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70화
TRV는 기사가 뜨자마자 발칵 뒤집힌 상태였다.
TRV의 사장 박희택은 초조하게 TF팀의 연락을 기다리며, 나름으로 아는 기자들에게 번갈아 전화를 돌리는 중이었다.
5개월 전과 지금은 계약하는 입장이 달랐다. 그때 정해원은 부정적인 이미지만 남아 있는 상태였으나, 지금은 온갖 색깔이 덧입혀지는 중이었다.
본인이 가진 끼를 다 빼도, 스무 살짜리 예리한 감을 가진 프로듀서였다.
정해원의 계약이 끝났다는 걸 알면 다른 소속사에서 정해원과 컨택할 이유가 너무도 충분했다.
애초에, 개인보다 그룹이 시너지를 낸다는 것도 요즘 완벽히 들어맞는 말은 아니었다. 음원 차트로 한정하자면 남자 아이돌은 그룹보다 개인이 오히려 나을 때마저 있었다.
정해원은 개인 화제성도 높고, 작곡가로서도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했다. 물론 여전히 부정적인 이미지에 반쯤 가려진 상태지만 요즘 분위기로 봐서 쇄신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이미 오늘 기사의 반응만 봐도, 분위기가 TRV가 예상하던 것 이상으로 뒤집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정해원의 6개월 계약 단신이 나왔을 때부터 회사로 팬들의 전화와 메일이 쏟아졌다.
빨리 답을 주지 않으면 팬덤이 가만히 있지 않을 분위기였다. 특히 더 라이징 이후에 체감이 될 정도로 유입된 팬덤은 애초부터 정해원의 능력치를 퍼스트라이트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겼다.
“아니, 왜 하필 터미널 엔터냐.”
터미널 엔터는 VMC가 닥치는 대로 소속사를 집어삼키며 체급을 늘리기도 전부터 절반 이상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국선아와 더 써틴에 가장 많은 연습생을 꽂아 넣은 소속사이기도 했다.
이렇게 기사가 터졌는데, 터미널 엔터가 아무 상관 없진 않으리라 생각해 계속 연락을 돌려보니 가까운 기자에게 짧은 연락이 왔다.
[TYT 뮤직 콘텐츠 본부, 김주철 본부장이 터미널 엔터랑 정해원 씨 계약시키고 싶어 한대요]
VMC에 적대 중인 정해원이 VMC 산하로 간다면…… 지금 국선아로 욕먹는 분위기가 확 뒤집히기는 하겠다.
그때 박희택 사장의 직통으로 정해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박희택 사장이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어, 철아.”
-……무슨 일이에요?
“무슨 일?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저한테 물어보시면 어떡해요.
“회사가 다른 건 다 해줘도 계약은 네 일인데 네가 알아야지.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아냐.”
-그런가.
정해원이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회사에서 낸 기사 아니에요?
‘우리가 미쳤다고 네놈 몸값 올라갈 언플을 하니…….’
라는 말을 꾹 삼키며 박희택 사장이 정해원을 떠봤다.
“너 정말 뭐 아는 거 없어? 연락받은 것도?”
-없어요.
순진한 척하는 건지, 진짜 순진한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연예계에서 아무도 믿지 말라는 말은 연예인이 소속사를 볼 때도 그렇지만, 소속사가 연예인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회사 입장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계약을 픽스하고 싶지만, 회사가 너무 안달하는 모습을 보여 좋을 것이 없으니 일단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었다.
정해원이 이런 식으로 자기 몸값을 올릴 만큼 능숙한 어른인가, 하면 그건 절대 아니었다. 작업실에 처박혀 있는 걸 가장 좋아하는 데다 인맥도 협소하기 짝이 없었다.
“더 시끄러워지기 전에 빨리 계약서에 도장 찍자.”
-진짜요?
정해원의 목소리에 달가워하는 것이 느껴졌다. 박희택 사장이 물었다.
“지금 숙소지? 일단 회사로 와.”
-네. 곧 갈게요.
“그래그래. 금방 보자.”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바로 매니지먼트팀으로 전화했다. 박희택 사장이 인맥으로 사장 자리에 꽂힌 이후 가장 긴박한 상황이었다.
* * *
“뭔 놈의 회사가 아는 게 없어. 도움이 안 되네.”
나는 전화를 끊고 투덜거렸다.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아무튼 계약을 대하는 회사의 태도가 영 지지부진해서 내심 쫄려 하는 중이었는데, 급하게 계약을 하려는 걸 보니 오히려 기사가 터져서 나에게 좋은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멘탈은 갈리지만 내 멘탈은 어차피 뭘 해도 갈릴 연약한 친구니까, 뭐…….
무대에만 설 수 있으면 돈은 나에게 그리 중요한 가치가 아니다.
내가 회사에 내민 조건은 하나였다. 계약 기간을 나머지 멤버들과 맞춰달라는 조건.
회사 입장에서는 그게 굉장히 부담스러운 조건이었던 것 같다. 일단 퍼스트라이트는 특수한 상황의 데뷔라 계약 기간 자체가 짧았다. 그나마도 활동을 일 년 넘게 했으니, 남은 계약 기간은 더 짧다. 회사에서는 반년 전과 달리, 일단 나라도 길게 잡아놓고 싶은지, 긴 계약 기간을 제시했다.
오늘 가면 내가 바라는 계약서가 놓여 있으면 좋겠다.
나는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밖을 살폈다.
내가 이렇게 저놈들 눈치를 봐야 하는 게 억울하다. 귀찮아서 말을 안 한 것도 아니고, 팀 분위기 생각했을 때 말해서 좋을 게 없다고 회사랑 다 협의해서 그런 건데…….
하고 말을 했다가 진짜 주먹 날아올 수도 있을 것 같으니까 일단은 냅다 미안하다고 할 계획이 있다.
그렇게 거실로 나가보니 다행히 안주원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머지는 어디 갔어?”
“연습실.”
“아. 부지런하네.”
그때 내 핸드폰이 울렸다. 어머니였다.
“엄마다.”
안 그래도 안주원의 처음 보는 냉랭한 표정에 불편해하고 있었는데 잘됐다. 나는 얼른 전화를 받으며 베란다로 나갔다.
“기사 때문에 전화했지? 별거 아닌데.”
-그게 아니구, 가게에 엔터 회사 사람들이 왔어.
“……어?”
-사람들이 말을 참 잘하네. 정신이 하나도 없어.
아니……?
이러면 진짜로 다른 회사랑 접촉하고 있는 게 되잖아……?
나는 마음이 급해져서 말했다.
“그냥 가시라고 해. 나 다른 회사 안 갈 거니까.”
-근데 아빠가 한번 들어나 보래. 들어보는 데 돈 드는 것도 아니고, 계약 조건 두루 알아놔서 나쁠 것도 없구.
이미 기사가 나가고 있는 상황이라, 나는 당장 수습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겨우 팬들이 날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는데, 시끄러운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너에 대해서 참 많이 공부하고 왔어, 사람들이. 케어도 잘해줄 것 같구…….
하지만 부모님 마음에서는 아무래도 아들에게 잘해준다는 말에 자꾸만 마음이 가는 모양이었다. 솔직히 우리 회사에 들어갈 때는 처음부터 잡음 많을 걸 알고 억지로 끼워 넣은 거라, 직설적인 말은 안 해도 영 마음에 안 들어 하셨다.
나는 잠시 생각한 후에 결국 대답했다.
“일단은…… 나는 다른 엔터 직원 만나기만 해도 기사가 날 수도 있으니까. 엄마, 아빠가 들어줘. 무슨 얘기 하는지.”
-아, 그러네, 그래야겠다. 다시 전화해서 알려줄게.
“네, 끊을게에. 아, 패딩 좀 입고 다녀. 아빠도!”
-알았어, 알았어.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서, 한숨을 푹 쉬며 돌아섰는데 바로 뒤에 안주원이 있었다. 놀라서 욕부터 튀어나왔다.
“아오, X발…… 기척 좀 내자, 친구야. 어?”
“어느 회사가 찾아왔어?”
안주원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서 나는 별수 없이 대답했다.
“나도 몰라, 상관도 없고……. 너 뭐 하냐?”
“애들은 알아야지?”
안주원이 황새벽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이 다른 엔터와 이야기하고 있다는 걸 전달했다.
이게 무슨 난리인지 모르겠다. 나는 감시역으로 남은 듯한 안주원에게 말했다.
“전혀 없어, 다른 회사로 갈 생각. 사장님한테 물어봐. 내 조건은 너희랑 계약 종료일 맞춰달라는 것밖에 없어.”
안주원이 여전히 신뢰가 없는 표정을 날 본다. 쟤도 표정 안 좋으니까 인상이 막 좋진 않다. 그나마 제일 상견례에서 먹힐 얼굴인데도. 그 외에는 확신의 문전박대상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말했다.
“지금 바로 계약하고 올 테니까 표정 좀 풀어, 인마.”
내가 말하며 패딩을 찾아 입는데, 안주원이 정색했다.
“무슨 소리야. 너 원래 오늘 계약할 계획이었어?”
“아니, 그건 아닌데 기사 수습해야지. 사장님이 빨리 오늘 처리하자는데.”
“해원아.”
안주원이 나를 막아서며 말했다.
“우리가 너한테 화난 건 화난 거고, 그렇다고 계약을 막 떠밀려서 하면 안 되지.”
나는 패딩을 잠그며 대답했다.
“괜찮아, 기간이랑 계약금 확인하면 되잖아.”
“우리 회사, 소속 연예인한테 알아서 계약 잘해주는 회사 아니야. 오래된 회사잖아. 20년에 전에 말도 안 되는 계약서 쓰던 시절부터 있던 회사야.”
연습생의 시작 자체를 TRV에서 한 안주원의 말이니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안주원이 말을 이었다.
“특별히 나쁜 회사도 아닌데, 그렇다고 후하게 계약해 주는 회사는 절대 아니라고.”
“그래서 결론이 뭐야.”
“이런 거에 쫄려하지 말고, 느긋한 마음으로 계약하라고. 지금은 네가 계약 조건 제시해도 돼. 끌려갈 이유가 없어.”
화난 건 화난 거고, 계약은 계약이다. 아직 황새벽에게 전화를 건 상태였는지, 전화 너머에서 민지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맞아! 근데 그래도 화났어!
-야, 화났다는 말을 그렇게 떠들면 화나 보이겠냐. 근데 진짜 화나긴 했어요.
한효석의 목소리도 들렸다.
멤버들이 쫑알쫑알거리는 걸 들으니까 확 긴장이 풀린다.
내가 안주원에게 물었다.
“근데 햇살이들이 걱정해서 빨리 처리하고 싶어.”
그보다도 솔직히 더 걱정되는 건, 내가 드디어 나가는 줄 알고 반가워하면 어떡하나, 하는 것이다. 이참에 나가라고 할까 봐.
그렇게 생각할 때, 안주원이 말했다.
“우리가 돌아가면서 X버스에 글 올릴게. 걱정 덜 하게.”
“아, 그럼 고맙지.”
그렇게 이야기하며 우리는 숙소를 나왔다.
회사로 이동하는 사이 핸드폰이 계속 울려서 확인해 보니 아버지가 가족 단톡방에 여러 개의 톡을 보내고 있었다. 오늘 만난 세 개의 엔터 직원이 말한 것들을 깔끔하게 정리해 놓은 목록이었다.
옆에 앉은 안주원이 물었다.
“같이 봐도 돼?”
“응. 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안주원이 목록을 보며 말했다.
“너 정리 잘하는 건 아버님 닮았나 봐.”
그 목록 중에는 어이없게 내 전 소속사가 있었다. 그리고 조건도 후지다.
[옛정에 호소함]
아버지는 그렇게 요약해 놨다. 남은 옛정도 없는데 대단한 뻔뻔함이다.
그리고 또 한 군데는 TRV보다 약간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정도였고, 나머지 한 곳이 터미널 엔터였다.
터미널 엔터는 다른 소속사에서는 제시할 수 없는 것들을 제시하고 있었다.
계약금도 굉장하지만 아티스트로서의 보호, 일정 수준 이상의 투어 보장, VMC의 지속적인 홍보에 대한 내용까지 있었다.
옆에서 같이 톡을 읽던 안주원이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야, 아무리 과장이 있어도…….”
“조건이…… 너무 좋은데?”
내가 대답하는 사이 안주원이 급하게 핸드폰을 켜더니 단톡방에 글을 썼다.
[안쭈 : 회의 요청. 급해!]
그 톡이 내 핸드폰에 떠서 내가 흐흐 웃었다.
“야, 뭐가 급해. 안 갈 건데.”
“저 조건을 보고 어떻게 안 가?”
“여길 왜 가. 터미널 엔터는 VMC 산하잖아. 이거 그냥 합의금이야.”
“아…….”
너무 좋은 조건에 염려하던 안주원이 ‘합의금’이라는 말에 바로 납득하고 진정하더니, 이내 중얼거렸다.
“……근데 합의금도 돈은 돈이잖아.”
그건 맞는 말이라 나는 좀 웃었다. 이 돈을 보고 나니 오히려 명확해진다.
나는 퍼스트라이트의 멤버로, 여기 이 멤버들과 함께 한 팀으로 쭉, 무대에 서고 싶다. 아니, 애초에 이놈들 없이는 무대에 설 자신이 없다. 아마 심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할 것 같다.
큰 무대에 설 수 없게 되고, 점점 더 작은 무대에 서게 되더라도 이렇게 일곱 명이서 툭하면 쓸데없는 걸로 싸우고, 완성도를 명목으로 서로의 음악에 지적질하고, 삶의 방식에 간섭하면서 살고 싶다. 될 수 있는 한 가장 오랫동안.
“난 지금이 좋아.”
나는 쓸데없이 긴말을 요약한 후 히히 웃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돈이 제일 중요한 건 아니지만, 있어서 나쁠 건 없으니까 이 조건은 내가 TRV와 재계약을 할 때 유용하게 사용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