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69화 (69/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69화

[선재 목소리 성스럽다ㅠㅠㅠㅠ]

[이거지 이 목소리는 이렇게 써야지!!!!!!!!]

[VCR 뭐야 지운이 정장에 가죽장갑 끼고 성호…….]

[↳죽고 싶다]

[↳마태오 본인…….]

VCR이 끝나고 조명을 최소한으로 사용한 어두운 무대가 나타났다. 가벽과 가벽 사이의 문이 열리며 황새벽이 대인원의 댄서들을 이끌고 느린 걸음으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두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며 1절 벌스가 시작되었다.

-천사가 전하듯한 목소리가 당신이 아닐 때 내가 약속한 사랑은 무엇이었나

[연출 뭐야]

[ㅅㅂ소름…….]

[황새벽 분위기 진짜 보물이다]

이어서 맞은편으로 화면이 이동했다. 정해원이 지금까지 한 적 없던 짙은 아이 메이크업을 하고, 한 손에 가죽장갑, 다른 손에 크롬하츠 반지를 끼고 있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줄 수 있었던, 나의 행복한 순간은 거기 있어도.

[와 정해원 파트에서 숨 못 쉼]

[헤메코 뭐야?????? 얼굴 이래도 돼?]

[하 극락]

[원래도 냉한데 더 냉하게 해놓으니까 진짜 사람 안 같다]

[쟤가 데뷔 조에 못 들었다고……? 저렇게 생긴 애가 저 춤선인데……?]

[↳ㅋㅋㅋㅋㅋ그냥 정해원이 데뷔 조에 못 든 것만 봐도 악편이 어느 정돈지 알겠다]

[↳↳근데 안 웃고 있으면 다 X나 하찮아 할 것 같은 얼굴이긴 해]

그리고 프리코러스와 후렴으로 이어졌다.

-되돌릴 수 없어 용서를 구하지도 않아

-마태오, 마태오

-지금까지 알던 모든 것들이 거짓으로 보일 때

-사랑한단 나의 어린 맹세가 무의미한 거짓말로 물들어

[연출 진짜 돌았다 개천재들]

[일곱 명 다 국선아 때보다 엄청 컸네]

[콩나물이여 뭐여…….]

[노래 X나 좋아 미치겠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팀이 곡을 잘 받네]

[↳이거 작곡멤이 만들었어요]

-나의 믿음보다 소중한 것이 보일 때, 그 마음 하나만 이해를 구할 수 있기를

민지호가 엔딩 파트를 부르며 가벽 사이를 이동하자 댄서들로 둘러싸인 의자 여섯 개에 멤버들이 앉아 있었다. 민지호가 센터에 놓인 빈 의자에 앉으며 무대가 종료되었다.

* * *

무대가 방송되는 내내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은 실시간 반응을 계속해서 확인하고 있었다.

정해원은 무대가 시작하는 순간부터 두 손을 깍지껴서 모으고 화면만 노려보고 있었다.

곡을 최초공개할 때마다 매번 엄청난 압박감을 느낀다는 것을 아는 멤버들은 조금이라도 빨리 곡에 대한 반응을 정리해 알려주기 위해 노력했다.

박선재가 입을 못 다물고 말했다.

“해원이 형, 이런 반응 처음 봐.”

“그래?”

그렇게 사납게 노려보다가 막내가 말하자마자 바로 누그러진 표정으로 그쪽을 보았다. 박선재가 핸드폰을 들고 가서 옆에 앉으며 말했다.

“다 욕이…… 아니, 그니까. 너무 좋아서 욕이 나온대.”

반응이 좋다고 하니 그제야 안도했다. 정해원은 그 후에도 멤버들에게 이것저것 전해 듣고서야 완전히 긴장이 풀려서 흐흐 웃었다. 그리고 무심코 주머니에서 담배를 찾다가 손을 뺐다. 저 습관은 쉽게 안 고쳐지는 모양이었다.

여섯 팀의 무대가 모두 끝나고, 참가자들이 전부 무대로 올라갔다. 서바이벌이기는 해도 앞으로 오래 볼 직장 동료였기 때문에, 더 라이징 촬영 기간 동안 서로 부쩍 가까워졌다. 참가자들이 서로 악수와 포옹을 하며 인사했다.

뉴데이즈 멤버들도 우르르 정해원에게 몰려와서 인사를 건넸다. ‘흔적’ 조회 수 자랑과 함께 팬들이 얼마나 좋아했는지, 그리고 서바이벌 후에도 연락받아 달라고 재잘재잘 떠들다가 스태프들이 자리로 돌아가라고 부탁한 후에야 자리로 돌아갔다. 몇몇 팀의 멤버들은 마태오, 마태오를 반복하는 부분이 중독적이었는지 무심코 부르다가 흠칫 놀라 했다.

마지막으로 MC들이 최종 순위를 발표할 시간이었다.

MC 강윤석이 말했다.

“3차 미션까지의 합산 점수 50, 파이널 미션 관객 점수 20, 생방송 문자 투표와 글로벌 투표 20, 그리고 특별 심사 위원의 점수 10이 합쳐진 최종 우승 발표하겠습니다.”

특별 심사 위원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던 여섯 팀의 멤버들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대기실에 숨어 있던 특별 심사 위원들의 영상이 무대 스크린에 떴다.

대한민국 최고의 기타리스트이자 프로듀서, 심한철. 아이돌 그룹 빅 블루의 멤버 이준희. 마지막으로 대중가요 역사상 최고의 보컬리스트를 뽑을 때 결코 빠지지 않는 강여은이었다.

세 사람이 번갈아 가며 여섯 팀에 대해 애정 어린 심사평을 내놓았다. 그리고 퍼스트라이트의 차례에서, 강여은이 말했다.

-무대를 보니 그냥 웃음만 나오더라구요. 아, 좋네, 라는 말만 했어요. 나랑 데뷔년도가 딱 40년 차이나던데. 그렇다고 평가가 필요한가. 그냥 근사한 동료 가수가 생겼구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선배 가수로서 할 수 있는 극찬이었다.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은 방금 전까지의 컨셉과 모순되게, 대선배의 극찬에 안절부절못하며 여러 번 고개를 꾸벅꾸벅 숙였다.

모든 심사평이 끝나고, MC 이희세는 거의 뜸 들이지 않고, 우승자를 발표했다.

“더 라이징, 최종 우승팀은…… 퍼스트라이트입니다.”

* * *

[민조 : 해원이 형이 우리 무대 멋있을 거래찌!!!!!!!!!!!!!!!!]

민지호는 방송이 종료되자마자 무대에서 찍은 단체 사진과 함께 X버스에 글을 올렸다. 다행히 팬들은 이번 무대를 정말로 좋아했고, 냉랭하던 분위기가 잠시나마 풀렸다.

우승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우승이 그렇게 의미 있는 서바이벌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문제없이, ‘잘’ 끝났다는 사실에 희열이 느껴졌다.

우리와 최종 순위를 다투던 Bad one의 멤버들이 와서 같이 축하해 주고 날 일으켜 줬다. 그리고 뉴데이즈의 어린이들이 달려들어 날 와락 껴안고 자기 일처럼 기뻐해 줬다. 고마운 일이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멤버들은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웬일로 야식도 안 먹고 바로 방으로 들어가 잠들어버렸다.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다.

나도 마찬가지로 일찍 잤다. 다음날 은근히 중요한 이벤트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른 새벽에 신지운을 제외한 멤버들이 전부 일어났다.

어차피 한 줄로 찍고 나오겠지만, 오늘 수능을 보는 신지운을 위해 멤버들이 모여서 수능 도시락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우리는 며칠 전부터 신지운 없는 단톡방에서 몰래 메뉴를 상의했다. 소고기뭇국과 유부초밥을 메인으로 햄이나 달걀말이 같은 반찬을 만들기로 했다.

좁은 주방에서 조심스럽지만 북적북적 요리를 하는 동안, 요리와 매우 거리가 먼 내가 촬영을 맡았다.

나는 그 와중에 샐러드를 만드는 한효석을 찍으며 말했다.

“샐러드 해?”

“다른 멤버들이 너무 고기만 먹이잖아요.”

“너 있어서 우리 수명 10년씩은 늘겠다.”

한효석은 꾸준히 우리에게 풀을 먹였다. 배달 음식 시킬 때도 샐러드를 같이 시킨다. 한효석이 없었으면 진짜 우리 식습관은 개판이었을 것 같다.

오늘 메인요리사는 먹는 걸 좋아하는 만큼, 요리에 조금씩 관심을 보이는 황새벽, 손재주 좋은 안주원은 옆에서 유튜브를 보며 화려한 달걀말이를 만들고 있었다.

“정해원, 먹어봐.”

황새벽이 소고기뭇국을 떠줘서 간을 보러 갔다.

“……어, 왜 맛있지?”

“간 어때.”

“완전 좋아. 뭐야, 왜 잘해? 유부초밥도 먹어도 돼?”

“어, 먹으라고 많이 했어. 얘들아, 유부초밥 집어 먹으면서 해.”

민지호와 박선재 둘이 함께 햄을 굽는 사이에, 황새벽은 소고기뭇국과 크래미를 올린 유부초밥을 동시에 완성했다.

“새부기가 왜 이렇게 빨라?”

나는 음식에 대한 욕망이 만든 황새벽의 스피드를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일단 영상에 먼저 담고 난 유부초밥을 집어 먹어봤더니 이것도 맛있었다. 안주원의 달걀말이는 신기하고 예뻤고, 햄은 그냥 햄이었다.

샐러드+과일까지 3층 도시락에 국까지 딱 보온통에 담았을 때 신지운이 일어났다. 도시락을 배달시키려고 했는지 배달 어플을 보며 나오던 신지운이 우리 쪽을 보았다.

“내 거야?”

“일단 와서 먹어.”

황새벽의 말에 신지운이 얼떨결에 와서 밥을 먹었다. 곧 교복을 챙겨 입고, 도시락통을 든 신지운이 말했다.

“우리 부모님은 나 수능인 것도 모르는데.”

“아이돌이 수능 볼 거라고 생각 못 하셨겠지. 빨리 가.”

내가 말하며 떠밀자 신지운이 도시락통을 소중하게 껴안고 숙소를 나갔다.

새벽부터 도시락을 만들었더니 여섯 명이 다 지쳐서 자리에 늘어졌다. 우리는 거실 여기저기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어제 올라온 마태오의 영상 댓글을 보고 있었다.

나도 거실 소파에 앉아서 X버스를 켰다. 다른 곳의 글은 읽기 힘들어도 X버스는 팬들이 대부분인 데다가, 어느 정도 자체적으로 분위기를 잡는 느낌이 있어 읽을 때 마음이 편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나를 공격하지 않을 거라는 어떤 확신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었다.

정말로 ‘마태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센 컨셉 세팅을 한 멤버들을 보며 누구 묻으러 가냐고 묻긴 했고, 그게 약간 진심이긴 했지만……. 아무튼 진짜 얼굴 하나는 기깔나는 놈들이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흥분한 햇살이들의 반응을 보며 히히 웃다가 내 이름을 보고 잠깐 멈칫했다.

[하 정해원 이혼하자]

왜 이혼을 하지……?

나는 고민하다가 답 댓글을 적기 시작했다.

[이혼 안 하면 안 돼요?]

……너무 구질구질한가?

올리지 말까. 근데 왜 이혼이 하고 싶지…….

고민하다가 그냥 댓글 다는 걸 포기하고 다음 댓글을 읽었다.

[해원아 내가 잘못했어…… 아이돌 그만두지 마 제발]

[다른 데 가지 마ㅠㅠㅠㅠ 햇살이랑 평생 가야 돼ㅠㅠㅠㅠ]

응……? 안 그만둘 건데……?

갑자기 이런 내용이 계속 올라와서 의아해하고 있을 때, 민지호가 ‘어?’ 하더니 핸드폰을 들고 일어났다.

그러곤 옆에 있던 안주원에게 핸드폰을 보여줬다.

“왜?”

내가 물었는데 둘 다 나에게 대답을 안 했다. 대신 나머지 멤버들에게 핸드폰을 돌아가며 보여주고, 그 멤버들도 자기 핸드폰을 확인했다.

“야, 뭔데.”

내가 또 소외되는 건 무지하게 싫어해서, 얼른 가까이 있던 한효석의 핸드폰을 뺏어 들었다.

[정해원, 2023년 계약 만료…… 퍼스트라이트 다시 6인 체제로]

[자체 제작 아이돌의 홀로서기 임박, 정해원, FA 시장으로]

“어?”

나는 어이가 없어서 다른 기사를 확인했다.

[정해원, 터미널 엔터와 조율 중…… 아이돌 한계 벗어나 ‘진정한 아티스트’로]

아주, 햇살이들 싫어할 소리만 골라서 적혀 있었다.

“개소리를 정성껏 하네.”

나는 한효석에게 핸드폰을 돌려줬다. 그러자 황새벽이 물었다.

“그럼 6개월 계약 안 했어?”

“아니, 그건 맞는데.”

“너 반년 짜리 계약을 하고 우리한테 말을 안 했어?”

“그냥 조용히 재계약하고 말하려고 했지. 그럼 너희랑 나랑 시작점이 다른데 똑같이 계약하냐?”

재계약을 하게 되면 기사가 안 날 수가 없으리란 건 예상했다. 그게 재계약 전에 기사가 터지고, 그것도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날 줄은 몰랐지만.

그나저나 한 명이 삐지는 건 어떻게 해보겠는데, 여기 있는 다섯 명이 동시에 화내고 있으니까 감당이 안 된다. 그나마 하나는 수능 보러 가서 다행이다.

“그리고 저거 개소리 맞아. 이제 와서 무슨 6인 체제야. 이제 바로 재계약할 거야. 콘서트 전에는 조율 끝낼 생각이었어. 어디서 저렇게 헛소문이 낫는지 모르겠는데…….”

분위기가 너무 안 좋아서 혼자 주절주절 변명하고 있는데 박선재가 물었다.

“그게 헛소린 건 우리도 알아. 근데 팬들 분위기 계속 안 좋았으면 재계약 안 하고 그냥 나갔을 거 아냐.”

“아니…….”

“참 우리 되게 신경 써주네?”

막냉이가…… 우리 막냉이가 비꼰다…….

나한텐 늘 애교쟁이던 박선재가 저렇게 말하니까 타격이 컸다. 내가 말을 못 하고 있으니까 안주원이 중재했다.

“정해원이 말했겠어? 회사가 제시했겠지. 회사에 따지자.”

그렇게는 말하는데, 평소에 ‘해원아’라고 부르던 안주원이 성을 붙이는 걸 보니 쟤도 나한테 빡쳤다.

감정이 얼굴에 다 드러나는 민지호는 아예 등을 돌리고 돌아앉아 있었다.

어휴, 생각보다 더 화를 내네.

“아니, 도대체 누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기사로 내는 거야.”

나는 괜히 쫄려서 소심하게 중얼중얼거리며 방으로 들어가 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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