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74화
나는 공항에 나서자마자 잠깐 멈칫했다.
태연하게 걸어가려고 했는데,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자꾸 고개가 돌아갔다.
“해원아!”
해외 팬들의 발음은 신기할 정도로 정확했다. 커다란 현수막에 우리 이름이 적힌 부채를 흔드는 팬들도 말도 안 되게 많았다.
원래는 혹시 우리 팬들이 있으면 인사도 하고, 그러려 했는데 불가능한 분위기였다. 결국 우리는 그냥 고개만 꾸벅꾸벅 숙이고 바로 차로 이동했다.
나뿐만 아니라 멤버들도 약간 혼이 나가 있었다. 더 라이징이 해외에서 인기를 끌었다는 건 들었지만, 실감한 건 처음이었다.
현지에서 준비해 준 차에 타자마자 내가 말했다.
“……우리 빨리 다음 앨범 준비해야겠다.”
멤버들이 모두 공감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빨리 뭐라도 팬들에게 보여줘야 할 것 같다는 강렬한 긴박감에 사로잡혔다.
그때 핸드폰을 확인하던 스타일리스트 이예영이 말했다.
“너희 인도네시아 실트에도 있어.”
“……왜요?”
황새벽이 싸가지없는 말투로 되물었는데, 나도 솔직히 공감했다. 우리가 왜요……?
“입국해서?”
그게 다였다.
진짜로 더 라이징이 아시아 전반, 특히 인도네시아에서 인기가 굉장했다는 모양이었다. 거기 참여한 덕에 연말에 체력적으로는 뒤질 지경이었지만,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 * *
인터뷰 스케줄들을 마치고 저녁이 되어서야 우리는 호텔에 들어왔다.
호텔 룸메이트는 무조건 숙소 룸메이트와 다르게 하기로 했다. 출국 전에 사다리 타기를 했는데 나는 다행히 안주원과 같이 쓰게 됐다. 여러 가지로 잘 맞고 조용한 멤버다.
그나저나 진짜 걱정되는 방이 있다.
내가 우리의 사다리 타기 결과를 보며 말했다.
“황새벽, 한효석. 이야, 너희 서로 한마디는 하겠냐?”
묘하게 안 친한 이 둘이다.
예전에는 민지호와 한효석이 사이가 나빠서, 앙숙 하면 그 둘을 뽑았는데 투 빌런즈 유닛 연습 이후로 지나치게 친해졌다.
낯가림 심한 멤버들 중에서도 특히 말수 적은 황새벽과 한효석은 같이 있으면 묘하게 어색한 느낌이 있었다.
둘이 들어가려다가 타이밍이 엉켜서 둘 다 먼저 들어가라고 양보하며 서 있었다. 그러다 한효석이 말했다.
“……형 먼저 들어가세요.”
“어. 고맙다.”
그러더니 황새벽이 방으로 들어간다. 나는 어색함에 오그라든 두 손을 못 펴고 말했다.
“미치겠다, 쟤네 어떡하냐.”
그리고 민지호와 박선재가 룸메이트라 신이 나서 우당탕 달려 사라졌고, 신지운이 징징거리며 나와 안주원을 따라왔다.
“아, 나 왜 독방이야. 외로워. 싫다고, 혼자 쓰는 거.”
“그럼 사다리를 잘 탔어야지.”
내가 뭐라고 하든지 말든지 신지운이 방문까지 따라와서 경고했다.
“룸서비스 나 빼고 시키면 진짜 운다? 꼭 나한테 연락하고 같이 먹어. 무조건. 제발요.”
안주원이 징징거리는 신지운에게 물었다.
“넌 이래서 어떻게 외동으로 컸냐?”
“물론 세상에 외동이 성향에 맞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 근데 나랑은 안 맞았어. 트라우마야.”
놔두면 안 나갈 것 같아서 나는 신지운을 떠밀어 내쫓았다.
“이따 불러줄 테니까 꺼져.”
“이 형이 은근 매정해.”
“야, 세상천지를 찾아봐라, 나만큼 정 많은 사람 있나.”
그렇게 쫓아낸 후에 못 들어오게 문단속을 했다.
일단 짐을 다 풀고, 오늘 길에 옷이 길어 더웠던지라 가볍게 샤워를 한 후 반팔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침대에 풀썩 올라가자마자 일 얘기를 하려고 양이형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곧바로 양이형이 받았다.
“양이형이형이형이 형.”
-아, 좀 한 번만 불러.
양이형의 말에 안주원이 옆에서 말했다.
“해원이 스타일 애칭이에요, 형.”
-나도 아는데, 너무 시끄럽다.
그 말에 내가 안주원에게 말했다.
“말은 이렇게 해도 은근 좋아해.”
-안 좋아, 새끼야. 다른 애들은 줄이는데 난 왜 늘려.
“아니, 형 이름이 형으로 끝나니까 이름을 어디서 멈춰야 되는지 모르겠어.”
-뭔 개소리야.
“왜 몰라아. 알아주라고.”
나는 잠깐 징징거린 후에 일 이야기를 시작했다. 콘서트 음원은 다 끝났고, 남은 건 시상식 편곡들이었다. 우리 멤버들은 워낙 힘든 걸 좋아하는 미친놈들이라, 매 시상식마다 다른 인상을 남기고 싶어 했다. 특히 크리스마스 전날 시상식에는 캐롤풍 편곡을 요구했다. 그리고 또 난 그걸 좋은 아이디어라고 해주고 있다…….
영상통화로 회의를 하고 나서, 가져온 맥북을 펴고 웰컴 푸드를 먹으며 작업을 했다. 그사이 안주원은 거울을 보며 오늘 댄스 브레이크 연습을 했다.
혼자 있을 때 보니 춤을 꽤 잘 추는데, 팀에 너무 잘 추는 애들이 많다. 보컬도 괜찮은데 너무 잘하는 놈들이 있고…….
나는 솔직히 저 얼굴이면 상관없다고 생각하는데, 본인이 스트레스를 받아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여전히 사람들은 안주원을 조작 멤버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으니까.
뭐. 본인이 감당할 문제니 내가 어떻게 해줄 수는 없다.
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 룸서비스 시킬 때 부른다고.”
내가 신지운인 줄 알고 말했더니, 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주원아!”
소년들의 멤버 중 하나, 박수현의 목소리였다.
“수현이 형?”
안주원이 문을 열자 박수현이 말했다.
“피트니스 빌렸으니까 다 같이 연습 비하인드 찍자.”
“비하인드요? 어…… 네.”
안주원이 고개를 끄덕인 후 나에게 물었다.
“다녀오면 룸서비스 시킬까?”
“어, 그러자.”
안주원이 나간 후, 나는 다시 작업을 이어갔다. 그러다 눈이 아파서 고개를 젖히고 두 손으로 눈을 눌렀다가 뗀 후 시계를 봤는데 이미 열한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뭐야, 안주원 왜 안 와.”
내가 뒤늦게 핸드폰을 봤는데 한참 전에 톡이 와 있었다.
[안쭈 : 해원아 미안한데 밥 먹는 것까지 컨텐츠 찍어야 한대]
[신지운 : 나도ㅠㅠ]
“어이씨, 못 봤네.”
시계를 보니까 이미 늦어서 룸서비스를 시킬 수 없었다. 다행히 음료는 된다고 해서 커피와 과일주스를 시켰다.
그걸 마시면서, 아까 인도네시아 실트에 우리가 있다고 한 게 생각나 트위터에 들어가 보니 최윤솔이 실트에 있었다.
#조작_아님
#빛날윤_윤솔아_보고싶었어
‘소년들’이 아홉 명으로 무대에 오른다는 소식에, 한동안 연예계를 완전히 떠났던 최윤솔이 화제에 올랐다. 나는 트위터가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 건지를 잘 몰라서 인도네시아 실트 보는 법을 찾아 헤맸다. 그러다가 그 망할 호기심을 못 이겨, 나도 모르게 실트를 눌렀다.
#빛날윤_윤솔아_보고싶었어
[원래 퍼라에 윤솔이가 있었어야 되는데…….]
[해원이가 싫은 건 아닌데 퍼라는 데뷔 조로 만들었어야 더 의미가 있긴 해]
[조작멤 뺀 소년들 보고 싶다ㅠㅠㅠㅠㅠ]
[애초에 퍼라가 조작멤 뺀 소년들 아냐? 그분이 눈치 없이 들어간 거지ㅎ]
[X발 팬들 무서워서 이름도 못 말하겠네 아니 악편이고 뭐고 그냥 싫은데 어떡하라고 데뷔 조가 아니잖아]
예상하던 반응인데, 실제로 보니까 속이 쓰리다.
역시 우리 햇살이들 있는 X버스만 봐야겠다. 나는 X버스 앱을 켜고 햇살이들이 소소하게 공유해 주는 일상들을 구경하며 힐링을 했다.
이제 진짜 리허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잠깐이라도 잘까 고민하는데 문이 열리고 봉투를 든 안주원이 들어왔다.
“해원아, 밥 안 먹었지?”
“어떻게 알았어?”
“답이 없어서. 급한 대로 이거라도 먹을래?”
“오, 감사합니다.”
봉투를 열어보니 편의점에서 사 온 샌드위치였다. 나는 신이 나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물었다.
“뭘 그렇게 오래 찍었어?”
“그냥 별의별 걸 다 찍더라. 지운인 아직도 찍고 있어.”
“뭘 이렇게 많이 찍어, 무대 한 번 하는걸.”
“그러니까.”
무대가 한 번이 아니게 되려나. 아, 무대 하나도 이렇게 X나 배가 아픈데 어떡하지.
나는 왠지 골치가 지끈거렸지만 일단 배가 심하게 고팠기 때문에 샌드위치부터 입에 넣었다. 안주원이 말을 이었다.
“그래도 윤솔이 웃는 거 보니까 좋더라. 걔도 2년 내내 진짜 고생한 모양이더라고.”
“어, 뭐 전 소속사랑 소송한다며.”
“응, 이래저래 고생 많이 했지.”
“그치.”
어쨌든 저 멤버들은 대중의 선택을 받았다는 게, 자꾸 신경이 쓰인다. 나는 아니었으니까.
퍼스트라이트로 활동하는 게 정말로 행복하지만, 그 사실을 극복하는 건 어려울 것 같다.
그렇게 오늘따라 유난히 마음이 쪼잔해서인지, 결국 나는 체했다.
* * *
나는 먹은 걸 다 토하고, 약을 먹고 나서 민간요법으로 스타일리스트 이예영이 가지고 있던 바늘로 손을 따준 후에야 어느 정도 진정했다. 안주원이 미안해하며 말했다.
“내가 잘못 사 왔나 봐.”
“뭐래, 신경 써주고 그런 말 하지 마. 불편하게.”
“아, 그러네. 미안.”
“리허설 하고 와서 자면 괜찮아.”
새벽 네 시부터 퍼스트라이트와 소년들의 리허설이 있었다.
나는 체기 때문에 표정 관리가 어려워서 나는 계속 검은색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다.
지금 리허설을 하고, 오후에 퍼스트라이트의 인트로 사전 녹화가 있다. 그리고 내일 오전 여덟 시부터 다시 런스루 리허설과 레드카펫.
그 스케줄을 버티려면 중간중간 호텔로 돌아가 쉬면서 컨디션이 나아지기를 기대해 봐야겠다.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 대기실에서 마지막으로 안무 디테일을 확인하다가, 내가 황새벽에게 말했다.
“새벽아, 여기 박자 틀렸어.”
“아, 그러네.”
“전날인데 틀리면 어떡하냐.”
무대가 많아서 어쩔 수 없었겠지만…….
내 목소리를 들은 황새벽이 말했다.
“근데 너 목소리 맛 갔는데.”
“아이씨. 계속 토해가지고.”
“너 어떡하냐.”
“이제 말 안 하려고.”
나는 말하며 다시 마스크를 썼다.
그사이에도 ‘소년들’의 비하인드 때문에 멤버들이 바빴다. 아무래도 이번 뮤직어워드를 기준으로 비하인드만 열 편쯤은 찍어가려는 모양이다. 지독하다, 지독해.
멤버의 7분의 6이 없으니, 우리 비하인드는 찍는 것이 불가능했다. 할 일이 없어진 내가 소파에 앉아 있으니 댄스팀 장지영 팀장이 나에게 물었다.
“해원아, 컨디션 괜찮겠어?”
“저 몸 무거워 보여요?”
“아니, 그건 아닌데.”
“그럼 괜찮아요.”
어휴, 이게 무슨 민폐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다행히 대기실을 나와 공연장에 들어설 때는 흥분감으로 컨디션이 확 올라왔다.
“이야, 뭐야? 무대 진짜 커.”
나는 무대를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시안게임 주 경기장이었다고 들었는데, 지금까지 가본 무대 중에 제일 컸다.
갑자기 아드레날린이 쫙 올라와서 내가 신나 하니까 장지영 팀장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너는 진짜 무대 안 서면 오래 못 살겠다. 어떻게 그렇게 무대 보자마자 표정이 확 바뀌냐.”
“이 무대를 보고 어떻게 안 신나요. 이렇게 큰데요?”
나는 말하며 객석 쪽을 돌아보았다.
저기 사람으로 꽉 찰 거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겁과 긴장이 사라진다.
곧 소년들의 리허설이 먼저 시작되어, 나는 객석 쪽에 앉아 무대를 구경했다. 황새벽이 안무로는 나한테 까였어도, 한국에서부터 자기 몸보다 소중하게 모셔 온 일렉 기타를 연주하는 장면은 솔직히 멋있었다.
소년들 무대가 끝나고도 위에서 다시 비하인드 촬영이 이어져, 내가 객석에 앉아 하염없이 스탠바이 중일 때 누군가가 옆에 털썩 앉아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네, 안…… 어. 어!”
여기 있으니 당연히 스태프이려니, 하고 인사하던 나는 말을 하다 말고 도중에 벌떡 일어났다. 옆에 앉은 건 내가 아이돌이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게 한 롤모델, 빅 블루의 이준희였다.
“와, 우와, 뭐야.”
나는 급하게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그렇게 내뱉은 후였다. 이준희가 어이없는지 말했다.
“10년 선배한테 ‘뭐야’는 좀 그렇지.”
엇, X발 X 됐다.
그래도 솔직히 최애를 보고 욕 안 나온 게 다행이지 않나 싶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