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78화 (78/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78화

콘서트 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세트리스트를 체크하고, 목을 풀다가 나는 멤버들과 눈이 마주쳤다. 멤버들도 각자 자주 헷갈리던 안무를 외우거나, 목을 풀던 중이었다.

온몸을 뭔가로 꽉 감아 놓은 것 같던 긴장이 그제야 좀 풀려서 흐흐 웃었다. 멤버들도 나와 비슷한지 다들 실없이 웃다가, 안주원이 나에게 물었다.

“우리 몇 년 차 정도 되면 안 떨릴까.”

“10년이 지나도 떨리겠지만, 내일만 돼도 오늘만큼은 안 떨릴 거야.”

내 대답에 박선재가 투덜거렸다.

“마음이 반 정도만 놓이는 말이네.”

그 말에 우리는 다시 한번 실실 웃었다. 황새벽이 리더답게 멤버들을 불러 모으고 뒤는 언제나처럼 민지호에게 떠넘겼다.

“지호, 오늘도 구호 할래?”

“난 내일 하고 싶어! 그동안 누가 제일 안 했지?”

“효식이.”

막내라고 꽤 많이 불려 나왔던 박선재의 말에 한효석이 ‘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할게요.”

그리고 호응해 주는 멤버들과 함께 손을 모은 후 입을 열었다.

“첫 콘서트라고 진 다 빼지 말고, 내일도 햇살이들 만나야 하니까 체력 관리해 주세요.”

“어, 맞는 말이네. 그러자.”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하자 한효석이 말을 이었다.

“제가 완전 애기 때요. 누나 따라서 발레를 배우러 간 첫날에, 플리에와 탄듀를 배웠어요. 그 이후에 어떤 동작을 배워도 결국 제일 중요한 건 첫날 배운 그거더라구요. 그러니까 오늘 이 콘서트에서 오늘 배우는 게, 우리가 마지막 콘서트를 하는 날에도 가장 중요한 것들일 거예요.”

‘너 안 시켰으면 어떡할 뻔했냐’는 농담이 떠올랐다가 입 밖으로 나가지 않고 사라졌다. 나머지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대신 내가 되게 멋있는 놈과 팀을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프로가 되려면 첫날 집중해야 하니까요, 첫날 배울 수 있는 걸 다 배웁시다.”

“녜에, 션섕님.”

민지호가 혀 짧은 소리로 대답하자 멤버들이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한효석도 같이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끝내나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응, 그런 거 같았어.”

“그럼 구호하겠습니다. 서드 세컨.”

“퍼스트!”

“고!”

“가쟈, 가쟈.”

“무대 뿌시러 가쟈.”

다들 혀 짧은 소리가 전염돼서 가쟈, 가쟈거리며 대기실을 나왔다. 등짝은 태평양만 한 것들이 가쟈 이 X랄 하는 게 살짝 어이없었지만 왠지 나도 하고 있다. 허허. 원래 나쁜 건 빨리 배운다…….

나는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 공연장으로 향하는 문에 붙여둔 포스터를 보았다.

[THE FIRST : 첫 번째 밤]

콘서트 첫 번째 곡으로 뭘 할까, 정말 많이 고민하며 싸웠다. 그렇게 싸우다가 결정된 건 퍼스트라이트 디지털 싱글, 내가 처음 합류한 첫 번째 활동곡 ‘불을 켜’였다.

다시 들어보니 내 기억보다는 퀄리티가 괜찮았다. 물론 콘서트 편곡은 완전 다른 세상 이야기였지만……. 첫 곡이다 보니 양이형과 진짜 몇 날 며칠 ‘불을 켜’ 한 곡만 수없이 들으며 고민했다.

다행히 사운드에 죽을힘까지 쏟아부었던 오프닝에 소리에 팬들의 환호가 섞였다. 나는 멤버들과 무대로 올라가기 전에 한 번 더 눈을 마주쳤다.

‘소리 미쳤다.’

온전히 우리만을 기다리는 팬들이라는 게, 목소리에서 느껴졌다. 나는 헤드마이크를 햇살이들이 있는 방향으로 조금 꺾었다. 목소리가 인이어로 들어오니 심장이 펑 터질 것 같았다.

어오씨, 공연도 하기 전에 울면 안 되는데.

나는 이를 꽉 물고 타이밍에 맞춰 무대로 향했다.

공연장이 작아서 좋은 건, 팬들의 얼굴이 너무나 잘 보인다는 것이다. 시력이 갑자기 엄청나게 좋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저 맨 뒤에 있는 팬들까지 다 보였다.

“해원아! 해원아!”

내가 선 곳 근처의 팬들이 내 이름을 부르며 울었다. 나와 같은 기분이 드는 거려나. 벅차서 우는 거라면 다행인데.

벌써부터 다음 콘서트는 더 큰 곳에서 하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그다음에는 더 큰 곳. 그리고 더 큰 곳에서.

오고 싶은 팬은 전부 들어올 수 있고, 민지호나 박선재처럼 상상력 풍부한 녀석들이 꿈꾸는 것들을 전부 무대에 올릴 수 있는. 그런 콘서트.

그리고 한효석의 말대로, 오늘 공연에서 배우는 것들이 우리에게 평생 남아줄 것이다.

* * *

정해원이 있는 곳 근처의 팬들은 냅다 이름을 부르거나,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울고 있었다.

지금은 정해원의 팬이든 아니든,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든 아니든 울컥하는 감정이 들었다. 재계약도 잘했고, 방에서도 잘 나와서 멤버들과 웃으며 잘 지내고 있었다. 분명히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런 감정이 들었다.

왠지 정해원이 무대에 서 있는 이 순간이 오래 가지 않을 것만 같은 불안감이 그 감정 중 하나였다.

조명은 눈이 시릴 정도로 밝았고, 멤버들의 새하얀 무대의상을 빛나 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멤버들은 한동안 자기 자리에 서 있었고, 정해원 역시 자리에 서 있다가 팬들 쪽을 보았다. 그러더니 우는 팬 쪽을 보며 검지로 눈물을 훑어내는 시늉을 하며 웃었다. 울지 말라는 손짓이었다.

그리고 동선이 변하며 정해원이 자리를 이동했다.

무대는 1집 미니 타이틀곡. 퍼스트라이트의 데뷔곡으로 넘어갔다.

‘0500’

[저 햇살은 우주로부터]

그 가사에 팬들이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원래 가사가 ‘저 태양은 우주로부터’이던 것을 바꾼 것이었다.

팬들은 이 세트리스트에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정해원이 합류한 직후의 곡을 첫 곡, 그리고 퍼스트라이트의 첫 번째 곡을 두 번째로. 이건 퍼스트라이트의 진짜 첫 번째 곡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순서였다.

두 곡이 끝나고 첫 번째 VCR이 이어졌다. 멤버들의 오디션 영상이었다.

‘황새벽입니다. 열다섯 살이구요.’

‘안녕하세요, 정해원입니다. 저는 열다섯 살이요.’

‘안주원이구요, 미술을 좋아합니다.’

‘이름요? 거기 쓰여 있잖아요?’

‘중앙예술학교 2학년 발레 전공 한효석입니다.’

‘민지호요! 민! 지! 호!’

그리고 마지막으로 박선재는 고개를 숙여서 인사하고 어른들을 보며 머뭇머뭇거리다가 준비해 온 동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팬들은 웃고, 무대 아래서 그걸 보던 멤버들도 웃었다. 박선재는 한숨을 쉬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아니, 저걸 몇 번을 봐야 돼…….”

이어서 일곱 명의 멤버가 기차를 타고 있는 장면으로 연결되었다. 기차의 창밖으로 밤하늘이 지나갔다. 무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던 멤버들은 어느 순간 창밖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박선재가 있는 쪽으로 모여왔다.

그리고 한글과 영어 자막이 동시에 지나갔다.

[그것은 첫 번째 낮이었다.]

화면은 점점 밝아지고, 멤버들은 하나둘 기차에서 내리며 하늘에 뜬 태양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지금까지 우리가 지나온 시간을 밤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단 한 번이라도 태양이 뜬다면]

[밤이 아무리 길다 하여도]

공연장의 불이 꺼졌다가, 다시 들어왔다. 무대 위에 가면을 쓴 두 명의 멤버가 있고,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민지호는 단상 위에, 한효석은 그 아래 기대 놓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둘이 동시에 가면을 벗고, 민지호가 오토튠이 들어간 나레이션을 시작하며 단상에서 뛰어 내렸다.

[아아- 빌런의 승리입니다. 지구는 멸망합니다. 히어로는 패배했습니다.]

[반복합니다. 지구는 멸망했습니다. 히어로는 패배했습니다.]

VCR이 나오는 동안 잠잠해졌던 팬들의 함성이 다시 커졌다. 가면을 쓴 댄서들이 쏟아져 들어와 무대 위에서 날뛰는 민지호를 따라 달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동선을 이동해 한효석을 센터로 두고 다이아몬드 형태로 섰다.

[How’s it going 히어로들. 오늘 하루 힘들었지? 지구를 지키는 모습 잘 봤어.]

[빌런이 하나라면 힘들었겠지. 우린 둘이지만.]

고개를 한쪽으로 까딱거리며 절제된 동작으로 안무를 시작했다. 민지호의 파트는 동선이 바뀌고, 한효석의 파트는 다시 절제. 안무가 교차로 이어지는 사이 댄서들과 민지호는 스폰지 공이 든 장난감 총을 쏘며 무대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민지호가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뛰어다니니 오히려 절제된 한효석이 더 이상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리고 후렴에서 두 사람이 같은 안무를 시작했다.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장르의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지만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두 명의 빌런 하나의 세계 우리의 승리야]

[밤은 우리의 시간 더 이상 태양은 안 떠]

* * *

예상대로 투 빌런즈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무대 아래서 의상을 교체하며 듣고만 있어도 난리가 났다는 게 느껴졌다.

원래 세트리스트에서 이 무대는 한참 뒤에 다른 유닛 곡들과 묶여 있었다. 그런데 그걸 연출 PD가 과감하게 앞으로 빼버렸다. 전체적인 스토리 때문이었다.

그건 좋은 생각이었다고 생각했다. 팬들의 환호에 심장이 쿵쿵거린다.

무대가 끝나자마자 우리는 다시 무대에 올라갔고, 미니 1, 2집에 수록곡을 하나씩 불렀다. 내내 바닥에 다 못 치운 스펀지 공이 굴러다녀서 우리는 무대 중간에 몇 번이나 터지려는 웃음을 참아야 했다.

그렇게 다섯 개의 무대가 끝나고, 우리는 드디어 토크를 시작했다.

체력 분배는 대실패였다. 이미 앞의 무대에서 모두가 에너지를 미친 듯이 쏟아부었다. 뭐, 그것도 괜찮은 것 같다. 뒤는 산소호흡기를 믿기로 했다.

모처럼 황새벽이 마이크를 잡고 인사를 한 후 바로 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입을 열었다.

“그럼 한 명씩 인사를 할까요?”

내 말에 서 있는 순서대로 인사를 했다. 그리고 다시 내 차례로 돌아와서 나도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퍼스트라이트 해원입니다.”

내가 인사할 때도, 다른 멤버들이 인사할 때만큼 햇살이들이 환호를 해줬다.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앞선 무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민지호가 날 빤히 보고 있어서 말했다.

“자, 그럼 넘어갈…….”

“아, 투 빌런즈 얘기 해조오!”

우리가 계속 모른 척하니까 민지호가 칭얼거렸다. 햇살이들도 멤버들도 웃고, 내가 햇살이들에게 물었다.

“투 빌런즈 진짜 광기였죠? 너무 멋있어.”

그 말에 햇살이들이 환호해주니 빌런즈의 입꼬리가 씰룩씰룩거렸다. 실컷 투 빌런즈를 칭찬해주고 나서, 신지운이 모처럼 진행을 이어받았다.

“무대 이야기는 이만큼 하고, 햇살이들이 정리해 줄 게 있어요. 우리끼리 얘기를 했는데, 인사할 때 너무 부연 설명이 없는 것 같아서요. 저는 일단 귀염둥이 강아지.”

“아, 또 시작이네.”

내 말에 신지운이 밀어서 나는 밀려나는 시늉을 하며 낄낄거렸다. 신지운이 말을 이었다.

“새벽이 형은 이미 뭐, 고양이에서 거북이화되고 있구요.”

“정해원 때문에 이제 햇살이들도 나 새부기라고 부르더라.”

“나는 민조!”

민지호가 손을 들며 소리치는 소리에 박선재와 한효석이 양옆에서 움찔하며 인이어를 만졌다. 성량이 거의 메보 성량이다. 신지운이 그쪽을 보며 말했다.

“막내는 뭐 불변의 곰돌이고.”

“어흥.”

“그건 곰 아니잖아?”

“곰 어떻게 소리 내? 크와아아앙?”

박선재가 내는 소리에 햇살이들이 귀여워서 웃음을 터뜨렸다. 박선재가 말했다.

“강아지는 민조가 강아지지. 효식이는 좀 도베르만 같고. 주원이 형은 그냥 잘생긴 사람.”

객석에서 다시 웃음이 터지고, 박선재가 날 보더니 말했다.

“해원이 형아는.”

“난 사람이야.”

“형은 소.”

“……으음?”

“소처럼 일하잖아.”

그 말에 멤버들도 팬들도 웃는다.

“소…… 소?”

내가 중얼거리고 있으니까 옆에서 안주원이 말했다.

“그럼 상서롭게 흰 소는 어때.”

“상서로워도 소잖아……. 아니, 애초에 왜 상서로워야 돼.”

“네가 우리한테 상서롭잖아.”

이 어이없는 말에 햇살이들이 의외로 감동을 받았다. 참나.

햇살이들이 좋아하니까 그냥 받아주기로 하고 일단 빨리 정리했다.

“그럼 일단 퍼스트라이트는 거북이, 곰돌이, 잘생긴 사람, 상서로운 동물 하나씩에 강아지 세 마리인 걸로 정리하고 넘어가죠?”

그렇게 빨리 넘어가려 했는데 신지운이 감동해서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날 보며 말했다.

“강아지 세 마리래…….”

그리고 멤버들도 감동적이라고 한마디씩 한다. 아휴, 평소엔 드럽게 내성적인 놈들이 팬들 앞에서는 말이 많아서 순서를 넘어가기가 어렵다.

어렵게 토크를 끝내고, 다시 VCR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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