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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60화 (60/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60화

이미지 쇄신을 원하던 나의 바람과 달리, 더 라이징 2화의 나는 망언으로 등장했다. INO의 리더, 강한우가 차량 이동 중에 멤버들에게 그 썰을 풀고 있었다.

-해원이가 잔소리 진짜 심하잖아?

그 말에 차에 타고 있던 INO 멤버들은 물론이고, 나와 같이 TV를 보던 퍼스트라이트 멤버들까지 빡친 한숨을 쉰다. 아니, 내가 뭘했다고……. 어? 내가 그래?

-이번에 해원이가 원하는 보컬이 있는데 그게 안 나오니까 녹음할 때 엄청 뭐라고 하더라고. 근데 내가 좋아하는 야구팀이 십 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을 했는데, 경기할 때 수정 녹음 잡아도 되냐는 거야. 이미 매니저 형이랑 얘기해서 스케줄 없는 시간으로 말한 거야. 그래서 내가 진짜 미안한데 그날은 야구 봐야 된다니까, 해원이가 야구를 재방으로 보라는 거야.

그 말에 차 안에 멤버들이 웃느라 뒤집어졌다. 반면 우리 멤버들은 입을 틀어막고 경악을 하고 있었다.

신지운이 먼저 입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와, 이거는…… 어떻게 실드 쳐줄 수가 없다.”

“다시 못 보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풀 영상 올라온다며.”

내 말에 안주원과 투톱으로 야구 얘기만 나오면 약간 돌아버리는 한효석이 진지하게 말했다.

“형, 반지의 제왕을 스포일러 다 듣고 핸드폰으로 본다고 생각해 보세요.”

“반지의 제왕은 그래도 재밌지. 명작이니까.”

“아, 그러시구나.”

내가 지금까지 본 한효석의 존댓말 중에 제일 시비조였다. 허허.

그때 나만큼이나 딱히 스포츠를 안 보는 박선재가 말했다.

“X이라이브 다시보기로 잘 안 보잖아.”

“아, 하긴.”

솔직히 X이라이브를 다시보기로 보는 건 좀 지루할 때가 있다. 말없이 댓글 읽고 있는 시간도 많고, 특히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은 매번 라방을 켠 직후에 낯가림 시간을 가진다. 햇살이들도 하이라이트 편집한 걸로 주로 보는 것 같다.

“심지어 십 년 만에 포스트시즌인데.”

한효석의 중얼거림에 민지호가 옆에서 말했다.

“아, 나 진짜 딱인 거 생각났어. 형, 잘 생각해 봐. 우리가 음방에서 첫 1위가 예정됐어. 거의 확정이야.”

상상만 해도 기분 이상하다.

“응.”

“햇살이가 두근두근하면서 발표를 기다리고 있는데!”

“있는데!”

“그때 햇살이 어머님이 TV를 딱 끄시면서, 햇살아, 다음 주 시험이니까 시험 끝나고 다시보기로 보렴, 하셨어.”

“아이고, 어머님 어떻게 그렇게 모진 말씀을…… 어? 그 정도야?”

“어!”

어쩐지 황당해하더라.

그건 그렇고…….

“아니, 난 날 착하게 편집해 달란 거였는데.”

내 말에 신지운이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게 되겠냐. 피디님들이 마법사도 아니고.”

“어쩌라고, 너한테 안 물어봤어.”

“봐봐, 이걸 어떻게 착하게 편집해.”

그렇게 이야기하고 소파에 파묻혀 앉아 다시 방송을 보려는데 아까부터 눈앞에 상태창, 아니, 경고창이 떠 있었다.

[경고 : 스트레스가 위험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경고 : 휴식과 카운셀링이 필요합니다]

이미 아는 얘기를 왜 경고씩이나 해주는지 모르겠다.

방송국을 끼고 내가 예전에 나왔던 예능을 까는 중인데 안 쫄리면 그게 사람인가.

다만 내 멘탈이 워낙 약하기 때문에 계속 VMC가 으스대는 꼴을 보는 게 더 못 견딘다는 확신이 든 것뿐이다.

* * *

[무대 하니까 확실히 지난주보다는 재미있다]

[그래도 편집 자체가 지루하네]

그리고 세 번째 무대.

INO+퍼스트라이트. DEMON과 불을 켜의 매시업.

지난주, 즐겁게 웃고 떠들며 아이디어를 내고 준비하는 분위기를 보여주던 편집은 이번에는 날이 선 분위기로 시작했다.

-한 번만 다시 갈게요.

-난 첫 번째 거 괜찮던데…….

INO 멤버의 조심스러운 말에 정해원이 첫 번째 녹음을 다시 들어보더니 말했다.

-죄송해요, 안 괜찮아요. 다시 갈게요.

[국혐 성깔은 변화가 없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의외로 한결같으니까 보기 좋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어른 돼서 죄송하단 말은 붙이네]

-오늘 녹음인 거 몰랐냐? 목 상태 왜 그래?

-잘했으니까 꺼져. 순서 밀렸어.

-형, 그 애드립 별론데. 빼거나 바꾸시죠?

어떤 멤버는 여러 번 하는 걸 힘들어하는 반면, 어떤 멤버는 계속해서 재녹음을 하고 싶어 했다.

-해원 씨, 죄송한데 한 번만 더 해보면 안 돼요? 이제 진짜 가사가 입에 감기는 거 같아가지고.

-하고 싶은 거 일단 다 해보세요.

정해원은 똑같은 태도로 디렉팅을 했고, 뒤로 갈수록 시청자는 오히려 그 한결같은 태도에 감탄했다.

[아니, 근데…… 어?]

[지금 혼자 17명 디렉하는 거야? 체력 X나 좋네]

[17명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디렉팅하다가 쌍욕해도 인정해줘야 되는 거 아니냐ㅋㅋㅋㅋㅋ]

[근데 퍼스트라이트 멤버들 생긴 거랑 다르게 말을 잘 듣네]

그리고 결국 수정 녹음을 하러 온 INO의 리더 강한우가 컨트롤 룸에서 나와, 자기 순서를 기다리던 신지운에게 말했다.

-아, 해원이 성격 있네.

-짜증 나죠?

-아이, 야. 짜증까진 아니고.

-저희도 국선아 때 짜증 났는데, 결과 보면 항상 해원이 형이 맞더라구요.

그렇게 17명의 디렉팅을 한 이후에 마지막으로 본인도 녹음을 했다. 앞선 17명에게 까다로웠던 디렉팅은 본인의 보컬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녹음은 같은 팀 보컬인 황새벽이 도왔다.

-야, 해원아. 보컬 늘었다.

-그치? 아, 나 오늘 목 상태 좋은데?

-그니까. 꽤 잘해?

[말하는 거 둘 다 왜 이렇게 느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황새벽이 느려서 같이 느려진 듯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보컬 늘긴 많이 늘었다]

[국선아 때는 정해원이 노래하면 X나 불안했는데 일단 안정적임]

그렇게 본인까지 녹음을 한 후에, 모든 멤버들이 돌아가고 컨트롤 룸에 남아서 보컬 편집을 시작했다.

[쟤 안 자?]

[도른 새끼네]

그리고 중간에 양이형의 인터뷰가 들어갔다.

-퍼라 애들이 맨날 그래요, 쟤는 단명이 꿈이냐고. 멤버들 의견 다 끌어낸 다음에 자기 손으로 그걸 요리해야 만족하는 타입이거든요. 근데 제가 봐도 어쩔 수가 없어요. 해원이가 해야 퀄리티가 제일 잘 나오거든요. 천재예요, 걔는.

그 인터뷰 후 대기실에서 아이라이트를 외치는 모습에 이어, 세 번째 무대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무대는 더 많은 관객이 보고 있을 때, 더욱 할 말이 많아지는 무대였다.

[오마주 미쳤다]

[레퍼토리가 웬만한 씨네필이네 영화 X나 많이 봤나본데ㄷㄷㄷ]

[정해원 이제 스무 살 아니야? 학교 다니면서 이렇게 영화를 볼 시간이 있나?]

[↳중퇴했대]

[↳↳왜? 연습생 하느라?]

[↳↳↳그것도 아니라던데]

[나 앤써즈(INO의 팬클럽)라 녹음 때 해원 님 너무 정 없어 보여서 좀 그랬는데……. 무대 보니까 우리 애들 보컬 진짜 매력 있게 다 살려 줬네]

[↳솔직히 보컬 디렉할 때 우리 애들 한 명 한 명 보컬 많이 연구한 거 느껴지더라]

[↳과장 안 하고 우리 프로듀서보다 애정 많음ㅎㅎㅎㅎ]

[↳해원 님 우리 곡 써주시면 안 되나ㅠㅠㅠㅠ]

[↳↳제발ㅠㅠㅠㅠㅠㅠㅠㅠ]

[↳↳야구 관련된 거 하나만 써주시면 애들 신나서 부를 텐데ㅠㅠㅠㅠ]

[앤써즈 입장에서 국선아 편집이 왜 그렇게 나왔는지는 알겠더라구 근데 X나 X발 같이 편집을 했네?]

[솔직히 앞뒤 자르면 그냥 국선아임]

[↳어……? 그러게……?]

[그냥 사람이 변한 거 아닌가]

[↳그렇다기엔 신지운이 국선아 때도 그랬다잖아]

[지난번에 희범이 유튜브 생각난다 그때 정해원 백퍼 연습 많이 해서 지쳐서 잠들었을 거라고 했잖아]

[뭐야 국선아 X 같네?]

* * *

더 라이징의 책임 피디, 우혜정 피디는 방송국에서 공들인 서바이벌에 적합한 피디는 아니었다.

국선아 조작 논란 이후, VMC의 보여주기 인사로 일부 임원진을 교체하며 몇몇 공중파의 경력직 PD들이 VMC로 이적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어쩌다 보니 이 서바이벌을 떠맡았다. 음악방송 피디 경력이 길다는 게 이유였다. 나름 아이돌 팬 경력이 있는 사람들로 제작팀을 꾸렸다. 팬들이 오래 거론할 만한 무대를 찍어줄 자신은 있었지만, 시청률을 뽑아낼 자신은 없었다. 그리고 첫 주에 그 자신감 그대로의 성적표를 받았다.

그래, 퇴사하자. 이만하면 오래 버텼지…….

그렇게 마음먹고 있을 즈음, 정해원이 자기 발로 직접 와서, 자신을 예능 소재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본인이 큰맘을 먹었고, 우혜정 피디 입장에서도 필요가 맞았으니, 스무 살짜리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라고 무시할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다만 그 후폭풍이 걱정이었지…….

‘더 라이징’ 2회가 방영되는 동안 실시간 댓글을 보니, 우혜정 피디의 상상 이상의 화제성이 예정되어 있었다.

특히 2회 마지막 부분에 들어간, 퍼스트라이트 멤버들 모두 동감하던, 무언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던 2차 미션의 편곡을 정해원이 새로 시작하는 부분의 반응이 크게 왔다.

‘나비의 춤’ 개사를 위해 안주원에게 남아달라고 부탁한 후, 정해원은 작업실에서 초긴장 상태로 편곡을 이어갔다. 그리고 중간에 안주원이 개사를 시작했을 때, 잘 안 풀려서 도움을 요청하는 안주원에게 정해원이 누가 봐도 비몽사몽 한 상태로 말했다.

-왜, 작곡가들이 그러잖아. 가사를 써야 진짜 자기 곡이라는 기분이 든다고. 나도 작곡을 하다 보니 그 말이 뭔지 너무 알겠거든. 근데 이상하게 네가 쓰면 그런 기분이 안 들어.

-그래?

-응. 내가 만든 곡들은 처음부터 퍼스트라이트의 곡이었잖아. 그러니까 혼자 만들든, 너랑 만들든 똑같은 거야. 퍼스트라이트가 만든 퍼스트라이트의 곡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그건 진심이었고, 퍼스트라이트의 팬들뿐만 아니라 다른 그룹의 팬들에게서도 좋은 반응을 불러왔다.

“타고났다, 타고났어…….”

데뷔하고 반년도 안 된 아이돌이 이 정도로 화제성, 그것도 어그로만으로 이런 개싸움을 불러오는 건 긴 음악방송 피디 생활 중에도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한 번 방향이 잡힌 여론을 뒤집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그 어려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우혜정 피디가 보기에 정해원이었다.

* * *

우혜정 피디의 예상대로 후폭풍은 강했다.

TYT의 공식 유튜브 최신 영상에 댓글이 폭주하고 있었다.

[해명 부탁드립니다]

[아니 해명을 하든지 사과를 하든지 입 딱 다물고 있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편집으로 이렇게 이용해 먹었으니 후속 조치도 충분히 해줬겠죠? 미성년자 보호는 당연한 건데요]

[왜 아이돌이 아니라 매니저를 하고 있었는지…….]

[↳저렇게 재능 있는 연습생 앞길 막고 끝이에요?]

박경석 피디는 후배에게 해명문과 사과문의 작성을 맡겨놓고 연거푸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예능 화제성이 그렇게 오래 가진 않을 테니 일단은 잠잠해질 때까지 간을 볼 생각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렇게 사방에서 압박을 느껴야 한다는 것 자체가 괴로웠다. 벌써 2년도 전 일인데, 그걸로 이제 와서 이렇게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겪어야 한다니.

다 때려치우고 어디서 은둔 생활 좀 하다 올까 싶을 정도였다.

피디들이 가오가 있지, 정해원이 이렇게 편집을 해달라고 한다고 해준 건 아닐 것이다. 편집권은 오롯이 피디의 권한이니까. 그럼 KQS에서 정면으로 시비를 거는 거란 건데…….

VMC 홍보팀 측에서도 이런 역공을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이번 KQS 방송국의 서바이벌은 그냥 실패로 끝나고, VMC는 신나게 두들겨 패기만 하면 될 일인 줄 알았지. VMC가 서바이벌계의 원조 맛집이라는 것만 강조해도 여론은 VMC의 편이었다. 원래, 사람들은 원조를 찾아가니까. 앞으로도 계속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여론에 얻어터지고 있는 건 VMC였다. 지금 박경석 피디는 하늘이 더 라이징의 시청률 상승을 돕지 않기만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VMC의 자회사 소속인 MII로부터 3차 미션에 대해 전달받고 나서, 드디어 못 참고 욕을 뱉었다.

“미친 새끼들!”

[3차는 유닛 미션, 주제는 ‘트라우마’입니다]

KQS는 그 화제성을 여기서 끝내지 않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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