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79화 (79/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79화

솔로 무대라는 걸 암시하는 두 번째 VCR이 끝나고, 무대에 프리해 보이는 옷을 입고 머리를 헝클어 놓은 황새벽이 스탠딩 마이크를 감싸 쥐고 서 있었다.

양손에는 팀 반지를 포함해 여러 개의 반지를 끼우고 있었다. 그 뒤에 서 있는 세션은 중학교 시절을 함께 한 밴드부원들이었다.

황새벽은 물고 있던 피크로, 아마 역사상 가장 유명할 얼터너티브 락의 기타 리프를 연주했다. 그리고 드럼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황새벽이 긁어서 내는 보컬이 공연장을 채웠다.

평소 도입부를 부르며 최대한 부드러운 발성을 뽑아내던 황새벽의 거친 목소리에 팬들이 비명을 질렀다.

‘우리 리더가 작정했구나…….’

팀에 섞여 있으려면 가장 잘하는 것만 할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콘서트의 솔로 무대에서 황새벽은 자기가 가장 잘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밴드 공연이 끝나고 모든 세션이 내려간 후 황새벽이 걸어가 무대에 남은 드럼 의자에 걸쳐져 있던 가죽 재킷을 입었다. 그리고 드럼 앞에 앉은 후, 안주원과 신지운이 무대로 올라왔다.

뜨겁던 조명이 차분해지고, 황새벽의 드럼 소리에 재즈가 얹어진 신곡이 들렸다.

‘free and clear’

모든 가사가 영어라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세 사람의 얼굴 합만으로 이미 팬들은 혼돈 상태였다. 기분 좋게 취해서 클럽에 막 들어서, 모든 음악이 완벽하게 느껴지는 듯한 상태였다. 황새벽의 드럼, 신지운의 저음의 딕션 좋은 랩, 안주원의 부드러운 보컬이 보고 있는 팬들을 몽환 상태로 밀어 넣었다.

‘나는 아무런 빚이 없어. 내가 성공하는 건 내 덕이지.’

반복되는 가사에서 어렴풋이, 성인이 되기까지 아직 두 주가 남은 이 05년생 두 사람이, 몇몇 어른들에게 부르는 가사라는 것은 팬들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팬들은 해외 곡 커버 무대도, 가사를 해석하면 안 될 것 같은 두 번째 무대도 콘서트 블루레이에 포함되지 않으리라는 걸 예상했기 때문에 최대한, 더 많이 눈에 눌러 담았다.

* * *

퍼스트라이트의 콘서트가 진행되고 있는 시간, TYT 공식 유튜브 채널에 VMC 뮤직어워드의 ‘소년들’ 비하인드가 올라왔다.

[와…… 퍼라 드럽게 재미없다]

[아니 재미고 뭐고 애들이 말을 안 하는데?]

브엠뮤 비하인드에 올라온 소년들 영상에서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은 거의 말을 안 하고 카메라와 낯을 가리고 있었다. 평소에 시끌시끌하던 민지호도 왠지 모르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멤버들에게 귓속말을 했다.

[왜 카메라 앞에서 귓속말을 하냐고ㅋㅋㅋㅋㅋㅋ]

[왜 저러냐 진짜]

슬슬 반응이 안 좋아지고 있을 때, 황새벽이 ‘어’하고 중얼거리며 소매를 감싸고 일어나더니 스태프들에게 말했다.

“저 잠시만 저희 대기실 좀 다녀올게요.”

그러자 멤버들이 슬쩍 일어나 우르르 황새벽을 따라 대기실로 돌아갔다. 그러자 대기실에서 작업 중이던 정해원이 맥북을 덮었다.

“형!

민지호가 달려가더니 카메라를 가리키며 말했다.

“카메라 있어.”

“응.”

정해원이 한 번 심호흡을 하고, 카메라 쪽을 보며 말했다.

“얘네가 이렇게 생겼지만 의외로 낯을 가려요.”

“난 저렇게 안 생겼어. 형이 나 귀엽다며.”

“귀여운데 무겁다.”

민지호가 등에 업히듯이 매달리자 정해원이 질질 끌어다가 소파에 내려놨다. 그사이 황새벽이 정해원의 가방을 집어 들었다.

“반창고 있지?”

“있긴 한데, 소년들 스태프분들한테 달라고 해.”

“……내가? 모르는 분들한테?”

“어, 쫌. 리더가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을 못 하면 되겠냐.”

잔소리가 지겨운지 황새벽이 정해원이 있는 쪽 귀를 손으로 막고, 필요한 것들이 정리되어 있는 가방에서 반창고를 꺼내 소매 부분에 긁힌 곳에 반창고를 붙였다.

[정해원 보부상이네]

[아니 반창고 붙이러 자기 대기실까지 갔냐고ㅋㅋㅋㅋㅋㅋㅋ]

[가오를 잡는 게 아니라 가리는 거였어……?]

[저 얼굴로 왜 저러는데……?]

[갑자기 오디오 막 물리네]

[퍼라 의외로 방구석 여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근데 진짜야]

[이렇게 보니까 퍼라 정해원 들어오고 라이징 분위기 된 거 좀 이해 간다 애들이 확 살아나네]

[근데 정작 정해원도 약간 카메라 불편해하는 듯]

[↳나도 이거 느꼈어 일단 멤버들이 대기실 들어가자마자 카메라 위치 다 알려주잖아]

[↳↳헉 나 이거 다시 보고 알았네]

[나 퍼라 팬 아니라 모르겠는데 정해원 멘탈 괜찮아?]

[↳팬들 있으면 괜찮은데 팬들 없을 땐 모르겠어]

[↳해원이한테 팬이 약간 만능치료제라 없을 땐 모르겠어222]

[↳↳아 팬 있어서 괜찮은 거야?]

[↳↳↳ㅇㅇ]

[↳↳↳나도 6인지지 할 땐 무대 공포증 컨셉인 줄 알았는데 퍼라 방송 보면 티 많이 나…… 그냥 본인이 너무 숨기고 싶어 해서 햇살이들도 말 안 하는 거지……]

* * *

황새벽과 05즈의 무대가 이어지는 사이, 무대 뒤에서 박선재가 정해원에게 말했다.

“형, 반응 엄청 좋아!”

“……어.”

너무 긴장해서 그 대답도 간신히 했다.

오늘 공연을 위해 모든 멤버가 바빴지만, 정해원 앞에서는 그런 말도 꺼낼 수도 없었다.

멤버들이 솔로 무대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맘대로 떠들면, 정해원이 그것을 취합해 연결할 방법을 찾고, 편곡했다.

뭘 던져도 해줄 거란 믿음이 있으니 해외 곡 커버를 하겠다느니, 자기 밴드부 친구들 데려오겠다는 의견이나, 어릴 때 해외 거주 기간이 있는 05 둘이 처음부터 끝까지 영어로 무대를 하겠다는 의견도 다 수용이 됐다.

박선재가 인이어 줄을 정리하며 말했다.

“형은 퍼스트라이트의 자유도야.”

그 말에 정해원이 박선재 쪽을 보더니 겨우 웃으며 말했다.

“언젠 잔소리 많이 한다며.”

“형들이 말을 안 들어서 그렇지. 난 아니구!”

박선재의 애교에 정해원이 이번에는 조금 더 시원하게 웃었다.

“네가 해달라는 것도 해외 곡 커버만큼 어려웠다고 하시더라, 막냉아.”

그건 그랬다. 박선재가 히히 웃었다.

이어서 콘서트용으로 편곡한 마태오 무대가 끝나고, 무대에 대한 이야기로 시끌시끌하던 멘트 이후 무대 앞에 흰 장막이 쳐졌다.

그 장막 위로 빔을 쏘아 올해의 활동기 하이라이트가 지나간 후, 장막이 내려갔다. 그사이 무대 위는 사랑스러운 장치들로 바뀌어 있었다.

크리스마스 장식들, 그리고 무대에 거대한 트리가 있었다.

‘엄청 큰 트리를 무대에 올리고 싶어!’

박선재가 원했던 무대 장치였다.

그 무대로 댄서들과 함께, 호두까기 인형의 세계 각국의 인형 춤을 모티브로 한효석과 민지호 그리고 정해원의 솔로 무대가 이어졌다. 무대 전체를 활용한 가벼운 동작들로, 강한 에너지로 강약을 조절하는 춤이었다.

마지막으로 박선재의 캐롤과 함께 세 멤버의 깜찍하기 짝이 없는 안무가 이어지자 넋을 잃고 있던 팬들의 웃음소리가 쏟아졌다. 좀 전의 압도적인 무대들을 생각하면 막내를 위한 재능 낭비였다. 멤버들은 지나친 깜찍함을 감당하지 못하고 모두 웃음이 터졌다.

* * *

나는 박선재에게 좀 더 어려운 곡을 추천했었다. 내가 우리 메보의 실력을 자랑하고 싶었으니까. 그랬더니 박선재가 자기는 그냥 팬들과 신나게 놀고 싶다고 했다. 팬들이 즐거워 어쩔 줄 모르는 걸 보니, 박선재가 맞았다.

멘트 후에 청량함이 넘치는 정규 1집 타이틀과 커플링 곡, 유닛 무대 등이 이어졌다.

나는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바닥에 쓰러져 누웠고, 스태프들이 급하게 산소호흡기를 가져다줬다. 나뿐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연출팀이 이렇게 빡세게 무대를 구성하면 아무리 좋을 나이여도 안 된다고 경고했는데, 우리가 한계를 경험하고 싶다고 밀어붙였다.

“멤버분들, 힘들어도 물 마셔요. 억지로라도!”

덕분에 무대 뒤는 아수라장이었다. 거의 꼼짝을 못 하는 멤버들에게 다음 무대의상을 갈아입히고, 물을 반 정도는 억지로 먹였다. 나도 혼몽한 상태로 물을 마시고 나서 벽에 머리를 기대고 있는 황새벽에게 말했다.

“잠깐이라도 누워.”

“……누우면 영원히 못 일어날 것 같아.”

황새벽의 애처로운 목소리에 멤버들이 웃자, 연출 스태프들이 감탄했다.

“와, 진짜 어린 게 최고긴 하다. 웃음이 나와요?”

“네!”

민지호가 대답하고 바로 힘들어하며 산소호흡기를 입으로 가져갔다. 신지운이 누워서 말했다.

“세트리스트 누가 짰어.”

그러자 옆에서 수건을 얼굴에 덮고 있던 안주원이 말했다.

“……너 포함 우리.”

그 말에 신지운이 짧게 욕을 뱉자, 옆에서 박선재가 말했다.

“지운이 형 1억.”

“언제 1억이 됐어.”

“몰라, 그냥 1억 내.”

하나 같이 정신이 없어 아무 말이나 내뱉는 사이에 VCR이 지나가고 있었다. 전공자라 체력으로는 우리 중 1등이던 한효석조차 모니터를 보며 중얼거렸다.

“……0.5배속 해주세요.”

그 말에 멤버들이 또 한바탕 낄낄거렸다. 웃음에는 확실히 체력 회복 효과가 있었다.

VCR에서 낮이 되었던 곳에 다시 밤이 찾아오고, 비가 쏟아지자 팬들이 환호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 무대를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편안하고, 따듯한 분위기의 니트, 또는 카디건을 입고 무대에 올라섰다.

* * *

예상대로 VCR이 끝나고, 팬송인 ‘맑은 날’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전주 후에 노래를 부르려는 순간 음악이 끊겼다.

멤버들이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조용한 공연장에 팬들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빗속을 오래 걸었어 맑은 날이 기억, 나지 않을 만큼.]

스크린에는 팬들의 메시지가 지나가고 있었다.

“아.”

“와, 뭐야.”

멤버들이 하나씩 스크린 쪽을 보고 자리에 앉아 메시지를 읽었다. 노래 중간중간 들리는, 팬들이 준비한 ‘맑은 날 응원법’을 집중해서 듣던 박선재가 말했다.

“우리가 햇살이들의 영원한 햇살이래.”

“아, 미치겠네…….”

황새벽이 메시지를 보며 중얼거리다가, 정해원 쪽을 보니 자리에 굳은 것처럼 서서 메시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크게 충격받은 모습에 팬들이 걱정하자, 신지운이 입 모양으로 ‘괜찮아’라고 말하며 모른 척해주기를 부탁했다.

정해원은 팬들의 메시지를 끝까지 읽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고 눈물을 참고 있었다. 민지호가 누가 봐도 눈이 빨개져서 말했다.

“근데 우리 이 상태로 맑은 날 어떻게 불러? 멤버들, 부를 수 있어?”

그 말에 안주원이 대답했다.

“햇살이들이랑 같이 부르면 부르지.”

“같이 불러주실걸요.”

한효석이 말하고 정해원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근데 작곡가님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어요.”

그 말에 정해원이 돌아서서 말했다.

“잠깐만, 30초만…….”

그렇게 말하며 웃으려다 말을 못 잇고 쪼그리고 앉아 울기 시작했다. 옆에서 멤버들이 자기들도 울다가, 냅다 정해원을 놀리기 시작했다.

“30초 가지고 되겠어?”

“아, 이 형 때문에 햇살이들 오늘 집에 늦게 가겠네.”

옆에서 한마디씩 건네자 정해원이 울다가 어깨를 들썩거리며 웃었다. 그리고 일으켜 주는 멤버들의 손을 잡고 바로 서서 크게 심호흡하더니 다시 눈물이 나서 한숨 쉬었다.

“아니, 왜 이런 선물은 줘가지고…….”

그러더니 스태프 쪽으로 손짓했다.

“그냥 시작해 주세요, 어차피 못 그칠 것 같은데.”

그 말에 멤버들과 팬들은 물론 스태프들까지 웃더니 맑은 날을 플레이했다. 멤버들은 울고 나서 한결 맑아진 표정과 목소리로 맑은 날을 불렀고, 팬들은 응원법을 했다. 정해원은 진짜로 못 부를 것 같았는지 알아서 자기 파트에 팬들 쪽으로 핸드마이크를 넘겼고, 팬들은 웃으며 정해원의 파트를 불러주었다.

* * *

마지막 곡은 국선아에서 처음으로 우리 7명이 한 팀이 되어 부른 노래, ‘별이 된다면’이었다.

우리는 콘서트 굿즈를 입고 객석 여기저기를 다니며 팬들과 인사를 했다. 나는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달려갔다.

우리 부모님은 과장 안 하고, 거의 콘서트 입장부터 세 시간 내내 울고 계셨다. 누나 부부가 왔으면 챙겨줬을 텐데, 임신 초기라 못 와서 영상 통화로 아쉬움을 대신했다. 영상 통화를 끊고 울었는지, 매형이 나에게 따로 연락해서 연애, 결혼을 포함해 누나가 우는 걸 처음 봤다고 했다. 왠지 미안했다.

내가 부모님 있는 곳까지 달려가서 탈수되니 물 마시라고 입 모양과 손짓을 하니까 부모님이 둘 다 오케이 표시를 하셨다. 그러더니 응원봉을 흔들며 ‘별이 된다면’을 부르고 응원법도 따라 하기 시작하셨다.

‘별이 된다면’은 내가 가장 악플을 많이 받았던 시기의 노래였다. 그런데도 그걸 다 외우고, 응원법까지 아신다는 게, 나는 미안하고 고마웠다.

그래도 지금은 행복해 보이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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