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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67화 (67/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67화

사녹이 끝나고, 더 라이징 마지막 생방송까지 남은 일주일 동안 나는 할 일이 많았다.

이번 경연에서 나는 많은 것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중에서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곡을 ‘잘’ 만들었다는 말은 종종 들었는데, ‘좋다’는 말을 별로 못 들었다는 것이다.

트랙별로 쪼개서 들려줄 때는 이 트랙 ‘좋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곡 전체를 들을 때는 ‘잘’ 만들었다는 칭찬으로 바뀌곤 했다.

“대중성 문젠가?”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작곡 룰렛이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뭘 얻기보다는, 지금의 내 상태를 진단하고 싶었다.

막막한 마음으로 작업실 창밖을 내다보니 그사이에 단풍이 물들었다. 더 라이징을 촬영하느라, 날씨 변하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창밖으로 보이는 단풍 사진을 찍어서 가족 단톡방에 올렸다.

[예쁘지?]

[엄마♥ : 아 단풍 참 예쁘다]

[아빠♥ : 우리 집 앞도 단풍 고운데. 쉬는 날 안 주니?]

[누나 : 아이돌이 쉬는 날이 어디 있어. 벌 때 바짝 땡겨]

[누나는 무슨 예술가가 이렇게 낭만이 없냐?]

[누나 : 돈이 낭만이야]

[돈이 왜 낭만이야. 아니야.]

[누나 : 아니라는 사람 최근에 처음 봐. 낭만적이네]

[누나 : 뭐야 갑자기 눈물이 난다…….]

[아니, 이 누나가 왜 이래?]

그리고 나서는 부모님이 읽고도 답이 없었다. 분명 부모님 잔소리 타이밍이었는데, 그대로 대화가 끝나버렸다.

그걸 의아해하고 있는데 30분쯤 지나서 매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처남!

“네, 매형.”

-베이비 있어!

“……응?”

-조카!

“조카요?”

-조! 카! 허니, 조카 있어!

“알아들었으니까, 캄 다운 좀 하세요.”

나는 침착한 척 말했지만 손이 달달 떨리고 있었다. 잠시 후 누나가 전화를 뺏었다.

-들었어? 잘 설명했어?

“응. 근데 매형 조카 발음 좀 조심하라고 해줘.”

내 말에 누나가 깔깔거리고 웃었다. 나도 같이 실실 웃음이 나와서 작업실 의자에 기대앉아 말했다.

“진짜야?”

-응. 지금 확인해 보니까 진짜네.

“우와…….”

나는 달력을 보며 말을 이었다.

“언제 태어나? 보러 가야 되는데.”

-글쎄, 나도 모르겠네. 내년 7월, 8월쯤인가?

“그때쯤 시간 나면 좋겠다. 영국 가게.”

-날 리가 있어? 안 나는 게 더 좋아. 아무튼 엄마, 아빠는 얼마나 기대하고 있었으면 눈물 난다는 톡 하나에 임신이라고 물어봐. 여태 손주 얘기 안 꺼낸 게 기적이다.

“꾹 참았나 봐.”

-어후, 토니(앤서니의 애칭) 운다. 끊는다?

“응. 아, 건강 잘 챙겨.”

-너나 챙겨, 너나.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웃음은 나는데 실감이 안 났다.

그렇게 끊고, 잠시 후에 다시 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괜히 철렁해서 물었다.

“왜?”

-말하는 거 까먹었어. 야, ‘흔적’ 노래 좋더라?

“……그래?”

-어. 개좋아. 근데 토니가 너무 많이 봐서 약간 질렸어. 찐 햇살이야.

누나는 그렇게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전화를 끊고도 흐흐 웃었다.

그렇게 전화를 하고 나니까 컨디션이 확 올라왔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조카 덕에 벌써 힐링이다. 이래서 효도는 애기 때 다 하는 거란 말이 있나 보다.

컨디션이 회복되니, 오늘 밥 먹는 걸 잊어버린 게 생각나서 단톡방을 열었다.

[나 작업실에서 야식 먹을 건데 회사인 사람?]

[민조 : 형 나 연습실! 나 치킨!!!!!!!!!!!!!!!!!]

[안쭈 : 나 이형이 형 작업실인데 회사로 갈게]

[회사에 셋밖에 없어? 치킨 종류별로 먹고 싶은데]

[안쭈 : 안 적어. 지호가 3인분 먹잖아]

[민조 : 고럼고럼♥]

하긴. 맞는 말이다.

나는 작업실 소파에 누워서 치킨을 종류별로 주문했다. 그런데 어제부터 연락이 끊어졌던 사람들에게서 자꾸 연락이 오고 있었다.

[해원아 나 혹시 기억해? 갑자기 생각나서…….]

[오랜만이야!]

[요즘 어떻게 지내?]

“뭐지…….”

나는 이걸 언제 다 답하나 막막해하며 일단 음식부터 시켰다.

그리고 양이형이 보낸 콘서트용 편곡 음원을 들으며 상의할 부분을 메모하는 사이 민지호와 안주원이 음식을 들고 들어왔다. 안주원이 테이블에 음식을 꺼내놓으며 말했다.

“이형이 형이 인트로 편곡 진짜 좋아하더라.”

“좋지? 나도 마음에 들어.”

“나 아직 못 들었는데? 들려줘!”

민지호가 재촉해서 나는 인트로를 틀었다.

콘서트의 시작.

오랜 시간 기다린 팬들을 위한 첫 번째 음악.

퍼스트라이트 정규 1집의 첫 번째 트랙, 첫 번째 프러포즈를 편곡한 인트로와 첫 번째 무대인 ‘불을 켜’로 넘어가도록 연결한 편곡이었다.

민지호가 음원을 켜자마자 흥분해서 말했다.

“아, 빨리 무대 올라가고 싶어서 미치겠다. 일단 치킨 먹고 정신 차려야지.”

안주원이 금방 펄쩍 뛰어오르기라도 할 것 같은 민지호를 달래 앉혔다. 그리고 나에게 물었다.

“너 연달아 세 곡 버틸 수 있어? 운동 전혀 안 하잖아.”

“이제 해야지.”

“진짜 해야 돼.”

“응, 이제 진짜 콘서트에만 집중할 거니까.”

더 라이징 마지막 방송 후, 콘서트 공지가 나갈 예정이었다. 콘서트 자체가 워낙 늦게 결정되어서, 장소 대관에 상당히 고생을 한 모양이었다. 콘서트에 오고 싶은 팬들은 다 올 수 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멤버들과 밥을 먹는데도 핸드폰이 계속 울렸다. 나는 핸드폰을 들며 말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연락이 많이 와?”

내 말에 민지호도 안주원도 힐끔 날 봤다. 그러더니 민지호가 말했다.

“형 어제 방송 안 봤지?”

“응. 왜? 문제 생겼어?”

나는 심장이 철렁해서 물었고, 민지호가 얼른 대답했다.

“아니, 나쁜 거 아니고. 좋은 일……. 아, 형 성격이면 좋은 일이라고도 생각 안 할 것 같긴 한데.”

“왜. 뭔데.”

내가 재촉하자 안주원이 말했다.

“어제 3차 미션 무대 했잖아. 흔적 가사 보고 햇살이들이 너 2년 동안…… 뭐 했는지 추측하더라고.”

“어? 어…….”

“작은 방이라는 가사 보고. 네가 학교도 안 다니고, 연습생 생활도 그만뒀다니까. 그럼 계속 방에 있었다는 이야기인가 해서.”

아니, 그게 그렇게 연결되나…….

나는 난처한 기분이 들었다. 의도한 게 아니다 보니,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좀 더 생각해 보니, 그게 내가 의도한 게 아닐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직 작곡가로서 초짜이고, 미숙하다. 그러므로 곡을 만들 때 나를 숨기는 방법을 잘 모른다. 나는 내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만들었더라도, 듣는 사람들에게는 곡 뒤에 서 있는 내가 보이고 마는 것이다.

“어우, 갑자기 체…….”

할 것 같다고 말을 끝내기도 전에 민지호가 자기 주머니에서 소화제를 꺼냈다.

“안 그래도 이 얘기 하면 형 체할 것 같다고 주원이 형이 그래서 소화제 샀어.”

“고마워. 진짜 필요하다.”

크, 섬세한 놈.

나는 물약과 알약을 약사가 포장에 표기해 둔 대로 번갈아 먹었다.

안주원이 더 이상 식사를 못 하는 나에게 쓸데없이 미안해했다.

“식사 끝나고 말하려고 했는데. 미안.”

“소화제까지 준비해 줬는데 뭐가 미안해.”

나는 말하고 의자 뒤로 기댔다.

“그래서 반응이 어때?”

내가 묻자 두 사람이 마주 보고 눈빛을 교환하더니, 민지호가 입을 열었다.

“솔직히?”

“응.”

“거의 신세계야, 반응이.”

* * *

전날 퍼스트라이트 팬들 사이에서 짜 맞춘 추리는 다음 날 바로 연예 기사로 이어졌다.

[국선아, 악편의 ‘흔적’]

그리고 각종 커뮤니티에도 관련 글이 올라왔다.

[아이돌 서바이벌 악편 후유증을 가사로 쓴 아이돌]

[↳이거 지금 해외도 난리더라 이블 에디팅이라고]

[↳진짜로 2년 동안 방에서 못 나온 거야?]

[↳정황상 거의…….]

[↳나 국선아 안 봤는데 그 정도로 악플이 쎘어?]

[↳↳그 정도로 쎘어…….]

[↳↳악플이 시청률 견인할 정도였으니까 말 다 했지]

[지금 퍼라팬들 반응 어때?]

[↳중계 바라지 말고 직접 가서 봐. 안 그래도 분위기 안 좋은데]

[↳↳안 그래도 C조 때부터 정해원 별로 안 좋아했는데 중간 합류까지 해서…….]

[↳↳↳미성년자라 욕은 자제해도 배척하긴 했으니까]

[↳↳↳↳X발 악플은 범죄여도 멤버 영입 배척한 거까진 솔직히 뭐라고 못하겠다…… 팬덤 분위기 이래저래 X같겠네]

[퍼라 더 라이징으로 상승 분위기였는데 안 됐다ㅠㅠㅠㅠ]

[↳? 뭐가 안 돼?]

[↳뭐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냥 무시해]

[근데 그래서 국선아 편집이 재미있었던 건 사실이지]

[↳어그로 X나 붙네]

[↳퍼라가 슬슬 잘나가긴 하나 보다ㅎㅎ]

[정해원 아직도 스무 살이면 국선아 때 몇 살이야?]

[↳열여덟…….]

[↳↳열여덟 살짜리가 뭐 사람 죽인 것도 아닌데 악플을 그렇게 달았다고?]

[↳↳↳오히려 어려서 더 욕 먹지 않았을까 소속사도 듣보고 만만해 보이니까ㅎㅎ]

[↳↳↳진짜 사람을 죽였어도 이렇게 욕 안 먹어]

[↳↳↳국선아 때 분위기 약간 광기였음]

[난 아직도 표정 초단위로 캡쳐해서 분석한 거 생각나 진짜 사람 하나 싸패 만드는 거 쉽더라]

[↳근데 정해원 원래 팬들도 있지 않았어?]

[↳↳그렇게 욕하는데 한줌 팬이 어떻게 버텨 다 숨었지…….]

* * *

나는 X버스를 켜고, 멤버들과 둘러앉아 있었다.

“아, 뭐라고 쓰지.”

퍼스트라이트 팬덤 분위기가 어떤지 짐작이 안 간다. 멤버들도 TYT 분위기가 무지하게 안 좋다는 말은 신나서 전달해도, 우리 팬덤 분위기는 한마디로 설명해 주지 못했다.

퍼스트라이트는 어차피 뜰 팀인데, 내가 합류하지 말았어야 했나.

그런 생각을 잠깐 했지만, 빨리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이런 말 했다가는 진짜 멤버들한테 얻어맞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민지호가 말했다.

“그냥 사랑한다고 해!”

“너무 눈치 없어 보이지 않냐.”

“아니?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나 정답이야.”

그 말에 멤버들이 민지호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곧, 우리 중 누군가가 저 말을 한다면 그건 민지호일 거라는 생각에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해원 : 햇살이들! 사랑]

거기까지 쓰고 잠깐 더 망설였다.

[사랑해요]

[사랑]

썼다가, 지웠다가.

몇 번을 하다가 결국 그냥 솔직하게, 제일 하고 싶은 말을 쓰기로 했다.

2년 내내, 그냥 하고 싶었던 말은 어차피 이게 다였다. 그만 미워하고 사랑해 주세요.

퍼스트라이트에 합류한 이상, 내가 그 말을 하고 싶은 대상은 퍼스트라이트의 팬들로 한정되었다.

이 사람들만 날 안 미워하면 된다. 퍼스트라이트의 음악을 듣고, 무대를 보러 오는 사람들만.

* * *

시끌시끌한 외부 분위기에 비해, 퍼스트라이트 팬덤은 조용했다.

퍼스트라이트 6인 지지자이자 정해원을 제외한 C조의 팬이었던 @minjojo_의 타임라인 역시 얼어있었다.

대부분이 정규 1집 활동 즈음부터 7명의 퍼스트라이트를 받아들였지만, 마음으로는 여전히 불편함이 남아 있었다.

그러다 3차 미션 후. 소속사도 퍼스트라이트 멤버들도 조용했기 때문에, 팬들은 2년 동안 정해원이 제 방에서 나오지 못한 것이 사실임을 은연중에 알아차렸다.

아직 더 라이징 파이널 생방송 무대가 남아 있었다. 이 생방송에 화력을 지원해야 하는데, 으쌰으쌰할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해원아 미안해]

그런 글이 산발적으로 올라왔다.

그때 X버스 알림이 울려, @minjojo_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어?”

정해원이었다. 급하게 X버스를 켜보니, 정해원이 모처럼 올린 글이 있었다.

[해원 : 햇살이들! 마지막 무대 정말 정말 멋있을 거예요. 많이 많이 사랑해 주세요. 그리고 저도 사랑해 주세요. 많이!]

이모티콘이 잔뜩 들어간 글이었다.

그리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다른 멤버에 비해 느린 속도로 댓글이 달렸다. 반면에 여태까지 본 적 없는 속도로 응원봉 숫자가 늘어났다.

@minjojo_는 아마 다른 팬들도 자신처럼 쓸 말을 고민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해원이 곡이니까 당연히 좋을 듯ㅠㅠ 많이 많이 사랑해, 해원아!]

그렇게 경쾌한 투로 댓글을 쓰고 다시 진이 빠졌다. @minjojo_는 늘어져 있다가, TYT 공식 유튜브로 들어갔다.

새벽에도 끊임없이 댓글이 달리고 있던 2023 TYT 뮤직어워드 홍보 영상은 댓글을 막아놓은 후였다. 댓글들은 대부분 박경석 PD의 해고를 요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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