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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75화 (75/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75화

나는 다시 앉으려다가 그냥 서서 말했다.

“아, 죄송해요, 형…… 선배……님.”

“그냥 형이라고 해요.”

“진짜요? 와. 와!”

내가 말을 못 하고 ‘와’, ‘와’만 하고 있으니 빅 블루 이준희가 말했다.

“왜 서 있어요, 앉아요.”

“어, 네. 와……. 아, 죄송해요. ‘와’ 그만할게요.”

나는 최대한 진정하고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내가 너무 큰 소리를 냈나 싶어서 무대 쪽을 보니 예상대로 남의 회사 비하인드 카메라에 낯가리던 퍼스트라이트 멤버 몇이 내 쪽을 보고 있었다.

나는 이제 그쪽에 관심이 사라져서 한번 파이팅해 주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준희가 물었다.

“내 팬이라면서요?”

“어떻게 아세요?”

“X이앱 할 때, 팬들이 알려주더라고.”

“아, 진짜요?”

“근데 반응 보니까 진짜 팬이구나, 싶네.”

내 반응이 누가 봐도 찐팬이었는지 이준희가 하하 웃었다. 그제야 나도 긴장이 좀 풀린다. 나는 꾸벅 숙이고 말했다.

“‘뭐야’라고 해서 죄송해요.”

“괜찮아, 욕 안 한 게 어디야.”

“진짜 나올 뻔했어요.”

“응, 팬 맞네.”

이준희는 여유 있게 말하고 푸른색이 도는 정장 바지 차림의 다리를 꼬았다. 크, 실물 X나 잘생겼다. 역시 미니시리즈 주연감이다. 근데 연기 그만하고 앨범 좀…….

이라는 내 속마음이 들리기라도 한 것처럼, 이준희가 대뜸 말했다.

“곡이 없어.”

“네?”

“우리요, 회사에 곡이 없어.”

“……많을걸요?”

“회사가 우리가 개인 활동하는 걸 더 좋아해서, 자꾸 없대요.”

“아, X다피…… 아, 진짜, 진짜 죄송해요.”

빅 블루가 전 소속사와의 계약을 마치고, 새롭게 계약한 회사 폼다피 엔터는 일을 많이 X같이 해서 팬들이 다들 X다피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팀 활동은 엉망이어도 개인 활동은 더없이 잘 케어해 주니까 빅 블루가 X다피…… 아니, 폼다피를 선택한 이유는 알겠다.

나는 수습할 수 없는 말실수 때문에 고개를 못 들고, 이준희는 팔걸이에 팔꿈치를 댄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웃었다.

“와, 그거 소리 내서 처음 듣는다.”

“제가 미쳤나 봐요…….”

“괜찮아. 못 들은 걸로 할게. 팬들이 그렇게 말하는 거 충분히 이해하니까.”

군백기를 포함했다고 해도 4년 동안 앨범이 단 한 개도 나오지 않았다. 솔직히 팬들 입장에서는 소속사가 꼴 보기 싫을 수밖에 없다. 막내인 이준희까지 제대하고 1년이 되어가는데도 여전히 소식이 없다.

오늘도 MC라서 온 거지, 무대를 하는 건 아니었다.

이준희가 내 쪽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남는 곡 있으면 줘요.”

“……네?”

“바쁜 거 아니까, 재촉하는 건 아니고.”

“……제가요? 빅 블루한테 곡을 드려요?”

“팬이면 우리 색깔 잘 알 거 아니에요.”

“그쵸, 근데 제가요. 빅 블루 곡을요?”

“응. 부탁 좀 할게요.”

나는 말이 안 나와서 입을 못 다물었다. 잠시 컨디션이 안 좋다는 것도 잊어버렸다.

빅 블루는 앨범이 안 나온 지 4년이 되긴 했지만, 여전히 앨범이 나왔을 때 실시간 차트 1위로 진입할 수 있고, 일간 차트에 음원을 꽂아 넣을 가능성이 아주 높은 몇 안 되는 남자 아이돌 그룹 중 한 팀이다.

음원도 음원이지만, 앨범 판매량도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내가 거기 곡을……?

이준희가 말했다.

“4년 정도 무대를 안 하니까, 점점 더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멤버들이랑 맨날 우리 뭉쳐야지, 얘기만 하고 실제로 진행이 안 되네.”

“……아.”

“그러다 ‘더 라이징’을 봤는데, 간만에 멤버들이 진짜로 흥분하더라구요. 특히 흔적이랑 마태오가…….”

이준희가 말을 잇기 전에 내가 빨리 핸드폰 메모장을 켜고 말했다.

“잠시만요. 그니까, 흔적이나 마태오 같은 거요?”

나는 빅 블루의 팬이기 때문에, 이 팀에 대해서 잘 알았다. 내가 팬인 팀에게 곡을 주는 건 심장이 멎는 기분이 들 만큼 압박되는 일이지만, 반대로 유리하다.

겁이 난다고 이 기회를 날리는 짓? 안 한다.

이준희가 곧바로 덤벼드는 날 보며 픽 웃고 대답했다.

“같이 한번 회의하죠. 회사끼리 조율해서.”

“저, 일정은…….”

“일정 못 잡았어요. 솔직히 말하면, 나랑 민하 형 빼고는 앨범 낼 생각들도 없어 보이고.”

그럴 만하다. 멤버들 모두가 연기, 예능, 솔로로 미친 듯이 잘나가고 있으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데, 이준희가 말을 이었다.

“근데 곡이 좋으면 바로 모여. 장담하는데.”

워후. X나 부담스럽고, X나 좋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비하인드 촬영을 마치고, 퍼스트라이트 차례라 내가 일어나며 말했다.

“아, 근데 형. 진짜 형 만나면 꼭 하고 싶은 말 있었는데요.”

“응. 뭐예요?”

“제발 셀카 좀 잘 좀 찍어주시면 안 돼요?”

“……아.”

“손 30도 정도 올리는 거 안 어렵잖아요……. 형은 너무 간절함이 없어요.”

“……네.”

왜 잘생긴 것들은 셀카에 간절함이 없는지 모르겠다.

조금이라도 더 예쁘고 귀엽게 나올 생각을 해야지, 아이돌이 돼서 어? 원래 잘난 얼굴에 헤메 세팅까지 다 한 얼굴을 그렇게 찍으면, 어? 포카를 확인하고 내 최애인데 왜 안 기쁘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잖아? 하, 생각하니 빡치네.

나의 빡침이 많이 드러났는지, 이준희가 두 손을 모아서 비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이제 팔 올릴게, 30도.”

“네, 제발요.”

히히, 다행히 10년 선배를 보고 ‘뭐야’라고 하고 소속사를 ‘X다피’라고 부른 건 셀카 비난으로 묻혔다. 어쩔 수 없지 않나. 아이돌은 팬에게 이길 수 없다. 나도 아마 햇살이들과는 세상 무슨 대결을 해도 못 이길 거다.

나는 일정을 잡기 위해 이준희와 번호를 교환한 후, 리허설을 위해 무대로 올라갔다.

* * *

리허설이 끝나고, 오후에 인트로 사전 녹화를 마친 후에 나는 호텔로 돌아와 드러누웠다. 내일 여덟 시부터 런스루 리허설이니까 서너 시에 일어나야 할 것 같다.

어떻게 꾸역꾸역 하루를 보내고, 호텔에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쓰러졌다. 같이 먹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소화제와 진통제를 다 때려먹고 자려는데 멤버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해원이 형, 아프다며?”

“아니, 일은 우리가 더 많이 했는데 왜 지가 아퍼.”

어우, 피곤해. 시끄러워…….

나는 괴로워했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멤버들이 와서 여기저기 자리 잡고 앉았다. 신지운이 우리 방을 보며 말했다.

“여기 간이침대 하나 더 놓을 수 있겠는데.”

“제발 좀 꺼져…….”

“아, 나 진짜 혼자 자기 싫어.”

“그럼 나랑 방 바꾸자. 앓게.”

“아프다며, 어떻게 될 줄 알고 혼자 자.”

민지호가 우리 이야기를 듣더니 말했다.

“이번에 룸메들 다 컨셉이 확실하네. 나랑 선재는 구 룸메즈고, 저기는 어사(어색한 사이)즈고, 여기는 그라데이션즈.”

그러자 한효석이 말했다.

“나 새벽이 형이랑 안 어색해.”

그러자 황새벽이 대답했다.

“효석아, 우리 어색해.”

“……네.”

한효석이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게 웃겨서 나는 이불 속에서 낄낄거리고 웃었다.

“아, 진짜 모여 있는 거 드럽게 좋아해.”

내 말에 내 침대에 올라와 옆에 드러누워 있던 박선재가 말했다.

“형이 제일 좋아하잖아.”

“아니라니까…….”

나는 말한 후 하품을 하고 멤버들이 떠드는 가운데 잠이 들었다.

그렇게 잠들었다가 일어났을 때. 나는 어이가 없어서 중얼거렸다.

“……뭐 하는 것들이야, 이건.”

굳이 좋은 방 놔두고, 일곱 명이 우리 방에서 끼어 자고 있다. 내 침대에서 박선재가 자고, 안주원 침대에서 셋, 소파에서 하나, 바닥에 패딩과 담요를 깔고 하나. 가뜩이나 덩치들도 큰 놈들이 한 방에 모여 저러고 자고 있다.

왜 저러나 싶으면서 은근 좀 좋기도 하고…….

“아아아아. 오.”

소리를 내보니 목 컨디션도 돌아왔다.

“아, 나 오늘 컨디션 좋은데? 얘들아, 시상식 가자.”

나는 말하며 멤버들을 깨웠다.

나 혼자 푹 자서인지, 내 컨디션이 오히려 제일 좋아 보였다.

그렇게 멤버들을 깨우고 있을 때, TRV 직원에게서 연락이 왔다.

[매니지먼트 팀 황수정 과장님 : 해원 씨! 팀 반지 완성돼서 지금 들고 가고 있어요]

어? 무슨 옆집에 반지 가져다주듯이?

[자카르타에 오신다구요?]

[매니지먼트 팀 황수정 과장님 : 네! 예영 씨한테 말했으니까, 오늘 레드카펫부터 끼시면 될 것 같아요.]

나는 어이없음과 고마움을 느끼며 흐흐 웃었다.

[아니, 그거 한국 돌아가서 끼면 되지, 여기까지 배송을……. 감사하긴 한데요…….]

이게 무슨 돈지랄이냐고 물으려는데, 황수정 과장이 답을 보냈다.

[멤버분들이 오늘 ‘더 킹’ 공연에도 꼭 끼고 올라가고 싶다고 하셔서요. 확실히 그게 보기 좋기도 하잖아요?]

“…….”

내가 소외당해서 우울한 티를 드럽게 많이 냈나 보다. 슬슬 좀 쪽팔리기 시작한다.

* * *

[브엠뮤 레카 시작했다]

[자카르타 오늘 날씨 좋네 난 추워 디지겠는데]

[아 여행 가고 싶다ㅠㅠ]

[오늘 드레스코드 있나? 다들 흰색이네]

[↳그냥 검은색 더워 보여서 아닐까ㅋㅋㅋㅋ]

[퍼라 나왔어? 팬은 아닌데 그냥 얼굴 보고 싶어서ㅎㅎ]

[↳나도 퍼라 내돌 아닌데 그냥 얼굴 보는 재미가 있어]

[↳퍼라가 진짜 하나같이 잘생김]

[퍼라 나왔다]

[헉 X발]

[개쎄고 개잘생겼다]

[드레스코드 없구나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체로 흰색으로 맞춘 팀들 사이에, 유일하게 검은색 의상을 입은 퍼스트라이트가 레드카펫에 등장했다.

레드카펫 MC가 진행을 이어갔다.

“사진 촬영 먼저 부탁드리겠습니다. 포즈 한번 취해주시겠어요?”

[현장 환호 뭐야ㄷㄷㄷㄷㄷ 퍼라가 이 정도로 팬 많을 초동이 아니지 않아?]

[↳그냥 퍼라 실물 보면 저 소리 나와ㅎㅎ]

[↳쟤네가 어떻게 한 팀이야 사기 아니냐ㅋㅋㅋㅋㅋㅋ]

[↳↳진짜 서바 출신이라 가능한 얼굴…….]

그 후 언제나처럼 정해원이 마이크를 받아 대신 인터뷰를 이어갔다. 그리고 다 끝났나, 싶을 때, 레드카펫 MC가 말했다.

“혹시 오늘 레드카펫 의상에 포인트가 있을까요?”

그러자 웬일로 황새벽이 마이크를 달라고 손짓했다. 그래서 정해원이 마이크를 건네주자 황새벽이 말했다.

“저희가 팀반지를 맞췄는데요, 이번 VMC 뮤직어워드에서 처음으로 이 팀반지를 무대에서 보여드리게 되었습니다.”

“아, 팀반지를! 한번 보여주시겠어요?”

그 말에 멤버들이 오른손을 올려 약지에 팀반지를 보여주었다.

[아니 미친 우리 애들 팀반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뭐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오늘 소년들 무대에 저거 끼고 올라가나봐ㅠㅠㅠㅠㅠ]

[팀반지 더 자세히 못 보나? 너무 이쁘다]

[공방 인스타에 올라온듯!]

[연남 반지 공방 ‘크리스마스 크래커’ : 퍼스트라이트 팀반지입니다. 멤버분들 아이디어를 통해, 주얼리 캐드로 도안이 제작되었어요. 변색 되지 않고, 부식되지 않을 플래티넘과 참 잘 어울리는 팀이네요^^]

[백금 반지 예쁘다]

[역시 미대생 보유 그룹…….]

[퍼스트라이트 서바 그룹인데도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뭔가 점점 단단한 느낌이 있어]

[↳나도 요즘 이거 느낌]

[오늘 퍼라 무대 뭐할까?]

[맑은 날 예상]

[↳맑은 날 부르면 햇살이 운다ㅠㅠㅠㅠㅠ]

[↳근데 맑은 날은 콘서트 직전이라 안 할 듯. 콘서트 세트리스트에 백퍼 있을 거라]

[↳↳나도 이쪽]

[↳↳콘서트 광탈은……. 그저 블레 빨리 내라고 TRV를 쪼아야겠다…….]

[아무래도 ‘불을 켜’ 하겠지]

[↳그치 불을 켜+아침만 기다렸어 할 듯]

[↳이거겠지?]

잠시 후, 뮤직어워드가 시작되고, 퍼스트라이트는 상당히 이른 순서로 무대에 올랐다.

[오 퍼라네]

[어? ㅅㅂ 마태오야?]

[아니 미친 마태오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중파 경연 우승곡을 여기다 꽂아 버린다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VMC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화제 되는 건 좋아도 X나 배아프겠는데ㅋㅋㅋㅋㅋㅋㅋㅋ]

[자기네 서바는 망했는데 타방송국에서 잘 된 서바곡을……. ㅋㅋㅋㅋㅋㅋㅋㅋ]

VMC의 가장 큰 대축제에서, 타 방송국 경연 우승곡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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