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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93화 (93/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93화

숙소에서 모처럼 늘어지게 잤다.

오후에 일어나 보니 약을 먹을 시간이 지나서, 얼른 오늘 먹을 약을 챙겨 먹고, 비타민도 먹고, 아무튼 몸에 좋은 건 부지런히 먹었다. 나중에 잠을 압축한 알약과 식사 대용 알약 같은 게 나왔으면 좋겠다. 이제 슬슬 나올 때도 되지 않았나…….

빅 블루곡의 녹음 작업이 전부 쪼개져 있어 한동안 바쁘다가, 이제 좀 정신을 차렸다. 미국에 가서 뮤직비디오를 찍는다는데, 나는 거기까지 갈 수는 없으니까 폼다피 A&R에게 이미 신경 써줬으면 하는 것들을 다 말해뒀다.

일어나서 핸드폰을 보니 빅 블루 이준희에게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전화를 해보니, 어제 녹음한 다니엘이 내가 죄송하다고 한 걸 엄청 많이 신경 쓰여 하더라는 모양이었다.

-한참 후배가 새벽 네 시에 녹음해 주러 왔는데 자긴 자꾸 박자가 나가니까, 너무 미안한데 사과까지 들었잖아. 다니 형이 엄청 울적해하더라구요. 은근히 소심한 성격이라.

“……거기까지 생각 못 했어요.”

나는 말하며 방마다 문을 열고 다니며 같이 밥 먹을 멤버들 찾았는데, 다들 나갔는지 아무도 없었다. 아, 혼자 밥 먹기 싫은데. 내가 물었다.

“근데 형 바쁘시죠?”

-네. 왜요?

“지금 밥 먹을 사람 없어서요.”

내 말에 이준희가 웃었다. 왜 웃지, 진심인데?

-다음에 사줄게요. 고생 많았어요.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나는 운 좋게 이럴 때 같이 먹어줄 사람이 있다. 나는 회사로 전화를 걸어 X이앱 허락을 받았다. 다른 멤버들은 혼자 못 켜게 하지만 난 켤 수 있다. 내가 믿음직스러운 모양이다. 히히.

나는 피자를 주문하고, 도착하자마자 브이앱 제목을 골랐다.

[같이 점심 먹어요]

이렇게만 썼다가, 나인 줄 모르고 들어와서 실망하는 팬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덧붙이기로 했다.

[해원))같이 점심 먹어요]

그리고 팬들이 들어오는 사이에 피자와 피클, 사이다를 꺼내놓았다.

[아 이름 못 봤네 나감]

하여튼 써놔도 이러는 사람이 꼭 있다.

초반 분위기는 좀 그랬지만, 다행히 곧 날 반가워하는 햇살이들이 들어왔다.

[해원이다!]

[와 자연광ㅠㅠㅠㅠ]

[아니 얼굴 새삼 무슨 일이야]

[아직 한마디도 안 했는데 대유잼이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인사를 하고 댓글을 보며 대답했다.

“페퍼로니 피자에 페퍼로니랑 치즈 추가했어요. 뭐 먹을지 멤버들한테 물어보니까 민조가 이거 시키라고 해서.”

나는 음식 시킨 걸 설명해주고, 오늘따라 매운 게 땡겨서 타바스코를 많이 뿌렸다. 그리고 피자를 먹으며 채팅창을 확인했다.

“오늘 TMI……. 저 오늘 진짜 많이 자고, 방금 전에 일어나서 아직 TMI가 없어요.”

[이게 자고 일어난 얼굴이야……?]

[올해 TMI 말해줘]

[해원아 멤버들이 다 태몽 말해줬어]

“아, 멤버들이 태몽 다 얘기해 줬어요? 저도 태몽 진짜 신기해요.”

이건 준비된 재미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신이 나서 떠들기 시작했다.

“우리 누나가 화가거든요? 정수연 검색하면…….”

[알아 바부야!]

[어떻게 형님 직업을 모름?]

나는 잠깐 왜 우리 누나를 형님이라고 부르나, 생각하다가 좀 늦게서야 알아듣고 나도 모르게 웃었다.

“아무튼. 제 태몽을 이야기하려면 누나 태몽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엄마가 원래 화가가 꿈이었거든요? 그런데 꿈속에서 이렇게 큰길에 한쪽으로 있는 골목길에서 그림을 팔고 있더래요, 유화를. 그래서 엄마가 그 골목길로 들어가서 그림을 하나씩 보는데, 동물도 있고, 꽃도 있고…… 그러다가 나비 두 마리가 있는 그림 앞에서 멈추게 되더래요. 그래서 그 나비 그림을 한참 보다가 사기로 마음먹고, 돈 주고 유화를 딱 받아들었는데 알고 보니까 그 나비가 그림이 아니라 진짜 나비더래요. 그러더니 그 나비 두 마리 중에 한 마리가 엄마 손등에 와서 이렇게 앉더라는 거예요.”

[동화 같다]

[진짜 신기해…….]

“그때 누나가 태어나고, 그 이후에 둘째가 안 생겨서, 낳는 걸 포기한 상태였는데. 어느 날 엄마 꿈에, 10년 전이랑 똑같은 큰길이 나온 거예요. 꿈속에서도 그게 너무 신기하고, 자각몽처럼 이게 10년 전에 꾼 그 태몽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또 그 그림이 있는 골목을 열심히 찾아다녔대요.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골목이 나오지 않는 게 속상해서 울고 있는데, 어떤 할머니가 달려와서 예전에 돈만 주고 그림을 안 가져가지 않았냐고 그러는 거예요.”

[아니 미친]

[삼신할매등장]

[신기하다 못해서 소름 끼치네]

[몰입도 뭐야ㄷㄷㄷ]

“엄마가 안 가져간 거 맞다구. 내 거라구. 그러니까 할머니가 나비 한 마리가 그려져 있는 유화를 가져다주더래요. 그래서 엄마가 그 나비 그림을 꼭 끌어안고 잠에서 깼대요. 그리고 빰, 하고 제가.”

[빰 뭔데ㅋㅋㅋㅋㅋㅋㅋㅋ]

[홀려 있다가 한방에 현실로 돌아왔어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정수연 작가님 인스타그램에 나비 그림 많구나]

예상대로 햇살이들이 엄청 재미있어했다.

햇살이들이 즐거워하는 걸 보니까, 스포도 조금 흘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말을 이었다.

“아, 얼마 전에 A&R 직원분이 퍼스트라이트가 아픈 사랑 전문 그룹이라고 하시더라구요. 수록곡도 그렇고, 주원이도 짝사랑 가사 쓰고, 마태오도 좀 망한 사랑이고 그래서.”

너무 은은하게 스포했는지 스포란 걸 모르시는 것 같다. 나중에 황새벽 솔로가 공개되어야 스포란 걸 알게 되려는 모양이다.

그렇게 이야기하다가 나는 채팅창을 읽고 웃음이 터졌다.

[역시 믿음소망사랑 중에 최고는 망사랑]

나는 그걸 읽고 나서 웃음이 안 그쳐서 고개를 돌리고 한참을 웃었다.

“그치, 망사랑. 나도 좋아해요.”

[해원이 이 드립 왜 이렇게 좋아해ㅋㅋㅋㅋ]

[해외 팬은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널 보면 행복해]

[나랑 취향이 겹치니까 할 수 없이 결혼하자]

“햇살이들이랑 밥 먹으니까 너무 좋다. 아, 근데 다 점심 먹으면서 보고 있죠? 굶으면 안 돼요……라고 하면 또 너나 잘하라고 할 거지?”

예상대로 이미 너나 잘 챙겨 먹으라는 글이 쭉쭉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괜히 잔소리했다가 배로 잔소리를 돌려받았다.

* * *

나와 누나의 태몽 이야기가 재미있었는지, 팬이 그 부분을 편집해 유튜브에 올렸다. 나도 좋아하는 이야기다. 공계에서 나와 관련된 걸 올릴 때 원래 태양 이모티콘을 썼는데, 그 이후에는 파란 나비도 섞어서 쓰고 있다.

그사이 우리는 설날에 방송할 야구 예능을 촬영했다. 모처럼 INO 멤버들과 만나서 인사를 하고, 그 자리에서 게임을 해 INO 멤버 두 명을 임대했다.

그리고 본 방송 촬영 전날, 컨셉 포토 한 장과 함께 빅 블루의 컴백 일정이 떴다. 아직 곡이 공개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내가 참여한 앨범의 시작점이라고 생각하니 긴장감이 심한데, 다른 곳에 집중할 수 있는 건 다행이다.

나는 나름 야구 룰을 공부했지만 너무 바빠서 숙지하지 못한 게 대부분이었다. 나는 외운 걸 하나씩 복습하다가, 신지운에게 물었다.

“지운아. 우리 망했냐?”

“괜찮아. 형 우익수잖아. 사회인 야구에서 우익수 쪽으로 공 안 와.”

그렇다고 한다. 퍼스트라이트도 INO도 오른손잡이가 대부분인데, 아마추어가 밀어치는 일은 거의 없을 테니 원래 우익수는 할 일이 없는 모양이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 INO의 야구부 선수 출신인 멤버와 야구를 제일 모르는 내가 똑같이 우익수를 하게 됐다. 한쪽은 너무 잘해서, 난 전혀 몰라서.

그래도 달리기는 많이 빠른 편이라, 단거리 연습을 틈틈이 했다. 양 팀에 선수가 각각 아홉 명밖에 없기 때문에, 투수는 무한정 교체가 가능한데, 어차피 프로가 아니라서 스트라이크 꽂는 것부터 일일 테니, 나는 아예 휘두르지도 말고 볼넷을 기다리라고 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그냥 서 있다가 집에 가면 될 것 같다.

이따가 벤치클리어링이나 일으켜야지. 히히.

* * *

유일한 정해원의 영상계를 운영 중인 희은의 친구이자, 친구를 따라서 차츰 퍼스트라이트에 영업 당하는 중인 sooo_1818은 설 연휴를 맞아 집에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희은 : 야구 예능 우리 애 분량 없겠지……. 아무래도 스포츠랑 거리가 먼 애니까…….]

[희은 : 수정아 해원이 같은 형체만 보이면 찾아내야 하니까 같이 찾아줘ㅠㅠㅠㅠㅠ]

영상계 운영이 바쁘다고 해도, 떡밥이 없을 때는 목이 마른 모양이다. 희은은 정해원이 흐릿하게 잡히는 모습까지 긁어모아 영상을 만들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이런 것도 친구라고…….]

[희은 : 헤헷]

수정은 못마땅해하면서도 친구를 위해 일단은 퍼스트라이트와 INO의 야구 경기가 편성된 KQS를 틀었다.

아이돌이 나오는 것만 보고 못마땅해하던 수정의 아버지는 뒤에 보이는 배경이 고척돔이라는 걸 알고 슬쩍 자리에 앉았다.

“수정아, 쟤네가 다 아이돌이라고?”

아버지가 묻는 말에 수정이 대꾸했다.

“응. 근데 나도 잘 몰라. 그냥 야구 해서 틀었어. 아빠 야구 좋아하잖아.”

“프로가 하는 것도 재미없는데 무슨. 딱 봐도 재미없겠네.”

맨날 ‘아 개야구 드럽게 재미없다!’라고 하면서 꼬박꼬박 챙겨보더니, 지금도 아마추어조차 아닌 아이돌들의 야구를 은근 관심 있게 보고 있었다.

“다들 피지컬이 좋네. 이야, 저 투수는 지금부터 야구 해도 되겠다.”

……아빠, 재미없는 거 맞지?

라고 묻고 싶었지만, 재미있게 보고 있는 사람한테 괜히 뭐라고 하기 그래서 그냥 같이 야구를 봤다.

분명히 예능인데 웃음기 하나 없이 야구만 하고 있었다. 퍼스트라이트의 정해원만 멤버들에게 이게 예능이라는 걸 잊어버리지 말라고 한 번씩 일깨우고 있었지만 들리는 것 같지 않았다.

문제는 그 모습이 이게 예능이 아니라 스포츠로 보고 있는 사람 눈에는 못마땅하게 여겨진다는 것이었다.

“저 새끼는 왜 열심히 하는 애들을 방해하냐.”

그나마 예능을 하는 중인 정해원을 거슬려 하는 아버지의 말에 수정이 멈칫했다.

정해원은 다들 야구를 좋아하고 으쌰으쌰하는 와중에, 유일한 야알못 캐릭터로 잡혀 있었다.

‘안 그래도 편집 때문에 고생했던 앤데…….’

제발 뭔가 생각이 있는 편집이기를 바라고 있을 때, 타석에 정해원이 들어섰다. 나름 타격 폼은 연습을 했는지 제대로 자세를 잡고는 있었지만, 배트를 아예 휘두르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 장면에 멤버들과 정해원의 대화를 끼워 넣었다.

-형은 그냥 배트 휘두르지 말고, 사사구나 낫아웃을 기다려.

-낫아웃이 뭔데?

-투스트라이크 이후에 스트라이크가 된 공을 포수가 못 잡으면, 아직 형 안 죽은 거야. 1루에 들어가면 살 수 있어.

-오, 알았어. 근데 사사구가 나오면 난 뭐 하면 되는 거야?

-…….

그런 편집이 지나간 후, 정해원이 공을 나름 신중하게 살폈다. 스트라이크존이 많이 넓었지만, 초반은 타자에게 유리하게 볼카운트가 흘러갔다.

중간부터 정해원의 배트가 전혀 움직이지 않는 걸 안 투수가 스트라이크를 꽂아 넣으며 풀카운트. 다음 공이 투수의 손을 떠났다.

정해원은 그 공이 포수의 미트에서 튕겨 나가기 무섭게 달리기 시작했다. 수정이 물었다.

“어, 아빠, 쟤 왜 뛰어!”

“좀 아까 낫아웃에 뛰라고 설명해 줬잖어.”

수정이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정해원이 1루에 무사히 달려 들어갔다. 그 모습에 수정의 아버지가 말했다.

“아, 쟤는 주루가 좋네. 우리 구단 철밥통보다 낫다.”

“……응? 이렇게 바로 평가가 바뀐다고?”

황당함을 금치 못하고 있을 때, 수정은 희은에게서 온 카톡을 발견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자기 최애 보기도 바쁠 텐데 무슨 문자를 하나 싶었기 때문이었다.

[희은 : 수정아 이거 내가 너무 최애 중심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 걸까?]

희은이 보낸 것은 빅 블루 멤버 다니엘의 인스타그램이었다. 공식 계정에서 올린, 컴백 일정이 적힌 컨셉 포토에 이어서, 또 한 장의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여명을 찍은 사진에 태양 이모티콘.

[여명(퍼스트라이트)+해……?]

[정해원……?]

[서다니 이거 뭔데ㅠㅠㅠㅠㅠㅠ]

[혹시…… 럽스타그램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이번 앨범에 해원 후배님 참여하시나?]

컴백에 대한 백 퍼센트의 긍정 반응과 달리, 정해원의 참여에 대한 반응은 긍정 반, 부정 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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