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73화 (73/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73화

‘더 킹’은 프로그레시브 하우스 장르의 곡으로 여름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면서도 파워가 느껴지는 곡이었다. 내가 워낙 좋아하는 장르에 좋은 곡이다 보니 편곡 허락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에 들떴다.

우리 다음 미니 컨셉인 ‘중세 판타지 분위기’와 프로그레시브 하우스를 어떻게 연결할까, 양이형과 엄청나게 많은 고민을 했다. 양이형에게 왜 굳이, 굳이 그런 목표를 세워서 개고생을 사서 하냐고 많은 욕을 먹었다.

하지만 나 없이 여섯 명만 무대? 질투 나서 안 되겠다. 내가 또 은근 집착이 심해서 그런 꼴을 가만히 앉아서 볼 수 없다.

아무튼 그래서 내가 생각한 건 중세 판타지 분위기지만 웅장한 쪽이 아니라, 모험 판타지의 느낌으로 가보기로 했다. 계속해서 달리고, 전투하는 분위기를 낼 생각이었다.

황새벽이 VCR 직후에 들어갈 일렉 기타 세션을 녹음했는데, 연출 PD가 그걸 너무 마음에 들어 해서 황새벽이 실제로 기타를 들고 무대를 열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 그 편곡으로 ‘소년들’이 무대를 연습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내가 무대에 올라가려고 곡을 만들고, 편곡을 해서 만드는 중간에도 대충 무대가 그려지는 느낌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없었다. 속이 쓰려서 일부러 더 개인 연습 하는 모습도 안 보고 디렉팅도 양이형이 했더니 그게 더 심했다.

신기하게 의외로, 그 사실이 나를 온전한 작곡가로 만들었다. 내가 모르는 세계. 무대와의 단절이 오히려, 그 무대를 기대하게 만든다.

양이형이 늘, 뮤직비디오를 찍기 시작하고, 싹 세팅한 아이돌이 무대를 시작한 후에야 곡이 완성되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제 그게 무슨 의미인지 확실히 알겠다.

지금 이 순간 의외로 나는 그 단절을 즐기게 되었다. 퍼스트라이트의 안무, 그리고 이번 더 킹 무대 역시 담당하는 UO의 장지영 팀장이 나에게 말했다.

“해원아, 편곡 진짜 좋다.”

그 말에 나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다행이다.

무대가 끝나고, 나는 괜히 장난을 쳤다.

“야, 애드립이 쫌 아쉬운데? 내 편곡이 안 사는데?”

“힘들어, 이따가 시켜.”

“우와, 뒤지겠다.”

힘들어서 드러눕는 멤버들에게 참견하는 것도 좀 재미있다. 히힛.

그나저나 이렇게 아홉 명이 무대를 하니 근사하기는 했다. 우리 멤버들도 하나하나 끝내주고, 솔직히 나머지 셋도 잘하기는 한다.

* * *

피차 바빠서 연습에 여러 날을 투자할 수 없기 때문에, 오늘 하루 동안 밤을 새우고 연습에 들어갔다.

같은 걸 반복하다 보니 다들 지쳐서, 쉬는 시간을 가지며 한효석과 민지호, 빌런즈가 완성된 콘서트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로 했다.

나머지 ‘소년들’의 세 명은 보안을 위해 식사를 하러 나가고 마지막으로 거울을 보며 한효석과 민지호가 디테일을 맞췄다.

그사이 나는 신지운에게 틈틈이 작업 중인 트랙을 들려줬다. 신지운이 듣더니 허 웃었다.

“붐뱁이네?”

“맞아? 다행이네, 이쪽 장르는 잘 모르니까 찍을 땐 확신이 없었는데.”

아이돌 음악을 하면서 힙합 장르를 못 하는 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아 요즘 연습 중이었다. 양이형도 이쪽은 잘 모르는데, 다행히 신지운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신지운은 원래 아이돌보다는 랩을 하고 싶어 했는데, 너무 눈에 띄게 생기는 바람에 거의 서울 안에 모든 소속사 명함을 다 받았던 모양이다. 소속사에 들어간 후에도 자꾸 힙합씬에 미련을 못 버리고 기웃거리니까 소속사에서 국선아 출연을 권유했던 모양이었다.

신지운은 소속사의 우려와 달리 그걸 흔쾌히 받아들였고, 결과적으로 그곳에서 아이돌에 진심인 연습생 중 하나가 되었다.

그사이 빌런즈 무대가 준비되었다. 퍼포먼스에 참여하는 댄서들을 제외한 나머지 댄서들과 멤버들, 매니저 형들, 콘서트 스태프들이 둘러싼 상태에서 투 빌런즈 안무가 시작되었다.

신지운이 말했다

“욕 나온다.”

“그러게. X나 좋네.”

“아, 그냥 해버리자고?”

그 말에 나는 흐흐 웃었다.

한효석과 민지호의 안무는 X나 좋다는 말로밖에 표현이 안 된다. 광기 그 자체였다. 콘서트 중반부에 집중력을 확 올려주게 될 무대였다.

그렇게 쉰답시고 투 빌런즈 무대를 마쳤을 때, 식사를 마친 세 명이 돌아왔다.

다시 개인 연습이 시작되었을 때, 최윤솔이 퍼스트라이트 미니 1, 2집 안무를 외우던 내 옆에 털썩 앉았다.

“아, 힘들다.”

“…….”

편견을 가지고 보니까, 어쩐지 약간 눈깔이 맛이 간…… 아니지. 진정하자.

아무튼 아직까진 최윤솔이 나에게 특별히 잘못한 게 없으니까, 뭐라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좋게 대하기도 힘들어서 그냥 등짝을 툭툭 두들겼다.

“어, 윤솔이 오랜만.”

“아퍼, 아퍼, 아퍼.”

진정하려고 했는데 손에 힘이 팍 들어간다.

생각해 보면 국선아 때도 나는 최윤솔이 약간 돌아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실제로 좀 돌았으니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은 최윤솔과 잘 어울렸다. 곱게 자란 것 같은 얼굴로 모든 것에 백중날 아귀처럼 달려들었다.

그러던 최윤솔의 데뷔가 없던 일이 되고, 회사 임원이 책임 PD와 술자리를 여러 번 가진 사실이 드러나며 미래마저 불투명해졌으니 30도쯤 돌아 있던 눈깔이 180도 돌아가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최윤솔 내 쪽으로 가까이 앉더니 귀에다 말했다.

“박경석 보냈더라?”

……응?

“고생했어. 그때 국선아 PD들 조작이고 접대고 다 알지, 책임 PD만 날리는 게 말이 되나?”

“…….”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나도 내 전 소속사 소송 끝나면 여유가 생길 테니까.”

……전 소속사랑 소송 중이었구나. 최윤솔답다.

그리고 내가 VMC와 사이가 안 좋은 것 때문엔지, 내가 자기편이라고 확신하는 것 같다. 나는 네 놈에 대한 신뢰가 조금도 없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속을 다 드러내냐, 부담스럽게.

내가 뭐라 반응할지 몰라서 조용히 있으니, 최윤솔이 나를 180도 돌아 있는 눈으로 빤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

“너한테 말은 안 했어도, 나한텐 네가 항상 라이벌이었어.”

“……응?”

“네가 은근히 사람 거슬리게 하는 스타일이잖아.”

하이고, 남 말하네.

라고 생각했지만 돌아 있는 놈 신경을 거슬러서 좋을 게 없으니 말했다.

“오랜만에 만나서 왜 그래? 섭섭하게.”

“그니까, 꼭 저렇게 대답한다니까.”

최윤솔이 웃으며 대답하더니 몸을 일으켰다.

“자주 보겠다. 연락 씹지 마.”

“연락이나 하고 말해.”

내 말에 최윤솔이 흐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연락 안 했으면 좋겠다. 음흉한 놈이라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영 알 수 없는 게 불편했다.

* * *

며칠 뒤 나는 자카르타에서 열리는 VMC 주최 뮤직어워드를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콘서트와 시상식 준비를 같이하니 멤버들 컨디션이 바닥이었다.

그런 멤버들을 위해 부모님이 목에 좋은 차를 계속해서 보내주셨다. 나는 공항에 가는 사이에도 배도라지차를 챙겨서 먹기 싫다는 멤버들에게 억지로 먹였다.

내 입에는 달달한데, 민지호는 그 맛을 즐기기엔 너무 어린지 차를 마시는 걸 괴로워했다. 결국 민지호가 나에게 투덜거렸다.

“우리 엄마도 형만큼은 잔소리 안 해.”

“너희 어머님 대신하는 거야.”

“……그건 그래.”

나는 멤버들의 부모님 전부와 주기적으로 연락을 한다. 특히 애들이 어려서 애새끼 짓을 하면 바로 가서 일렀다.

황새벽이 패딩에 파묻혀 졸며 민지호에게 말했다.

“부모님한테 직접 잔소리 듣는 것보단 낫잖아. 다 너희 잘되라고 시키는 건데.”

“새벽이 비타민 먹었니.”

“……어디다 놨더라.”

황새벽이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져 아까 배당해 준 비타민을 꺼내 먹었다. 하여튼 애들이 어려서 건강의 소중함을 조금도 모른다.

다른 멤버들과 달리 알아서 목건강을 잘 챙기는 박선재가 진작에 내가 준 걸 다 먹고 말했다.

“새벽이 형이랑 해원이 형이 숙소 아빠랑 숙소 엄마 같다니까, 우리 부모님 엄청 안심하시더라구.”

박선재가 말하더니 다 먹었다고 나에게 빈 물병을 보여준다. 그래도 하나는 말을 잘 들어서 다행이다.

새벽에 출발해서 공항에 도착할 즈음 해가 떴다. 민지호가 창밖을 보며 말했다.

“오늘 하늘 완전 햇살이 색이네.”

그 말에 나도 창밖을 봤다. 해가 막 뜨면서, 빨간색과 노란색이 섞인 하늘이 보여 바로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퍼스트라이트 팬덤, 선라이즈의 색깔은 테킬라 선라이즈의 오렌지 주스와 그레나딘 시럽 색깔 그 자체다. 누가 술로 공식 색을 정하는 황당한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팬클럽 이름과 잘 맞기는 한 것 같다.

내가 황새벽을 불렀다.

“황새, 일어나.”

“어어, 어어…….”

이쯤에서 슬슬 깨워야 도착하면 일으켜 세울 수 있다. 저렇게 머리 대면 바로 잠들고 못 깨는 걸 보면 저것도 수면장애의 일종이지, 싶다.

그렇게 공항에 도착하니 말 그대로 칼바람이 불었다.

“와씨, 너무 추워.”

심지어 자카르타에 도착할 때를 대비해서 패딩 속에 얇은 옷을 입었더니 진짜 뼈가 시리다. 기자들도 팬들도 사진을 찍고 있음에도, 너무 추워서 웃음이 잘 안 나왔다.

덜덜 떨며 공항에 들어온 후 몸이 훈훈해져 패딩을 벗었다. 정리벽이 있는 나는 멤버들이 막 구겨 넣는 꼴을 못 봐서 예전에 인터넷에서 본 방식대로 패딩을 하나씩 다시 접었다. 그러자 신지운이 내가 네모반듯하게 접은 멤버들과 다른 스태프들 것까지 패딩 열한 개를 의자에 쌓아놓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 사진을 공식 트위터 관리 직원에게 보내며 말했다.

“형은 진짜 파워 J다.”

“뭐가?”

“MBTI가.”

“아.”

안 해봐서 모르겠는데 그러면 한효석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내가 패딩 정리하고 있는 걸 유일하게 이해해주는 멤버였다.

짧은 시간이지만 알차게 아침 먹고, 커피도 마시고, 면세점 구경도 좀 했다. 다른 멤버들은 이제 비행기도 호텔도 그냥 비즈니스 그 자체로 여기지만 나는 아직까지는 공항에 들어서는 게 마냥 설레고, 호텔도 궁금하다. 여전히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이 설렘이 언제 사라질지 모르니, 지금 즐겨놓기로 했다.

직항을 타고 7시간 남짓 걸려 수카르노 하타 공항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핸드폰을 켠 안주원이 나에게 말했다.

“해원아, 너 실트…… 좋은 걸로 실트 올랐다.”

“……미안하다, 내가 멘탈이 많이 약하지.”

나는 우는 시늉을 하며 말하고 안주원에게서 핸드폰을 받았다. 혹시 아까 공항에서 웃기는 얼굴이 찍혔나, 했는데 신지운이 찍은 패딩 사진 때문이었다. 심지어 이게 뭐라고 연예 기사까지 났다.

[지독한 J형 아이돌]

뮤직어워드 때문에 안 그래도 케이팝 팬들의 관심이 쏠려 있고, 기자들도 많이 와 있다 보니, 우리가 이동하는 사이에 저 사진이 화제가 된 모양이었다. 신지운이 올린 사진을 양이형이 내가 로직으로 작업할 때 트랙 색깔 정리해 놓은 사진과 함께 자기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더더욱 화제가 되었다.

[햇살이들~ 해원이가 진짜로 화내는 거 보고 싶으면 트랙 색깔 섞어 놓으면 돼요^^]

이 형이 무슨 끔찍한 소리야…….

그래도 댓글들을 보니 저렇게 정리해 놓은 걸 보니 짜릿하다고 했다. 크, 나와 공감해 준다. 멤버들도 좀 이 짜릿함을 알아야 되는데…….

아무튼 별게 다 화제가 되는 걸 보니 내가 아이돌이 되긴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입국 수속을 마쳤을 때, 나는 다시 한번, 진짜로 내가 아이돌이라는 걸 실감했다.

해외 팬들이 퍼스트라이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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