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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83화 (83/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83화

[돌발! 위기를 극복하세요]

“1월 1일부터 이게 뭔 난리냐…….”

나는 중얼거리며 방으로 들어와서 문을 닫자마자 TF팀으로 전화를 걸었다.

언제 전화해도 받던 TF팀이 전화를 안 받는다. 아, 이거 백퍼 피하는 건데.

그래서 그냥 박희택 사장 직통으로 전화를 걸었다.

-……너 귀신이냐?

전화를 받자마자 묻는 말에 뭐가 터졌구나, 예감했다.

“왜요? 회사에 무슨 일 있어요?”

-이건 전화로 할 얘기는 아니니까, 일단 회사 와.”

“곧 갈게요.”

나는 대답하고 방을 나왔다.

급하게 회사에 도착해서 사장실로 가는 중에 홍보팀 직원 하나가 나에게 달려왔다.

“해원 씨, 안 그래도 연락하려고 했는데…….”

“오래 걸려요?”

“아뇨, 금방 끝나요! 이게 뭐 별 건 아닌데 밤사이에 좀…… 소소하게? 화제라.”

홍보팀 직원이 최대한 조심스럽게 말하며 태블릿으로 사진을 보여줬다.

내가 매니저일 때 방송국 근처 흡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진이었다. 모자를 눌러써서 알아보기 힘들었을 텐데, 누가 기가 막히게 알아보고 찍었다.

내가 무심코 태블릿을 건드려 화면이 움직이자 홍보팀 직원이 기겁하며 태블릿을 덮었다. 그래도 글 내용은 봤다.

[작년에 담배 피우러 갔다가 국혐 봐서 찍음ㅋㅋㅋㅋㅋㅋㅋㅋ생각보다 키 크고 X나 잘생겼더라]

“……사진이 잘 나왔네요.”

진짜로 쓸데없이 잘 나왔다.

홍보팀 직원은 내가 국혐이란 단어에 크게 반응할까 봐 걱정했는지, 내 말에 안도하며 말했다.

“네, 반응도 희한하게 좋아요. 일반인일 때 몰래 찍은 사진 올렸다고 지적하는 분위기이기도 하고. 애초에 팬분들도 사실 알음알음 해원 씨가 매니저 생활하신 거 아니까…… 일단은 무대응 하려고 하는데 괜찮으세요?”

“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고 인사한 후 사장실로 향하다가, 다시 멈춰 섰다. 대화하는 내내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싸가지없네?”

나는 혼잣말하며 손을 뺐다. 손에 피가 안 통해서 얼어 있는 걸 보니 그 와중에 쫄았나 보다.

이게 작년 일이라 다행이지, 데뷔 후에 계속 흡연자였으면 팬들 반응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진짜 영원히 끊어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사장실로 들어섰다. 얼굴이 죽상이 되어 있던 박희택 사장이 나를 보자마자 물었다.

“어디서 대충 귀띔이라도 들었어? 어떻게 알고 바로 전화를 해.”

“그냥 느낌이 쎄해서요.”

“너 그거 희한하다. 박종렬 대표도 술자리에서 맨날 그 얘기 해. 네가 희영 씨 펑크 낼 거 막아줬다고, 뭐 신내림 받았냐고. 그럼 또 우리 스태프가 지운이가 라방에서 사고 칠 뻔했는데 너 뛰어 들어왔다고 하고.”

“아, 네. 약간 받았어요.”

나는 적당히 대답하고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려고 재촉했다.

“저 숙취 때문에 정신없으니까 빨리 말해주세요.”

“술 마실 거면 날 불러야지.”

“우리 애들이랑요? 사장님 냉동고 속에서 술 마셔보셨어요? 우리 애들이랑 마시면 그런 분위기일 텐데.”

“아, 그치. 미안하다. 내가 새해라 잠시 넋을 놨네.”

다행히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의 비사교성으로 불편한 술자리는 피할 수 있었다.

술에 후한 박희택 사장이 서랍에서 숙취해소제 한 포를 꺼내 나에게 건네줬다. 나는 거절할 간 상태가 아니라 바로 받아서 입에 털어 넣었다. 그사이 박희택 사장이 말했다.

“삼켰니? 듣고 뱉을까 봐.”

“삼켰어요.”

내가 다 삼키고 대답하니까 박희택 사장이 말했다.

“VMC에서 TRV를 인수하고 싶어 하는 모양이더라고.”

“…….”

삼키고 듣는 게 맞았다.

박희택 사장이 말을 이었다.

“나도 부대표한테 오늘 들었어.”

이렇게 들으니, 박희택 사장이 TRV는 어차피 대표, 부대표 부자가 다 해 먹는 회사고 자기는 따까리라고 했던 게 처음으로 믿긴다.

사장님 진짜 따까리셨네요…… 라는 말도 최선을 다해 삼키고 말했다.

“그래서요?”

“대표님은 안 된다고 하는데, 부대표가 빨리 팔아버리고 딴 살림 차리고 싶어 하네.”

나는 골이 아파서 자리에 쪼그리고 앉았다. 내가 막걸리를 마셨나? 기억이 안 나네. 닥치는 대로 주워 마셨더니…….

충격적이긴 하지만 어차피 인수라는 게 하루에 되는 건 아닐 것이다. 반년은 걸릴 거라고 생각하고, 그나마도 어그러질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버틸 만하다. VMC에는 1년 남짓 소속되게 될 테니까.

문제는 그사이에 벌어질 일들인데.

보아하니 부대표는 VMC가 인수하려는 걸 환영하는 것 같고, 내가 TRV에 소속된 이후에 딱 한 번 얼굴을 비춘 사람이라면 앞으로 행보가 어느 정도 예상된다.

최대한 빨리, 많이 퍼스트라이트 팬들에게서 수익을 쥐어짜려 할 거다. 본인 주머니도 빨리 채우고, 회사에 흐르는 돈도 많아 보일 테니까. 팬들이 질려서 지갑을 닫게 될 때쯤에는 본인 문제가 아니게 될 거고.

박희택 사장이 말을 이었다.

“일단 일본 데뷔도 당겨질 것 같고.”

“굿즈도 백만 개 찍어내구요.”

“아무래도 그렇지.”

앨범은 아무리 빨리 만들려고 해도 한계가 있고, 굿즈만 한 캐시카우도 없으니까.

속이 울렁거린다. 이제는 이게 숙취인지, 감정인지 모르겠다.

그때 부대표 최기문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와 소파에 앉았다.

“어이, 희택이.”

나는 인사를 했고, 최기문은 무시했다. VMC가 인수하면 알 바 아니란 건가 보다.

박희택 사장이 최기문 부대표에게 날 소개했다.

“전에 얘기했지? 이 친구가 퍼스트라이트에서 곡 만드는 친구.”

“근데?”

“곡을 잘 뽑아줘야 돈이 나오지.”

“무슨 곡이 돈을 벌어, 돈이 돈을 버는 거지. 이제 좋은 작곡가 붙여줘. 돈 투자해서.”

엇, 뭐야. 잠깐만. 이럼 안 되지.

“저 이미 다음 미니 작업하고 있어서요. 이번에는…….”

최기문 부대표가 내 말을 끊었다.

“저기야, 내가 그래도 부대표인데, 나도 회사 돌아가는 건 알아. A&R에서 결정하는 거 아냐.”

“아, 그것도 그런데요. 저희 앨범은 멤버들이 많이 참여해서요.”

“그러니까 이만큼밖에 못 오지.”

아, 혼자 와서 다행이다.

이거 황새벽 있었으면 이미 쌍욕 하고 나갔겠다. 허허.

아무튼 말하는 본새를 보니 확실히, 엔터계에 관심이 없는 건 알겠다.

아니면.

“그니까 여돌을 키우자니까. 정산이 빠르잖아.”

……여돌을 키우고 싶거나.

투명하다, 투명해. 여돌은 예쁜 애들 모아놓고 데뷔만 시키면 저절로 뜨는 줄 아는 사람이 아직도 엔터계에 있었다니.

VMC가 TRV를 인수하는 건 뭐, 특별히 위기도 아니다. 어차피 회사끼리 하는 일은 나의 아이돌 생활과 별 관계가 없다. VMC에게 여전히 풀리지 않을 앙금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건 내 문제지, 퍼스트라이트에게는 이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 부대표가 다른 작곡가의 곡을 받아 오고, 앨범에 참견하기 시작하면 그건 또 말이 다르다.

설마 VMC에서 소년들 키우고 싶어 해서 날 제외하나……? 이건 너무 피해망상인가? 아니지. 차라리 그게 낫다. 내 곡이 별로라 제외하는 것보다는…….

아무튼.

나에게 위기는 분명 이쪽이다.

퍼스트라이트 놈들이 다른 작곡가 곡을 받으면 성격상 열심히는 하겠지만 완전히 몰입하지는 못할…….

……근데 이제 어엿한 프로라 잘하면 어떡하지. 더 좋아하면 어떡해? 사실 이제 슬슬 내가 아니라 진짜 작곡가들에게 곡을 받을 시기가 온 게 맞는 거면?

술이 덜 깨서 그런지 나는 의외로 외부에서 하는 말을 적당히 필터로 걸러 듣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웬일로 박희택 사장이 말했다.

“기문아, 넌 무슨 고생한 애한테 말을 그렇게 하냐.”

“너는 인마. 애가 보는데 부대표님이라고 해야지.”

“아, 어. 그래, 미안, 부대표님. 해원이가 그래도 많이 고생했어.”

그래도 따까…… 아니, 사장이 오래 봤다고 여기선 내 편을 든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나름의 사회생활 미소를 지은 후에 말했다.

“부대표님, VMC요. 제 생각에는 서바이벌 그룹을 다시 재결합시키고 싶은 것 같더라구요. 거기가 서바이벌하면 VMC로 딱 브랜딩하고 싶어 하거든요.”

사업하는 사람 중에 브랜딩이란 말 싫어하는 사람 없더라. 아직 이해는 안 가지만 그냥 머리로 외웠다. 회사에서 이해 안 가는 짓을 할 때 답에 ‘브랜딩’을 넣고, 연출자, 창작자가 이해 안 가는 행동을 할 때 ‘유니버스 만들기’를 넣어보는 거.

아무튼 예상대로 브랜딩이라는 말에 최기문 부대표가 반응하며 내 쪽에 집중했다. 나는 말을 이었다.

“근데 퍼라가 너무 잘돼서, 퍼라는 일곱 명. 이거 대중들한테까지 확실하게 인식돼서 ‘소년들’ 재결합을 불편하게 느낄 정도가 되면 TRV 인수할 필요가 없어질걸요? 가뜩이나 회사 덩치도 큰데.”

라고 회사의 규모를 부풀려 봤다. X발, X소.

최기문 부대표는 팔짱을 끼고 내 말을 듣고만 있었다.

“너무 투자해 주지 마시고 저희끼리 그냥 소소하게 작업할게요. 조용하게. 소규모 팬들 상대로.”

우리 팀에 투자하지 말라는 말을 멤버들 없는 데서 혼자 해도 되는 건가, 싶긴 한데.

“솔직히, 전 프로듀서 이미지라도 굳혀놔야 VMC 인수돼서 팀에서 밀려나도 먹고살 길 찾죠.”

어차피 내가 아는 퍼스트라이트에게는 이게 답이다.

최기문 부대표가 신중하게 내 말을 듣더니 선심 쓴다는 듯 말했다.

“그것도 또. 인지상정이네.”

“제가 원래 불쌍해 보이는 편이라서요.”

내가 우는 시늉을 하며 말하자 최기문 부대표가 흐흐 웃었다.

“뭐, 나도 돈 덜 들고 좋지.”

“그래도 수익은 있어야 하니까, 제가 굿즈 아이디어 뽑아볼게요. 팔릴 만한 걸로.”

내 말에 최기문 부대표가 자기 머리 옆에 손을 흔들어 반짝반짝 빛내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얼굴 이쁜 애들은 전통적으로 골이 비었는데 넌 그래도 이게 잘 돌아간다?”

허허. 허허허허. 이 새끼.

내가 슬슬 욱할 것 같았는지 박희택 사장이 끼어들었다.

“얘만 좀 사회생활 해봐서 그래.”

“그니까 내가 애들 연습생 때 알바라도 한 번씩 시켜봐야 한다고 했잖아.”

그러더니 나름 리스크를 고려했는지, 나에게 말했다.

“근데 너 애가 똑똑해서, 그룹 잘 띄워놓으면 어떡하냐.”

그 말에 내가 어이없어하며 대답했다.

“단기간에 그럴 리도 없지만…… 저한테 그 정도 능력이 있으면 회사를 안 파셔야죠.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데.”

내 말에 내년 여름이면 그만 볼 최기문 부대표가 핫핫 웃었다.

그렇게 대충 설득이 끝나고, 내가 보기엔 친구라기보다는 그냥 시다바리 같지만 어쨌든 본인들 나름으로는 친구인 두 사람은 새해 정초부터 한잔하러 가자는 이야기가 잡혔다.

박희택 사장은 날 먼저 보낸다며 복도로 데리고 나왔다. 근데 날 보는 눈빛이 수상하다.

“……뭐 그렇게 수상하게 보세요?”

“너 스무 살 아니지?”

“네. 스물한 살이죠, 이제.”

“…….”

“가보겠습니다아.”

나는 꾸벅 인사하고 사장실을 나와서, 바로 내 작업실로 향했다.

[(위기 극복)보상이 지급됩니다]

[룰렛 추가가 가능해집니다]

[현재 동시 사용 가능한 룰렛은 2개입니다]

[등록할 룰렛을 선택하세요 (택2)]

[(일상) 실버 룰렛]

[(히트곡 메이커)의 레드 룰렛]

[(슈퍼 아이돌)의 퍼플룰렛]

나는 작업실 소파에 앉아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아, 뜨고 싶다.”

빅 블루 정도 되는 팀이면, 평생 저딴 소리 들을 일 없겠지. 여긴 인기가 인격, 아니 인권인 바닥이니까.

대스타가 되고 싶다. 너무 뜨고 싶어서 죽을 것 같은 지경이다.

침착하자. 가라앉혀야지. 지난번에도 이러다 쓰러졌는데.

나는 트라우마가 생겨서 상태가 안 좋아지기 전에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 리더인 황새벽에게 전화를 했다.

-왜.

“나 작업실인데, 물 좀.”

-어.

그러더니 전화를 끊는다.

숙소에 있는 놈한테 물 달라는데 어, 하고 끊는 건 씹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작업실에 지문 인식 하는 삑삑 소리가 들리더니 황새벽이 들어왔다. 그리고 생수병을 내밀며 말했다.

“물 달라며.”

“……회사에 있었어?”

“어. 네가 갑자기 뛰쳐나가길래 따라왔는데.”

“뭐 하러.”

“너 물 주러.”

황새벽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내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물을 마시며 속을 가라앉히는 사이에, 다른 멤버들도 하나둘 나타났다.

하여튼 드럽게 몰려다니는 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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