. 안 봐도 배드원 멤버들의 표정이 보인다.

아이돌이 이걸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다크하고, 센 컨셉을 주로 하는 IMX에게는 트로피칼 청량이 가득한 노래, 하와이안 러브. 그리고 멤버수가 가장 많은 INO에게는 통기타 듀엣곡 커피 두 잔.

그리고 우리.

안주원이 말했다.

“우리는 웬만한 곡은 다 소화할 수 있지. 해원이 있으니까.”

“맞아! 다 할 수 있어!”

민지호가 소리친 후, 이희세가 말했다.

-퍼스트라이트, 나비의 춤.

하지만 정작, 주제가 뜨고 나서는 다들 굳어서 말이 없었다.

‘나비의 춤’

이건 MC인 이희세의 팀이 부른 타협과 화합, 그리고 결국은 우정에 관한 노래였다. 반대로 말하자면, 우리 팬이 아닌 다른 케이팝 팬들이 보기에 우리 팀이 우정이 느껴지는 팀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될 것이다.

다른 소속사에서 준비해 온, 서바이벌의 결과로 만들어진 그룹.

결성 초기부터 보여온 크고 작은 다툼들은 다른 그룹이라면 금방 화해하는 것이라 넘어갈 일도 불화설로 이어지고 만다.

그사이 나머지 팀의 곡도 발표가 되었다.

MII는 리틀 프리티.

걸그룹 카멜리아의 데뷔곡으로 희망차고 사랑스러운 곡이다. 아마 대부분의 팀이 이런 귀여운 걸그룹 곡이 되길 원했을 것이다. 컨셉 살리기도 쉽고, 주목받기도 쉬울 테니까. 무대 구성에 제일 쉬운 건 아마 리틀 프리티일 것이다.

마지막, 평균 연령이 가장 어린, 전원 미성년자에 막내가 중학교 3학년인 NEW days는 반대로 IMX의 일간 차트 입성곡, ‘문라이트’가 주어졌다.

대기실에서 나오면서 보니 뉴데이즈는 한숨을 푹 쉬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뉴데이즈의 막내인 곽준우가 같은 소속사 형인 한효석을 보자마자 달려왔다.

“효석이 형!”

“응, 준우야.”

“우리 어떡해요…….”

곽준우가 한숨을 푹푹 쉬었다. 지금까지 꿈과 환상, 귀엽고 깜찍한 노래를 불러온 뉴데이즈에게 은유했다뿐이지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뒷골목에서 약 빨 적에’인 문라이트가 어울릴 리 없다.

“욕 진짜 많이 먹겠다…….”

곽준우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한효석이 말했다.

“준우야. 벌써부터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면 안 돼. 어떻게든 해내겠다는 생각을 해야지. 노력하면 안…….”

다행히 한효석이 계속 꼰대같이 굴기 전에 민지호와 박선재가 입을 틀어막았다. 매번 느끼지만 쟤네 셋이 친구라 정말 다행이다.

물론 노력도 중요하지만 타고난 것도 중요하다. 개중에서도 발레만큼 타고난 게 중요한 예술은 흔치 않을 것 같다.

아무튼 이번 뉴데이즈 무대가 망하면, 이득은 IMX가 본다.

그건 또 좀 그렇지.

내가 뉴데이즈 멤버들에게 말했다.

“여기 작곡 누가 해요?”

모든 팀에 작곡 멤버가 하나씩은 있는 구성으로 모였기 때문에, 내 질문에 나름 멤버 중에 최연장자인 채유호가 손을 들었다.

“저요.”

열아홉 살, 신지운, 안주원과 동갑인데 채유호가 한참 동생 같아 보인다. 물론 원인은 우리 멤버들에게 있다…….

내가 핸드폰을 드니까 채유호가 얼른 달려오며 물었다.

“진짜요?”

“작곡하는 멤버들끼리 서로 연락처 교환하면 좋잖아요.”

“네, 제발…….”

아휴, 이 어린애들이 모여서 뒷골목에서 약 빠는 노래를 어떻게 부르냐……. 물론 IMX도 뒷골목에서 약 빤 과거가 있는 건 아니지만, 뉴데이즈 애들은 얼굴에 ‘뒷골목’이 없다.

* * *

안 어울리는 곡이란 거, 맞는 말인 것 같다.

우리는 밤을 새우고 회의를 했지만,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무대를 그대로 가져오는 거? 어렵지 않다. 민지호는 한 번 보고 이미 안무 대부분을 눈으로 땄고, 한 시간 내에 모든 멤버의 안무 디테일까지 전부 따왔다.

박선재는 그냥 여자 키로 나비의 춤을 처음부터 끝까지 소화했고, 멤버들은 이틀 동안 안무와 동선을 자다 깨도 할 수 있고, 짧은 시간 안에 복잡하기로 유명한 ‘나비의 춤’ 준비 자세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무대를 그냥 그대로 옮기는 게 이번 미션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중간에 댄스 브레이크 추가하고, 민지호와 한효석이 나비를 형상화한 근사한 페어 안무를 만들어 넣었는데, 우리가 환호하고 박수 쳐줘도 두 사람 다 딱히 만족한 얼굴이 아니었다.

이 이상,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3일 차 저녁.

‘더 라이징’ 첫 방송이 나갔다.

후속 반응은 좋지 않았다.

방송이 너무 지루했기 때문이다.

[서바이벌 명가는 따로 있다]

[TYT는 되고, KQS는 안 되는 이유?]

나는 멤버들과 함께 방송을 봤는데, 내 걱정과 달리 편집이 순한 맛 그 자체였다.

제작진 중 아이돌 팬클럽 출신들이 많아서, 최대한 팬들이 마음 상하지 않을 만한 편집을 해줬고, 그게 아이돌 팬들에게는 재미있어도 그 외의 시청자에게는 심심했던 것 같다.

첫 주차는 다음 주에 방송될 무대의 준비 과정과 무대 맛보기를 보여주며 호기심을 유발하는 내용이었다.

우리 연습실을 촬영 중인 제작진의 표정을 보니 영 어두웠다. 우리에게 티를 안 내려고 해도, 분위기란 게 있으니 멤버들도 좀 위축되는 분위기였다. 서바이벌을 경험한 우리가 이러면 다른 팀은 훨씬 더 할 것이다.

나는 아무래도 상황을 봐야 할 것 같아서, 심호흡을 여러 번 하고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확인해 보니 VMC의 언플이 난리도 아니었다.

KQS에 대한 서바이벌 모방 논란부터, 대단한 공중파가 작고 약한 VMC에서 빼앗아간 서바이벌 파생 아이돌들, 그렇게 빼가더니 결국 시청률도 화제성도 망했구나, 등등.

[역시 서바이벌은 TYT에게ㅎㅎㅎㅎ]

[공중파는 이제 진짜 망한 듯 뭘 해도 재미없어]

댓글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영, 묘했다. ‘서바이벌’하면 ‘VMC’라는 이미지를 만들고 싶어 하던, 또 다른 서바이벌을 준비 중인 VMC는 신이 났겠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기분이 확 가라앉는다.

“……나대네.”

나는 내가 VMC에 가진 증오가 이 정도로 크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다음 주에 무대가 방송되고 나면 화제성이 좀 더 붙을 수 있겠지만, 나는 지금 당장, 내가 취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고 싶었다. 최소한, VMC가 그만 신나도록.

나는 고민하지 않고, TRV에서 촬영분을 맡은 황지석 PD에게로 향했다.

“저, 피디님.”

“응? 왜, 해원아.”

“시청률요.”

시청률이 잘 나오면 몰라도, 안 나올 때는 언급을 잘 안 한다. 이런 게 악순환이다. 이야기를 해야 조치를 취하지 않나.

황지석 PD가 약간 당황하다가 되물었다.

“응, 왜?”

“저를요, 국선아 때랑 캐릭터를 완전히 반대로 잡아주시면 안 돼요? 극단적으로 반대 캐릭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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