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62화
우리 유닛이 뉴데이즈 다섯 명과 나로 마감했으므로 자연스럽게 나머지 댄스 파트의 민지호와 한효석을 포함한 열두 명은 같은 유닛이 되었다.
민지호와 한효석은 평소에는 안 맞을 때가 많았지만, 낯가리는 둘에게 의지할 곳은 서로밖에 없었으므로 벽에 등을 붙이고 앉아 나머지 열 명이 떠드는 걸 바라보며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저걸 보니 각자 찢어져서 낯가리고 있을 나머지 멤버들이 걱정…… 아니지, 걔네가 애들도 아니고 알아서 하겠지.
뉴데이즈의 전곡과 우리 전곡을 훑어봤지만, 이번 주제에 쓸 곡은 없었다. 일단 각자 생각해 보고 영상통화를 하자고 소득 없는 회의를 마쳤다.
대기실을 나가기 전, 강진영이 나에게 말했다.
“형, 저희 이번에 어떻게든 잘하고 싶어요. 꼴찌로 떨어지더라도 뉴데이즈 팬들이 한 무대라도 이 서바이벌에 나가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무대를 보여주고 싶어요.”
이상한 놈이기는 하지만, 이 도박판을 벌인 이유는 확실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죽어라 해보자.”
내 말에 뉴데이즈 멤버들이 멈칫하더니, 나한테로 되돌아와서 말했다.
“저 형이 시키는 거 다 할 거예요!”
“커피 사다 드릴까요!”
“저희 프로듀서님 연락처도 필요하면 드릴게요!”
“……막 줘도 돼?”
“모르겠어요!”
그렇게 막 뱉은 다음에 전화해서 허락받고 연락처를 줬다. 대한민국 최고의 히트곡 메이커 중 하나인 허해준 작곡가였다. 잘됐다. 이 기회에 나도 모르는 거 싹 다 물어봐야지, 히히.
그리고 바로 우리 대기실로 돌아가려고 복도로 나갔는데 INO와 퍼스트라이트 나머지 파트 멤버들이 모여 있었다.
“또 시작이야?”
내가 질려 하니까 한 발 뒤에 서 있던 한효석이 말했다.
“심각한 문제거든요.”
“난 이해가 안 간다.”
두 팀이 자체 컨텐츠로 야구를 하자는 게 지난 활동 때 나온 이야기인데 아직도 결정되지 않은 문제가 있어서 진행이 안 되고 있다.
INO 리더 강한우가 말했다.
“사회인 야구 룰로 가면 되는 거 아냐, 깔끔하게. 대한야구협회에 등록된 선수만 선출. 아니면 다 일반인.”
그 말을 듣자마자 안주원이 정색하며 대답했다.
“말이 안 되죠, 수한이 형은 중출이어도 명문중학교 투수였는데. 그걸 일반인이 어떻게 쳐요.”
“무슨 일반인이야, 너희는 일단 피지컬이 사기에 야구 하던 애들도 있잖아.”
“리틀 야구단이잖아요.”
“야, 한효석은 고등학교에서도 운동했잖아!”
그렇게 말하며 강한우가 한효석을 가리켜서, 한효석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운동이라뇨. 발레는 예술이죠.”
“몸을 그렇게 쓰는 예술이 어디 있어.”
“여기 있잖아요, 발레. 그리고 수한이 형은 솔직히 선출로 분류해야죠. 아니면 우익수로 가시든지.”
그러자 논란의 중심에 선 INO 이수한이 손까지 들며 말했다.
“어차피 나 힘껏 못 던져. 받을 사람이 없잖아.”
그 말에 신지운이 말했다.
“형, 그럼 변화구를 빼.”
“넌 던질 거잖아?”
“아, 형. 내 공은 그냥 배팅볼이지.”
“야이 씨, 사기 치지 마.”
초등학생들인가. 아니지, 그건 초등학생들에게 모욕이지.
“차라리 뉴데이즈가 어른이었네.”
내 혼잣말에 민지호가 정색하며 말했다.
“형, 뉴데이즈 말고 나랑 한효석도 신경 써줘.”
“너희는 알아서도 잘하잖아.”
“……나 갑자기 알아서 잘하는 자식의 소외감을 느꼈어.”
민지호가 투덜거렸다. 유닛을 나누니까 갑자기 사람들이 날 좀 좋아한다. 그만큼 퀄리티를 뽑아야 한다는 건 부담스럽지만 솔직히 은근 기쁘다.
그나저나 나도 야구를 해야 하는 건가, 룰도 모르는데……라고 생각하는데, 한동안 제작진과 우혜정 피디가 무언가 이야기하더니, 황지석 피디가 우리 쪽으로 와서 물었다.
“자컨 픽스 된 건 아니지?”
“저흰 안 됐어요.”
강한우가 대답하고 황새벽이 가만히 있더니 한 박자 늦게 말했다.
“아, 저희도요.”
그래도 다른 팀 리더와 자주 만나니까 점점 리더 역할을 배워가는 것 같다. 좀 느리긴 하지만.
그 후 잠깐 각 팀 매니저들과 직원들이 모였다가, 우리 팀 박중운 매니저가 와서 말했다.
“야구 고척에서 할 수도 있겠는데. 설 특집으로.”
그 말에 두 팀이 잠깐 조용했다. 다른 채널에서 명절에 촬영하는 체육대회에 기억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박중운 매니저가 말을 이었다.
“관객 입장은 없대. 진짜 깔끔하게 야구만 하자고.”
부연설명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야구 좋아하는 사람들이 제작진에도 있는 것 같다. 같은 게 아니라 백퍼다.
관객 입장이 없다고 말한 후에야 두 팀 멤버 모두 안심한 얼굴이었다. 한효석이 중얼거렸다.
“아이돌 베이스볼 클래식…….”
“IBC?”
“뭐? IBC? 좋은데?”
다들 신이 났다. 아이돌들이 고척에서 공연을 해서 신난 게 아니라, 야구를 한다고 신나 있는 모습이 솔직히 많이 어이없다.
* * *
나는 회사 작업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여느 때보다 의지하는 사람은 많은데, 유난히 아무 생각도 안 나서 음악을 들으며 소파에 누워 있는데 문이 열리고 신지운이 들어왔다.
“형, 오늘도 숙소 안 오지?”
“못 가.”
“아, 독방 외롭다, 외로워.”
신지운도 유닛 작업을 해야 하니까 집에 못 가고 있는 모양이다. 랩 유닛들은 최소한 자기 랩은 자기가 써야 하니까.
미션과 상관없이, 그냥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둘 다 한숨만 푹푹 쉬었다. 내가 물었다.
“곡은 정했어?”
“어, IMX에 최재빈…··.”
신지운이 말하다가 카메라를 힐끔 보고 호칭을 이었다.
“씨가 비트 써놓은 거 있어서 그거 파트 나눠서 각자 랩 쓰기로 했어.”
“어떻게 합치게?”
“몰라. 말하면 싸워서 일단 가사 쓰고 나서 회의하기로 했어. 막연하니까 더 안 써져.”
연습생도 아니고, 이미 데뷔한 여러 팀의 멤버들이 모여 있으니 의견 통합이 어려운 모양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유닛은 기 싸움이고, 자존심 싸움이고 없는 평화……. 와, 나 진짜 세뇌됐구나. 점점 괜찮아 보이네…….
신지운이 물었다.
“형은 뭐가 문젠데.”
“중학생한테까지 어울리면서 주제가 트라우마이고 강렬한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 곡을 찾아야 돼.”
“그런 노래 세상에 없을 것 같은데.”
“응. 지금 허해준 작곡가님한테 물어봤는데, 그분도 모르겠다고 난처해하시네. 그분이 모르면 존재하지 않는 거 아니냐.”
“하나 만들어.”
“일주일 만에 어떻게 만들고 안무까지 해.”
“이건 뭔데.”
신지운이 아이맥 화면을 가리켜서 내가 대답했다.
“파이널 무대용.”
내 말에 신지운이 보안을 위해 헤드셋을 꽂고 음악을 플레이했다. 듣고 있는 얼굴이 누가 봐도 만족한 표정이라 급격히 자신감이 돌아오고 있다.
신지운이 메모해 놓은 가사를 읽으며 말했다.
“근데 이게 트라우마에 관한 곡이잖아.”
“아니? 그냥 우리 세계관 맞춰서 만든 건데.”
내 설명에 신지운이 표정을 찌푸리며 말했다.
“형, 이거 트라우마에 관한 곡 맞아. 다시 봐봐.”
“내가 만든 건데 내가 알지, 새끼야.”
“아, 일단 보라고.”
신지운이 고집을 부려서 나는 일단 다시 자리에 앉아 가사를 읽었다.
파이널용으로 만들고 있는 곡은 왕좌를 뺏으려는 나쁜 마법사로 인해 모든 기억을 잃고 구걸을 하며 살아가는 왕의 이야기다. 어차피 기억이 없으므로, 왕은 슬프지 않고, 그렇다고 특별히 행복하지도 않고. 오로지 그날 먹을 것과 잘 곳을 고민할 뿐이다.
그리고 어느 날 기억이 돌아왔을 때, 왕은 슬픔에 잠겨 생각한다. 슬픔이 기억에서 오는 것이라면, 기억이 없던 때가 나았다고.
가사에 비해 경쾌하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는 곡이었다. 밝으면 가사가 오히려 씁쓸하게 느껴질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근데 이게 트라우마에 관한 음악인지는, 다시 읽어봐도 모르겠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신지운이 웬일로 저렇게 고집하니 다른 멤버들, 양이형과 상의해 봐야겠다.
신지운이 말을 이었다.
“우리 멤버랑 회사에서 다 싫어할 것 같긴 한데, 형.”
“응.”
“내부에 곡 주는 건 형 능력이면 상대적으로 쉽지. 다른 가수한테 곡 주는 게, 진짜 어려운 거잖아. 누가 봐도 좋은 곡이어야 줄 수 있는 거지. 남의 회사 A&R, 심지어 허해준 작곡가님을 뚫고 주게 되는 거야.”
그건 확실히 맞는 말이다.
“나도 당연히 이 곡 부르고 싶지. 근데 형이 이 곡 다른 가수 주잖아? 그럼 형, 그게 형 입지가 되는 거야.”
입지라는 단어를 쓰는 걸 보니, 내가 가끔 좀 불안해 보였나 보다. 나는 일부러 더 유쾌하게 말했다.
“야, 내가 오늘 잘 속는 거냐, 아니면 갑자기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말을 잘하는 거냐.”
신지운의 말대로였다.
내 회사, 내 팀에게 곡을 주는 것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른 회사, 다른 팀에게 곡을 주는 건 몇 배 더 까다롭고, 많은 경쟁을 요한다. 지금은 그 모든 경쟁을 건너뛸 기회였다.
“그렇게 되면 파이널 준비 다시 시작해야 하긴 해. 직원분들이랑 멤버들한테 욕 배부르게 먹겠네.”
신지운의 말에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혼자 작업하다 말았던 곡을 찾았다.
“작업하던 거 하나 더 있었는데.”
“뭔데.”
“느와르.”
히키코모리 생활 2년 동안, 나는 정말 많은 영화를 봤다. 어떤 영화는 보고 그다음 날 또 봤다. 반지의 제왕 같은 건 매일 3편을 3일 연속으로 본 적도 있다. 뭐 어차피 맛탱이가 가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그 정도면 평범한 일상이었다.
종류를 가리지 않고 다 봤는데, 그중 느와르도 있었다.
나는 신지운에게 작업하다 만 곡 그 곡을 들려줬다.
“무대용이 아니라서 하다 말았어.”
신지운이 다시 헤드셋을 끼고 음악을 들었다.
표정 보니까 알겠다.
“넌 이쪽이 더 취향이야?”
“어. 미치겠다.”
진짜 좋은가 보다.
“형. 이걸…… 왜 안 들려줬어?”
“너무 어두운가 해서.”
“뭔 소리야, 이거 햇살이들 무조건 좋아해. 이거 부르면 무대에서 검은 정장이나 가죽점퍼 입을 텐데?”
오? 오. 많이 날티 나겠는데…….
신지운이 바로 연습실에 있는 민지호와 한효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일단 A&R팀으로 연락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진 회의 끝에, 파이널 컨셉은 ‘느와르’로 정해졌다.
* * *
뉴데이즈의 강진영이 핸드폰을 들고 연습실 구석에 앉아 있으니, 뉴데이즈의 리더이자 작곡 멤버인 채유호가 옆에 와서 앉았다.
“진영이, 아직도 전화 기다려?”
“먼저 해도 되나. 전화하면 닦달하는 것 같겠지? 그럼 참아야지.”
강진영의 머리에서 1위 가능성이 낮은 멤버 다섯 명을 한 유닛에 때려 넣자는 계획이 나왔다. 지금까지 상태로 봐서, 모여서도 분량이 잘 안 나오는데 찢어지면 더 안 나오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일단 분량을 위한 전략이지만, 정해원에 대한 강진영의 믿음은 거의 콘크리트였다. 첫 번째 미션 무대 때 다른 멤버들도 그랬지만, 강진영은 특히 넋이 나가서 보고 있었다.
같은 유닛에 들어간 막내, 중학교 3학년 곽준우도 핸드폰 앞에 앉았다.
“형들, 저도 같이 기다릴래요.”
“응, 앉아, 앉아.”
강진영이 손을 파닥거려 곽준우를 앉혔다. 곽준우가 물었다.
“진영이 형, 해원이 형이 편곡할 곡 못 찾으시면 어떡해요?”
“그럼 못 찾았다고 연락해 주실 테니까, 그때부터 생각해 봐야지.”
한 명씩 기다리는 인원이 늘어나, 다섯 명이 모두 모여 머리를 맞대고 후보곡을 뽑았다. 아주 마음에 쏙 들지는 않아도 그럭저럭 어울리는 후보곡을 다섯 개 정도 추렸을 때, 영상통화가 왔다.
강진영이 바로 전화를 받았다.
“해원이 형!”
-……어.
너무 바로 받은 데다가 화면 너머에 머리 다섯 개가 모여서 내려다보고 있는 게 보이니 많이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때 연습실 문이 벌컥 열리고, 흥분한 표정의 허해준 작곡가가 들어왔다. 그러더니 멤버들이 전화 중인 걸 알고 입 모양으로 전화하라고 말한 후 다시 나갔다.
다시 다섯 명이 핸드폰을 보았다.
-허해준 작곡가님 먼저 보내드렸는데, 괜찮아하셔서.
‘방금 표정은 그냥 ‘괜찮아하는’ 표정이 아니던데요…….’
라고 다섯 명은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해원이 의자를 돌려 스피커 쪽으로 핸드폰을 가져가며 건반을 몇 개 눌렀다.
-잘 들려?
“잘 들려요!”
-그럼 틀게.
그리고 음악이 시작되는 순간, 다섯 명이 동시에 눈빛을 교환했다.
‘해원이 형 혹시…… 곡이 남아돌아?’
‘이 곡을 왜 퍼스트라이트 무대에 안 쓰고 우리랑 할 때 써?’
‘진짜 줘?’
‘혹시 그냥 퍼스트라이트는 이런 곡 있다고 자랑하는 거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