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59화
정해원이 안주원에게 개사를 부탁했기 때문에, 모든 멤버가 숙소로 돌아간 후에도 안주원은 작업실에 남아 밤을 새우고 있었다.
정해원을 여러 번 봤지만, 저렇게까지 초긴장 상태인 모습은 처음 봤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드라이 리허설이 일요일 오후 3시. 지금이 금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3시였다.
편곡을 기다리는 동안 깜빡 졸았다가, 일어나 보니 정해원은 똑같은 긴장 상태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작곡 프로그램 두 개를 사용해서, 컴퓨터 두 대에 프로툴과 로직 화면이 띄워져 있었다.
안주원은 정해원이 작곡하는 모습을 보며, 확실히 작곡가가 악기를 잘 다루는 건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것보다 시간 절약이 됐다. 정해원은 악기 소스를 고르면 별다른 연습 없이 바로 녹음에 들어갔다.
어느 정도 작업을 하던 정해원이 남은 커피를 확인하다가 커피가 없으니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안주원이 깨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 딱 필요할 때 깼네.”
“들어봐도 돼?”
“응.”
정해원이 하품을 하고 캡슐 머신으로 커피를 내리며 물었다.
“커피 줘?”
“내 건 내가 할게, 작업해.”
“응.”
정해원이 고개를 끄덕끄덕거리며 커피를 내렸다. 기껏 대화해 놓고 하나를 더 내리는 걸 보니 못 알아들었으면서 대충 끄덕거린 모양이었다. 지금 정신이 완전히 편곡에 가 있어서 그런 걸 거라, 안주원은 딱히 지적하진 않고 커피를 받았다.
“고마워.”
“들어봐.”
정해원이 자리에 앉아 음악을 플레이했다.
나비의 날갯짓 같은 느낌의 맑은 차임벨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익숙한 인트로가 들렸다. 안주원이 말했다.
“거의 원곡 같네.”
“응.”
“명곡이다.”
“명곡이지. 나도 진짜 좋아해.”
첫 번째 회의 후에 편곡된 나비의 춤이 파워풀한 댄스를 강조했다면, 이번에는 사실상 원곡과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려울 정도의 편곡이었다.
편곡은 2절 벌스부터 서서히 바뀌었다.
“아. 어. 뭔지 알았어.”
“알았지?”
“완전 알았어.”
정해원이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말했다.
“그럼 개사 끝나면 알려줘.”
“어.”
그리고 다시 작업을 이어갔다. 그러다 전화가 와서 마지못해 핸드폰을 들었다.
“누구야?”
새벽 세 시에?
안주원이 묻자 정해원이 대답했다.
“뉴데이즈 작곡하는 애.”
그러더니 잠깐 작업을 멈추고 전화를 받았다.
“어…… 울지 말고. 응…… 뭐, 잘하고 있네.”
뉴데이즈 평균 나이가 이번 더 라이징 참가 팀 중에 제일 어리다고는 하지만, 기껏해야 평균 나이로 한 살 차이였다. 그래도 동생이라고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전화로 질문들에 대답해 준 후에 다시 작업을 이어갔다. 성질이 고운 편은 아닌데, 쓸데없이 정이 많았다. 거기에 최대한 적을 만들지 않으려는 강박 증상까지 겹쳐서, 본인 상태가 후순위로 계속해서 밀리고 있었다.
안주원은 일단 개사를 빨리 마치는 게 제일 도와주는 방법이라고 생각해 가사에 집중했다.
* * *
2차 미션 당일.
멤버들은 거의 좀비 상태로 드라이 리허설을 마쳤다.
나도 계속 비몽사몽 한 상태로 졸다가, 옆에서 황새벽이 아버지와 전화하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아니……. 나 진짜로 바쁘다니까? 아, 참나.”
오늘도 익숙한 내용이다.
황새벽의 삼촌이 과수원을 하시는데, 바쁜 철이 되면 온 일가친척이 일손을 돋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황새벽도 와서 도우라는 거였다.
물론 진짜로 황새벽보고 일을 하라는 건 아니고, 연예인이니까 친척들 모여 있는데 와서 인사도 한번 하고 사인도 해주고 가라는 건데. 올해 내내 정신없이 활동하느라 본가에도 못 가는 황새벽에게 불가능한 미션이었다.
“과일? 과일은 좋지. 삼촌이 보내준 거 다 먹었어. 배? 배를 보냈었어?”
황새벽이 기억을 못 해서 내가 손가락과 입 모양으로 3주 전에 먹은 배 얘기를 했지만 여전히 못 알아듣는 표정이다. 기억 못 할 만도 한 게, 한 박스 배 여덟 개가 체감 1분 30초 정도 만에 없어졌다. 갈아 마셔도 그 속도로는 못 먹겠다.
황새벽이 전화하다가 슬슬 귀찮아하며 말했다.
“어어, 아빠 나 이제 가야 돼. 아니, 왜 거짓말이야……. 아나, 진짜 미치겠네.”
부자지간에 성격이 정반대라 전화하면 맨날 저런 식이다. 황새벽의 아버지는 나이도 퍼스트라이트 멤버 부모님 중에 제일 어리고, 성격도 살가우신데, 아들은 무뚝뚝해서 항상 전화할 때마다 섭섭…… 사실 좀 삐지신다. 허허.
아무래도 숙소에 부모님들이 돌아가면서 이것저것 음식도 보내주시고, 필요한 걸 챙겨주시고 하다 보니 서로 연락을 자주 하시게 되는 것 같다. 멤버들처럼 부모님들도 좀 내성적이신데, 우리 부모님은 아주 살갑지는 않아도 은근 외향적인 분들이라 늦게 단톡방에 들어가도 새로 친구를 사귄 기분으로 잘 지내고 계신 것 같다.
황새벽이 나에게 입 모양으로 ‘제발제발제발’ 해서 내가 달라고 손짓했다.
“어, 아빠, 해원이가 아빠랑 얘기하고 싶대.”
그러더니 핸드폰을 줬다. 요즘 멤버들은 잔소리 듣다가 지치면 나에게 핸드폰을 넘겼다. 그러면 내가 요즘 숙소 상황이나 멤버들의 컨디션을 요약해서 전달해 드렸다.
오늘도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황새벽의 아버지가 말했다.
-그래, 해원아. 잘 지내니?
“당연히 잘 지내죠. 배 진짜 맛있었어요. 애들이 거의 마시더라구요.”
-그지? 이번에 배가 맛있더라. 근데 이 아들내미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렇다고 딸이 살가운가 하면 그것도 아니고…….
그렇게 황새벽과 황새벽네 누나 뒷담화를 시작하셨다. 나는 들으며 낄낄거리고, 황새벽은 그러거나 말거나 진이 빠져서 커피를 주입하고 있었다.
우리가 연습실에서 뽑은 순서대로, 우리는 두 번째 무대였다.
하필 여섯 팀 중에 걸그룹 커버가 둘인데, 그게 첫 번째 두 번째였다. 우리는 대기실에서 먼저 무대를 하고 있는 MII를 보고 있었다.
* * *
더 라이징의 MC 이희세는 방송 전부터 깐깐한 표정을 지으며 녹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오늘 여섯 개의 무대 중 한 팀, 퍼스트라이트는 이희세가 소속된 루나리스의 ‘나비의 춤’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비의 춤은 이희세에게는 당연하고, 루나리스와 그 팬들에게도 가장 소중한 곡 중 하나였다. 콘서트 세트리스트에 자주 들어가는 곡이기도 했다.
후배들이 지금까지 몇 번 커버한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내키지 않았다. 원곡에 대한 애정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었다.
이 곡은 이희세의 가장 친한 친구를 떠올리며 직접 가사를 쓴 곡이었다. 시인이나 발레리나는 스토리를 만든 것이지만, 친구는 늘 이희세가 연습생 시절을 보내는 동안 춤도 노래도 얼굴도 네가 세계 최고고, 무조건 잘될 거라고 조금의 의심 없이 말해주곤 했었다.
그래서 더더욱 이 곡에 까다로워지는 것이었다. 그래도 프로기 때문에 그 사실을 입 밖으로 낸 적은 없었다.
기다리는 사이에 MII가 첫 번째 무대를 시작했다.
‘리틀 프리티’라는 곡명 그대로 귀여운 컨셉을 들고 왔는데 무대는 잘하지만, 구성면에서 특별할 건 없었다. 말 그대로 예상 범위 내였다. 메인 보컬인 우하정이 노래를 잘하기는 하지만 키를 내리지 않은 고음까지도 예상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퍼스트라이트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여기는 발레 전공자가 있으니까, 발레로 시작하겠지.’라는 이희세의 예상 그대로, 발레 전공인 한효석이 먼저 무대에 올라왔다.
‘망치지만 마라, 우리 노래.’
이희세는 카메라가 자기 표정을 찍고 있는 걸 알았기 때문에, 생각과 달리 표정은 무척 기대감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대가 시작되고, 이희세가 멈칫했다.
‘어? 원곡?’
지난주 강렬하고 시네마틱한 편곡으로 호평을 받은 만큼, 이번에도 그런 편곡을 예상했다.
그런데 지금 무대에서 들리는 음악은 원곡에 가까웠다.
[우리는 달라 달라서 좋아]
그렇게 거의 원곡과 비슷한 상태로 진행되던 음악은 2절 벌스에서부터 분위기가 바뀌었다.
“와.”
내내 모든 팀에 똑같이 표정 관리를 하던 이희세가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냈다.
‘아! 콘서트용 편곡이었구나?’
콘서트용이었다.
그것도 엔딩곡의 분위기. 꽃가루가 무대 전체에 날리고, 모든 팬들이 즐거움과 아쉬움을 느끼는 순간.
원곡 위로 벅차오르는, 대형 공연장의 스피커를 아낌없이 사용할 악기 소리가 더해졌다. 그리고 가사도 달랐다. 서로의 차이를 나열하며, 친구가 된 것을 놀라워하던 가사를 다른 내용으로 바꾸어 불렀다.
[우리는 날아 함께 걷는 우리의 모습은]
[나비의 춤처럼 마치 네 춤처럼]
[나의 책장 위를 지나는 바람이 되어]
[우리는 마치 나비의 춤처럼 무대 위로 걸어가]
뮤직비디오 속 친구들은 콘서트용 편곡과 함께, 손을 꼭 잡고 같은 무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건 퍼스트라이트의 편곡이기도 했지만, 마찬가지로 같은 목표를 가지고 달려온 루나리스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였다.
편곡을 하는 데 있어서 루나리스와 그 팬들의 곡이라는 걸 존중했다는 것이, 루나리스의 멤버에게 명확하게 느껴졌다.
분명히 팬들도 똑같이 느끼고 있을 것이다.
08년 데뷔, 16년 차.
이희세의 마지막 콘서트는 3년 전이었다.
‘콘서트 하고 싶다. 미치게 하고 싶다, 정말.’
이희세는 무대를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무대가 끝나고, 짧은 인터뷰 시간.
이희세는 무대 위에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을 보았다. 원곡을 부른 대선배가 앞에 앉아 있으니 멤버들은 엄청나게 긴장한 표정이었다.
이희세가 방송을 생각해 잠시 뜸을 들인 후, 입을 열었다.
“뭐, 소감은 하나밖에 없네요.”
멤버들, 그중에서도 특히 긴장한 편곡자 정해원을 향해 이희세가 활짝 웃으며 질문했다.
“이 편곡, 저희 콘서트 때 써도 될까요?”
그 말에 정해원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그리고 대답했다.
“그래주시면, 감격해서 많이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정말로, 정말로 좋아하는 곡이거든요.”
이희세는 유쾌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엄청 좋아하는 곡이에요.”
인터뷰까지 끝나고, 잠시 무대를 정비하는 동안 이희세는 잠시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 가사 속 친구에게 연락을 보냈다.
[어디야?]
[회사지 왜??]
[보고 싶어서]
[왜? 무슨 일 있어? 지금 갈까? 어디야?]
[아니 진짜로 그냥 보고 싶어서ㅠㅠ]
[그래? 나도 갑자기 보고 잡네♥]
[이따 볼까?]
[그르까?]
[내가 회사로 갈게]
[오 저녁에 맛있는 거 먹자]
이희세는 핸드폰을 보며 배시시 웃다가 닫고 다시 가방에 챙겨 넣었다.
* * *
콘서트용 편곡을 하고 나니 아주 큰 단점이 있다.
“아, 콘서트! 콘서트 하고 싶어!”
민지호가 시끄러워진다는 것이다. 드럽게 시끄럽다.
우리는 나머지 무대의 리액션 컷을 찍고, 바로 퇴근을 했다.
이번 주는 무대가 끝나고 점수가 바로 나오는 게 아니라는 모양이었다.
방송 한참 전에 했던, 이번 주 미션이 되었던 ‘각 그룹이 가장 소화하기 어려울 것 같은 커버곡’에 투표한 사람들의 평가 점수가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평가 방식에 매주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하긴, 이번 미션 같은 경우에는 원곡과 커버 무대의 차이를 아는 사람이 정확한 평가를 할 수 있는 건 분명하다. 납득할 만한 평가 방식이라고 우리 모두 생각했다.
우리는 평가를 기다리며 3차 미션을 기다렸다. 3차 미션은 점수 평가가 나온 후에 공개된다고 해서, 우리는 더 라이징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꽤 여유롭게 우리 콘서트 준비를 했다.
그리고 두 번째 방송이 시작되어, 우리는 연습실에 모여 더 라이징 2회를 시청했다. 내 이미지를 국선아 때와 반대로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어느 정도 들어줬을지 궁금했는데…….
내 부탁은 무지하게 많이 반영됐다. 다만 내 생각과 결과물이 달랐을 뿐이지.
난 내 성격을 좀 착하게 보이게 편집해 달라는 거였는데, 그건 편집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이미지였던 것 같다.
대신, 방송 속의 나는 무슨 무대에 미친, 일 중독자, 잔소리쟁이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