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80화
공연이 끝나고 우리는 대기실에 쓰러져 있었다. 숙소로 돌아갈 힘이 없어서, 내가 물었다.
“저희 그냥 여기서 자면 안 돼요?”
“진짜로…….”
옆에서 박선재가 맞장구치니까 스태프들이 농담인 줄 알고 웃었다. 진심인데……?
다행히 잠시 우리들만 남아 있을 수 있어서, 한동안 누워서 쉬었다. 민지호가 상체를 갑자기 일으키며 말했다.
“클났다. 콘서트 한 번밖에 안 남았어.”
힘들긴 한데, 내일이면 콘서트가 끝난다는 사실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한효석이 중얼거렸다.
“매일 하고 싶다.”
그때 팬들의 반응을 보려고 핸드폰을 확인하던 안주원이 말했다.
“아, 내일 눈 온대.”
“진짜? 햇살이들 어떡해?”
“왜 하필 콘서트 날 눈이 와.”
“……우리 요즘 중요한 날마다 눈 오지 않아요?”
한효석의 말에 잠깐 조용했다가, 안주원이 말했다.
“안 그래도 햇살이들이 그 얘기 한다. 중요한 날마다 눈 온다고.”
그 말에 잠시 멤버들이 숙연해졌다. 왠지 진짜로 미안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조용한 분위기를 바꾸려 황새벽이 말했다.
“안주원, 정해원. 벌칙 해.”
“맞다.”
나는 일단 몸을 일으키고 안주원에게 핸드폰을 맡겼다.
“서로 찍어주자.”
안주원이 핸드폰을 받으며 한숨을 쉬었다. 우리 둘은 아까 멘트 중간에 한 게임에서 졌기 때문에, 벌칙으로 ‘귀여운’ 사진을 찍기로 했다. 하여튼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이런 내기를 하는 걸 보면 다들 은근히 애교 부리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카메라를 보며 두 손으로 꽃받침을 하고 윙크를 하는 사진을 찍었다. 옆에서 멤버들이 투덜거렸다.
“저 형은 애교 부리는 걸 좋아해서 재미가 없어.”
“맞아, 싫어해야 재미있지.”
그러면서 멤버들이 안주원을 둘러쌌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히히 웃으며 말했다.
“나 따라 해도 봐줄게.”
“하…….”
안주원이 다시 한숨을 푹 쉬더니 날 따라서 꽃받침을 하려다가 괴로워하며 한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제야 멤버들이 좋아하며 낄낄거렸다.
* * *
@regular_1228, 이재희는 콘서트가 끝나고도 자리에 서서 한동안 감정을 추스르고 있었다. 이재희뿐만 아니라 많은 팬들이 공연장 근처를 바로 못 떠나고 배회하고 있었다.
“……뭐라도 먹을까?”
“응…….”
“그르자…….”
그렇게 알맹이 없는 대화를 하며 호텔에 돌아와 누웠다. 집까지 갈 체력이 없었기 때문에 호텔을 잡은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콘서트를 양일로 잡을 수 있었던 건, 그보다도 더더욱 다행이었다.
공연장 시야가 워낙 좋았기 때문에, 이벤트 메시지를 보던 정해원의 표정이 지나치게 잘 보였다. 그 표정이 마음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돌아와서 누워 체력을 가까스로 회복하고 나서, 친구가 말했다.
“프리미엄 포토가 실물만 못 하긴 하더라.”
“아니, 근데 팬 사인회나 공방 때랑은 또 다르네…….”
콘서트 무대용으로 빡세게 메이크업을 한 정해원은 또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은발 안 했으면 좋겠어…….”
“그치? 사람이 너무 위험해 보이더라…….”
이재희가 SNS나 커뮤니티를 찾아보니 다들 비슷한 반응이었다.
[오늘 은발 진짜 신 같더라 X나 신비로움]
[콘서트 끝나고 빨리 덮어야 돼……. 다른 여자 어쩌구…….]
[↳근데 그 얼굴로 이벤트 보고 펑펑 울더라ㅠㅠㅠㅠㅠ]
[↳제발 블레에 이벤트 안 짤리고 다 들어가야 되는데…… 아니면 비하인드로라도 남겨줘라 TRV 개놈들아ㅠㅠㅠㅠ]
[블레에 은발 포카 주겠지?]
[↳이거면 진짜ㅠㅠㅠㅠㅠㅠ]
[↳안 봐도 반포자이ㅎㅎ]
[후기 보니까 TRV 더 패야겠다 내가 못 갔으니까…….ㅎㅎ 근데 해원이 팬 만나면 진짜 잘 웃어요?]
[↳그냥 눈 마주치면 바로 애기처럼 웃어서 뽀로X에 빙의할 수 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근데 진짜로 이래요]
[오늘 콘서트 어땠어ㅠㅠㅠㅠ]
[↳미쳤어]
[↳오늘 심장 여러 번 털림……. 얘네를 한 팀에 놔도 되나 생태계 파괴아닌가…….]
[↳햇살이면 블레 사…… 꼭 사……. 난 경고했어……TRV 재고포비아라 블레도 X만큼 찍을듯]
[근데 이 셋리로 양일이 되나? 일반인이 저렇게 뛰면 대부분 기절하겠던데]
* * *
일요일, 퍼스트라이트 콘서트 둘째 날에는 정말로 눈이 펑펑 내렸다. 나는 평소에 눈을 좋아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나는 공연장에 일찌감치 왔다가 잠깐 허락을 받고 모자를 눌러쓰고 밖으로 나갔다. 길은 대충 봐도 엉망이고, 가까운 버스 정류장을 보니 다음 차가 42분 뒤에 온다고 쓰여 있었다. 눈 때문에 차가 빠르게 달릴 수가 없어 배차가 계속 밀리고 있었다.
나를 따라 나온 박선재가 말했다.
“햇살이들 잘 올 수 있나?”
“한번 물어봐. 고속도로 상황 괜찮은가.”
“그래야겠다.”
박선재가 배차 간격을 카메라로 찍고 X버스에 올렸다.
[막내 : 해원이 형이 도로 상황 걱정해서 같이 나와봤는데 배차 간격이ㅠㅠㅠㅠ 햇살이들 제시간에 올 수 있겠어요? 고속도로는 괜찮아요? 집 갈 때는 어떡해요?]
[↳걸어서라도 갈게ㅠㅠㅠㅠ]
[↳콘서트 해야 되는 애들이 왜 나왔어!!! 빨리 들어가!!!!!!]
[↳누나 자차다 지금 출발하면 어떻게든 가]
[↳↳햇살이 본새ㅋㅋㅋㅋㅋ]
[↳알아서 갈 테니까 좀 들어가!!!]
[↳그걸 너네가 왜 걱정해ㅠㅠㅠㅠㅠㅠ]
엄청 혼났다.
그래도 박희영과 함께 전국을 돌아다녀 본 입장에서 눈이 오니 걱정이 많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자리에 서서 잠시 교통상황을 확인하다가, 박선재와 함께 공연장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간절하게 기도해서인지, 다행히 눈이 그치고 온도도 영상으로 올라갔다. 이제 좀 마음이 놓였다.
2천 석밖에 안 되는데, 팬들 자리를 이틀 동안 뺏을 수 없다고 모든 멤버의 부모님들이 단합해서 안 오기로 하셨다. 그래서 둘째 날이자 마지막 날은 가족석도 없이 팬들로 꽉 채웠다.
나는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 누나에게 영상 통화를 했다.
“누나.”
-야, 콘서트나 해. 무슨 전화야.
“어휴, 누굴 닮아서 저러나 몰라.”
-너네 부모님이자 우리 부모님.
우리가 대화하는 동안 뒤에서 매형은 응원봉을 거의 반사적으로 흔들고 있었다.
“매형은 굿즈가 점점 늘어나네.”
-방금 전까지 콘서트 굿즈가 콘서트 전에 안 왔다고 엄청 시무룩해 있었어. 아니, 그러게 혼자라도 가라니까.
“……말이 돼? 임신 초긴데. 매형 오면 내가 가만 안 있지.”
-근가? 근데 또 팬이 그렇다고 첫 콘서트를 못 가는 것도 그렇잖아.
“그 형은 왜 이렇게까지 찐팬이야.”
-몰라. 난 처음에는 내가 좋아서 퍼라를 좋아하는 건 줄 알았는데, 요즘 보니까 그냥 팬이었어.
“에이.”
-넌 예의상 좋아하는 팀 노래 하루 종일 들을 수 있어? 난 없어.
그렇게 전화로 콘서트에 못 오는 아쉬움을 달래고, 전화를 끊었다.
그나저나 오늘도 백스테이지에 5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외국인이 있었다. 어제도 계셔서 우린 그냥 누군가의 친척인가보다, 하고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고 지나다녔다. 그런데 공연이 시작할 즈음, TRV의 A&R 박건훈이 멤버들에게 물었다.
“멤버분들, 혹시 백스테이지에서 외국인 한 분 못 봤어요?”
그러자 황새벽을 제외한 나머지가 대답했다.
“봤어요.”
“……누군지 안 궁금해요?”
“멤버 친척인가 했죠. 다들 인사했는데.”
신지운의 대꾸에 나머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주원이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해원이네 매형도 외국인시잖아요.”
“아니, 매형뻘이 아니잖아…….”
박건훈이 황당해하며 말끝을 흐리자 한효석이 말했다.
“이모부라든지.”
“고모부라든지.”
박선재도 옆에서 맞장구쳤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을 때, 메이크업을 받고 나서 죽은 듯이 쉬고 있던 황새벽이 주섬주섬 일어났다. 황새벽이 일어나자 다들 놀라 있는데, 스르륵 걸어가더니 밖으로 나갔다가 잠시 후 돌아와서 나에게 말했다.
“데이브 레비탄이잖아.”
“아, 그랬어?”
“너는 네가 편곡하고 모르냐.”
“편곡하느라 바빴다, 새친구야.”
“그래도 그렇지. 락 좀 많이 사랑해 줘.”
황새벽이 말하고 다시 쓰러졌다. 락에 대한 애정이 비해 너무 체력이 없다.
아무튼 데이브 레비탄은 황새벽이 솔로 무대에서 커버한, 에카(EKA)라는 밴드의 기타리스트였다.
유명한 얼터너티브 락을 뽑자면 수도 없이 많겠지만, 가장 유명한 기타 리프는 황새벽이 연주한 곡에 있었다.
그걸 만든 본인이 왔는데 황새벽이 의외로 안 들뜬다.
“너 왜 이렇게 안 반가워해?”
“지금 내 체력 내에서 최대로 반가워하고 있는 거야.”
황새벽 말을 듣고 보니 그래 보인다. 내가 말했다.
“야, 저 아저씨 진짜 피곤한 사람이야. 내가 커버 허락받으려고 편곡을 몇 번을 바꿨는지 아냐. 매번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안 된다고 한 게 아니라, 편곡을 바꿔 달라고 한 거잖아. 네가 마음에 들게 해줄 것 같으니까.”
……그런가?
아무튼 그렇게 사람을 들들 볶더니 직접 확인하러 오기까지 했다. 지독한 사람이다. 곡에 집착이 심한가 보다.
……정말 남 일 같지 않다. 나도 딱 저럴 것 같아서.
우리가 무대로 향하는데 데이브 레비탄이 무섭게 보고 있어서 내가 황새벽에게 물었다.
“알아보고 인사하니까 뭐래?”
“밴드를 하래. 그럼 몇십 년도 같이 활동할 수 있다고.”
“뭔 소리야. 우린 밴드 아니어도 몇십 년 같이 활동할 건데.”
“어, 안 그래도 그렇게 말했어.”
“영어로?”
“그럴 리가. 통역사님 계셨지.”
“아, 그치?”
나는 대답하고 황새벽과 낄낄거리며 무대로 올라갔다.
* * *
곧 양일 콘서트가 마무리되었다. 첫날은 너무 정신이 없어서 둘러볼 여력이 없었다면, 오늘은 훨씬 더 여유가 있어졌다.
공연장을 나와 차에 타기 전에, 멤버들과 함께 밖으로 나와보니 엄청 추웠다.
“와, 어떡해. 너무 추운데? 햇살이들 집에 어떻게 가?”
민지호가 묻자 알아서 가겠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박선재가 물었다.
“손난로 다 받았어요?”
워낙 추운 계절이라 어제와 오늘 손난로 2천 개씩을 각각 준비했다.
박선재가 말을 이었다.
“이번에도, 해원이 형이 스티커를 포장에 붙이면 햇살이들이 안 뜯는다고 해서, 스티커 따로 동봉했어요.”
다행히 햇살이들이 손난로를 꺼내 쓰고 있었다.
인사를 하고, 아직 눈이 덜 녹았으니 조심하라고 인사를 주고받은 후에 다시 차에 탔다. 숙소를 향하는데 민지호가 유난히 조용해져서 창문 밖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콘서트는 정말로, 너무 지나치게 즐거웠다. 무대에서 내려오니 갑자기 세상 모든 게 무색무취로 느껴질 정도였다. 앵콜 콘서트가 너무 멀게 느껴졌다.
그러니 무대에서 유난히 흥분하고 신나 하던 민지호에게는 그게 더 심할지도 모르겠다. 돌아가면 기분을 좀 풀어줘야겠다.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멤버들이 메이크업을 지우기는커녕 패딩도 못 벗고 바닥에 누워 있었다.
“되게 조용하네.”
신지운의 말에 안주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갑자기 너무 조용하다.”
좀 더 연차가 쌓이면 다르겠지만, 첫 콘서트의 후유증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이럴 때 웅크려 있으면 더 우울해진다는 걸 나는 경험으로 체득했다.
“메이크업 지우고 자.”
“아.”
괴로워하거나 말거나, 나는 드러누운 멤버들을 흔들어 깨웠다. 다행히 날 제일 잘 따라주는 박선재가 몸을 일으키고 앉았다.
“힘 나는 얘기해 줄까.”
그러더니 팀반지를 낀 손을 들었다. 의외로 다들 잘 때도 안 빼고 잘 끼고 다녀서 내심 놀라는 중이었다. 박선재가 말을 이었다.
“이거 우리가 화이트골드로 해달라고 했잖아? 근데 해원이 형이 우리 쫓아내고 플래티넘으로 바꿨다?”
어?
“……어떻게 알았어?”
“공방 인스타.”
확실히 힘이 난 모양이다. 나를 팰 힘이…….
누가 날 패딩으로 덮더니 주먹이 날아왔다. 물론 진짜로 힘줘서 패는 건 아니고 시늉만 하는 거지만 빡쳤다는 건 충분히 느꼈다. 허허.
“아, 나 진짜 아파, 진짜.”
내가 엄살을 떠니까 멤버들이 떨어졌다. 나는 패딩을 덮은 김에 추워서 뒤집은 상태로 팔을 껴 넣고 말했다.
“플래티넘이 변색 안 되고 오래 가잖아. 나 쿨톤이라 은색이어야 돼.”
내 농담에 애들이 또 주먹을 쥐는 것 같아 패딩 속으로 숨었다. 다행히 다들 체력이 없어서 더 구박하지도 못했다. 역시 빡센 세트리스트는 장점이 많다. 히히.
나는 멤버들을 욕실로 떠밀어 보내고, 여전히 누워 있는 민지호에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