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64화 (64/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64화

나는 A&R팀이 고른 제목 중 하나를 골랐다.

[흔적]

처음으로 내 곡에 대한 이해도가 다른 사람에 비해 떨어진다는 느낌이 확 든다.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서 그냥 무작정 두 회사의 A&R이 모두 1순위로 밀었던 제목을 골랐다. 그리고 두 회사의 대통합 단톡방에 전달했다.

[흔적으로 하려구요]

그러니까 A&R들이 다들 무지하게 좋아했다. 나만 고집부리지 않으면 되는 거였나 보다. 하, 내 곡인데…….

이번에는 두 회사의 A&R이 달라붙어서인지, 신곡을 준비하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별다른 문제 없이 준비가 마무리되었다. 물론 잠은 아무도 못 잤다. 나도 못 자고, 뉴데이즈 멤버들은 ‘형이 안 자는데 어떻게 자요ㅠㅠ’, ‘진영이 형한테 속아 넘어간 것뿐인데ㅠㅠ’라며 굳이 자기들도 연습실에 옹기종기 모여서 밤을 새웠다. 많이 이상한 애들이긴 한데, 이번 주 끝나면 같이 작업할 일 없다고 생각하니 그건 또 좀 섭섭하다. 정들었나 보다.

두 회사 A&R도 당연히 못 잤다. 그나마 내가 다른 회사와 작업하고 있어서 손 하나 덜었지, 나머지 4개 유닛으로 찢어져 있는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을 하나씩 신경 써주느라 비상이었다는 모양이다. 그나마 서바이벌 짬이 있는 멤버들이라 다행인 게 이 정도였다. 서바이벌은 관련된 6개의 소속사를 시끌벅적하게 만들고 있었다.

* * *

촬영일.

나는 뉴데이즈와 같은 대기실에 와서 의상을 받았다.

“해원 씨, 일단 이걸로 입어보세요.”

퍼스트라이트에 있을 때는 키가 큰 편이 아니었는데, 뉴데이즈에 오니 큰 편이 됐다. 먼저 입어본 옷이 약간 짧아서, 여분을 입었다.

한복 동정을 모티브로 한 칼라가 달려 있는 상의도 있고, 곤룡포를 모티브로 한 겉옷을 입은 멤버도 있었다.

어떤 옷이든 남루해 보이기 위해 일부러 찢고, 불에 일부분을 태우기도 했다. 내 옷은 검은색 도포였다. 이거 어쩐지 익숙한…….

“……저승사자?”

내 말에 스타일리스트가 멈칫했다.

“저승사자 옷이긴 한데…… 보기엔 안 그래요. 아, 이쁘다.”

다행히 갓 쓰고 스모키 메이크업을 하진 않아서, 저승사자 같진 않다.

그리고 더욱 저승사자처럼 안 보이기 위해, 머리에 어마어마한 양의 스프레이를 뿌렸다. 뉴데이즈 스타일리스트가 퍼스트라이트 스타일리스트에게 혹시 마지막 무대에서 내 머리를 깔 거냐고 물어보고 오더니, 아니라는 대답을 듣자마자 머리를 넘겼다.

“머릿결이 너무 좋으니까 고정이 안 되네.”

“제가 제일 자신 있는 게 두피…… 악.”

“아, 눈 감고 입 꼭 다물고 있으라니까요.”

샵 직원이 말하며 또 한 번 스프레이를 뿌렸다.

이렇게 스프레이를 뿌려도 되나, 싶을 정도로 뿌렸는데, 거울을 보니 딱 보기 좋게 고정됐다.

직원이 여전히 불안한지 내 머리의 고정상태를 확인하며 말했다.

“아, 센 메이크업하면 딱 좋았는데. 다음 주에 한다고 안 된대요.”

“저희 다음 주 무대가 무지하게 세거든요.”

지금까지는 안 세게 보이게 해달라고 징징거렸지만, 파이널은 주제 자체가 느와르로 정해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지금껏 나에게 시달리던 샵 직원들은 이미 ‘다음 주에 두고 보자’며 벼르고 있었다.

TRV 직원도, 퍼스트라이트 멤버들도 느와르 어떠냐는 말에 환호했다. 퍼스트라이트 스타일리스트 이예영은 벌써부터 가죽 장갑을 종류별로 보여주며 신나 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첫 번째 프러포즈+턱시도 컨셉을 시도했는지 미스터리다. 혹시 사장 취향이었나. 그 사장의 멋모름이라면 그럴 수 있지…….

준비를 끝내고, 우리는 리액션을 찍기 위해 미리 놓아둔 의자에 앉았다. 공연 순서는 완전히 랜덤. 우리는 마지막에 하게 됐다.

오늘은 연예인 패널이 상당히 많이 와 있었다. 화제성 면에서 자신감이 많이 붙었나 보다.

나는 패널들을 보다가 멈칫했다.

“어?”

관객석에 아이돌 그룹, 빅 블루의 이준희와 박민하가 와 있었다. 내가 긴장하니까 중딩인 곽준우가 옆에 쪼르르 와서 앉아 물었다.

“형, 왜요?”

“나 빅 블루 선배님들 보고 아이돌이 되겠다고 생각했거든.”

“진짜요? 형 빅 블루 선배님들 팬이에요?”

“응.”

와씨. 개쫄리네.

내가 쫄아 있으니까 곽준우가 말했다.

“형, 우리 무대 멋있어요! 용기를 내세요!”

“맞아, 우리 무대는 멋있지……. 준우야, 형 가사 까먹으면 어떡하지.”

“당연히 안 되죠!”

“아, 그치.”

맞지. 당연히 안 되지. 우문현답이다.

나는 곽준우와 낄낄거리다가 다시 대기실 모니터 화면을 봤다.

첫 번째 보컬 유닛에 들어간 황새벽이 무대에 올라가고 있었다. 안주원, 박선재와 갈려서 혼자 다른 유닛에 떨어졌다고 일주일 내내 외로워했다. 이 유닛이 부르는 곡은 사랑에 관한 노래였다. 옛사랑을 잊지 못해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옛사랑을 트라우마라고 본 것이다. 다들 공감할 해석이었다.

나는 황새벽에게 무슨 노래를 하든 무조건 도입부를 가져오라고 했는데, 다행히 성공했다.

“와, 새벽이 형 잘생겼다…….”

옆에서 뉴데이즈 어린이들이 감탄했다.

유닛이 찢어지니까, 오히려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의 개인 기량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황새벽이 가진, 다른 사람에게 없는 특유의 분위기는 다른 팀에 섞여 있어도 독보적이었다.

두 번째는 우리 멤버가 없는 랩 유닛, 그다음으로 이어진 댄스 유닛은 말할 것이 없이, 민지호와 한효석의 경쟁이었다. 팔이 안으로 굽어서가 아니라, 그냥 둘밖에 안 보였다. 멤버가 열두 명이라, 보여줄 수 있는 안무가 많았을 텐데 군무를 짜고 맞추기에는 시간이 촉박했던 것 같다. 시간의 일부분을 개인기를 보여주는 데 사용했다. 결과적으로는 민지호와 한효석에게 최적인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네 번째 유닛에는 박선재와 안주원. 각 팀의 보컬들이 함께 있으니, 박선재의 음색이 희한하게 튀었다.

“……와, 혼자 미세먼지 없이 살았나.”

강진영이 혼잣말하는 게 들렸다.

박선재의 목소리를 표현하는데 그것보다 좋은 게 없긴 하다. 혼자 미세먼지 안 먹은 것 같은 목소리.

나도 국선아 첫 촬영에서 박선재가 입을 열었을 때 충격을 기억한다. 웬 곰돌이같이 생긴 어린애가 들어오더니, 그런 목소리로 모든 사람을 집중시켰으니까.

그래서 더더욱 까다롭다. 황새벽은 어떤 곡도 자기 분위기로 끌어온다면, 반대로 박선재는 곡을 박선재의 보컬에 맞추든지, 박선재의 보컬이 음악에 묻어가게 하든지 해야 한다.

반면 안주원은 무대 내내 거의 존재감이 없는 듯했는데.

“와!”

마지막에 얼굴이 잡힐 때 모든 사람들이 소리치게 만들었다. 혹시 아직도 안주원이 얼굴만으로도 데뷔 조에 들어갔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직 안주원 얼굴을 제대로 못 본 사람일 거다.

그리고 우리는 다섯 번째 유닛이 무대를 하는 동안, 백스테이지로 향했다.

다섯 번째 유닛은 신지운 이야기를 들어보니 서로 거의 대화가 안 된다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무대 자체가 경연이자 랩배틀 같았다. 근데 그게 또 힙합 같고 은근 멋있었다.

곽준우가 나에게 말했다.

“지운이 형은 진짜 존재 자체가 사기예요.”

“근데 성격이 드러워.”

“에이.”

곽준우가 히히 웃었다. 무대가 어떻든 신지운이 사기캐긴 하다. 공연 절반을 무대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있는데 관객이 그쪽으로 확 주목하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우리가 무대에 올라가려 할 때.

순간 발이 바닥에 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어.

나는 내 몸이 내 정신으로 움직이지 않는 것에 약간 당황하며 멤버들에게 말했다.

“잠깐만, 먼저 올라가 있어.”

“네?”

멤버들이 돌아보니까 눈치 빠른 강진영이 문제가 생긴 걸 알고 멤버들 등을 떠밀어 무대로 밀었다.

몰랐는데 내가 은근히,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에게 의지했던 것 같다. 우리 멤버들 없이 갑자기 무대에 올라가려니 발이 떨어지지 않고, 손이 떨렸다.

다행히 신지운이 무대에서 내려오고 있어 빠르게 손짓했다.

“야. 나 좀 당겨줘.”

신지운이 내 쪽으로 오더니 물었다.

“왜 그래?”

“발이 안 떨어져. 내 몸 맞냐, 이거. 이해가 안 가네.”

신지운이 내 팔을 당겼다. 계단까지 어떻게든 올라서니까 이제 다리가 다시 움직인다.

“……이거 끝나면 진짜 쉬어야지.”

내가 혼잣말하니까 신지운이 핀잔했다.

“이미 늦었어. 쉬긴 뭘 쉬어. 콘서트 준비해야지.”

“야이씨.”

나는 욕을 좀 했지만, 덕분에 몸은 좀 풀렸다. 나는 제작진과 멤버들, 관객들에게 사과하고 무대에 올라갔다.

오늘따라 조명이 너무 뜨거워서 몸이 탈 것 같았다. 관객들의 시선이 갑자기 무대에 올라온 첫날처럼 서늘하게 느껴진다.

그때 강진영의 멘트로 오프닝이 시작되었다. 관객 호응을 끌어내는 걸 보니 난놈이다, 싶었다.

이어서 인트로가 시작되었다. 내 음악이다.

첫 마디부터 환호가 들렸다.

‘아, 잘 만들었구나.’

관객들을 보니, 분명 이 곡을 좋아하고 있었다.

조명이 더 이상 뜨겁지 않게 느껴졌다. 즐거웠다.

* * *

마지막 무대.

관객들은 심플하던 이전 무대와 달리, 갑자기 화려하게 변하는 세트장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러 회사에서 각출할 때는 서로 자존심 싸움을 했지만, 한 회사가 몰빵할 때는, 그것도 그 회사가 엔터계의 대기업일 때는 말이 달랐다.

화려한 전통문양, 사방의 스크린에는 창호지에 대숲 그림자가 일렁거렸다.

그런데 잠시 무대가 지연되었다. 곽준우가 시간도 때울 겸 곡 설명을 했다.

“나쁜 마법사가 왕의 기억을 뺏고 노비로 만들었어요. 그러다 왕이 기억을 되찾았는데 하나도 안 기쁜 거예요. 왕의 권력도 위엄도 잃고, 지금 현실은 여전히 노비인 거잖아요. 그런 노래예요.”

그렇게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고 있을 때, 한발 늦게 정해원이 무대로 올라왔다.

“죄송합니다.”

그리 오래 기다린 것도 아닌데, 정해원은 관객이 미안하게 느껴질 정도로 고개를 여러 번 숙여 인사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곡이 시작되기 전에 강진영이 다시 분위기를 띄우려 말했다.

“이 형이 작곡했어요. 일주일 내내 하나도 안 자더라구요.”

“야, 그럼 죽지, 사람이.”

정해원의 시크한 대꾸에 관객들 사이에 잔잔한 웃음이 흘렀다.

그리고 무대가 시작된 후, 국악기 소리가 들리며 곤룡포를 입은 강진영이 무대 앞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부채를 펴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내가 옛 성터를 지나는데, 길가던 이가 이렇게 묻더라구?”

그리고 조용히 하자 강진영이 몸을 숙이며 물었다.

“안 궁금하세요?”

그 말에 관객이 웃었다. 강진영이 말했다.

“처음부터 다시 할 테니까, ‘뭐라고?’ 하고 말해주세요. 자.”

강진영이 부채를 접었다가 다시 펴며 말했다.

“내가 옛 성터를 지나는데, 길가던 이가 이렇게 묻더라구?”

“뭐라고?”

그러자 강진영이 만족하더니 몸을 일으켜 무대 앞을 걸어 다니며 말했다.

“그 길던 역사의 흔적이라고는 기둥만 남았으니 무상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내가 대답했지.”

그리고 다시 해달라고 손짓하니 관객들이 웃으며 다시 ‘뭐라고?’ 하고 말했다. 강진영이 말했다.

“수백 년이 지나도 흔적이 남았으니 여전히 위대한 게 아니냐고. 나의 말에 나그네가 웃네. 왕께서 만족하신다니 다행이라며. 나그네가 떠나고 수면 위의 나를 보니, 그 기둥이 나이더란 말이야.”

마지막 멘트와 인트로가 섞이고, 무대도 시작되었다.

[물 위에 떠 오른 기둥은 기억의 조각]

[저 흔적이 어찌 위대하지 아니한지]

[나는 그렇게 감탄하며 나를 외면했었나]

[이 작은 방이 나의 행복이었을 때, 망각은 신의 선물]

[기억의 조각이 달빛처럼 반짝이던 강]

[물그림자에 감탄하던 때가 좋았었는데]

[돌아온 기억 속에서 보이는 것은 결국 잃어버린 것들뿐]

[손안에 모인 조각이 기억을 되돌려]

[돌아온 기억에 깃든 건 슬픔뿐인데]

[무엇을 잃었는지 모른다면 행복할 수 있지 않소]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기억이라오]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은 나의 작은 방]

허해준 작곡가가 작정하고 편곡한 빠르고 호쾌한 음악, 날렵하고 거침없는 퍼포먼스.

무대를 보고 있는 현장의 사람들, 그리고 무대 위의 여섯 명은 예감했다.

유닛 무대 1위는 확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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