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88화 (88/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88화

나는 유출범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고 빅 블루 이준희는 고개를 몇 번 끄덕인 후 녹음 부스로 들어갔다.

빅 블루 멤버들은 원래 완곡을 녹음하는 편이라고 들었다.

아이돌 멤버가 완곡을 녹음하는 경우는 드물고, 모든 멤버가 그게 가능한 팀은 더더욱 드물다.

그 드문 것이 가능할 정도로 모든 멤버의 보컬이 좋은 팀인 데다, 연기, 예능, 광고, 뮤지컬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들이었다.

아이돌로도 탑이지만 각 분야에서도 탑인 ‘형제’들이 퍼져 있으니, 아무리 VMC여도 빅 블루에게 함부로 하지 못한다. 멤버가 다섯 명이라 이 정도지, 한 열 명 됐으면 거의 무슨 조직 같았겠다.

“형, 가이드 켜고 갈게요.”

“네.”

열 살이 차이 나지만, 같이 일을 해야 한다고 이준희는 말을 놓지 않았다. 아무래도 나이 차이가 너무 나니까 내가 편하게 디렉팅하지 못할 것 같았나 보다. 우리 멤버들이나 더 라이징에서 내가 디렉팅을 했던 INO 멤버들에게 물어보면 그럴 리 없다고 할 텐데…….

이 곡의 가이드는 내 보컬 선생님인 장석훈이었다. 깔끔한 장석훈의 목소리 위로 이준희의 따듯한 목소리가 덮였다.

역시 연기자라 전달력에서 차원이 다르다. 다음에 바로 가이드를 끄고, 목 상태가 좋을 때 먼저 녹음해야 하는 개인 파트를 잘라서 먼저 녹음한 후, 마지막으로 완곡을 녹음했다. 내가 감격해서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으니까 이준희가 부스에서 나오며 걱정스러워했다.

“어디 아파요?”

“아뇨…… 형, 이 곡이요.”

“네.”

“곡도 제 취향인데, 보컬까지 형이 하니까 너무 좋아요.”

내 말이 어이없었는지, 아니면 애새끼가 자기 만족하는 게 웃겼는지 이준희는 웃음을 터뜨렸다.

첫 녹음은 아주 수월히 끝났다. 프로와의 작업은 확실히 차원이 다른 배움이었다.

* * *

녹음 후 나는 차에서 잠깐 자다가 촬영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려서 헤어와 메이크업 세팅을 했다. 평소에도 오래 걸리지만, 화보 촬영 세팅에 걸리는 시간은 차원이 달랐다.

세팅이 끝나고 의상을 입기 전에 스튜디오에 들어가 인사를 했는데, 낯선 환경이 닥치니 긴장감에 표정이 풀리지 않았다.

내가 망치면 나만 망한 화보 찍고 끝나는 게 아니고, 같이하는 브랜드 화보까지 망하는 셈이라고 생각하니 무지하게 쫄렸다.

애초에 왜 나를 찍지. 내 이미지 때문에 브랜드 이미지까지 망치면 어떡하려고 이러지?

그렇게 혼자 부정적인 생각을 하다가, 나는 결국 상태창을 띄웠다.

[현재 동시 사용 가능한 룰렛은 2개입니다]

[확정]

[(히트곡 메이커)의 레드 룰렛]

[등록할 룰렛을 선택하세요 (택1)]

[(일상) 실버 룰렛]

[(슈퍼 아이돌)의 퍼플룰렛]

아이돌은 화보를 계속 찍게 될 텐데. 도움을 좀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지난번에도 외모 인지 부조화에 도움을 받았으니까.

그리고 일단 내가 보라색을 좋아한다. 물론 쿨톤이라 은색이 잘 맞기는 하지만 좋아하는 건 별개…….

……아무래도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상승한 모양이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슈퍼 아이돌)의 퍼플룰렛을 선택합니다]

[(슈퍼 아이돌)의 퍼플룰렛]

[외모에 대한 인지 부조화가 정상적으로 수정되었습니다]

[새로운 이벤트]

[‘첫 번째 화보 촬영’이 등록되었습니다]

[새로운 스케줄 등록으로 (슈퍼 아이돌의 퍼플룰렛)에서 사용할 수 있는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퍼플룰렛 B급 티켓 X1]

오?

“제발 포토제닉 관련된 걸로.”

나는 기도하며 퍼플룰렛을 돌렸다.

잠시 후 룰렛이 멈추고, 거기서 보라색의 연한 물약 하나가 손에 들어왔다.

[특정 브랜드와의 적합성이 상승합니다]

좋은데……?

이번 화보는 지난번 VMC 뮤직어워드 마태오 무대 때, 나에게 협찬을 해준 이탈리아 주얼리 브랜드, 디 밀리아르디(di miliardi)의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그 브랜드의 소품들이 잘 어울리는 게 오늘 화보의 키였다.

내가 그나마 안심하고 있을 때, 디 밀리아르디의 직원 두 사람이 내 쪽으로 걸어왔다. 뭐만 하면 잘했다고 박수 쳐주는 잡지사 직원들과 달리, 두 사람은 굳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무래도 보석을 다뤄야 해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둘 중 더 어린 직원이 주얼리 착용을 도와줬다. 지금까지 사본 주얼리라고는 팀반지뿐이지만, 그때 대충 확인한 가격으로 생각해 보면 지금 내 손에 반지들 가격이 어마어마할 것 같았다.

나는 좀 민망하지만 직원에게 소곤소곤 물었다.

“반지 얼마예요?”

그러자 직원이 소곤소곤 대답했다.

“반지는 대부분 이삼천만 원대예요.”

반지가 설마 손에서 떨어져 나가진 않을 거고, 혹시 사고 쳐도 어떻게든 해결은 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직원이 부토니에를 보여주며 말했다.

“이게 지금 환율로…… 1억 4천 정도구요.”

“……근데 핀이 왜 이렇게 약해 보여요? 떨어지면 어떡해요? 깨 먹으면 제가 사야 돼요?”

“아무래도 안 깨는 게 좋긴 하죠.”

어후, 심장 떨려. 가만히 앉아 있어야겠다.

아무튼 그렇게 네 개의 반지와 브랜드 로고 모양의 부토니에를 달고 촬영이 진행되었다. 반지가 잘 보여야 하기 때문에, 포즈 시안은 대부분 턱을 괴거나 머리를 쓸어 넘기는 컷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보석이 잘 보여야 하니까 의상도 어둡고, 머리도 내 원래 머리 색보다 훨씬 어두운 검은색으로 염색했다.

잡지사에서 보내준 포즈 시안만 봐서는 느낌을 모르겠어서, 매일 남자 연예인들의 보석 화보를 찾아봤다. 다행히 보람이 있어서, 촬영을 하고 사진을 구경하러 갔더니 촬영 감독이 말했다.

“첫 화보라고 해서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너무 잘하네.”

“진짜요? 포즈 시안 잘 주셔가지고.”

“이건 화보 많이 찾아본 포징인데?”

“첫 화보 무서워서 찾아봤어요.”

“와.”

촬영 감독이 왠지 날 신기하게 보며 말했다.

“해원 씨, 이거는 꼰대 같은 소리라 무시해도 되는데…… 내가 연예인 화보 수도 없이 찍었잖아요.”

“네.”

“성실한 사람만큼 업계에서 호감도 높은 연예인도 없더라구요.”

내가 멈칫하니까 촬영 감독이 말을 이었다.

“아, 미안해요. 무시해, 무시해.”

“아뇨. 감사합니다.”

아마 촬영 도중에 내가 스태프들 눈치를 보는 것 같았나 보다. 하긴, 지난번 더 라이징에서 함께 작업한 허해준 작곡가도 같이 작업할 때 작업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인사를 하더라고 했었다.

그게 프로들 눈에 무지하게 신경 쓰이는 것 같다.

그래도 다행히 허해준 작곡가도 지금 이 촬영 감독도 나한테 잔소리라기보다는 그래도 성실하니 됐다, 는 식으로 말해준다. 고마운 어른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촬영장에 안주원과 박선재가 도착했다. 첫 화보라 응원하러 온다더니 진짜 왔다. 안주원이 말했다.

“고생하네.”

“바쁜데 뭘 와.”

내 말에 박선재가 히히 웃으며 말했다.

“안 오면 섭섭해할 거잖아?”

“섭섭해는 하지.”

내 말에 두 사람이 낄낄거리고 웃었다.

아무래도 멤버들이 다들 낯을 가리니, 서로 개인 활동 할 때 다른 멤버들이 가서 응원해 주는 게 당연해졌다. 내가 갈 땐 몰랐는데, 멤버들이 와주니까 생각보다 되게 든든하다.

거기다 촬영을 방해하는 것 같았는지, 커피와 간식을 넉넉하게 사 가지고 왔다. 달달한 커피도 몇 개 사 왔는데 대부분 아메리카노를 가져갔다. 역시 직장인에게 카페인은 포션일 뿐인 모양이다.

그렇게 커피만 주고, 둘 다 바빠서 곧바로 떠난 후 다시 촬영이 이어졌다.

* * *

디 밀리아르디 코리아의 직원, 강채은이 함께 온 팀장에게 눈빛을 보냈다.

프로모션 회의 때 퍼스트라이트의 정해원 추천했다고 그렇게 까셨던 거 기억하시냐는 눈빛이었다. 물론 강채은은 퍼스트라이트, 그중에서도 정해원의 팬이기는 했다. 국선아 때 여론이 안 좋아지는 걸 차마 못 보겠어서 아예 국선아 후반부는 보지도 않고, 정해원이 잠적한 후에는 잊고 지냈었다.

그러다 최근에 정해원이 2년 동안 히키코모리 생활을 한 것이 거의 기정사실화되면서, 부채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래도, 덕질은 덕질이고, 업무는 업무인데 설마 어울리지도 않는 최애를 데려다가 끼워 맞췄겠냐는 것이다.

직장에서 사심을 채우려고 하냐는 말로 사방에서 깨져가며 추천을 했더니, 그 결과물이 지금 나왔다.

곧 팀장이 입을 열었다.

“잘 어울리네. 우리가 보는 눈이 있다. 그치?”

아니! 내가 판단을 잘했지, 내가! 보는 눈은 나한테 있고!

“그러니까요.”

억울하지만 여기서 공치사한다고 딱히 득 볼 것도 없었다.

강채은은 다시 촬영 중인 정해원 쪽을 보았다.

아무래도 보석 화보다 보니 잡을 수 있는 포즈가 한정적이었다. 첫 화보치고는 어렵지, 싶었는데 다행히 정해원은 화보를 정말 많이 본 후에 촬영장에 찾아왔다. 다시 한번 국선아 때 비친 불성실한 모습을 떠올리며, TV나 인터넷에서 믿을 건 날씨 하나 정도라는 생각을 했다.

보석 업계에서 일하다 보니, 강채은은 사람이 보석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보석이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보석 업계에서 일한 지 20년이 된 팀장은 늘, 사람에게 어울리는 보석을 찾는 것보다 보석에게 어울리는 사람을 찾는 게 훨씬 어렵다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 지금 정해원은 딱 이 브랜드가 찾던 이미지 그 자체였다. 쿨하다 못해 차가운 인상에, 은테 안경을 쓰고 있으니 웬만큼 지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현장 분위기도 지금까지 강채은이 가본 어떤 스튜디오 촬영보다 좋았다.

“완전 디 밀리아르디의 남자네.”

“너무…… 와, 진짜.”

호응이 너무 진심이라 정해원이 도중에 민망함을 못 참고 탁자에 엎드렸다.

“아, 그 정도 아니잖아요.”

“왜 아니에요?”

“진짜 너무 예쁘다.”

“올해 최고의 화보!”

“무슨 소리예요, 올해 첫 화보잖아요…….”

정해원이 우는소리를 하자 에디터고 촬영 스태프들이고 다 손주 재롱 보듯이 웃었다. 강채은은 따라 웃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아무튼 앞으로도 계속 같이 활동을 해야 되는데 팬인 걸 들키면 불편해할 것 같으니 덕심을 누를 생각이었다.

잠시 후 두 번째 착을 입을 때 주얼리들도 교체를 했다. 검은색 목폴라에 건 타이 네크리스가 파인주얼리라 특히 긴장하며 촬영을 보다가 목걸이가 돌아가 얼른 달려가서 핸드폰을 바닥에 내려놓고 목걸이 위치를 잡아줬다. 그때 바닥에 내려놓은 핸드폰에 문자가 와서 화면이 켜지며 배경으로 해둔 은발이었던 정해원의 콘서트 사진이 보였다. X버스 멤버십 온리에 올라온 사진이라, 팬이라는 증명서나 다름없었다.

‘헉, X발.’

다급하게 핸드폰을 챙겨 들고 일어서는데 화면을 본 정해원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물었다.

“햇살이에요?”

“어…… 네.”

“근데 왜 말을 안 해줘요?”

정해원은 친한 사람이 모른 척이라도 한 것처럼 충격받아 하다가, 컨셉을 떠올렸는지 얼른 표정을 굳혔다. 그래도 팬이 있는 게 좋은지 누가 봐도 긴장이 확 풀어져서 남은 화보 촬영을 이어갔다.

‘아니, 팬이 현장에 있는 걸 저렇게 좋아할 줄 몰랐지…….’

그 후에 표정도 포징도 훨씬 자연스러워져서, 강채은은 진작 햇살이라고 밝힐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 * *

촬영은 화기애애하게 끝났다. 거의 무슨 나를 손주 보듯이 챙겨줘서 당황하긴 했지만, 내가 또 애정 결핍이라 그런 걸 은근…… 많이 좋아한다…….

거기다가 햇살이인 직원분도 있어서 더 마음 편하게 일했다. 어쩐지 내가 되게 좋은 이미지도 아닌데 왜 브랜드에서 컨택했나, 했더니 햇살이가 있어서 그랬나 보다. 개이득이다. 히히.

아무튼 체력적으로는 너무 힘들어서 차에 타자마자 골골거렸다. 강영호 매니저가 내가 밀어 놓은 샌드위치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 그거 첫 끼잖아요. 빨리 먹어요.”

“너무 힘들어서 뭐 먹으면 토할 것 같은데.”

“해원 씨 부모님한테 전화해요?”

“……아뇨.”

나는 슬그머니 샌드위치를 끌어당겼다. 그때 입맛이 뚝 떨어지는 전화가 왔다.

예전에 나에게 VMC 악편 알리는 것에 대해 은은하게 경고를 줬던, TYT의 음악 콘텐츠본부 소속 직원 이용민이었다.

“아, 왜 또.”

내가 최근에 뭔 짓 했나?

나는 기억을 더듬어보며 전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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