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63화 (63/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63화

나는 다시 핸드폰을 보았다. 여전히 머리 다섯 개가 모여 있는 장면은 여전히 적응이 안 된다.

다행히 뉴데이즈의 멤버 다섯 명은 음악에 집중했다. 음악이 끝나고 내가 말했다.

“허해준 작곡가님께도 말씀드린 건데, 원래는 퍼스트라이트 세계관에 맞춰서 쓰던 곡이거든.”

지금 하고 있는 말은 편집될 것이다. 각 팀의 스케줄, 다음 활동 스포일러는 나가지 않게 하는 게 기본이니까.

나는 이 장면이 통으로 날아가지 않게 잠깐 말을 끊었다. 뉴데이즈 멤버들도 편집점이라는 걸 아니까 재촉하지 않고 기다렸다.

그나저나 눈을 댕그랗게 쓰고 보고 있는 게 어릴 때 키우던 고양이를 떠올리게 한다. 나도 모르게 흐흐 웃고 나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이 곡 이대로는 너무 퍼스트라이트 스타일이거든? 그래서…… 지금 시간 괜찮니?”

내가 물어보니까 멤버들이 말했다.

-형, 저희 시간 다 형 거예요!

-맞아요!

대답하는 게 진짜 유치원생들 같다.

나는 잠깐 핸드폰을 내려놓고 국악기 퍼커션 트랙을 추가했다.

“이런 느낌으로 바꿔보려고 하는데.”

그리고 습관적으로 트랙 색깔을 바꿔 정리하는데 강진영이 말했다.

-형 엄청 꼼꼼하시네요.

“아. 어.”

안 그래도 트랙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못 견디는 강박이 있긴 하다.

아무튼 그 상태로 다시 음악을 틀었다. 안 어울리는 국악기들이 귀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일단은 뉴데이즈 멤버들이 알아듣게만 하려는 거니까…….

나는 국악기 쪽은 잘 모르고, 동양풍을 만드는 것에 상당히 약하다. 가지고 있는 샘플도 거의 없다. 그래도 퍼스트라이트에는 두루마기 같은 게 잘 어울릴 멤버들이 몇 있기 때문에, 한 곡 정도는 작정하고 동양풍으로 만들어보고 싶다.

그래서 허해준 작곡가에게 보여주며, 혹시 동양풍 편곡 어떠시냐고 물어봤다. 낌에 허해준 작곡가의 노하우를 배워 올 생각이었는데, 그걸 바로 알고 처음 보는 선배한테 막 빼먹으려 든다고 한 소리 들었다. 그래도 일단 작업실로 와보라고 하는 걸 보니 알려줄 생각 같다.

편곡은 그 허해준 작곡가가 해준다니 이보다 날로 먹는 경우가 없다.

“그럼 회의하고 있어, 내가 너희들 회사로 갈게.”

나는 말한 후 전화를 끊고 신이 나서 가방을 챙겼다.

대작곡가 노하우 빼먹으러 가야지. 히히.

* * *

전화를 끊고 나서 멤버들은 허해준 작곡가의 작업실로 우르르 몰려갔다. 안 그래도 멤버들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던 허해준 작곡가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물었다.

“들어봤니? 어때?”

안 할 생각도 없지만, 표정이 안 하면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다.

강진영이 대표로 말했다.

“이거 진짜로 저희가 해요?”

“해원 씨가 처음에 나한테 연락해서 물어보더라고. 중학생에게도 어울리고, 트라우마에 관한 내용이면서, 퍼포먼스까지 보여줄 수 있는 노래가 뭐가 있겠냐고. 그래서 나도 모르겠다고 했더니, 자기 곡을 가져왔네. 이거 어떠냐고.”

“아. 그렇구나. 그래서 이거 진짜로 저희가 해요?”

“할 거니까 나한테 데모를 보냈지! 벌써 A&R한테도 보냈는데?”

허해준 작곡가의 말에 멤버들이 그제야 마음껏 신나 하며 방방 뛰었다.

뉴데이즈 멤버들 모두, 이번 서바이벌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첫 주부터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본인들 자존심은 둘째 치고, 팬들이 스트레스받아 하는 게 보이니까 견디기 힘들었다. 한 무대라도 임팩트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뉴데이즈를 대표할 수 있는 것은 단연 퍼포먼스였다. 이 곡은 곡 자체가 뛰어난 데다, 뉴데이즈가 가진 강점까지도 보여줄 수 있는 곡이었다.

원래부터 투머치토커의 기질이 있는 허해준 작곡가는 정해원이 보낸 이 곡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지, 한참 동안 칭찬과 비판을 하다가 생색을 냈다.

“해원 씨가 아주 사람이 능구렁이더라고. 편곡 작업 보러 와도 되냐고 하는 걸 보니까. 이거 공짜 아니다? 나의 이 귀한 노하우를 내주면서 받는 거야. 이렇게 비싼 작곡비가 어디 있니.”

그리고 뉴데이즈 멤버들은 그 투머치토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는 기술을 연습생 때 익혔기 때문에, 번갈아 가며 ‘아’ 하고 한 번씩 리액션 하며 한 귀로 흘렸다.

이미 다섯 명의 머릿속은 동양풍 편곡에 맞는 퍼포먼스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다섯 명 중 맏형이자, 화술 좋은 강진영이 슬그머니 허해준 작곡가의 말을 끊었다.

“아, 진짜 세상에서 제일 비싼 작곡비네요. 어떤 부분을 가르쳐 줘야 되는 거예요?”

“말하는 거 들어보니까 아무것도 모르던데, 뭐. 일단 이런 식으로…….”

강진영의 계획대로 허해준 작곡가는 말을 멈추고, 가지고 있는 국악기 샘플을 찾기 시작했다. 찬찬히 샘플을 골라 몇 가지를 섞어 들려준 예시에 뉴데이즈 멤버들의 표정에 설렘이 가득했다.

멤버 중 하나인 황지훈이 중얼거렸다.

“여덟 명이 다 같이도 불렀으면 좋겠다…….”

나머지 멤버들도 동의했다. 아무래도 좋은 곡을 받고 나니, 나머지 멤버들 생각이 났다.

허해준 작곡가의 토크가 워낙 길었던 터라, 그 사이에 정해원이 회사에 도착했다. 작업실로 들어온 정해원은 뉴데이즈 멤버 다섯 명이 모여 있는 것에 흠칫 놀라고, 우선 허해준 작곡가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그으래, 노하우 빼먹으러 왔니.”

“네에.”

“아, 사람이 여우 같은 구석이 있어.”

허해준 작곡가는 그렇게 말했지만 표정에 자부심을 숨기지 못했다.

뉴데이즈 멤버들이 작업실을 나가며 정해원에게 한마디씩 했다.

“형, 저희 연습실 가서 안무 짜고 있을게요!”

“부르시면 5초 만에 올게요!”

“어어, 그래그래.”

정해원이 어이없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허해준 작곡가가 말도 안 했는데 자기 맘대로 슬쩍 의자 끌고 가서 옆에 들러붙었다.

“뭐부터 가르쳐 주실 거예요?”

“내가 언제 가르쳐 준댔어, 일단 와보라고 했지.”

“알았어요, 안 가르쳐 주셔도 되니까 천천히 작업하세요.”

“아우, 왜 이렇게 들러붙어.”

“저 원래 들러붙는 거 좋아해가지구요. 그리고 제 곡 욕도 좀 해주세요.”

자기 나이 절반도 한참 안 되는 작곡가 후배가 애교를 떨며 치대니까, 허해준 작곡가도 얼떨결에 정해원의 데모를 피드백해주고 있었다.

퍼스트라이트 나머지 멤버들은 절대 저렇게 처음 만난 사람에게 치대는 타입이 아니다 보니, 뉴데이즈 멤버들 눈에 더더욱 신기한 장면으로 보였다.

작업실을 나선 후, 막내인 곽준우가 핸드폰을 보며 말했다.

“효석이 형이 해원이 형 한 살 차이면 고등학생, 두 살 차이면 중학생, 세 살 차이면 초등학생 정도로 생각한대요. 형들, 할 말 있으면 저 통해서 해요. 유치원생이 말하면 잘 들어주실 거 같아요. 그리고 이상한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하면 친해졌다는 뜻이고, 싫다고 해도 그냥 부를 테니까 포기하고 받아들이래요.”

“맞아, 퍼라 형들은 다 애칭 있더라.”

“효석이도 퍼라 가더니 효식이 됐어.”

마찬가지로 한효석과 자주 연락하고 지내는 강진영도 잠시 핸드폰을 확인했다.

정해원 합류 전에는 활동 이야기를 거의 안 하더니, 요즘에는 연락만 하면 일 얘기였다. 특히 오늘은 자기들 곡 뺏겼다고 은근히 섭섭해하고 있었다.

강진영은 한효석이 은근슬쩍 자랑하는 걸 보다가, 비슷한 시기에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 동갑내기이자 작곡멤버 채유호에게 연락했다.

[우리 유닛 곡 가이드 네가 하겠다고 해]

강진영이 그렇게 보내자 채유호가 바로 알아듣고 그러겠다고 했다. 강진영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채유호의 곡을 타이틀로 하는 날도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곽준우가 강진영에게 말했다.

“형 전략 진짜 최고였어요.”

“그럼, 그럼. 늘 그렇듯이 오늘도 내가 맞아, 얘들아.”

강진영이 농담처럼 이야기하자 멤버들이 헤헤 웃었다. 그렇게 이야기하며 연습실로 돌아온 멤버들은 받아온 데모를 들으며 동양풍의 무대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했다.

* * *

허해준 작곡가는 역시 프로였고, 다행히 말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 편곡하는 걸 보고만 있어도 돈 주고도 못 배울 배움이 있었다.

나와 양이형은 똑같은 길도 굳이 어렵게 가는 성향이 강했는데, 허해준 작곡가는 반대였다. 어려운 길도 쉽게 가는 법을 알았다. 물론 양이형도 프로지만, 많은 가수들에게 곡을 주며, 긴 시간을 작곡가로 살아온 경력에서 쌓인 어마어마한 경험치를 따라갈 수는 없다.

이번에 뉴데이즈와 작업을 하게 된 건 전혀 예상한 상황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퍼스트라이트와만 작업하던 나에게 정말 좋은 경험이 되고 있었다.

마감이 촉박하다 보니 편곡이 되는 대로 마디를 끊어가며 바로 연습실의 멤버들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그 바쁜 와중에 뉴데이즈의 보컬 유닛 멤버, 채유호가 가이드를 하러 왔다.

“체력 괜찮아? 너희 거 하기도 바쁘잖아.”

내가 가이드 디렉팅을 하기 위해 자리에 앉으며 물어보니까 채유호가 대답했다.

“진영이가요, 형이 허해준 작곡가님이랑 곡 얘기 주고받고 하는 게 부러웠나 봐요. 저보고 가이드 하라고 하더라구요. 가서 배우라고.”

“아.”

“진영이, 언뜻 보면 사기꾼…… 실제로도 사기꾼은 맞는데요. 진짜 팀 생각밖에 안 해요.”

“알아. 그래 보이더라. 너도 그렇고, 뉴데이즈가 전체적으로.”

내 말에 채유호가 기분 좋게 웃었다.

퍼스트라이트가 개인기가 뛰어나고, 마이웨이 성향이 강한 팀이라면 뉴데이즈는 눈치 빠르고 원팀 성향이 강한 강진영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느낌이다. 앞으로도 더 라이징에 참가한 여섯 팀은 서로 가장 가까운 동료이자, 동시에 라이벌이 될 것이다. 뉴데이즈처럼 좋은 무대와 음악에 욕심이 있는 팀과 경쟁하면 무지하게 재미있을 것 같다.

가이드 녹음을 끝내고, 거의 바로 뉴데이즈 멤버들의 녹음 작업에 들어갔다. 아무래도 각자의 스케줄도 있다 보니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적은데, 뉴데이즈 회사 쪽에서 내 스케줄을 정말 많이 배려해 줬다.

녹음까지 다 마치고, 멤버들과 안무가가 짜놓은 안무를 익혔다. 만들기도 잘 만들고, 끝내주게 구사한다. 역시 퍼포먼스가 강점인 팀다웠다. 무대 구성도 근사하게 짜놨다. 여러모로 많이 배웠다.

일주일은 정말 낮잠 자고 일어난 것처럼 순식간에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게 착착 진행되는 동안, 이번에도 역시 나는 제목을 못 정하고 있다.

연습실 벽에 기대앉아 뉴데이즈와 우리 회사 A&R이 보내준 제목 후보를 보며 제목을 생각하는데, 뉴데이즈 멤버가 달려와서 물었다.

“형, 커피 드릴까요?”

“어, 응. 고마워.”

내가 대답하니까 바로 커피를 내리러 달려간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또 이렇게 애들이 잘해주니까 금방 거기에 적응했다. 나태해져서 TRV로 돌아가게 생겼다.

멤버가 가져다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는데 요 일주일 동안 많이 친해진 강진영이 옆에 와서 앉으며 말했다.

“아, 형. 커피 그만 마셔요.”

내가 강진영에게 말을 놓으라고 했는데, 내가 더 동생이라고 느낄수록 잘해주니까 경연이 끝나면 놓겠다고 했다. X나 맞는 말이다.

“안 죽어, 안 죽어.”

“에휴.”

우리 멤버들만 나한테 단명한다고 하는 줄 알았는데, 다른 회사 와도 마찬가지인 걸 보니까…… 엇, 나 진짜 단명하는 거 아닌가. 뭐, 할 수 없지.

나는 긍정적으로 단명을 받아들이며 커피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나저나 나는 여전히 이 곡을 트라우마에 관한 곡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듣는 모든 사람이 이 곡이 트라우마에 관한 곡이라는 것에 의심조차 않는다.

내가 강진영에게 물었다.

“근데, 이거 주제에 맞는 곡 같긴 해?”

내 말에 강진영이 날 잠깐 보더니 정면을 보며 대답했다.

“아뇨.”

“…….”

이 사기꾼이 대답하니까 신뢰가 안 가네.

“근데 그냥 하고 있어?”

내가 다시 묻자 강진영이 한숨 쉬고 대꾸했다.

“물어보시니까 할 수 없이 대답하는데…… 솔직히 형 내면의 반영이라고 생각해요. 완전 트라우마에 관한 곡이라고 생각하구요.”

“뭐야, 습관적으로 사기 친 거냐?”

“그게 아니라.”

강진영이 머뭇거리더니 대답했다.

“효석이가요, 형도 이걸 형 트라우마를 그대로 무대로 옮기는 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무대 못 올라가실까 봐 걱정하더라구요. 무대 공포증 심하시잖아요.”

우리 팀 멤버들은 저런 말을 절대 입 밖으로 안 꺼내지만, 강진영은 거리낌 없이 다 말하는 타입이다. 남의 회사 오니 참 여러 가지 낯선 상황 많이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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