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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81화 (81/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81화

“민조. 뭐 해?”

내가 앞에 앉아서 물어보니까 콘서트 후유증으로 우울해져 있던 민지호가 말했다.

“……마약은 나쁜 거야.”

“뭐?”

“하고 나면 이런 기분 들 것 같아서.”

어오, 철렁했네…….

나는 튀어나올 뻔한 욕을 겨우 삼켰다.

“일단 일어나서 씻기나 해.”

“형.”

“응.”

민지호가 겨우 몸을 일으키고 앉아서 한숨을 푹 쉬고 물었다.

“난 이만큼 우울해도 힘든데 형은 괜찮았어?”

“몰라. 기억 안 나.”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로 기억이 안 난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신기하게 작년 일이 엄청나게 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졌다.

나는 민지호를 일으켜 세웠다.

“일단 씻고, 야식이라도 시켜 먹자.”

“진짜? 같이 먹어줄 거야?”

“어.”

역시 애라 야식 먹자는 말에 바로 생기가 돌아온다. 나는 민지호를 욕실로 떠밀며 말했다.

“아무튼 약은 절대 하지 말고, 비슷한 유혹만 있어도 형한테…….”

그 말에 인구밀도 높은 욕실에서 양치질을 하던 황새벽이 양칫물을 뱉고 말했다.

“남 말 하네. 네가 제일 위험해, 인마.”

“뭔 소리야.”

“멘탈로 보나, 상황으로 보나. 작곡가들도 곡 잘 나올까 싶어서 손대잖아.”

“내 주위 사람들은 안 그래.”

내 말에 멤버들이 정색했다. 그러더니 우르르 몰려와서 말했다.

“그런 생각이 제일 위험한 거야!”

“주위 사람들 믿으면 안 돼요, 형.”

……이 새친구들이 내가 방에 2년 있었다고 날 덜떨어진 놈으로 보나?

갑자기 멤버들이 너무 달려들어서, 나는 약간 찝찝한 기분으로 대답했다.

“내가 알아서 할게.”

내 말에 황새벽이 무슨 사춘기 자식 보는 표정으로 말했다.

“누가 뭐 준다고 해도 먹지 말고,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말고.”

“……농담이지?”

“어느 부분이 농담 같냐? 말해봐, 고치게. 그만큼 중요해서.”

“저어얼대 안 한다. 됐냐?”

내가 말하는 사이 메이크업을 지우기 시작한 민지호가 말했다.

“해원이 형, 근데 마약 얘기하니까 마약 김밥 먹고 싶어.”

아니, 이건 웬 의식의 흐름이야. 근데 나도 갑자기 땡긴다.

“지금 안 팔 것 같은데. 소스 만드는 법은 찾아볼게.”

황새벽이 만들어주겠지. 히히.

나는 일단 핸드폰으로 마약 김밥 소스 만드는 법을 찾았다. 그러다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들었는데, 날 보는 눈빛들에 의심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그게 불쾌하다기보다는 슬슬 경각심이 생긴다.

퍼스트라이트 일곱 명 중에 약물중독에 빠질 확률이 가장 높은 사람을 고르라면 솔직히, 내가 골라도 나다.

나는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나서, 멤버들에게 말했다.

“우리 중에 누가 약 빨면 손가락 자르자.”

그러자 신지운이 대답했다.

“팀반지 낀 손가락으로.”

“그래! 어차피 안 할 건데, 걸어, 걸어.”

민지호가 맞장구치고, 한효석도 고개를 끄덕이더니 지적했다.

“근데, 아이돌이 남의 손가락 자르면 안 되니까 스스로 자르는 걸로 해요.”

그 말에 다들 동의했다. 내가 말했지만 참 극단적인 놈들이다. 이걸 받아주네…….

안주원이 빈 종이를 가져다가 ‘마약=손가락’이라고 쓸데없이 멋지게 썼다. 옆에서 박선재가 말했다.

“형, 손가락하고 괄호치고 플러스 팀반지 해줘.”

“응.”

그리하여 ‘마약=손가락(+팀반지)’라고 쓴 포스터가 벽에 붙었다. 이제 숙소에서 촬영은 못 하겠다.

* * *

콘서트가 빡세긴 했는지, 이틀 동안 모든 멤버가 평균 4~5㎏ 정도가 빠져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에 먹은 야식으로 대부분 회복했다. 회복할 만큼 먹었다.

나는 멤버들 먹는 양이 충격적이라, 핸드폰으로 그날 먹은 메뉴를 캡처해 놨다. 같은 음식점에서 배달을 세 번 시킨 게 제일 충격적이다. 먹고 좀 아쉽다고 한 번 더 시키고, 그래도 뭔가 아쉽다고 해서 한 번을 더 시켰다. 사장님이 세 번째에는 도무지 믿지 못하시고 또 주문한 거 맞냐고 전화를 하셨다.

다음 날부터 시상식 준비와 빅 블루 이준희에게 보낼 데모 작업을 하다 보니 26일. 우리는 올해 마지막 시상식 스케줄인 KQS의 연말 가요 프로그램을 마쳤다. 올해 더 라이징이 대박 난 게 신났는지, 프로그램이 더 라이징 위주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밤에는 KQS 유튜브 채널에서 진행하는 예능 촬영이 예정되어 있었다. 연예인들이 돌아가면서 출연하는 방 탈출 형식 프로그램인데, 오늘 촬영분이 신년특집으로 업로드된다고 했다. ‘더 라이징’ 우승팀이라고 KQS에서 은근 신경 써준다.

호의적인 방송사가 있다는 건 확실히 장점이 많다. 특히 엔터 회사 경영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면, 좀 더 방송국들과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편이 좋다. 나 역시 VMC와는 어쩔 수 없더라도 그 외의 방송국들과는 가능하면 좋은 관계를 만들고 싶다.

촬영 현장으로 이동하는 중에 박선재가 말했다.

“오늘 촬영 늦게 시작하니까 잘하면 촬영장에서 해원이 형 생일 되겠다. 올해 우리 멤버 생일마다 일하네.”

그러자 황새벽이 말했다.

“내년에 너랑 안주원 생일에도 그럴 것 같은데.”

“난 생일에 일하는 거 좋아.”

나도 나쁘진 않다. 작년 생일에는 오랜만에 방에서 나와서 박종렬 엔터에 갔었다. 나를 방에서 끌어낸 곽 실장에게 이것저것 일을 배우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이렇게 아이돌이 되고 싶은 마음을 확실히 접는구나, 하는 괴로우면서 동시에 조금은 달콤한 안도감이 들었었다.

촬영장에 막 도착해 보니, 나무로 둘러싸이고 마당이 넓은 이층집이었다. 밤에 도착하니 은근 서늘하게 느껴졌다.

누가 봐도.

“오늘 촬영 진짜 무섭겠다…….”

박선재는 내 팔에 딱 달라붙어서 중얼거리고, 안주원은 멤버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한 명 없으니까 되게 휑하다.”

오늘 신지운은 개인 활동을 하는 전 소속사에서 하는 연말 콘서트 사전 녹화 중이라 조금 늦을 예정이었다. 가수 활동은 전부 TRV와 하니 그냥 호의로 간 거였다.

우리는 그 말에 공감하며 촬영장으로 향했다.

* * *

신지운은 전 소속사이자 개인 활동을 담당하는 티케 엔터테인먼트 연습실에서 페어 무대 사전 촬영을 마치고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예상대로 배우 매니지먼트팀 직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운아, 대본 한 번만 읽어보자.”

“아, 그 얘기 안 들으려고 무대 하는 건데.”

“읽어만 본다고 뭐 큰일 나? 그리고 뭐, 읽는다고 너 뽑아준대? 대본만 들어온 거지, 오디션도 다시 봐야 돼.”

“읽으면 오디션 보라 그럴 거잖아.”

각자 전 소속사가 있는 멤버들이니 본인 말고 나머지 멤버들도 이렇게 시달리고 있을 거라고 신지운은 예상할 수 있었다.

퍼스트라이트가 잘 되어 봤자 개인 활동에서 수익을 얻는 전 소속사들에게는 남의 회사에 잘 되는 아이돌 팀일 뿐이었다. 팀이 잘나가 봤자 회사에서 밀고 있는 개인 커리어 쌓을 시간만 줄어들었다. 다들 계약 기간이 끝나는 날만 기다리며 이를 갈고 있었다.

박선재와 황새벽도 지속적으로 뮤지컬 트레이닝을 받고 있고, 한효석과 신지운은 연기 트레이닝을 받고 있었다. 심지어 TRV에서 시작한 안주원도 회사에서 연기를 준비시키고 있었다. 지금이야 어려서 맡을 수 있는 배역이 한정적이지만, 이십 대 중반 정도가 되면 자연스럽게 배우 생활로 빠질 거라 각 회사에서는 거의 확신을 하고 있었다.

신지운이 한숨을 쉬고 말했다.

“형, 나 아이돌로 위만 보고 갈 거야.”

“그래, 네가 아이돌로 탑만 보고 간다 쳐. 그럼 우리랑은 언제 일하냐고.”

“차차 하겠지.”

“네가 그렇게 대답하면, 내가 위에서 깨진다고.”

“아이고, 죄송하게 됐습니다.”

신지운은 다른 멤버들도 이렇게 적당히 거절하고 있는지에 대해 별수 없는 의심이 생겼다.

다행히 도중에, 더 라이징의 MC였던 이희세와 마주쳤다. 이희세 역시 솔로 무대를 위해 도착한 참이었다.

같은 소속사였지만 너무 대선배라 회사에서 마주쳐도 인사만 하고 끝이었는데, 오늘은 상황 파악을 하고 신지운을 불러 따로 말을 걸었다.

“어, 지운이.”

“누나, 지금부터 연습하세요?”

“응.”

이희세 역시 지금은 가수 활동은 거의 하지 않고, 배우로 활동하고 있었다. 이희세가 말했다.

“퍼스트라이트 잘되니까, 회사에서 계속 부르지?”

“……티케가 원래 좀 그렇잖아요.”

“내 말이 그 말이다.”

아이돌 명가 티케 엔터테인먼트는 유난히 ‘티케 소속 아티스트’에 대한 이미지가 강한 곳이었다. 신지운 같은 경우는 회사에서 없었던 케이스라, 아직 적응을 못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희세가 바쁜지 자리를 떠나며 말했다.

“너희는 고생 좀 하겠다.”

농담처럼 말하는 경고였다. 퍼스트라이트가 구성될 때 전 소속사들과 관계가 유지되다 보니 복잡한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미 콘서트가 끝난 직후부터 멤버마다 개인 스케줄이 쏟아지고 있었다. 작업실에 처박혀 있느라 바쁜 정해원을 제외하면. 하지만 아마 그 와중에도 개인 스케줄이 들어오기 시작할 것이 분명했다. 반반하니까. 멤버들 개개인이 지나치게 능력치가 좋은 것도 불화 요소였다.

이제 퍼스트라이트로 남은 계약 기간이 1년 반 정도였다.

본인이야 죽든, 살든 이 멤버들과 가고 싶지만, 다른 멤버들의 마음도 그럴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팀이 너무 쉽게 깨지는 모습을 한 번 봤으니, 두 번이 뭐가 어렵나 싶은 것이다. 본인들의 의지가 아주 강해도 1년 반 후에는 멤버들의 소속사들이 달려들어 개싸움이 날 것이다.

소속사만 문제도 아니었다. VMC도 브엠뮤를 시작으로 슬금슬금 ‘소년들’의 재결합을 추진할 것이다.

어느 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싶은데, 아직까지는 묘하게 서로 꺼리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정해원은 반 년짜리 계약서를 들고 있다는 걸 기사가 터질 때까지 멤버들에게 숨겼다.

처음 정해원이 합류했을 때는 한 팀이 완성된 기분이었는데, 사실 그게 반년으로 끝나는 계약이었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의 배신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정해원 본인의 멘탈이 워낙 불안정하니 화를 내지 못해 그냥 넘어간 것뿐이지.

본인은 완전히 잊어버린 것 같지만, 과호흡으로 쓰러지는 걸 눈앞에서 봤으니, 배신감을 느꼈다고 정해원을 심하게 몰아세우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다른 멤버들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 번 사라진 신뢰는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신지운은 어찌 되었든 1월 1일 12시만 기다리고 있었다.

성인이 되자마자 술의 힘을 빌려 진솔하게 이야기해 볼 생각이었다.

* * *

“신지운 차단할까.”

내가 진지하게 말하니까 옆에서 같이 핸드폰을 보던 안주원이 대답했다.

“좀 봐줘. 혼자 있는 거 워낙 싫어하잖아.”

신지운 때문에 단톡방이 시끄러웠다.

[신지운 : 나 없이 먼저 촬영하지 마]

[신지운 : 다들 드러누워]

[안쭈 : 그럼 스태프분들도 기다리셔야 하잖아]

[신지운 : 아 그럼 스태프분들한테 죄송하니까 우리가 알아서 촬영할 테니까 먼저 퇴근하시라고 해]

[신지운 : 모르겠다고 징징거려 아무것도 진행하지 마]

[신지운 : 제발여]

[아 시끄러워 알아서 빨리 와]

내가 그렇게 보내니까 신지운이 톡을 보냈다.

[신지운 : 그리고 우리 1월 1일 되자마자 많이 마시자]

그날 다들 모여서 성인 되는 05 둘도 축하해 줄 겸 한잔하기로 했다. 안주원도 신지운도 딱 봐도 주당의 싹들이다. 1월 1일 이후가 쉽지 않겠다.

[신지운 : 그리고 퍼스트라이트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진솔한 대화도 하자]

[민조 : 응!!!!!!!!!!!!!!!!!!]

[황새 : 하자]

[효식 : 좋아요]

[막내♥ : 나도!]

다들 엄청나게 빠르게 반응했다. 퍼스트라이트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할 말이 많았나? 평소에도 그렇게 떠들면서……?

나는 생각하며 다시 대본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늘 MC 역할이라 대본을 받아 숙지하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멤버들 중에는 겁이 없는 편이라 MC 역할을 맡긴 모양이다. 아, 나도 촬영장 분위기가 좀 쫄리긴 하는데…….

내가 생각하며 대본을 확인하는데 TRV 매니지먼트팀으로부터 톡이 왔다.

“……오. 패션지 화보.”

첫 화보이자, 첫 개인 스케줄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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