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94화
긴 공백을 깨고 컴백을 선언한 빅 블루 팬들은 최근,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팀의 막내인 이준희가 흘린 두 마디만 들어도 잘 빠진 곡이라는 예감이 왔고, 전원 미국행에 대한 스포일러로 다섯 명의 멤버가 전부 참여했으며, 그 폼다피 엔터가 뮤직비디오에 돈을 꽤 썼으리라는 것까지 알아차렸다.
[그치 X다피가 가오가 없지 돈이 없냐]
[근데 진짜 쌩신인한테 곡 맡겨도 되나 지네 팀 곡도 아직 일간 든 게 없는데]
[↳남돌들 일간 거의 못 들잖아 곡을 못 뽑아서는 아니야]
[↳나 다니 인스타보고 해원 님 곡 다 들어봤는데 괜찮더라]
[나도 작곡팀 빵빵하게 붙을 줄 알았어서 아쉽긴 한데, 솔직히 우리 팀이 회사에서 시킨다고 해야 하는 짬도 아니고 X다피가 먼저 컴백 준비해 줬을 리도 없어서ㅎㅎ 멤버들이 고른 것 같아]
[↳내 생각도22]
[↳33 애초에 X다피가 해원 님한테 먼저 컨택을 했을 놈들이 아님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리 그래도 몇 년 만에 컴백인데 신인한테 곡 받는 건 너무해ㅠㅠㅠㅠ]
[↳본업 작곡가도 아니고 아이돌 후배…….]
[↳나 이거 걱정되는 게 빅 블루 팬인 후배라 받아준 걸까 봐……. 그것도 고생 많이 한 후배긴 하잖아]
[↳맞아 특히 형라인은 그러고도 남을 사람들이라ㅠㅠ]
[나 혐생 살다가 이제 봤는데 반응들 왜 그래ㅋㅋㅋ 빅 블루가 아이돌 생활이 몇 년인데 진짜 쓸모없는 걱정임 우리 팀 믿고 가자]
[↳X나 맞는 말]
[↳주니가 두 마디 흘린 것만 봐도 너무 신난 게 보이는데ㅋㅋㅋㅋㅋㅋㅋ]
빅 블루의 팬들 사이에서 불안과 믿음이 혼재되는 동안, 몇몇 커뮤니티, SNS 플랫폼에서는 다짜고짜 부정적인 반응들도 있었다.
[곡 쓰레기같이 뽑아도 빅 블루 곡이면 잘 팔리겠네 X 같다]
[국혐이 기회 하나는 잘 잡지 퍼라 합류도 글코ㅎㅎ]
[↳써방해 팬들 온다]
[↳↳아니 내가 그냥 X나 싫다는데 부르는 것도 마음대로 못하게 하네 국선아가 악편이면 데뷔조 아닌 게 없던 일 되냐고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슬슬 야구 없는 겨울을 지겨워하다가, 얼떨결에 야구 예능을 보고 있던 몇몇 야구팬들도 이 소식을 전해 들었다.
[X나 노관심인 얘기 왜 하냐]
[뭔 작곡이야 야구나 열심히 하지]
[↳야구 선수 아니라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때, 정해원이 낫아웃으로 출루한 장면 뒤로 인터뷰가 이어졌다.
-아, 제가 미트 안 보고 뛰었어요? 몰랐어요.
-안 봤는데 포수가 공 못 잡은 걸 어떻게 알았어요?
-소리로요. 공이 미트에 닿는 소리가 완전 달라서요.
[절대음감을 사야에서 써먹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아이돌도 사회인 야구 해도 되잖아 사회인이긴 하니까]
[정해원 얼마면 사 오냐 유니폼 X나 잘 팔겠네]
[↳그 귀하다는 원툴 플레이어!]
[↳↳? 왜 원툴임? 얼굴까지 2툴이지]
[↳↳↳그러네 생각보다 비싸겠다]
[↳↳↳웬만한 꼹ㅌ 선수보다 낫다……!]
그리고 5회 초, INO 투수의 공이 타석에 서 있던 황새벽의 어깨 위로 날아오자마자 덕아웃에서 정해원이 신이 나서 뛰어나갔다. 그렇게 기다리던 벤치클리어링이었다.
[쟤 누군데 저렇게 해맑게 뛰쳐나가냐ㅋㅋㅋㅋㅋㅋㅋㅋ]
[↳정해원]
[IBC 처음부터 봤는데 경기 초반부터 벤클 하나 보고 야구 함]
[↳X나 상남자네]
[↳그냥 쌈질에 미친 새끼 아니냐ㅋㅋㅋㅋㅋㅋ]
[↳아 쟤가 아까 그 절대음감임?]
[하 X받네 이게 왜 재밌지]
[↳아무래도 X크보가 아니니까]
[↳아……!]
[근데 뉴이어(퍼스트라이트가 속한 팀)팀은 아이돌 맞냐 피지컬이랑 인상이ㄷㄷㄷ]
[↳해피(INO가 속한 팀)팀 선수들 개쫄릴 것 같은데 안 쪼네 멘탈 좋다]
그러나 인상과 달리 두 팀은 아이돌이라는 소속을 잊지 않고, 바로 닭싸움으로 응수했다.
[닭패싸움ㄷㄷㄷ]
[한효석 쟤 뭐냐 그냥 바르는데]
[↳발레했대]
[↳↳역시 실전 근육]
[↳↳발레리노가 저 키면 살상무기 아닌지ㄷㄷㄷ]
[4번 쟤는 몇 년생이냐 진짜 야구 해야겠다]
[↳신지운? 05년생]
[↳↳아 생각보다 어리구나?]
[↳운동 신경 X나 좋네 진천이 뺏긴 인재…….]
* * *
나는 304호에서 멤버들과 설 특집 야구 예능, 아이돌 베이스볼 클래식, 그러니까 IBC를 보고 있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야구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서, 그날 촬영이 그렇게까지 재밌지는 않았다. 그냥 시키니까 열심히 하기는 했다. 그래도 벤치클리어링 하려고 벤치에서 뛰쳐나가는 건 재미있었다. 흐흐…….
경기는 3 대 7로 우리가 이겼다. 점수 차이가 크게 나서, 경기가 끝나갈 즈음에는 INO의 선수 출신 멤버, 이수한이 나와서 던졌는데, 퍼스트라이트 누구도 못 쳤다. 나름 INO도 가져가는 게 있었다. 그리고 내년 설날에 설욕전을 하겠다고 엄포하며 경기가 끝났다. 시청률에 달린 문제 같다. 또 하기는 싫은데, 시청률은 잘 나왔으면 좋겠고…….
아무튼 그렇게 방송을 보고 있다가, 빅 블루의 다니엘이 내가 참여한 걸 스포했다는 소식을 직원에게 전해 듣고 급하게 일어났다.
나는 일단 내 작업실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우선 떨리기부터 하는 두 손으로 다니엘의 인스타그램을 찾아 들어갔다.
여명 사진에 태양 이모티콘. 데뷔하고 아무리 오래 지나도 스포쟁이들의 성향은 바뀌지 않는 모양이다.
뭐 어차피 조만간 심의가 나오며 내가 이번 활동곡을 작곡했다는 것이 알려지긴 할 것이다. 좀 일찍 알려진 것뿐.
나는 지금 이 순간 확 쏟아지는 스트레스를 누르기 위해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그래도 확실히 약물치료를 시작한 후부터는 이전보다 스트레스를 다루는 것이 수월해졌다.
그때 빅 블루의 리더, 최정민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네, 형.”
-어, 해원이. 다니엘이 갑자기 스포를 해버렸더라고. 지금 폼다피에서 TRV 쪽에 연락하고 있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전화했어.
“아, 네. 저 별로 걱정 안 했어요, 형.”
최정민은 사람은 좋은데, 한번 말을 시작하면 잘 끊기지 않는다. 직업병인 것 같다.
지금도 최정민은 저 스케줄을 어떻게 소화하나, 싶을 정도로 많은 방송에서 MC 롤을 맡고 있다. 그중에서도 OTT 채널에서 방송 중인 시즌제 예능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고 있다.
차세대 국민 MC 후보는 여럿이지만, 저 예능 하나만으로도, 지금 현 상황에서 가장 뛰어난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는 건 최정민이었다.
-스키퍼(빅 블루 팬클럽)들이 좀 걱정을 하고 있긴 한데. 해원이도 알잖아, 우리 팬들이 유난히 근심 걱정이 많은 팬들인 거. 그래도 곡만 좋으면 금방 팬심으로 모셔온 작곡가라고 좋아할 거야.
팬들의 사랑의 형태는 아주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도, 아이돌이 보는 자신의 팬클럽은 특별한 느낌이 드는 모양이다. 그중에서도 최정민은 팬 사랑이 유난하기로 유명하다. 팬들 얼굴도 잘 외우고, 언제 어떤 인터뷰에서도 팬에게 전하는 고마움을 빼놓지 않는다.
내가 대답했다.
“저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서 걱정 안 해요.”
-그래? 캬, 자신감이 있다. 좋네.
나 스스로도 이 팀의 팬이다 보니, 나보다 더 실력도 경력도 좋은 프로와 작업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나는 내 음악을 좋아하고, 자신감도 있었다.
그나저나, 이 형의 전화가 금방 안 끝날 것 같다는 예감은 적중했다.
-……아무튼 그래서 좀 이따가 촬영 들어가거든. 오늘 아침부터 날씨가 흐리더니 지금 갑자기 비가 오네. 우산 가지고 나올 걸 그랬어. 아, 그러고 보니까 그 우산이…….
어쩌다가 내가 우산을 어떻게 사게 됐는지 TMI까지 듣고 있는 거지? 아니, 애초에 이 형이 전화한 목적이 뭐였더라. 하, 혼란스럽다.
-그러니까 결론이…… 잠깐만, 해원아. 내가 너한테 왜 전화했니. 나이가 드니까 정신이 없다.
아니요, 형님. 나이 탓이 아니라 중간에 너무 많은 말을 해서 주제가 흐려진 겁니다…….
라고 말하기엔 너무 대선배라, 나는 질문에만 대답했다.
“다니 형이 스포해서 제가 놀랐을까 봐요.”
-아, 맞다. 그랬지. 아냐, 그거 말고 하나 더 있는데…….
또다시 TMI가 시작되는 건가, 초조해하는데 최정민이 말했다.
-생각났다! 해원아, 너희도 3월 말에 컴백하지?
“네.”
-아까 보니까 너희 멤버들 힘 좋더라. 혹시 잘 먹니?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최정민이 공중파 케이블에서 진행하는 방송인 ‘찾아가는 일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찾아가는 일꾼’은 공익적인 목적이 큰 예능으로, 노인 인구가 대부분인 지역을 찾아가 일을 하는 예능이었다.
손이 부족한 곳에서 과일을 따기도 하고, 농사를 돕거나, 보수 공사를 한다. 이제 이 예능의 레귤러 출연자들이 거의 모든 일에 준프로들이라, 능숙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방송에서 특히 인기 있는 부분은 열심히 일하고, 허기가 진 게스트들이 많은 양의 음식을, 맛있게 먹어치우는 부분이었다.
“엄청 많이 먹어요.”
-잘됐다. ‘찾아가는 일꾼’ 와서 일 좀 해.
예쓰!
“감사합니다!”
-뭐가 감사해, 엄청 부려먹을 건데. 대신 배 터지게 먹여줄게.
“우리 멤버들이 그렇게까지 배불러 하는 걸 본 적이 없어서 저도 기대돼요.”
-그 정도야? 아, 이거 엄청 기대되는데. 멤버들 뭐 알레르기 있거나…….
그리고 내가 쓸데없이 기대된다는 말을 하는 바람에 최정민은 또 한참 동안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 * *
회사에서는 당연히 좋아했고, 멤버들은 더 좋아했다. 힘쓰고 많이 먹기. 우리 멤버들에게 이보다 적합한 예능은 없었다.
그나저나 내가 예능을 따온 것도 아닌데, 회사에서도 멤버들도 무슨 내가 나가서 영업하고, 예능을 따오기라도 한 것처럼 생각했다. 좀 부담스러웠지만 내가 공치사를 좋아하니까 그냥 놔뒀다.
거기에 설 특집 IBC는…… 의외로 시청률이 잘 나온 모양이다. 의외다, 정말…… 이거 또 하는 건 아니겠지…….
그 후 3월 말에 컴백할 앨범 작업과 자컨 촬영을 하며 정신없이 두 주를 보냈다.
그사이 심의가 나오며 공식적으로 이번 빅 블루의 타이틀곡 작업을 내가 했다는 것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이 하이라이트 메들리가 공개되는 날이었다. 음방 예고를 통해 인트로가 조금씩은 나왔지만, 제대로 공개되는 건 오늘이 처음이다.
“많이 떨려?”
그런데도 황새벽이 그렇게 물어보는데 저절로 고개가 저어졌다.
“의외로 안 떨려.”
“어떻게 안 떨려?”
“우리 노래가 아니잖아.”
진심이었다.
우리 노래가 아니니까. 퍼스트라이트의 앨범이 아니니까 떨리지 않았다. 신기한 일이다. 나에게 정말로 퍼스트라이트가, 그리고 우리 팬이 일 순위구나. 그 생각이 지금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작업을 할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있는 건 아니다. 다행히 오늘 컨셉 포토 촬영이 있었다.
촬영장에 도착해서 내리자마자 나는 핸드폰을 꺼냈다.
“와, 뭐야. 우와.”
빅 블루 이준희가 보낸 커피차가 있었다.
[본업 중입니다]
그렇게 적혀 있었다. 역시 아이돌 선배답다.
나는 바로 사진을 찍어서 이준희에게 보내고 감사하다는 전화를 했다.
그 후 시작된 촬영 도중에 하라메가 공개되는 12시가 가까워졌다.
나는 때마침 쉬는 시간이라 커피차 옆에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솜사탕 기계로 향했다. 솜사탕을 크게 만들어 들고 포토카드 용 사진을 찍고 있는데 멤버마다 핸드폰만 보고 있는 게 보였다.
하라메를 확인하고 있는 게 분명한데, 12시가 지나도 멤버들이 반응이 없었다.
“아, 반응 어떤데.”
급 쫄려서 내가 물어보니까 민지호가 말했다.
“형이 직접 봐.”
우리 멤버가 나에게 ‘반응을 직접 봐도 된다’고 말한다면, 결과는 정해져 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아마도 안도의 웃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