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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72화 (72/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72화

센 척하며 계약을 하고 나오니 노곤한 기분이 들었다.

이미 기 싸움을 질릴 만큼 했기 때문에, 반지 공방에서 멤버들이 싸울 때는 끼어들 힘이 없었다.

“난 약지.”

“검지 좋지 않냐.”

“각자 원하는 데 껴.”

“에이, 팀반지인데 그건 좀 글치.”

애초에 팀반지를 어느 손가락에 낄지부터 의견이 갈렸다.

이렇게 모든 멤버가 반지 맞추는 것에 진심일 줄 몰랐다. 그럼 진작 맞추지 그랬냐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다가, 멤버들이 나의 불안정을 탓할 것 같아서 입을 꾹 다물었다.

계속 그렇게 졸던 나는 민지호 목소리에 확 깼다.

“새끼! 새끼가 예쁘잖아!”

“……지호야? 욕 같으니까 작게 말해주라.”

내 말에 민지호가 소리 죽여 말했다.

“새. 끼.”

그 말에 멤버들은 물론 반지 공방 사장까지 어이없어서 웃기 시작했다. 공방 사장은 누나의 대학 친구로, 얼마 전에 한국으로 돌아와 공방을 냈다. 이전부터 팀반지 이야기를 몇 번 하다가 오늘 바로 연락하고 공방에 왔다.

안주원은 멤버들이 아무 말이나 뱉을 때, 특히 민지호가 아무렇게나 말하면 디자인적으로 통역해 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지쳤는지 내 옆에 앉아서 물었다.

“돈 너무 많이 들 것 같은데, 다 같이 내지? 회사에 내달라고 하거나.”

“나 계약금 많이 받으니까 내가 살 거야. 한 번에 이렇게 오래 생색낼 기회가 어디 있냐.”

나는 하품을 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이 회사를 나간 뒤에도 가지고 있을 테니, 회사 지원 안 받을 거라는 말은 그냥 속으로 삼켰다.

다시 잠들었다가 일어나보니 멤버들이 싸움을 끝내고 결정을 해놓았다.

안주원이 우리 의견을 종합해 스케치해 놓은 도안 위에, 가장 가까운 두께의 반지가 놓여 있었다. 오른손 약지, 화이트골드 반지 일곱 개. 나는 멤버들과 사진을 찍어 X버스에 올린 후에 멤버들에게 말했다.

“차에 가 있어. 나 금방 얘기하고 나갈게.”

“아, 형 돈 너무 많이 쓰는데.”

“계약금을 진짜로 많이 받았어.”

나는 말하며 멤버들을 내보내고 누나 친구 사장님에게 말했다.

“누나, 그냥 플래티넘으로 해주세요. 화이트골드 말고. 쟤네 관리 못 해서 변색돼요.”

“어어? 너무 크게 쓰는 거 아냐?”

“첫 반지기도 하고, 이래저래 계약 기간 말 안 한 게 미안하기도 해서요. 저희 콘서트 전까지 돼요?”

“응, 해줄게.”

“감사합니다.”

“감사는 내가 해야지. 고마워.”

그렇게 싸우더니, 결과물은 심플했다. 별것도 아닌 걸로 싸우는 놈들이라 그렇지, 사실 다들 비슷하게 심플한 걸 좋아한다.

깔끔한 4㎜ 반지에 라틴어로 새벽이자 빛을 뜻하는 LUX를, 그리고 안쪽에는 고유번호를 각인하기로 했다.

반지 가게를 나와서, 차로 숙소에 돌아가는데 기가 막히게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이른 첫눈이었다.

“햇살이들 알려줘야겠다.”

민지호가 잽싸게 X버스를 켰다.

* * *

[해원이 글 TRV랑 재계약 됐단 의미겠지ㅠㅠ?]

[↳응ㅠㅠㅠㅠㅠㅠㅠㅠ]

[↳하 미치겠다ㅠㅠㅠㅠㅠㅠㅠ]

[↳우리 걱정하니까 급하게 해버린 거 아니겠지……?]

[↳↳해원이면 이러고도 남을 애긴 해…….]

[민조 : 햇살이들!!!!!!!!! 우리 이제 숙소 가고 있는데 첫눈이 내리는 거 있찌??? 세상에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야!!!!!!!!!!!!!!! 해원이 형 재계약도 하구 반지도 맞췄다고 축하해주나바!!!!!!!!!!]

[얘들아ㅠㅠㅠㅠㅠㅠㅠㅠ]

[아씨 눈물나]

[우리 진짜 오래 가자ㅠㅠㅠㅠㅠㅠ]

[지우니 : 뭔 소리지 내 수능 끝을 축하하는 눈임]

[↳민조 : 아니야!!!!!!!!!!!!!!]

[↳지우니 : 수험생 햇살이들 고생했다고 내리는 눈임]

[↳민조 : !!!!!! 그건 맞아…… 해원이 형 재계약도 하구 반지도 맞췄구 수험생 햇살이들도 고생했다고 내리는 눈이야!!!!!!!!!!!!!!!!!!!]

그리고 잠시 후 신지운이 X버스에 아침에 찍은 도시락 사진을 올렸다.

[지우니 : 멤버들이 새벽에 일어나서 만들어준 도시락인데…… 이상하게 맛있더라?]

[↳새벽 : 메인셰프 황새벽+곧 올라올 비하인드 영상 촬영 정해원+달걀말이 안주원+샐러드 한효석+햄 민지호, 박선재]

[우와ㅠㅠㅠㅠㅠㅠ]

[아니 진짜 오늘 퍼라 애들 햇살이 울리기로 작정했나 봐ㅠㅠㅠㅠㅠ]

[아니 근데 햄ㅋㅋㅋㅋㅋㅋㅋㅋㅋ둘이서 1인분 일했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막내 : 민조가 자르고 제가 구웠으니까 2인분이에요!!!!!!]

[↳↳기적의 계산법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선재야 나는 널 사랑하지만 여전히 1인분이야…….]

[↳↳↳막내 : 힝ㅠㅠㅠㅠ]

[↳↳↳↳오구ㅠㅠㅠㅠㅠㅠㅠㅠ]

[↳↳↳↳알았어 2인분 하자! 누가 1인분이래!]

[오늘 새벽부터 도시락 만들고 수능 보고 재계약하고 반지 맞추고…… 퍼스트라이트 오늘 하루 진짜 드라마틱하게 살았네ㅋㅋㅋㅋ]

[햇살이들도 드라마틱했다 오늘…….]

[꿈 같다 진짜ㅠㅠㅠㅠㅠㅠㅠ]

그리고 사건이 마무리되자, 다시 한번 계약 건에 관한 이야기가 중심으로 돌아왔다.

[근데 해원이 진짜 TRV랑 재계약한 거야? 회사가 이따위로 했는데?]

[재계약 한 건 기쁜데 분이 안 풀려…….]

[터미널 엔터 거의 확정 같았는데…….]

[근데 제일 이상한 게…… 왜 하필 VMC가 쌍욕 먹을 때 재계약 기사가 터져? 재계약 한 달 반 남았는데]

여론은 이 기사가 터진 타이밍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까 그것도 심지어 무슨 VMC 산하 엔터를 간다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타이밍도 이상하고 기사 방향도 이상해]

터미널 엔터에서 내민 조건은 훌륭했다.

이 계획을 늘어놓은 박경석 PD의 입장에서, 정해원이 만에 하나 터미널 엔터와 계약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며칠 동안 고민은 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국선아에 대한 비난이 잠잠해지리라 여겼었다.

그러나 재계약은 하루 만에 끝났고, 정해원은 터미널 엔터의 조건을 정중히 거절했다.

VMC는 결국 박경석 PD를 보직 해임 했지만 여론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 * *

본격적인 콘서트 연습이 시작되었다. 오히려 재계약을 빨리 끝내서 다행이다. 내 머릿속이 확 개운해져, 훨씬 더 연습에 집중할 수 있었다.

어차피 콘서트뿐만 아니라 시상식 준비도 해야 하니까, 이미 끝난 계약 건에 대해서는 돌아볼 여유도 없었다.

그사이 내 핸드폰에는 주기적으로 연락이 왔다. 박경석 PD였다.

[해원아. 다 살자고 하자는 거잖아.]

[내가 이 나이에 퇴사하면 어딜 가니. 한 번만 용서해 줘라.]

[정말 정말 미안하다]

아마 보직해임 후에 퇴사를 권유하고 있는 모양이다. 박경석 PD는 자기와 화해 무드의 사진을 한 장만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박경석 PD가 계속 가족의 생계 이야기를 꺼내니 마음이 흔들렸다. 아이도 이제 초등학교 들어간다고 하고……. 그런데 내 핸드폰을 힐끔 보던 신지운이 핀잔했다.

“생계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저 피디님 아내 분도 피디셔.”

“……아, 그래?”

그러자 아주 어린 사촌 동생이 있는 안주원이 말했다.

“애들 초등학교 들어갈 때가 진짜 바쁘고 신경 쓸 거 많대. 어차피 둘 중 하나는 육아휴직 쓸 시기야.”

“음, 그렇게 들으니까 마음이 편하네. 그럼 무시하자.”

하고 말하기는 했지만 사람의 연이라는 게 어디서 어디로 이어질지 모르니 아주 씹지는 않았다.

[저도 죄송해요.]

그렇게 쓰고 나서 핸드폰을 끄고 다시 연습을 이어갔다. 연습실 바닥에는 복잡한 동선이 흰색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잠깐 쉬는 시간이 생겼을 때 나는 내 패딩 주머니에서 간식 꾸러미를 꺼냈다. 연습, 편곡, 연습, 편곡을 반복하다 보니 자꾸 끼니를 거르게 되어 몸무게가 계속 줄었다. 방송에서는 몰라도 콘서트에서 너무 마르면 대면하는 팬들이 보기에 좀 안 좋을 것 같아서 몸무게를 유지하기 위해 억지로라도 간식을 먹고 있었다.

연습실 구석에서 초콜릿을 뜯고 있으니까 박선재가 슬그머니 옆에 앉아서 물었다.

“형…… 맛있어?”

“아니. 그냥 할 수 없이 먹는 거야.”

“으, 형도 힘들겠다. 세상 진짜 불공평해…….”

반대로 살이 잘 찌는 편인 박선재는 당분간 간식을 금지당했다. 민지호도 나름 다이어트 중이라 평소에 3인분씩 먹는 걸 1.5인분 정도로 줄였다. 아주 대단한 다이어트다.

내가 초콜릿 하나를 슬쩍 박선재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한 개도 먹으면 안 되나?”

박선재가 표정이 밝아져서 초콜릿을 주머니에 깊이 눌러 넣었다.

“맞아, 한 갠데.”

“먹고 효식이랑 운동해.”

“그건 절대 안 돼.”

박선재가 정색했다. 진짜 끔찍한 모양이다.

그사이 한효석은 콘서트에서 보일 발레 동작을 사용한 솔로 댄스 브레이크를 댄서들과 연습하고 있었다. 박선재가 말했다.

“근데 효식이 몸 진짜 이쁘긴 해.”

“그니까.”

근육의 통증을 기껍게 여기며 오로지 순수 예술을 위해 고문에 가깝게 깎아 만든 몸이었다. 한효석은 손끝과 발끝의 근육까지 활용하며 감정을 표현할 수 있었다.

나는 자리에 앉아서 한효석의 안무를 보았다.

다른 댄서들과 비슷한 차림새의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는데, 같은 춤을 춰도 장르가 다르게 느껴졌다. 일반인은 상상할 수 없는 정도의 코어, 전공자의 테크닉과 압도적인 유연성. 모든 면에서 확 눈에 들어왔다.

한효석의 차례가 끝나고 내 차례라 나는 자리에 앉아 스트레칭을 했다. 나도 짧은 댄스 브레이크가 있었다.

“해원이 형 댄브 안무 진짜 좋고, 진짜 빡세.”

내 안무를 유일하게 본 민지호가 말했다. 나는 X 표시가 된 테이프 위에 섰다.

“아, 한효식 다음에…….”

나는 한숨이 푹푹 나왔지만 장르가 다르다는 사실로 자신감을 채웠다.

내 안무는 무대를 여기저기 크게 사용하기 때문에 뛰어다닐 일이 많았다.

“아, 저 형 몸 진짜 가볍다.”

“연출 죽인다, 진짜…….”

다행히 멤버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첫 콘서트니까, 우리는 멋모르고 미친 듯이 빡세게 세트리스트를 채웠다. 콘서트를 연출하는 이정호 PD가 산소호흡기 정도로 되겠냐고 질문할 정도였으니까. 지금 나이에나 할 수 있을 세트리스트였다. 하나 같이 미친놈들이라 브레이크 걸 사람이 없었다. 망했다. 허허.

그렇게 연습 중일 때, 우리 연습실로 익숙한 사람들이 들어왔다.

“실례합니다.”

“오랜만이야.”

국선아 데뷔 조, ‘소년들’의 멤버 둘이었다. VMC 뮤직어워드의 특별 무대 연습을 위해 막 도착한 참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마지막 멤버인 최윤솔이 2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 윤솔이 형!”

박선재가 반가워하며 달려갔다. 다른 멤버들도 아예 연예계를 떠났다던 최윤솔과의 재회를 반가워했다.

인간이라는 게 이기적이라, 나는 최윤솔이 막 반갑지는 않았다. 하나는 악편이든 뭐든 결과적으로 퍼스트라이트는 국선아 데뷔 조에서 조작 멤버를 제외한 팀인데, 최윤솔은 내부에 알려진 정보로 결과 조작이 아니다. 한편 나는 데뷔 조가 아니다. 그래서인지 최윤솔을 보면 내가 가짜가 된 것 같고, 최윤솔의 자리를 뺏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런 걸로 사람을 싫어한다고 하면 완전히 미친놈 취급을 받겠지만…….

언젠가 꾸었던 내 긴 예지몽 속에서 알게 된 짤막한 정보가 최윤솔의 얼굴을 보는 순간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제가 2년 동안 방에서 나오지 못했던 때의 감정을 바탕으로 만든 곡입니다.

그 미래 속에서 최윤솔은 내 이야기를 자기 이야기로 가져가 곡을 만들었다. 최윤솔이 또 곡은 드럽게 잘 만들어가지고 그 곡이 흥하기까지 했다. 내 이야기가 사방에서 음악으로 흘러나와 끔찍해하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내 이야기는 내가 먼저 썼다. 다행이다. 히히.

그때 민지호가 박수를 치며 소리쳤다.

“빨리 연습하자! 우리 콘서트 연습도 해야 돼서 여기 시간 많이 못 써!”

그렇게 부른 덕에 소년들의 멤버 아홉 명이 자기 자리를 찾아갔다.

각자 개인 트레이너와 연습한 후 모여서 합을 맞추는 첫 연습. 국선아의 근본곡, 더 킹 인트로가 나오는 순간 나는 뒤지게 피곤해도 편곡을 욕심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를 제외한 멤버들이 자리에 선 모습에 별수 없이 표정이 굳었다가, 내 편곡이 흘러나오는 순간 웃었다. 멤버들 역시 연습하는 내내 들었을 텐데도 나 들으라고 한 번 더 감탄해 준다.

VMC는 쪼잔하게 내 이름을 곡 소개에 안 넣어주고도 남을 놈들이니, 내가 편곡했다고 동네방네 떠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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