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68화 (68/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68화

아, 고민이다, 고민.

나는 결국 일어나서 룸메이트인 신지운을 깨웠다.

“지운아. 야, 지운아. 일어나 봐. 큰일 났어.”

“왜?”

잠들었던 신지운이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내가 말했다.

“아까 X버스에 올린 거 있잖아. 그거 수정되나?”

“……큰일 났다며?”

“너 깨울라고.”

“미쳤나, 진짜.”

신지운이 중얼거리며 다시 이불을 뒤집어쓰고 돌아누워 버렸다. 나는 포기하지 않고 핸드폰 플래시를 켠 후 신지운을 흔들었다.

“햇살이들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안 썼어. 지금이라도 쓸까? 더 별론가? 어떻게 생각해.”

나보다 8개월 늦게 태어난 죄로 신지운은 욕을 삼키며 일어났다. 나는 눈으로 욕하는 신지운에게 X버스를 보여주며 말했다.

“아니, 아까 전에. 민조가 사랑한다고 쓰라고 했잖아? 근데 반대로 날 사랑해 달라고 썼잖아. 아까는 다른 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누워서 생각해 보니까 완전히 다른 뜻인 거야.”

“……형, 딱 한 번만 욕하면 안 돼?”

“안 되지.”

“야자타임 5초만. 5초 안에 하고 싶은 욕 깔끔하게 끝낼게.”

“응, 안 돼. 다시 자고 싶으면 내 상담을 들어줘.”

“하, X발…….”

“나한테 욕했냐?”

“그럴 리가요.”

신지운이 짜증스럽게 말하며 핸드폰을 받았다. 그리고 X버스를 보더니 물었다.

“댓글 안 읽어봤지?”

“어.”

“그러니까 이딴 것도 고민이라고 날 깨웠구나. 돌아버리겠네.”

“이딴 거라니.”

“그냥 자.”

신지운이 핸드폰을 돌려주고 이불을 다시 뒤집어썼다.

“이 새끼는 형한테 성의가 없어.”

나는 투덜거렸지만, 깨운 게 미안하긴 해서 핸드폰 불빛 없이 다시 자도록 거실로 나왔다.

소파에 앉아서 옷이 전부 나와 있는 거실을 보니 슬슬 이사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애초에 내가 처음 합류할 때부터 방이 하나 더 필요했었다.

앞으로도 여기 계속 있을 테니, 더 큰 숙소를 구해 달라고 사장한테 닦달해 봐야겠다. 히히.

내가 생각하며 방으로 돌아가려는데 불빛 때문에 깼는지 박선재가 나왔다.

“이 형 또 이러네.”

박선재가 잠결에 웅얼거리더니 날 방 쪽으로 떠밀었다. 그러더니 눈도 다 못 뜬 얼굴로 나를 눕히고 이불을 목까지 덮어준다.

일단 눕긴 했는데, 영 이상했다.

“막냉아, 뭐 하니.”

내가 그제야 물어보니까 박선재가 눈이 둥그레져서 물었다.

“응? 깨 있었어?”

“……당연히 깨 있었지?”

“글쿠만. 잘 자.”

박선재가 적당히 말하더니 방을 나갔다.

어이가 없어서 잠이 더 안 온다.

* * *

VMC 본사, TYT가 자리한 8층에는 냉랭한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박경석 PD는 지난번 조작 건에서 그랬듯이 이번에도 자신을 꼬리 자르듯 정리한 후 회복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국선아 조작 문제가 터지지 않았다면 뒤에서 잡아줬을 인맥도 그때 갈려 나가 잡을 줄이 없었다.

결국 모든 자극적인 편집이 회사의 이득을 위해서였다. 시청률을 내라고 압박할 때는 언제고, 문제가 생기니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이다. 이럴 때 회사가 보호해 주지는 못할망정 최대한 빨리 정리해 버리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는 것에 박경석 PD는 기함했다.

‘이런 식으로는 못 끝내지.’

책임을 다 뒤집어쓰고 나갈 수는 없었다. 생계도 문제지만, 이건 본인의 명예와도 관련된 일이었다. 이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진다는 건 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VMC가 퍼스트라이트 관련 여론에 좀 더 신경 쓰게 된 건, VMC에서 퍼스트라이트에 자체 소속사에 남아 있는 2명의 데뷔 조 멤버들과 엮어서 활용하고 싶어 하는 욕심이 있기 때문이었다. 퍼스트라이트가 상승세를 보이며, 그 계획은 더욱 뚜렷해졌다.

‘그러고 보니 또 한 명은 뭘 하나?’

데뷔 조 9명 중에 퍼스트라이트 멤버 여섯 명을 제외한 세 명, 그중에 두 명은 활동을 하거나 재데뷔를 준비 중이지만 나머지 한 명은 아예 행방을 알 수 없었다. 뮤직어워드 제작진이 어떻게 연락을 하고 있다는데, 정확한 진행 상황은 알 수 없었다.

나머지 두 명은 점수 조작이 있었지만, 그 한 명은 사실, 완벽히 조작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했다. 책임 PD가 그 멤버의 소속사 사장과 은밀한 회동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시리즈 시작부터 그 멤버의 분량이 압도적이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결과를 조작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정해원의 계약 과정이었다. 여론을 뭉개는 일에 ‘피해자가 완전무결하지 않다’는 사실도 없었다. 박경석 PD는 좋은 건수를 찾고 있었다.

TYT 뮤직 콘텐츠 본부, 김주철 본부장은 아무래도 여러 가지 운이 발동해 낙하산을 타고 자리에 앉아 있다 보니 뭔가 성과를 내서 자리를 굳혀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건수가 있다면, 일단은 들어볼 사람이었다.

동종업계에서 보기에, TRV가 정해원과 계약한 것은 ‘어그로를 끌기 위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엔터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해원의 급작스러운 합류가 퍼스트라이트라는 이름을 나쁜 쪽으로라도 알리려는 수단이었으리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박경석 PD는 인맥이란 인맥은 전부 동원해 TRV와 정해원이 계약한 과정에 알아내려고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다행히 기자 인맥을 통해 정해원의 계약 기간에 대한 정보가 들어왔다.

6개월짜리 계약서.

올해 연말까지니 재계약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지금 분위기를 보아하니 조기 재계약을 하고도 남을 상승세였다. TRV에서는 최대한 조용히 숨기다가, 재계약이 완료된 후에 보도하려는 게 분명했다. 재계약 전에 그 사실이 알려진다면 팬들도 묘한 감정이 들 테니까.

6개월짜리 계약서를 쓴 이유야 정확히 모르지만, 살은 붙이게 마련이었다.

‘이거 먹힐 수도 있겠는데.’

박경석 PD는 본부장실 앞에 서서 생각했다.

* * *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나는 숙소 소파에 앉아서 X버스를 켰다.

“응?”

댓글이 1만+였다. 이런 숫자는 처음 봤다.

뭔가 문제가 있나, 철렁하며 댓글을 눌렀는데.

“……어. 외국어다.”

번역하기를 눌러보니 대부분 응원 댓글이었다.

[악마 편집에 지지 마]

[열여섯 살에게 한 그 행동은 처벌이 필요합니다]

국선아 때 만으로 열여섯 살이었으니까, 열여섯 살이라고 적혀 있는데 내가 인지하는 나이가 다르니까 뭔가 이상하게 느껴진다.

한국어 댓글도 마찬가지로 좋은 댓글들뿐이다. 살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이렇게 많이 들어본 건 처음이었다.

나는 모처럼 댓글을 하나씩, 천천히 꼼꼼하게 읽었다.

[해원아 잘 잤어? 오늘 너무 추우니까 따듯하게 입어. 패딩도 괜찮아!]

[아침 먹었어? 끼니 거르면 안 돼!]

[평생 네 편이 되어줄게]

[우리 믿어 해원아!]

우리 믿어.

네 편이 되어줄게.

기분 되게 이상하다.

나는 댓글을 읽다가 실수로 피드 쪽을 눌렀는데, 그쪽은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해원이한테 미안하다고 좀 하지 마세요 그냥도 힘든 애한테]

[그냥 짜져 있는 게 도와주는 건데ㅎㅎ]

[기존 팬들 국선아 때부터 멘탈 많이 갈린 팬들이에요. 더 라이징 유입 햇살이들한테 이런 소리 들을 이유가 없음]

[그니까요 해원이가 뭐라고 하면 모를까 지들이 왜ㅎㅎ]

기존 퍼스트라이트 팬들은 국선아 C조를 기반으로 하지만, 더 라이징 이후에 팬들이 유입되면서 좀 혼란스러운 분위기였다.

“음.”

좀 더 경력이 쌓이면 이럴 때 중재할 방법을 알게 될까.

선배 아이돌이 있으면 상의라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TRV에 선배들이랑 좀 친해지면 좋은데, 다들 퍼스트라이트가 TRV에서 연습생 생활을 한 게 아니다 보니 후배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대부분 활동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니라 회사에서 거의 마주친 적 자체가 거의 없었다.

내가 유일하게 모든 걸 다 얘기할 수 있는 가수 선배인 박희영은 트로트 가수이다 보니, 팬덤을 대하는 방식이 우리와 완전히 다르다.

내가 댓글을 보고 있으니 두 번째로 일어난 안주원이 거실로 나왔다. 안주원이 힐끔 내 핸드폰을 보며 물었다.

“웬일로 댓글을 정독해?”

“햇살이들이 싸워. 속상해.”

그 말에 안주원이 흐흐 웃으며 말했다.

“그 말 그대로 올리면 안 싸우실 텐데.”

“음……. 그럴 순 없지.”

“그치. 좀 웃기지.”

나는 안주원과 이야기를 하다가 어제 일이 생각나 물었다.

“아, 주원아. 근데 나 몽유병 있냐?”

“왜?”

“아니, 밤에 돌아다니는데 막냉이가 또 이런다고 해서.”

“아……. 몽유병까진 아닌데. 며칠 전에 우리 거실에서 야식 먹을 때. 너 잔다고 들어갔다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베란다에 웅크려서 다시 자더라구.”

“어? 야, 소름 끼치는데.”

“어, 진짜 무서웠어. 아무튼 그때 한 번?”

“말을 하지.”

“별일도 아닌데 뭐.”

그렇게 얘기하긴 하는데, 내가 어제 큰일 났다고 말하자마자 신지운이 과하게 놀라서 깬 이유는 알겠다. 나는 목 스트레칭을 하며 말했다.

“피곤해서 그런가.”

“운동을 해야 된다니까. 일찍 일어난 김에 운동하러 가자.”

“아, 내일부터.”

“해원아.”

안주원이 진지하고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너 이렇게 운동 안 하다가 어느 날 효석이한테 끌려간다? 내가 그랬거든.”

“……어우.”

“영원히 그런 일 없게 하려고…….”

어쩐지 어느 날부터인가 안주원이 알아서 운동을 열심히 하더라. 한효석한테 안 걸리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안 봐도 예상이 된다. 형, 이 정도는 할 수 있어요. 지면 안 돼요. 하겠다는 마음을 먹으면 다 해요. 라고 하면서 근육을 쥐어짰겠지……. 발레를 오래 해서 기본 지구력에 대한 개념이 우리와 다르다.

나는 완전히 설득돼서 할 수 없이 안주원이 가는 헬스장에 따라갔다.

그리고 안주원의 말이 맞았다. 운동을 시작하지 않았으면 콘서트 중간에 뒤질 뻔했다. 허허.

운동은 내 모든 고민의 해결책이었다. 땀을 쫙 빼고 나오니까, 내 고민이 별것 아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결국 해결책은 우리가 무대를 잘하는 것이다. 나도 좋아하는 아이돌이 있으니 안다. 좋은 무대를 보고 나면, 무대 이야기하기도 바빠서 싸울 시간이 안 생긴다는 걸.

그리고 나는 더 라이징 파이널에서, 우리가 그런 무대를 했다고 자신한다.

* * *

더 라이징 마지막 회가 높은 화제성 속에서 시작되었다.

TRV 직원들은 한곳에 모여,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마지막 회차를 보고 있었다.

이번 무대는 지금까지 퍼스트라이트가 선보인 어떤 무대보다도 중요했다. 아이돌에게 있어서, 화제성으로든 무엇으로든 유입된 팬들의 마음을 굳히는 가장 결정적인 것은 무대였다.

지금 퍼스트라이트 팬덤의 분위기는 결코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때, 팬들의 관심을 한 번에 돌려버릴 수 있는 것 역시, 무대였다.

화제의 중심이어서인지, 파이널 회차에서 정해원의 리액션이 상당히 많이 잡혔다. 직원 하나가 중얼거렸다.

“해원 씨는 표정이 은근 많네.”

표정에서 다른 팀의 무대를 즐기고 있다는 것이 그대로 보였다. 더없이 냉랭한 얼굴로 계속해서 눈을 빛내며 무대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파이널 미션 두 번째 무대.

검은 화면에 화려한 타이포그래피로 ‘Matthaios’라고 뜬 후, 한글로 다시 ‘마태오’라고 떴다. 그리고 신지운이 성당에서 찍은 VCR과 함께, 박선재가 허밍으로 쌓아 만든 아카펠라가 들렸다.

이 인트로에서 이미, 옆에 띄워둔 모니터 화면의 실시간 반응이 폭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1절 벌스가 시작되었다.

[꽃이 피어나듯이 순결한 사랑의 춤]

[천사가 전하듯한 목소리가 당신이 아닐 때]

[내가 약속한 사랑은 무엇이었나]

거기서 잠시 무대가 멈추고, 정해원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마태오라는 신실한 남자가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죄를 저지른 후, 신에게 용서를 구하는 노래예요. 죄가 아니라, 신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 자체를요.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신지운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제가 성당에 가는 게 아이러니해서 만들었대요.

-네, 너무 안 어울리잖아요. 이미지가.

그렇게 말하며 낄낄거리는 모습에 직원 하나가 옆자리 동료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천재 같아 보이지? 팔이 안으로 굽어서 그래?”

“나도 안으로 굽는데 어떻게 알아.”

“아, 하긴.”

그리고 다시 무대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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