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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87화 (87/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87화

날씨는 또 왜 이렇게 추운지 모르겠다.

회사까지 가기엔 너무 춥고, 박중운 매니저가 바로 회사로 갔을 테니 마주치고 싶지도 않아서 덜덜 떨며 가까운 카페에 들어갔다. 커피를 들고 구석 자리를 찾아 앉아서 핸드폰을 꺼냈다.

혼자 있긴 좀 그래서 연락할 사람이 있나, 찾았다. 그리고 일단은 양이형에게 전화했는데 안 받았다.

“올빼미야, 뭐야. 맨날 낮에 자네.”

나는 투덜거리며 내 핸드폰에 저장된 번호들을 확인했다.

가족과 멤버들에게는 좀 그렇고…….

번호를 쭉쭉 내리다가, 차단한 번호를 확인했다.

그리고 거기서 MII의 멤버이자 전 소속사에서 제일 친한 친구였던 우하정의 번호를 찾았다.

“…….”

‘해원아, 진짜 미안해. 근데 어떡하냐. 아이돌은 보이는 이미지가 다인데.’

그리고 날 이용해가며 얻은 선량한 이미지는 악편에 대한 비난과 함께 사라졌다. 팬들도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건강상의 이유를 대며 연말 시상식에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SNS에 우하정을 검색했다.

[이래서 인성 영업은 하면 안 돼]

[어쩐지 우하정은 퍼라 멤들 얘기 종종 하는데 퍼라는 우하정 얘기 안 하더라]

[↳MII 팬들이 이 얘기 꺼내면 X나 패더니ㅎㅎ]

[근데 말 듣고 보니까 국선아 때 눈빛 좀 쏘패같음]

트라우마가 도지는 한편, 원래 눈빛 안 좋단 말은 다들 듣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든다.

나 의외로 인상 괜찮은 거 아냐? 생각해 보니까 저따위로 생긴 신지운도 지가 귀엽다고 우기면 팬들이 ‘그래, 귀엽다’하고 받아주는데 나라고 못 우길 게 뭔가 싶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처음 우하정이 배신자 짓을 했을 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는데 바로 옆에 있던 매니저한테도 배신을 당하고 나니 그냥, 인생이 원래 그런 건가, 싶은 기분이 든다.

나는 우하정의 차단을 풀고 전화를 걸었다. 역시 한가하니까 전화를 금방 받았다. 내가 물었다.

“한가하지?”

-…….

“영화 봐. 나중에 활동할 때 도움 되더라.”

-…….

“말 좀 해.”

내 말에 우하정이 입을 열었다.

-미안해.

“…….”

이번에는 내가 할 말이 없다. 다행히 우하정이 말을 이었다.

-난 우리 상황이 반대였으면 네가 똑같이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아니더라. 넌 절대 안 그랬을 거야.

“너 진짜 한가하구나. 쓸데없는 생각 많이 했네.”

-어, 시간 많아.

대답하는 목소리에 힘이 없다. 하긴, 제일 미래가 두려울 때지.

우하정이 물었다.

-왜 전화했어?

“우울해서. 멤버들한테 얘기하긴 좀 그렇잖아.”

-안 친해?

“친하지.”

친하니까 내 우울함까지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앞으로 관계를 더 잘 유지하고 싶으니까, 우울은 전염되니까.

……게다가 이미 맛탱이 간 모습을 너무 많이 보이기도 했고.

나는 말을 이었다.

“너 우울한 거 보니까 기분 풀린다. 우울하면 또 전화할게.”

-뭐야, 나 걱정돼서 전화한 거야?

“미쳤냐. 왜 이렇게 자기중심적이야.”

나는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카페에서 뻘짓을 해도 여전히 회사로는 못 돌아가겠어서 양이형의 작업실로 향했다. 예상대로 간이침대에서 자던 양이형이 잠깐 눈을 떴다.

“어.”

“어.”

그렇게 인사를 하고, 나는 의자에 앉아서 헤드셋을 끼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찾아 들었다. 그러자 양이형이 결국 일어나서 물었다.

“너 타이틀 언제 만들 거야. A&R들이 너한테 말하기 어려워서 나를 쪼잖아.”

“이제 만들어야지.”

“이번엔 유난히 오래 걸린다?”

“아니, 지금까진 그냥 만들고 싶은 걸 만들었잖아? 그런데 이번에는 컨셉이 다 나와 있고, 거기에 맞춰서 만드는 거니까 어려워.”

“어, 그게 처음인가…… 아, 맞다. 너 작곡 이제 만 1년 했지.”

양이형이 말하며 두 손으로 얼굴을 벅벅 문지르더니 말했다.

“X발 또 욕 나오려고 하네.”

“이미 했어, 욕.”

“X발이 무슨 욕이냐. 감탄사지.”

“잠이 덜 깨서 형이 지금 무슨 말 하는지 모르지?”

내 말에 양이형이 민망해하더니 화제를 돌렸다.

“아무튼 이번에 컨셉에 맞춰서 작업해 보면, 나중에 드라마 OST 만들 때도 도움 돼.”

“오, 좋다. 내가 만들면 우리 막냉이나 황새 좀 꽂아 넣을 수 있나?”

“아무래도 아이돌 멤버가 작곡하면 같은 팀 보컬들한테 먼저 제안이 가긴 하지.”

크, 좋다. 우리 보컬들 자랑하고 싶다…….

나는 양이형에게 다시 이불을 덮어주며 말했다.

“다시 주무셔, 난 조용히 작업할게.”

“내가 노인이냐.”

양이형은 말하면서도 그대로 다시 잠을 청했다.

* * *

박중운 매니저는 회사에 돌아가자마자 바로 상황을 말하고, 짐을 챙겨서 나갔다.

다행히 매니지먼트 팀에, 퍼스트라이트에 매니저 충원이 필요할 때마다 함께 일하던 매니저가 있어 바로 교체가 되었다.

정해원과 같이 나갔던 매니저가 혼자 돌아와 그만뒀으니, 박중운 매니저가 유출범이었다는 걸 모를 수 없는 상황이었다.

황새벽이 회사로 돌아오지 않는 정해원에게 계속 전화를 걸며 말했다.

“아니, 왜 안 받아, 이 새끼는.”

그리고 박중운 매니저에게 계속 전화해 겨우 연결에 성공한 한효석이 전화를 마치고 말했다.

“해원이 형이 그냥 서촌 쪽에서 내렸다는데요?”

“그걸 그냥 보냈대?”

“그런가 봐요.”

그때 안주원이 패딩을 챙기며 말했다.

“내가 이형이 형 작업실 가볼게.”

“우리도 갈까?”

민지호와 박선재가 나서자 안주원이 말렸다.

“그냥 혼자 갔다 올게.”

그 말에 신지운이 수긍했다.

“안주원이 우리 중에 제일 부드럽게 말하니까 혼자 가는 게 낫겠다.”

그렇게 타협하고 안주원이 혼자 양이형의 작업실로 향했다.

예상대로 정해원은 양이형의 작업실에 있었고, 심각한 표정으로 빈 화면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 두드리는 소리에 돌아보고 와서 문을 열어줬다. 그러더니 턱짓으로 양이형을 가리켰다. 자고 있으니 조용히 하라는 신호였다.

안주원이 일단 정해원을 밖으로 끌고 나와 물었다.

“너 지금 뭐 해?”

“나? 작업하려고.”

“그 매니저 형이 유출범이었고, 넌 길에서 그냥 내렸다며.”

“응.”

“근데 왜 여기서 작업을 해?”

“이런 기분일 때 뭔가 괜찮을 게 나올 것 같더라고. 근데 의외로 아무 생각도 안 나네.”

정해원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더니 안주원을 보며 말을 이었다.

“온 김에, 너 뭐 가사 써놓은 거 없냐?”

“…….”

“어, 야. 어디 가.”

‘완전 맛이 갔네.’

안주원이 생각하며 정해원의 등을 떠밀어 계단을 올라가며 지원팀에 연락을 했다.

* * *

안주원이 연락하는 바람에 나는 당분간 안 가던 상담 센터를 다시 가야 하게 생겼다. 가도 맨날 쉬란 말밖에 안 하던데, 난 쉴 생각이 없다.

안주원에게 떠밀려 회사로 돌아와서, 내 작업실에 혼자 좀 있으려고 했더니 멤버들이 한 명씩 들어와서 소파에 눕거나, 앉아 있었다. 결국 내가 의자를 돌려, 소파에서 핸드폰 게임 중인 신지운에게 말했다.

“너희가 직원들 피해서 연습실에만 있어서, 304호 비워줬잖아. 좀 가.”

“쓸데없는 데 신경 쓰지 말고 작업이나 해.”

“신경 쓰여서 작업을 못 하겠다고.”

“아니, 우리가 형한테 신경을 안 쓰는데 왜 신경 쓰여 하냐고.”

어휴, 말할 체력도 없다.

나는 그냥 포기하고 다시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신지운이 아예 스툴을 끌고 와서 옆에 앉아 물었다.

“뭐 만들어?”

“타이틀.”

“아무것도 없는데?”

“주제는 생각을 해놨는데, 그 뒤가 생각이 안 나.”

“주제가 뭔데.”

“복수에 매몰되지 말고 앞으로 가자?”

“소년만화 같네.”

“그치, 딱 그런 분위기로 만들어 보려고. 중세 판타지풍 컨셉에도 얼추 맞잖아. 근데 아무 생각도 안 나.”

나는 중얼거리며 다시 빈 화면을 봤다. 그리고 건반으로 내가 좋아하거나, 유명한 곡의 코드 진행을 눌렀다.

신지운이 그걸 들으며 말했다.

“그런 소년만화 같은 곡 만드는 사람들은 다 낙천적인 줄 알았어.”

“나 낙천적이잖아.”

“……하긴, 낙천적이니까 지금 작업실에서 이러고 있지.”

동의를 얻고 나니 만족스러워 흐흐 웃고, 의자를 신지운 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그리고 내가 애냐. 그렇게 돌아가면서 감시하게. 물론 내가 좀 관종이라, 너희가 신경 써주는 게 아주 싫은 건 아닌데.”

“어, 은근 좋아하는 거 우리도 알아.”

신지운의 대답에 나는 흐흐 웃고 나서 말했다.

“작곡은, 우울해도 일이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게 아니라, 이게 나한테 위로가 돼서 하는 거야.”

“…….”

“가끔 이러다가 또 여론 안 좋아져서 활동 못 하는 거 아닌가, 부정적인 생각이 들면 가명으로 작곡하는 상상도 하고.”

“어차피 형의 작명이면 별로겠지만 물어는 봐줄게. 가명 뭔데.”

“……썬가든?”

“아, 형 이름에서 ‘해’ 따로, ‘정원’ 따로 해서?”

“어.”

“퍽이나 못 알아보겠다, 사람들이.”

……난 나름 괜찮은 가명이라고 생각했는데. 작명은 남에게 맡겨야겠다.

신지운이 비어 있는 모니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근데, 지금 작업 못 하고 있잖아. 무슨 위로가 돼.”

“창작의 고통도 다, 창작의 과정 아니겠니.”

“아니, 내 말은. 작곡에 너무 의지하지 말라고.”

“왜?”

“그러다 곡 안 나오면 끝이잖아.”

이 새끼 또 성격 나오네.

“너 무슨 그런 말을 하냐?”

“지금 못할 말이 뭐 있는데.”

아니, 근데. 진짜 곡이 안 나오면 어떡하지?

어…….

그러고 보니 그 뒷일은 생각을 안 해보긴 했다.

신지운이 말을 이었다.

“어차피 모든 창작자는 다 슬럼프가 와. 안 오는 사람 세상에 없어. 형, 의지는 무너지지 않을 곳에 기대서 하는 거야. 가족이나, 멤버들이나.”

“…….”

“똑같이 정신 나가 있는 하정이 형 말고.”

“……어떻게 알았냐?”

“하정이 형이 전화했지. 형 괜찮냐고.”

“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모니터를 봤다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낄낄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왜 웃는지 안 신지운이 두 손을 모으고 빌었다.

“제발 못 들은 걸로 해주라.”

“캬, 의지는 무너지지 않을 곳에 기대는 거구나.”

“형. 형님. 제발요.”

“가사에 써도 되지? 야, 작사 너 선두 넣어줄게. 어차피 랩메이킹도 할 거니까.”

“……못 들은 걸로 해달라는데 박제를 하니? 사람이 왜 그래?”

원래 사람한테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료한다고 하지 않나. 박중운 매니저가 준 상처를 멤버들이 돌아가며 살펴준다.

놀리긴 했지만, 나는 처음부터, 그러니까 국선아 첫날부터 의지할 곳을 잘 고른 것 같다.

* * *

컨셉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도 나는 복수에 매몰되어 있을 시간이 없었다.

새벽에 가장 먼저 빅 블루 이준희의 녹음이 있고, 몇 시간 자고 화보를 촬영하러 가야 했다.

나는 폼다피 엔터의 컨트롤 룸에서 이준희를 기다리며 전달받은 화보의 포즈 시안을 보았다.

“……이걸? 내가?”

진짜 으른으른하다. 내가 촬영하고 나면 5년 뒤에 다시 오라고 할 것 같은데…….

내가 포즈 시안을 노려보고 있는데, 이준희가 눈앞에 손을 흔들었다.

“화보 찍어요?”

“아, 형. 안녕하세요.”

나는 우선 인사하고 대답했다.

“네. 이따가요.”

“이따가? 피곤하겠네.”

“이미 많이 자고 왔어요.”

나는 대답하고 포즈 시안을 내려놨다. 그리고 활동 기간 동안 따로 셀 수도 없을 정도로 화보를 찍었을 화보 장인 이준희에게 말했다.

“형은 셀카는 못 찍는데 남찍사는 잘 나오더라구요.”

“…….”

셀카 이야기만 나오면 여유도 말도 없어지는 이준희가 시선을 피했다. 그러더니 막 생각났다는 듯이 화제를 돌렸다.

“유출범은 찾았어요?”

“아, 네.”

“누구였어?”

“…….”

내가 바로 대답을 못 하니까 이준희가 말했다.

“해원 씨, 우리가 부를 곡이 유출된 건데 나도 알아야지?”

아. 그건 그러네…….

“근데 VMC 직원이 시킨 것 같아요. 제 생각이지만.”

“그럼 그 직원분에게도 사과받아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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