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61화 (61/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61화

파이널 미션으로 가기 전 마지막, 세 번째 미션의 주제는 ‘트라우마’였다. 그리고 유닛을 만들기 위해, 다음 날 여섯 팀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 자리에서 2차 미션 순위 발표 장면을 찍었다. 우리는 운 좋게 3위와 한 표 차이 2위로, 종합 순위 2위에 올라섰다.

우리 팀도 잘하지만 워낙 대중적인 명곡에, 운도 좋았다. 무엇보다 그 운에 밀린 3위가 민지호의 전 소속사의 IMX라, 민지호가 상당히 행복해했다. 솔직히 나도 좋다.

3차 미션은 여섯 개의 유닛을 만들어, 각 유닛의 멤버들은 멤버 수 순위, 그리고 멤버 수에 따른 비율에 맞게 점수를 가지고 자기 팀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관객은 각 유닛마다 가장 돋보인 멤버에게 투표하게 되는데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멤버가 유닛 1위와 같은 점수를 가져가게 된다. 나머지 등수는 공개되지 않는다.

이렇게 빡세게 경쟁을 시키는 걸 보니, 역시 1화 시청률의 충격이 세긴 셌던 모양이다. 거기에 2화, 그중에서도 세 번째 무대에서 보인 유의미한 시청률 반등, 그리고 유튜브의 업로드 된 세 개의 무대의 화제성은 ‘더 라이징’ 제작진에게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MC 강윤석이 말했다.

“유닛은 두 개의 보컬 유닛, 댄스 유닛, 랩 유닛으로 나뉘게 됩니다.”

우리 팀은 랩 유닛 쪽에 한 명의 멤버밖에 보낼 수 없는 데다가, 정석적인 아이돌 노선을 밟아 제약이 많은 퍼스트라이트의 신지운이 제재를 당하든 말든 마약에 관한 은유도 할 수 있는 분위기인 IMX를 이기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라고, 나는 그냥 있는 대로 다 말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IMX는 힙합을 전문 분야로 하잖아. 전문 분야라 좀 더 자유롭고, 반대로 지운이는 제약이 좀 있지.”

내 말에 신지운이 말했다.

“그치. 내가 무대에서 삐 처리 될 말을 하는 건 아마 콘서트에서뿐일 테니까.”

“그렇지……가 아니라. 콘서트에서 한다고? 예고제야?”

“한마디 정도는 햇살이들도 좋아할 거야.”

그런가? 모르겠다. 확실히 멤버들은 햇살이들 앞에서, 확 풀어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내 편이라고 믿으니까.

옆에서 우리 대화를 듣던 민지호가 바닥을 탁 쳤다.

“안 돼. 지운이 형. 그냥 욕하고 이겨!”

라이벌 구도가 좋긴 하다. 승부욕을 막 드러낼 수 있네, 흐흐.

아무튼 방송국을 상대하는데, 방송국을 방패 삼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나에게 또 올 것 같지 않다. 내가 은근하게 거론한 것만으로 나에게 VMC 직원이 찾아오던 때와 달리, 지금은 아무런 연락이 없다. 그때보다 훨씬 시끄러울 텐데도.

내가 아니라, KQS가 화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좋은 기회가 또 있나?

그러니 상부상조 할 생각이다. 나도 하고 싶은 말을 하고, KQS는 내보내고.

무엇보다 내가 내뱉는 말이 시끄러워질 편집으로 잘려 나가지 않을 거라 생각하니 나는 조금 자유로워졌다.

그나저나 랩 유닛이 두 개니까 IMX가 확실히 유리하긴 하겠다. 그 팀은 랩퍼도 많고, 보컬도 많다. 랩퍼 대부분이 퀄리티와 상관없이 어느 정도 비트를 찍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유닛도 잘해야 하고, 개인도 돋보여야 하는 미션이니, 유닛도 잘 짜야 한다.

일단 우리는 회의 끝에 최대한 흩어지기로 했다. 1위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은 박선재와 황새벽, 민지호와 한효석은 최대한 두 유닛으로 찢어지기로 했다.

그리고 아마 각 팀의 모든 작곡멤이, 결국 자기 멤버가 1위할 가능성이 있는 유닛을 도와주게 될 거다. 이번 추석 연휴, 신나게 일하겠구만. 허허…….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박선재가 나에게 해맑게 말했다.

“우리 계획대로 무사히 갈리면 형 몸을 다섯 개로 찢어야겠다!”

“……아니, 넌 무슨 말을 그렇게 무섭게 하냐.”

“박곰돌 모드.”

박선재가 브이를 하며 잔망을 떨더니 히히 웃었다.

퍼스트라이트도 팬들 사이에서 모에화된 동물로 많이 불리는데, 거의 제일 먼저 정해진 건 박선재가 아니었나, 싶다. 박선재는 가까이서 봐도, 멀리서 봐도, 굴러가면서 봐도 곰돌이 상이다. 햇살이들은 박선재가 귀여우면 곰돌이, 그리고 아직 가끔 사춘기가 덜 빠진 것처럼 굴면 박곰돌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리고 곰은 사람을…….

왠지 모르게 오싹해하다가, 나는 잠시 MII의 우하정 쪽을 봤다. 평소에는 최대한 거리 두고 지내려고 무시하는데, 오늘은 그쪽으로 시선이 갔다.

예상대로 우하정의 표정이 어두웠다. 그러니 나머지 멤버들도 거의 말이 없었다.

국선아 편집에 대한 비난이 시작되자 그 화살 중 일부가 우하정에게로 향했다.

내가 악역일 때 선역이 되던 사람이니, 내가 악역이 맞나 의심이 생기게 되면서 선역에 대한 의심도 생겨난 것이다.

나는 댓글 반응을 읽지 못하지만, 우하정의 표정은 내가 국선아 때 악플을 처음 보던 때와 비슷하다.

조금도 후련하지 않다. 오히려 울렁울렁 메스꺼워져서 고개를 돌렸다. 우하정은 나에게 쏟아지던 악플에 숟가락을 얻었고, 나는 그게 원망스러웠지만 하루 날 잡아 두들겨 패고 싶은 정도였지, 내가 받은 만큼 욕을 먹기를 바란 건 아니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저리는 손을 꽉꽉 주물렀다. 숨이 안 쉬어진 기억이 있으니, 저림이 올 때마다 빨리빨리 풀어주고 있었다. 방송 중에 그런 일이라도 생기면 대참사니까.

아, 내 멘탈 진짜 돌겠네. 관리하기 드럽게 까다롭다.

각 팀이 회의를 마친 후, MC 이희세가 말했다.

“그럼 각자 들어가고 싶은 파트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각자 자기 전공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세 개의 대기실. 황새벽, 안주원, 박선재는 보컬 파트로, 나와 한효석, 민지호는 댄스, 신지운은 랩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문을 열었을 때, 나는 댄스 파트에 먼저 와 있는 어린이들을 발견했다.

여섯 팀 중 막내, 중학생 멤버가 있는 뉴데이즈. 두 번의 미션 연속 꼴찌인 팀이었다.

여덟 명의 멤버 중에 다섯 명이 여기 와 있었다.

멤버 여덟 명 중에 댄서만 다섯 명. 대단한 팀이다. 심지어 한효석이 저기서 데뷔할 뻔했으니…….

“너까지 있으면 댄서가 여섯 명이네?”

민지호가 한효석에게 말하더니, 나를 보며 감격한 얼굴로 말했다.

“댄서 여섯 명이면 퍼포먼스가 더 멋있었을 텐데! 그치, 형!”

그래그래. 대신 프로듀서는 약간 괴롭겠지…….

아니지. 내가 왜 프로듀서한테 이입하고 있지? 17명 디렉팅의 충격이 남았나…….

그 이후 나머지 팀의 댄서들도 들어왔다.

보컬 파트 18명, 댄스 파트 18명, 랩 파트 14명.

어딜 가나 내 또래 남자들이 득실득실한다. 빨리 유닛 갈랐으면 좋겠다. 열여덟 명 모여 있으니까 INO와 함께하던 힘든 기억이…….

그사이 게임이 진행됐다.

두 명의 리더가 두 유닛의 멤버를 뽑는 경기.

현재 가장 성적이 낮은 뉴데이즈는 모든 게임을 정말 목숨 걸고 했다. 기특하다…….

우리도 열심히 했지만, 뉴데이즈만큼은 열심히 할 수가 없었다. 진짜 팀을 어떻게 만들고 싶어서 저렇게까지 죽기 살기로 하나, 싶을 정도의 집중력이었다.

뉴데이즈 멤버는 결국 해냈다. 뉴데이즈 멤버 중 하나가 첫 번째로 유닛 리더를 맡았고, 이어서 배드원의 멤버 하나가 유닛 리더를 맡았다.

먼저 멤버 선택할 기회를 얻은 뉴데이즈, 강진영이 말했다.

“해원이 형이요.”

민지호와 한효석만 찢어지면 돼서, 나는 어느 팀을 가나 상관없으니 강진영 쪽으로 갔다. 강진영이 먼저 인사를 했다.

“04년생이시죠? 저 열아홉 살이니까 말 편하게 해주세요.”

“아, 그래? 그래.”

그 후에 강진영이 이어서 부르는 게 이상하게…….

전부 뉴데이즈 멤버다.

어어어 하는 사이에 뉴데이즈 다섯 명에 나까지 여섯.

아무래도 뉴데이즈 멤버들이 지금까지 뭘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으니까 위험 요소가 커 다른 유닛의 리더가 불러가지 않아 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이게 뭐야, 근데?

내가 상황을 파악하려 애쓰고 있을 때. 강진영이 말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어?”

여섯 명……? 어?

나뿐만 아니라 나머지도 웅성웅성거렸다. 그때 민지호가 입을 두 손으로 틀어막았다가 말했다.

“저 유닛이 1위하면 뉴데이즈 다섯 명이 1위 팀 점수 가져가잖아.”

민지호의 말에 한효석이 중얼거렸다.

“……아, 맞다. 저 형 강진영이었지.”

황당함에 혼이 어디 빠져 있었는지,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이게 무슨 전략인지 파악이 됐다. 내가 강진영에게 말했다.

“그러려면 우리가 1위 해야 되잖아.”

“네, 그래서 형 데려왔잖아요.”

“너무 도박 같은데.”

“어차피 뭘 해도 꼴찌 분위기라 미친 짓 해봤어요!”

미친놈이 심지어 해맑아……? 제일 피해야 되는 스타일 아냐?

내가 뉴데이즈와 같이 연습생 생활을 한 한효석에게 말했다.

“……얘네 뭐야?”

“아, 진영이 형이요? 사기꾼이에요.”

선배한테 깍듯한 한효석이 형한테 저렇게 말하는 거 처음 본다. 진짜 당한 게 많았나 보다.

이제야 안주원의 말이 생각난다. 얘네 안 어리다고. 중학생이 하나 있다뿐이지, 결과적으로 우리랑 평균 한 살 차이 나는 애들이라고…….

심지어 뉴데이즈 멤버가 절대다수니, 이 유닛에서 개인 1위를 가져갈 가능성도 높다.

내가 얼떨떨해하는 사이에 뉴데이즈 멤버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말했다.

“형, 우리 컨셉 뭐예요?”

“뭐 할까요?”

“저흰 형 하자는 대로 하려구요!”

“어우, 부담스러워…….”

부담스럽다는 말에 뉴데이즈 멤버들이 나에게 조금씩 떨어져 앉았다. 이러면 뭐 안 부담스럽냐, 이놈들아…….

그러니까 이 녀석들은 5명을 때려 박은 이 유닛으로 높은 순위를 받아내는 게, 각 팀으로 찢어져 개인 1위 점수를 받는 것보다 본인들에게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를 데려온다면…… 너무 부담스럽다…….

내가 말했다.

“나는 우리 멤버가 있는 다른 팀도 도와줄 거고 일단…… 나 지금까지 우리 애들 곡 말고는 안 만들어봤어. 편곡도 그렇고.”

“괜찮아요!”

“형, 우리 같이 1위를 노려요!”

우리 지금 대화하는 거 맞니? 혹시 유치원이야?

나는 돌이켜보면 열일곱 명 디렉팅 시절이 좋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이 어린이들에게 맞는 컨셉을 생각해 봤다.

원래 뉴데이즈의 소속사 사장이 춤에 미친 사람이라, 보컬보다는 춤, 다음 순위가 얼굴로 데뷔시키는 경향이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전략 때문에 다섯 명이 댄스로 온 거라, 보컬 능력이 있는 멤버도 하나둘 정도는 있다.

강진영은 언제 그렇게 도박꾼+사기꾼같이 굴었냐는 듯이 생글생글 웃고 있다. 원래는 예쁘장하고, 선한 인상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약간 광기가…….

강진영이 말했다.

“형, 잘 생각해 보세요.”

왜 이렇게 사기꾼의 첫 마디 같은지 모르겠다.

“형이 하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하실 수 있는 기회예요. 저희는 형만 따라갈 거니까요.”

“아니…… 주제가 주제인 이상 너희 각자의 트라우마에 대한 의견을 모아보자.”

“아뇨. 형. 저희가 형이고 형은 형이에요.”

뭔 말인지 모르겠는데 왜 이렇게 다 그렇구나, 싶지? 얘 진짜 뭐야?

“저희를 한 감정 세포쯤으로 생각하세요. 저는 기쁨이 할게요.”

“아니, 너는 기쁨이는 아니야. 절대 아니야.”

“그럼 딴 거 시켜주세요. 다 좋아요.”

나는 생각해 보았다.

이 주제는 제작진이 나와 국선아의 관계로 화제성을 이어가려는 계획의 반영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나는 그것에 대해 피할 생각이 없다.

어쩌면 진짜로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가끔은 오히려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서, 그래서 친하니까 더 못하게 되는 말들이 있다. 차라리 아예 모르는 놈들이 낫다. 이 어린이들은 내 감정에 같이 동요하고, 스트레스받지 않을 테니까…….

어, 잠깐만. 나 이 사기꾼한테 약간 세뇌된 것 같은데……?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