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92화
나는 황새벽의 보컬을 들으며 그냥 거기에 맞는 곡을 만들기 시작했다.
신기하게 고민도 되지 않고, 그냥 순서대로 곡이 줄줄 떠올랐다. 심지어 ‘드라마기를’이라는 제목도 바로 나왔다.
지금 아이돌 음악은 대부분 밴드 음악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락은 나에게 가장 가까운 장르였다.
그리고 동시에, 락이 가진 특유의 폐쇄성으로 가장 멀게 느껴지는 장르이기도 했다.
나에게는 락밴드가 하는 음악이면 락이고, 락 발라드라는 장르를 장르로 여기지만 황새벽은 소프트 락이면 소프트 락이고, 발라드면 발라드지, 락 발라드는 좀 이상하다고 투덜거리곤 했다.
내가 작업하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양이형이 내 작업실로 들어왔다. 나는 양이형을 돌아보며 물었다.
“작업하는 거 어떻게 알았어?”
“그걸 어떻게 알아. 그냥 온 거지.”
“나 보고 싶어서?”
양이형은 매정하게 내 애교를 무시한 후, 의자를 끌고 와 옆에 앉았다. 나는 헤드셋을 건네주고, 커피메이커로 내린 커피를 내 잔에 가득 부었다. 옆에 캡슐 머신도 있는데, 이제 그거 내리기도 귀찮다.
나는 양이형에게 말했다.
“바로 편곡 좀.”
“하, 이 새끼. 노예 들였냐.”
“해줄 거면서 그러네.”
나는 말하며 커피를 들고 의자에 앉았다. 다른 사람이면 일어난 김에 커피 주냐고 물어보겠지만, 양이형과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멤버 제외하면 제일 많이 붙어 있으니 서로 그런 쓸데없는 데 쓸 기운을 아끼자는 의미였다.
양이형이 헤드셋을 쓰고 음악을 들어보더니 말했다.
“락?”
“응. 우리 리더 솔로.”
나는 대답하고, 양이형이 작업한 곳까지 들을 때까지 기다린 후 말했다.
“뭔가 있잖아. 애절하고, 거칠어 보였으면 좋겠어.”
“또 시작이네. 야, 너네 멤버 불러와. 통역하게.”
그래서 나는 황새벽을 불렀다. 계속 녹음을 들으며 연습을 하고 있었는지, 유선 이어폰으로 핸드폰을 칭칭 감아 든 황새벽이 들어오며 물었다.
“왜?”
그러자 양이형이 물었다.
“애절하고 거친 게 뭐냐?”
“애절하고 거칠게요?”
황새벽이 목덜미를 긁적이더니 내가 작업하던 곡을 들어보았다. 두 번 정도 반복해서 듣더니, 작업실에 놓인 기타를 들었다. 디스토션을 걸고, 톤을 몇 번 조절해 보더니 바로 내가 만든 클래식 트랙 위로 기타 연주를 시작했다. 앰프를 찢는 듯한 강렬한 기타 소리에 양이형이 말했다.
“……저게 바로 되네. 하, 드러운 세상.”
“하드락이네.”
“하드락이지. 쟨 진짜 본투비 락커야. 약은커녕 술도 약한데 약 빤 것처럼 연주하잖아.”
“얼굴도 피곤해 보이고.”
내 말에 황새벽이 연주하다 말고 대꾸했다.
“진짜로 피곤해.”
“그으래, 알았다.”
“그래서, 이거 내 거야?”
“어. 네 거야. 온 김에 불러봐.”
내 말에 황새벽이 스툴을 끌고 팝필터 앞에 앉았다. 그 자리에서 한 번 더 곡을 들어보더니 노래를 시작했다.
노래를 듣던 양이형이 심각한 표정으로 턱을 문지르더니 나에게 물었다.
“황새벽 뭐야. 노래 왜 저렇게 잘해?”
“원래 잘했어. 내가 한 수 가르쳐 줘서 오늘은 좀 더 잘하네.”
내가 거들먹거리니까 양이형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네가? 보컬을 가르쳐?”
다행히 황새벽이 증인이 되어줬다.
“저도 안 믿기는데 진짜로, 오늘 정해원이 보컬 트레이닝을 해줬어요.”
“……그럴 리가 있냐? 너 뭐 꿈꾼 거 아니고?”
“진짜로요.”
그게 그렇게 됐다. 허허.
나는 다시 2절 벌스부터 작업을 이어가고, 양이형은 내가 만드는 대로 바로바로 받아서 편곡했다. 황새벽은 숙소로 가서 기타를 가져와서 세션 녹음까지 그 자리에서 마쳤다.
* * *
A&R이 해야 하는 일의 범위가 너무 대중없이 넓어지다 보니, TRV 엔터의 A&R 박건훈의 수면 시간은 거의 퍼스트라이트 곡 작업을 하는 정해원에게 맞춰져 있었다.
박건훈 역시 음악이 좋아서 A&R이 되었기 때문에, 곡만 잘 나오면 밤을 새우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곡만 나오면.
밤새고, 끼니 거르고, 무조건 시간만 때려 넣는다고 곡이 나오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므로 ‘밤을 새워서 그럴싸한 것이 나오는 날’보다는 ‘차라리 이 시간에 자둘걸’하는 후회가 되는 밤이 훨씬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후회를 몇 날 며칠 연달아 반복하면서도 밤을 새우는 것은 결국 그런 허비 같은 날들이라도 쌓아 올리면 좋은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박건훈이 뜨끈뜨끈한 국물이 있는 밥을 사서 컨트롤 룸으로 들어가 보니, 정신없이 몰두해서 곡을 만들다 지친 세 사람, 정해원과 양이형, 황새벽이 여기저기 쓰러져 자고 있었다.
박건훈은 황새벽이 직접 가녹음을 한 데모를 들은 후, 정해원의 성격대로 ‘왜 저렇게까지 일을 빡세게 하나’ 싶게 많은 트랙을 훑어보며 말했다.
“최단 시간에 만든 곡 아니에요?”
양이형과 황새벽은 대답할 힘도 없어 보였다. 똑같이 늘어져 있다가, 사회성을 힘으로 끙끙거리며 상체를 일으킨 정해원이 대답했다.
“힘든데, 진짜 재미있었어요.”
들어보니 셋이서 음악 이야기를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고, 작업하고, 연주하고, 황새벽이 추천하는 음악을 들어가며 일한 모양이다. 나머지 둘이 공감을 안 해주니 정해원이 둘을 흔들었다.
“아, 재미있었잖아. 빨리 공감해 줘.”
“3분만 더 자고…….”
황새벽이 소파에 얼굴을 파묻고 중얼거렸다. 비몽사몽 해서 숙소인 줄 아는 모양이었다. 양이형이 그나마 모니터 앞에 엎드려 있다가 박건훈을 보며 말했다.
“어, 형 언제 왔어요.”
“……해원 씨만 재미있었던 거 아니에요?”
박건훈이 반시체인 둘을 보며 정해원에게 물었는데, 양이형이 인터셉트했다.
“쟤는 작업할 때 폭군이에요.”
“아, 재미있었잖아.”
정해원의 말에 황새벽이 대답했다.
“너한테 세뇌돼서 그렇게 느끼는 거야…….”
“저게 맞지.”
양이형이 대답했다.
“왜들 재미있었던 걸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지 모르겠네.”
정해원이 투덜거리더니, 컨트롤 룸의 초고가 스피커로 데모를 들어보기 위해 다시 음악을 틀었다.
기타 소리가 주인공처럼 강력하게 느껴지다가도, 황새벽의 보컬이 시작되면 그 기타마저도 보조적으로 바뀌었다. 매력이 철철 넘치는 목소리였다. 이 사랑이 드라마의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를 바라는, 짝사랑 중인 남자의 절절함, 고독함이 있었다.
[아직도 이어지는 열여섯 마디가]
[내가 부르는 너를 위한 노래가]
[내가 아픈 건 이야기가 이어져서]
[내가 우는 건 장면이라, 드라마라서]
[호소하는 진심이 닿지 않는 건]
[이건 드라마라서 그저 서사라서]
[너와 나의 이야기가 아픈 건 그래서기를]
[우리가 행복하면 드라마는 끝나잖아]
[드라마라면, 우리는 행복하게 끝나잖아]
[우리의 이야기들이 아픈 건 그래서기를]
1월에서 가장 먼 계절이 가을인데도, 이 노래를 듣고 있으니 주변이 가을처럼 느껴졌다.
박건훈은 지금까지 나온 곡들을 생각해 보았다.
정해원의 합류 이후 나온 이후를 생각해 보니, 밝고, 명랑한 사랑 노래는 하나도 없고, 전부 힘들고 아픈 사랑을 하는 곡들이었다.
생각해 보니 나름, 그것도 괜찮은 컨셉 같았다.
“아픈 사랑 전문 그룹이네요.”
그 말에 음식 냄새를 맡고 슬금슬금 국밥을 꺼내던 황새벽이 흐흐 웃었다. 양이형이 말했다.
“그니까요. 이해가 안 된다니까. 지들이 짝사랑을 해보기나 했냐고.”
그러자 정해원이 황새벽이 건네주는 국밥을 받으며 말했다.
“우리 멤버들 중에 좋아하는 사람한테 먼저 말 걸 수 있는 놈이 하나도 없을걸요. 좋아하는 사람 있으면 뚝딱거리지도 못하고 저 멀리 떨어져 있을 것 같은데.”
“그니까 왜 이렇게 얼굴값들을 못 하냐고.”
양이형이 투덜거렸다. 그리고 국밥을 먹는 동안에도, 이번에는 네 사람이서 음악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 * *
1월은 정말로 바빴다.
정신이 없어서 사람 구실 못하고 있을 때마다, 옆에서 A&R팀과 매니저 형들이 챙겨주며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1월의 가장 큰 고비는 빅 블루 멤버 중 하나, 다니엘의 녹음이었다.
나는 폼다피 엔터의 컨트롤 룸에서 초조하게 다니엘을 기다리고 있었다. 공항에서부터 달려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미 스케줄이 정해졌고, 나도 수락한 건데 폼다피 엔터의 직원들이고 빅 블루 멤버들이고 지나치게 미안해했다.
“진짜 죄송해요, 이 시간에.”
“저 원래 늦게 자서 정말로 괜찮아요.”
나는 말하며 시계를 확인했다.
다행히 정확히 약속한 4시. 다니엘이 도착했다.
“안 늦었지? 안녕하세요, 해원 씨.”
“안녕하…….”
나도 인사하려는데, 빅 블루의 매니저가 다니엘을 떠밀었다.
“다니 형! 인사할 시간도 없어요!”
“아니, 그래도 한국 사람이 인사는 해야지!”
“형 미국 사람이에요!”
그렇게 떠밀어 다니엘이 녹음 부스로 들어갔다.
정확히 30분 녹음하고, 바로 컨셉 포토 촬영장으로 이동해야 해서 다짜고짜 녹음에 들어갔다.
우리 부모님이 요즘 다니엘이 나오는 미드를 엄청 열심히 보고 있어서, 녹음을 한다고 했더니 은근히 사인을 원하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30분 동안 녹음만 해도 시간이 부족해서, 그건 불가능해 보였다.
완곡을 녹음한 다른 멤버들과 달리, 다니엘은 본인의 파트만 녹음했다. 그것도 수정 녹음이 불가능하니, 나는 평소보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녹음에 들어갔다.
“형, 박자 한 번만 다시 들어주세요.”
“네.”
“형. 박자요.”
“그래요.”
급하니까 길었던 요구 사항을 점점 더 줄였다.
연습은 부지런히 해왔는데, 아무래도 혼자, 음악을 못 틀고 연습을 해서인지 박자가 많이 나갔다.
“형, 박자 한 번만 더요.”
“……미안해요.”
“미안할 일도 아니고, 그런 말씀 하실 시간도 없어요.”
너무 급하다 보니, 녹음을 하며 인심을 잃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까지 수정 녹음이 불가능했던 적이 없으니, 그 제약이 나에게는 크게 느껴졌다.
나라고 10년도 넘게 차이나는 선배에게 싸가지없게 말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것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돌 팀의 멤버에게.
하지만 좋아하는 팀이기 때문에, 더더욱 나는 이 작업을 망칠 수 없었다. 물론 내가 좀 더 경력이 쌓이면 이런 순간에도 여유를 부릴 수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나는 음악을 켜지 않은 상태에서, 메트로놈으로 반복해서 다니엘과 박자를 맞춰본 후 다시 녹음에 들어갔다.
다행히 괜히 프로가 아니라, 주어진 짧은 시간 동안 다니엘은 틀린 부분을 고쳐갔다.
그때 매니저가 말했다.
“이제 가셔야 돼요.”
“한 번만요. 3분이면 돼요. 늦으면 제가 밟을게요.”
나는 말하고 마지막으로 녹음에 들어갔다. 3분은 넉넉하게 부른 거라, 1분 20초 만에 마지막 녹음이 끝났다.
나는 급하게 복도로 나가는 다니엘을 따라 나가 허리를 푹 숙여 인사했다.
“죄송해요.”
그 말에 다니엘은 나를 잠깐 돌아봤다가, 바쁜지 정신없이 달려갔다.
나는 다니엘이 녹음한 트랙을 정리한 후, 작업을 끝내고 폼다피 엔터를 나섰다. 그때 핸드폰을 봤더니, 다니엘에게서 한참 전에 문자가 와 있었다.
[다니 형 : 왜요? 녹음 별로였어요?]
내가 사과한 게 녹음이 별로일 거라는 예고 같아 보였나 보다. 나는 얼른 해명했다.
[늦게 봐서 죄송해요]
[녹음 잘됐어요, 형! 제가 건방지게 디렉팅을 해서요. 마음이 급해도 그러면 안 되는데 죄송해요]
그리고 잠시 후 답장이 왔다.
[다니 형 : ??]
[다니 형 : 못 알아들었어요]
[다니 형 : 촬영 들어가니까 끝나고 다시 얘기해요]
엇, 한국어가 어려운 모양이다. 하긴 요 몇 년 계속 미국에서 드라마 촬영을 했으니, 어렵게 익힌 한국어를 좀 잊어버려도 이상할 건 없다.
[저희 부모님이 다니 형 엄청 팬이세요. X플릭스에서 드라마 매주 챙겨가면서 보고 계세요. 촬영 즐겁게 하시고, 안전하게 출국하세요!]
미안한 마음을 담아서 문자를 보내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숙소로 향하는 차 뒷좌석에 바로 늘어져 누웠다.
“끝났다!”
내가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소리치니까 강영호 매니저가 흐흐 웃었다.
이걸로 빅 블루의 곡 작업이 끝났다.
작업을 하다 보니, 우리는 아직 어떤 곡이든 할 수 있지만, 이미 사람들의 기대치가 높은 빅 블루는 그럴 수 없겠구나, 싶었다. 아직 우리 앞에 엄청나게 많은 계단이 있다는 사실이, 지금은 기쁘게 느껴졌다.
이제는 빅 블루의 음원이 나오는 날을 기다리며, 우리 일에 집중하면 되겠다.
그나저나 일단은…….
“영호 형, 저 좀 잘게요.”
심장마비 올 것 같은 기분이니까 좀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