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66화
황새벽의 말에 옆에서 이예영 스타일리스트가 대신 대답했다.
“해원이 얘 센 스타일링 시키는 거 얼마나 힘든지 알지?”
“알죠.”
그래서 내가 억울한 마음으로 끼어들었다.
“저 그래도 시키면 다 하잖아요.”
“어, 안 한다고는 안 하지. 근데 눈 좀 세게 그리려고 하면 무슨 장화 신은 고양이 눈으로 보고 있는데 진행이 돼?”
그 말에 옆에서 샵 직원들이 한마디씩 보탰다.
“거봐, 지가 불리하면 애교 떤다니까.”
“아, 참 억울하네.”
나는 투덜투덜거리고 한참 거울을 볼까, 고민하다가 그냥 그만두기로 했다.
나머지 멤버들의 상태를 보니까 내 상태도 짐작이 간다. 평소보다 아이 메이크업 시간이 오래 걸렸고, 검은색 가죽 재킷까지 합쳐졌으니 딱 봐도 쎄하다. 꼴 보기 싫겠다.
그나저나 오늘 퍼스트라이트는 거의 무슨 크롬하츠 전시장 같았다. 나도 반지 하나와 피어싱을 받았다. 연습생 때 뚫었는데 너무 오랜만에 하니까 거의 막혀 있었다.
“그냥 힘으로 빡 뚫어버리면 안 돼요?”
내가 애먹고 있는 직원에게 말하니까 옆에서 신지운이 핀잔했다.
“아니, 형. 남의 몸에 그게 쉽겠니?”
“그럼 네가 해줘.”
“한 번에?”
“어.”
“원래 위치 아니어도 나 몰라.”
“알았다고.”
신지운이 오더니 피어싱을 한 번에 확 눌러서 귀에서 으득 소리가 났다. 소름 끼치는 소리에 비해서는 원래 위치에 맞게 들어간 것 같다.
“이거 맞아? 봐봐.”
말하며 신지운이 무심코 거울을 내밀었는데, 내가 내 얼굴이 보이자마자 욕을 하며 거울을 쳤다. 거울에 잠깐 보인 얼굴이 도무지 무대에서 보여줘도 될 얼굴이 아니었다. 더럽게 쎄하고, 기분 나쁜 얼굴이었다.
건네던 거울은 바닥에 떨어져 깨지고, 그 직후에, 나는 바로 시선으로 카메라를 찾았다. 다행히 카메라도, 제작진도 없었다. 그리고 한발 늦게 상황을 살폈다. 당연히 분위기가 싸해져 있었다.
어오, 씨. 얼마나 미친놈으로 보일까. 지가 이 컨셉의 곡을 만들어 놓고 그걸 감당 못 해서 이러고 있는 게.
내 스스로가 한심해서 한숨을 쉬는데, 신지운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말했다.
“뭐 소독 같은 거 안 해도 되나?”
“네가 잘 끼웠으면 안 해도 되겠지.”
“그니까 그게 의심이 돼서 그러지.”
그 말에 민지호가 와서 내 귀를 뒤에서 확인했다.
“이거 맞는 거 같은데? 일단 안 삐뚤어졌어.”
“그래? 다행이네.”
신지운과 민지호가 태연하니까, 분위기가 빠르게 원래대로 돌아왔다. 나는 거울을 치우려고 앉았다가 직원들에게 밀려났다.
“해원이 저리 가.”
“제가 깼으니까 제가 치울게요.”
내가 쪼그려 앉아서 말하니까 신지운이 옆에 와서 앉으며 말했다.
“미안해, 거울 안 본다는 거 잠깐 잊어버렸어. 사실 내가 깬 거지.”
“맞아, 네가 깬 거야.”
“아오, 둘 다 방해되니까 가, 좀!”
좋은 거울인지 조각이 사방으로 튀어 나가진 않아서 다행히 금방 수습이 됐다.
그 이후에도 멤버들은 무대에 올라가기 전까지 여느 때에 비해 시끌시끌하게 떠들었다. 거기 있는 직원들도 분위기를 바꾸려고 그런다는 걸 알고, 함께 평소보다 분주하게 행동했다. 불편하긴 하지만 고마우니까, 나도 그냥 최대한 평소처럼 웃고 떠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대에 올라갈 시간. 무대로 가려고 엘리베이터에 멤버들만 남았을 때, 박선재가 나에게 말했다.
“형 오늘 얼굴 괜찮은데 왜 그르냐.”
그 말에 멤버들도 나도 좀 웃었다. 그리고 농담조로 물었다.
“진짜 괜찮아?”
“응! 나도 형처럼 생기고 싶어.”
“에이.”
“진짜야.”
그래도 막냉이밖에 없다. 빈말이라고 해도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나도 참 단순하다. 허허.
그렇게 올라간 무대 세트는 근사했다. 3차 미션에서 아낀 돈을 여기다 다 쏟아부어 버린 것 같다. KQS에서 준 기본 예산의 최소 열 배는 TRV가 쓴 것 같았다.
오늘 이 파이널 무대를 그만큼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고, 동시에, 그만큼 ‘더 라이징’이 상승 분위기라는 것이다.
퍼스트라이트의 멤버들은 모두 그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인생 마지막 무대처럼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무대가 끝나고 나서, 나는 관객들의 표정을 봤다.
관객들의 표정은 내 생각과 달리, 나를 반짝반짝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내 걱정만큼 인상이 나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진짜 다행이다. 진짜로, 정말로 많이 다행이다.
나는 그런 반짝반짝한 눈을 마주 보며 웃었다. 관객들이 나를 웃는 얼굴로 기억해 주기만 기도하면서.
무대가 끝나고 우리는 서로 짜기라도 한 것처럼 대기실 바닥에 매트를 깔고 드러누웠다. 그리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한참이 지나 안주원이 입을 열었다.
“해원아.”
“응?”
“너 평생 살면서, 이거보다 더 좋은 곡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안주원의 말에 내가 어이없어 웃었다.
“어.”
“……좋겠다.”
안주원의 그 대답에 멤버들이 터져서 낄낄거렸다. 나도 흐흐 웃음이 났다.
* * *
뉴데이즈의 프로듀서, 허해준 작곡가는 이 파이널 미션 사전 녹화 장소에 와 있었다.
앞에 세 무대도 모두 왔었는데, 매번 분위기가 확확 달라지는 게 보였다. 방송의 상승세가 관객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것이었다.
정해원이 만든 두 곡 중에 한 곡이 뉴데이즈에게, 다른 한 곡이 퍼스트라이트에게 갔다는 걸 알고 있었다.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이 회의를 통해 선택한 곡, ‘마태오’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다.
뉴데이즈 역시 신곡을 들고나왔다. 지난번 3차 미션에서 느낀 바가 있는지, 원래도 열심히 하던 멤버들이 누구 하나 코피 쏟을 때까지 무대에 매달렸다.
여기 책임 PD 우혜정이 대학 동기였다. 허해준 작곡가가 우혜정 PD가 건네준 커피를 받으며 말했다.
“이야, 너는 무슨 복이 있어서 애들이 저렇게 알아서 열심히 하냐.”
“내 능력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운이 좋긴 해.”
우혜정 PD가 말하며 자기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퍼스트라이트 무대 보러 왔지?”
“리허설 어땠어?”
“찢었어.”
우혜정 PD의 말에 허해준 작곡가가 흐흐 웃었다. 음악방송 PD 출신이다 보니, 예능 촬영하고 있을 때에 비해 무대 촬영하고 있을 때 자기 옷을 찾아 입은 것처럼 편안해 보였다. 우혜정 PD가 말을 이었다.
“첫 주에 망삘이었을 때는 사방에서 쪼고 난리였거든? 여기 분위기 진짜 암전이었는데, 좀 아까 국장님 만났는데 나보고 마냥 해맑게 웃으시더라?”
“시청률이 인격이여.”
“내 말이 그 말이여.”
모처럼 만나도 마음 편한 동기와 서로 낄낄거리고 있다 보니 무대가 시작되었다.
우혜정 PD가 인사하고 떠난 후, 허해준 작곡가는 무대를 보았다. 무대가 끝난 이후, 우혜정 PD가 돌아오자, 허해준 작곡가가 물었다.
“혜정아. 내가 04년생 보면서 라이벌 의식 생기면 너무 좀스럽지?”
그 말에 우혜정 PD가 아마 오늘 다섯 번째쯤 되는 커피를 마시며 대꾸했다.
“애들 보고 라이벌 의식 가져야지, 윗대는 이제 슬슬 은퇴하고, 우리 나이대는 이미 전성기인데.”
“그치. 그것도 맞지.”
“애한테 말하지는 말고. 애 놀래.”
“04년생이면…… 우리 한 세 번째 사랑에만 성공했어도 그거보단 나이 많은 애 있겠다.”
그 말에 우혜정 PD가 깔깔거리며 웃고는 대답했다.
“저런 애들 하나씩 태어나 주는 게 얼마나 고마워.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가 한 번씩 정신이 번쩍 들잖아.”
“그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야. 아, 멘탈만 잘 버티면 무조건 될 놈인데.”
그 말에 우혜정 PD도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사전 녹화 당일 저녁. 3차 미션 두 번째 회차가 방송되었다.
여섯 개의 유닛이 순서대로 지나가고, 마지막 무대. 뉴데이즈의 연습실에서 쉬는 동안 물을 마시던 정해원이 말했다.
“그만들 좀 쳐다봐. 나 무대 공포증 있다니까.”
“죄송해요!”
[거의 유치원 분위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이 기껏해야 한두 살 차이 나는데 왜 이렇게 선생님이랑 애들 같냐ㅋㅋㅋㅋ]
멤버들이 너무 쳐다봐서 몸을 일으키던 정해원이 뒤를 쫄래쫄래 따라오는 멤버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작업실 갈 건데. 갈 거야?”
“아!”
그제야 멤버들이 떨어졌다. 정해원은 어이없어하며 허해준 작곡가의 작업실로 향했다.
모든 작업을 마무리한 곡을 들어보고 나서, 허해준 작곡가가 물었다.
“그런데 왜 하필 동양풍 편곡을 하고 싶다고 한 거야? 나한테 기술 빼먹으려고!”
“아니, 그것도 있…… 있는 게 아니라.”
[그것도 있구나ㅋㅋㅋㅋㅋㅋㅋ]
[있었어ㅋㅋㅋㅋㅋㅋㅋㅋ]
“이 곡 화자가 서러운 건데요. 그냥 한국 민요 중에 그런 거 많잖아요.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고. 말은 저주 퍼붓는 것 같은데, 곡은 슬픈 것도 같고, 그냥 하는 말 같기도 하고. 그런 모호함이 좋아요.”
“진짜 까다로운 걸 바란다, 너도. 그니까 서러우면서 경쾌한 편곡을 해달라는 거 아냐.”
“그쵸.”
“아주 차라리 따듯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달라고 해라.”
“아, 바랄 만한 사람이니까 바라죠. 다 하실 수 있잖아요.”
“어휴, 이형이가 고생이 많겠다.”
“그거 이형이 형이 들으면 진짜 좋아할걸요. 자기 고생 알아주는 사람 있다고.”
그리고 이어서 허해준 작곡가의 인터뷰가 나왔다.
“같이 작업하면서 느낀 제일 큰 게, 이건 칭찬이 아니고 욕하는 건데. 제가 회사에 소속된 프로듀서니까 작업실 앞으로 사람들이 계속 들락거리거든요? 그러면 얘가 매번 일어나서 인사를 하는 거예요.”
“그게 욕이에요?”
제작진이 묻자 허해준 작곡가가 말을 이었다.
“욕이에요. 내가 작업하고 있는 사람한테 인사 바라는 사람 이 회사에 없다고 했는데, 누가 자기 싫어하는 게 싫대요. 그래도 음악 하는 사람은 음악이 더 중요해야지, 했더니.”
허해준 작곡가가 헛기침하고 말을 이었다.
“자기는 사랑받고 싶어서 음악을 하는 거라데요? 별로 음악을 안 좋아하는 건지도 모른다고. 세상에 그런 거짓말이 어디 있어요. 그러니까 이거는, 거짓말쟁이가 부르는 곡이에요.”
허해준 작곡가의 인터뷰가 끝나고, 3차 미션 마지막 무대. ‘흔적’이 이어졌다.
뉴데이즈 강진영의 전략이 어떤 결과를 낼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으로 실시간 톡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X나 극찬하네]
[곡이 그만큼 좋지 않으면 팍 식을 것 같은데]
그리고 강진영의 짧은 극으로 무대가 시작되었다.
[물 위에 떠 오른 기둥은 기억의 조각]
안무는 멤버들이 앉아 있는 바닥 스크린에 물결이 치며 시작되었다. 관객들을 향한 무대인 동시에 촬영을 위한 무대이기도 했기 때문에, 위에 보이는 카메라가 고개를 젖힌, 도입부를 부르는 멤버의 표정을 찍고 있었다.
이어서 물 위에 일렁이는 물그림자를 여러 멤버의 몸을 사용해 표현한 안무가 이어졌다. 뉴데이즈는 기본적으로 회사에서 무용을 가르쳤으므로, 멤버들은 유연하고 가벼운 안무를 능숙하게 소화했다.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기억이라오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은 나의 작은 방]
마지막 가사를 끝으로 멤버들이 동작을 멈추고, 무대 위에 격자로 불이 들어왔다. 여섯 명의 유닛 멤버들은 격자 안에 서 있는 상태로 무대가 끝났다.
그리고 동시에 실시간 톡이 따라갈 수 없는 속도로 터져 나왔다.
[워씨 나도 모르게 숨 참았다]
[뭐지 예술을 해버리네]
[ㅅㅂ 허해준 X나 침착한 사람이었네 이 곡을 받고 그 정도 반응이었으면]
[↳내 말이요ㅋㅋㅋㅋㅋㅋㅋㅋ]
[↳저였으면 곡 받자마자 미친X 됏을듯ㅎㅎㅎ]
[유닛 무대에서 이런 완성도는 제작진도 기대 안 했을텐데ㄷㄷㄷ]
[나머지 유닛 무대도 쌩판 남 모아놓고 만든 거치고 꽤 잘 만들었는데 이 유닛이랑은 비교가 안 되네요]
[강진영 전략이 싹 다 조져놨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새끼가 진짜 난놈임]
[↳유닛인데 유닛이 아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이 전략이 진짜 된다고……?]
[↳와일드카드가 경기를 지배함]
[↳강진영도 이 정도 곡 받을 줄 몰라서 순간 얼었자너ㅋㅋㅋㅋㅋ]
[근데 이거 트라우마 관련된 곡이라고 생각하고 들으니까 어…….]
그리고 이미 이전부터 정해원의 국선아 이후 2년에 궁금증을 가지던 퍼스트라이트 팬들의 추리가 이어졌다.
[해원이 2년 동안 애들이랑 연락 안 했다고 했잖아. 그리고 학교도 안 다녔고, 연습생도 아니었는데]
[↳응……. 나도 계속 이거 생각함]
[↳다들 이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무래도 정황상 맞는 것 같아]
[해원이, 그냥 자기 방에만 있었나 봐. 국선아 끝나고 2년 동안]
[↳하, 씨X 돌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