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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91화 (91/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91화

-근데 왜. 정말로 VMC랑 잘해보게?

박중운 매니저의 질문에 나는 애매하게 대답했다.

“그건 그때 가봐야 알지.”

사실 VMC와 잘해볼 생각이 있는 건 아니다. 그래도 그 회사에서 날 공격하는 게 득 될 것 없는 짓으로 보이기는 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박중운 매니저는 이제 내 사람이 아니니, 그렇게 구체적으로 설명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전화를 끊고 다시 기획안을 보았다.

남의 회사 기획안, 그것도 픽스도 안 된 걸 이렇게 볼 수 있다는 게 어이가 없다. 저 형은 진짜 진로를 잘못 정했다.

그나저나.

[여러 가지 아픔을 가진, 데뷔의 꿈을 이루지 못한 아이돌 지망생들이 멘토 정해원과 함께 성장해 가는 이야기]

……내가 뭐라고 누굴 가르쳐? 누가 무슨 생각으로 기획한 건지 진심으로 궁금하다. 지금 나와 내 멤버들도 감당이 안 되는데.

내가 혹시 지금까지 멘토의 뜻을 잘못 알고 있었나, 싶어서 사전을 찾아봤지만 아는 그대로였다.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을 지도하고 조언해 주는 사람.

“내가 이게 가능했으면 우리 멤버들이 이거보다 잘나갔지.”

저 스펙, 서바이벌 두 번 출연으로 생긴 인지도를 가지고 데뷔 일 년 반 동안 음방에서 1위를 한 번도 하지 못한 건…….

약간 곡을 만든 내 탓도 있는 것 같지만, 모른 척하고 회사 탓으로 돌리기로 했다.

그 후 타이틀 작업을 어느 정도 마치고, 막 양이형에게 보냈을 때는 컴컴하던 밖이 밝아져 있……는 정도가 아니라 오후 한 시였다.

“어, X발, 언제 시간이 이렇게 됐어.”

나는 중얼거리고 나서, 다시 새 파일을 띄웠다. 이번에 빅 블루 곡을 작업하느라 수록곡을 못 썼으니, 한 곡 정도는 작업하고 싶었다.

바로 새 작업에 들어가려 할 때, 작업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민지호가 고개를 들이밀며 물었다.

“형아, 점심 드셨어? 치킨 시키려고 멤버 수집 중인데.”

“어, 먹을래. 배고파.”

나는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민지호와 304호로 이동했다. 이미 모든 멤버들이 옹기종기 모여 뭘 시킬지 고민 중이었다. 다들 스케줄이 없는 모양이다. 이 정도로 개인 활동을 거절할 필요는 없는데…….

멤버들이 남들 앞에서는 말수가 적다 보니, 처음에는 어떻게든 메이저 예능에 꽂아주려던 개인 활동 회사들이 점점 예능 쪽도 포기하고 있었다.

“사이드 시키자. 사람이 일곱 명이니까.”

“치즈볼 많이.”

“민조, 나 사이다.”

“이미 시켰지!”

우리 식대 이렇게 괜찮은가, 싶다가도 어차피 애들이 그렇게 비싼 음식을 좋아하는 건 아니니까 괜찮을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어차피 주는 대로 먹는 편이라, 멤버들과 좀 떨어져 앉아 앨범 회의 때만큼 열성적으로 치킨을 고르는 멤버들을 구경했다.

하나같이 몇 학교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한 얼굴에, 각자 능력치도 좋은데…….

나는 이 멤버들로 VMC가 기획한 방송을 떠올렸다.

[‘소년들’의 멤버들이 그동안의 아픔을 털고 한 팀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모큐멘터리]

VMC는 여기 이 멤버들이 자신들이 발굴한 인재들이라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안 그래도 고생을 한 이 멤버들을 또 한 번 우려먹을 생각을 할 리가.

그리고 팀이든 개인이든 좀 더 인기가 있었다면 이런 어그로성 기획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앨범 내고, 투어 돌리는 게 훨씬 돈이 될 테니.

얼마 전까지는 내 한 몸도 건사가 안 돼서, 내 이미지 회복을 하느라 바빴었다. 하지만 이제는 햇살이들도 나를 많이 좋아해 주고 있으니, 남을 생각할 여유를 만들 때도 됐다.

그나저나 햇살이들 생각난 김에 치킨 사진 찍어서 보여줘야지.

나는 흰색 스티커로 붙여 놓은 304호가 적힌 문, 그리고 테이블 위에 가득 찬 치킨을 찍어서 X버스에 올렸다.

[해원 : 304호에서 점심 많이, 많이 먹을 거예요]

[↳안주원 : 이렇게 보니까 많긴 많네]

멤버들이 종종 이야기하던 304호 사진을 올려주니까 팬들이 반가워했다.

[드디어 304호를 보게 됐네ㅋㅋㅋ]

[설마 이거 7명이 먹을 거 아니지?]

[↳지우니 : 고민해서 딱 맞게 시킨 거야…….]

[↳↳햇살이들 우리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됐잖아요]

[↳↳그니까요 인정합시다 우리 애들은 많이 먹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민조 : 먹고 운동할 거야 햇살이들!!!!!!!!!!!!!!!!!!!!!!!!!!]

[↳안 하면 만 원]

[↳↳민조 : 아니? 1억!!!!!!!!!!!!!!!!!!!!!!!!!!!!!1]

[↳↳↳너무 극단적인 거 아니냐궄ㅋㅋㅋㅋㅋㅋ]

[↳↳↳귀여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효석 : 민조 운동 같이 가자]

[↳↳민조 : 그랭♥ 선재도 데려가자!!!!!!!!!!!!]

[↳↳↳막내 : 흑흑 햇살이들 살려주세여 얘네들이랑 운동 가는 거 무서워여…….]

박선재가 그렇게 올리더니 날 보며 말했다.

“형, 살려조. 민조랑 효식이랑 운동가면 너무 힘들어. 쟤네는 지치질 않아.”

그러자 한효석이 말했다.

“근데 넌 가능성이 있어. 타고난 힘이 좋잖아.”

그 말에 민지호가 맞장구쳤다.

“맞아. 운동하면 언젠가 곰이 돼서 모든 걸 다 찢을 수 있을 거야.”

“안 돼. 난 귀여움이 컨셉이라 근육 안 키울 거야.”

박선재가 말하기 무섭게 신지운이 말했다.

“아니지. 귀여운 건 내 거지.”

“형은 왜 이렇게 양심이 없어?”

“햇살이들은 귀엽댔어. 잘 보면 강아지 같대.”

“어휴, 햇살이들이 받아주니까 점점 더 하네.”

나는 다시 한번, 시끌시끌한 멤버들을 살펴보았다.

자기들끼린 잘 떠드는데, 도대체 왜 낯을 가리는지 이해가 안 간다.

이 중에 예능에서 제일 긴장하지 않을 사람이 나인데, 나는 이미 박혀 있는 나쁜 이미지가 있는 게 문제였다. 머리로는 아닌 거 아는데, 마음은 여전히 나에게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다.

지금도 국선아 때 나를 좋아하지 않던 퍼스트라이트의 팬들이 비슷한 과정을 겪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괜히 사람이 첫인상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래도 나는 일단, 내 눈에 보이는 나를 좋아해 주는 팬들을 믿고 갈 생각이었다.

나는 메모장을 꺼내서, 목표를 적었다. 팀 활동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의 개인 활동, 그리고 자컨을 통한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의 인지도 향상…… VMC가 그딴 기획을 하지 않도록…….

내 핸드폰에 적으면서도 마지막 문장은 뺐다. 한 번 유출되고 나니 내 핸드폰도 믿음직스럽지가 않다.

그때 상태창이 떴다.

[새로운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3장. 개인 인지도 향상]

[(슈퍼 아이돌)의 퍼플룰렛의 적용 대상 범위가 재설정되었습니다]

[적용 대상 (퍼스트라이트)]

[첫 번째 미션 적용 대상자를 선택합니다]

그리고 나를 제외한 여섯 명의 이름이 룰렛으로 돌아갔다. 내가 룰렛을 멈추자 판이 천천히 돌아가다가 멈췄다.

[황새벽]

엇, 나이순이네. 유교적인 룰렛이다.

그리고 동시에 포션 하나가 튀어나왔다. 그럼 이걸…… 황새벽을 주면 되나?

나는 생각하다가, 황새벽에게 말했다.

“황새, 나 사이다 좀.”

“어.”

황새벽이 자기 사이다 캔을 건네줘서 나는 그걸 받자마자 몰래 포션을 부었다. 어차피 멤버들은 다 치킨에 집중해 나한테 관심이 없었다. 미리 마약 검사를 해놔서 다행이다. 아무 부담 없이 들이부을 수 있으니까. 히히.

그리고 사이다를 황새벽에게 돌려주니까 다시 마시려다가 나한테 말했다.

“더 마셔.”

줄기는커녕 늘어난 걸 알았나 보다. 의외로 예민한 놈이다.

“괜찮아.”

내 대답에 황새벽이 두 번은 물어보지 않고 사이다를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상태창이 떴다.

[퍼스트라이트 (황새벽)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합니다]

[이해도 35%(+20)]

……어? 늘어서 55%밖에 안 된다고?

[소프트 락/발라드]

[드라마 OST]

그렇게 키워드가 뜨더니 이어서 흐릿하게, 머릿속으로 황새벽의 목소리가 흘러들어 왔다. 이번 콘서트에서 자기 중학교 때 밴드부 멤버들을 데려와서 부른 무대와 비슷하면서, 그보다 훨씬 감정을 긁어 놓는 듯한 보컬.

내가 아는 목소리인데도,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였다.

“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황새벽의 어깨를 두들겼다.

“새벽아, 가자. 일하러.”

그러자 박선재가 대신 물었다.

“치킨 먹다 말고?”

“급해서.”

황새벽은 먹을 걸 좋아하지만, 내가 워낙 급해 보이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얼떨결에 나를 따라서 사내 컨트롤 룸으로 향했다.

나는 황새벽에게 속칭 락 발라드라고 부르는 장르의 유명곡들을 틀어줬다. 그리고 키와 발성을 조절해 가며 내가 방금 들었던 황새벽의 목소리를 꺼내기 위해서 노력했다.

장석훈에게 계속 보컬 트레이닝을 받은 보람은, 내 보컬 향상에도 있었지만 디렉팅에도 있었다. 장석훈은 말 그대로 사람마다 컨디션이 다른 성대를 다루는 명의였다. 그리고 나는 다행히 노래는 못해도 귀만큼은 좋은 편이라, 장석훈이 말하는 보컬의 미묘한 차이들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거의 30분 가까이 온갖 곡을 불러본 끝에, 나는 황새벽에게서 내가 들었던 그 목소리를 끌어냈다.

“뭐야.”

황새벽도 자기가 그런 목소리를 낼 줄 몰랐는지 멈칫했고, 나는 녹음한 파일을 바로 황새벽의 핸드폰으로 넘겼다.

“이거 잊어버리지 말고 기억하고 있어. 이 키에 맞게 솔로곡 만들어 올 테니까. 치킨 먹으려면 더 먹고 있어!”

나는 그렇게 말한 후, 정신없이 내 작업실로 돌아갔다. 그 작업은 올해 들어 최고의 희열이었다.

이번 솔로곡은 작정하고, ‘드라마 OST 관계자들이 듣고, 컨택을 하겠다고 마음먹을 곡’을 만들 생각이었다.

* * *

민지호는 컨트롤 룸으로 들어갔다가 녹음 부스 안에 황새벽이 혼자 앉아 있는 걸 보고 의아해서 물었다.

“뭐 해? 해원이 형은?”

“연습. 걔는 작업실.”

황새벽이 대답한 후 다시 유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그리고 민지호가 이해를 못 하고 표정을 찡그리며 앞에 앉으니 이어폰 한쪽을 주며 말했다.

“들어봐.”

“어떻게 형이 먹을 걸 포기하고 여기 있냐고.”

민지호는 이해가 안 돼서 중얼거리며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그리고 바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황새벽이 중얼거렸다.

“나 노래 잘하네. 지금 알았다.”

“……뭐야, 이거?”

“갑자기 내가 이렇게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것 같더래. 그래서 자기가 생각한 보컬 나올 때까지 나 갈구다가, 이거 녹음하자마자 작업하러 갔어. 내 솔로곡 만든대. 락 발라드. 드라마 OST 관계자들이 컨택할 만한 곡 만들고 싶다고.”

“우리 투 빌런도 좋았는데!”

“그니까. 나도 부러웠어.”

황새벽이 이어폰 한쪽을 돌려받으려 했지만, 민지호는 듣기 좋았는지 다시 자기 귀에 꽂고 아예 바닥에 드러누워 버리며 말했다.

“형 목소리 진짜 좋다.”

“쑥스러우니까 적당히 해.”

황새벽의 말에 민지호가 낄낄거리고 웃더니 이내 중얼거렸다.

“해원이 형 머릿속에는 진짜 우리 띄울 생각밖에 없나 봐.”

“그치.”

두 사람은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동시에, 국선아 시절 창문 앞에 서 있는 정해원을 떠올리고 있었다. 여전히 불안정하지만, 이제 자기 발로 병원에 찾아갈 생각을 한다는 것에서 희망이 보였다.

민지호가 이제는 웃어넘기자는 듯이 말했다.

“형, 그거 기억나지. 우리가 막 그 창문으로 사람 떨어질 수 있나 확인해 보다가 내 팔 끼어가지고…….”

그 말에 황새벽이 같이 낄낄거리고 웃었다. 그 순간을 웃어넘길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할 유일한 방법은 성공뿐이라고, 멤버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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