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96화
[빅 블루 탑백 1위ㄷㄷㄷ]
[일간 진입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지금 이용자 수 보면 10위권일 듯]
[근데 사실상 지금 빈집 아님ㅎㅎ? 신곡이 없잖아]
[↳신곡이 못 뚫는다는 건 붙박이가 X나 탄탄한 거지]
안주원이 핸드폰을 확인하는 사이, 문에 ‘탑백 1위’ 종이를 붙이고 있던 신지운이 종이를 치워보며 말했다.
“저 형 안 움직이는데?”
“못 움직이는 거 아냐?”
“정신 못 차리네.”
신지운이 말하며 지문을 인식하고 작업실로 들어갔다. 정해원은 두 사람이 들어온 후에도 얼어 있다가 이내 의자 뒤로 기대 늘어지며 말했다.
“와, 한시름 놨다.”
“1위 하면 밥 사줘.”
신지운의 말에 정해원이 의아해하며 대꾸했다.
“1위 했잖아?”
“일간 1위.”
“그거면 밥 사주는 게 문제겠냐.”
정해원이 투덜대는 투로 말하더니, 연습을 위해 슬리퍼를 운동화로 갈아 신으며 말했다.
“빨리 연습실 가자. 연습하면서 잊어버리고 있어야지, 쫄려.”
“맞아, 잡생각 들 땐 땀 흘리는 게 최고지.”
안주원이 맞장구치며, 세 사람은 연습실로 향했다.
* * *
“미쳤나 봐, 순위가 계속 오르네……. 이러다 진짜 1위 하는 거 아냐?”
@regular_1228, 이재희는 핸드폰을 보며 어처구니가 없어 중얼거렸다.
물론 누구보다 최애의 능력치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지만, 이렇게 음원 차트를 뚫고 올라가 버릴 거라고는 팬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다.
팬이 아는 정해원은 이런 순간에 온전히 기뻐하기보다는, 퍼스트라이트의 성적이 아니라는 사실에 복잡한 감정을 느낄 사람이었다. 그 생각을 하니 이재희도 기쁜 동시에 묘한 공허함을 느꼈다.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서 다시 정해원의 화보가 있는 잡지를 열었다. 미리 여러 권을 사두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닳도록 보게 될 줄 미리부터 예상하고 있었다.
주얼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모던하고 시크한 첫 화보의 컨셉이 정해원 특유의 냉랭한 얼굴과 잘 맞아떨어졌다.
그렇게 화보를 보고 있는 사이, 구독한 정해원의 영상계에 새로운 영상이 업로드되었다. 정해원의 영상이 아닌, 빅 블루 멤버 다니엘과 이준희의 라이브방송을 편집한 영상이었다.
[빅 블루 선배님들이 말하는 해원이가 타이틀을 맡게 된 과정]
안 그래도 궁금하던 썰이었다. 이재희는 곧바로 영상을 눌렀다.
본진이 아닌데도 배우 두 사람의 얼굴을 보니 감탄이 나왔다. 선량하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인상의 다니엘도 그렇지만 이준희는 ‘수려하다’는 말을 사람으로 빚어놓은 것 같았다.
다니엘이 말했다.
-아, 어쩌다가 해원 님이 작곡을 하게 됐냐는 질문이 엄청 많네. 이건 진짜 준희가 다했지, 뭐. 컨택부터 앨범 나올 때까지 너무 고생했어.
그러자 이준희가 덤덤한 표정과 말투로 대답했다.
-나랑 민하 형이 퍼스트라이트가 참여하는 서바이벌 방송을 보러 갔었잖아. 거기서 해원 후배님이 작곡한 흔적이랑 마태오가 확 와닿아서 멤버들한테 추천해 줬는데 다들 좋아하더라. 그래서 시상식에서 만났을 때 바로 가서 곡 만들어 달라고 했지.
-그랬더니 바로 만들어준다고 했어?
-응. 후배님이 스키퍼라.
이준희가 어깨를 으쓱이고 대답하더니 약간 민망해하며 말을 이었다.
-근데 해원 후배님이 나 보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는 거야. 그래서 뭐냐고 했더니 제발 셀카 좀 잘 찍으라고. 내가 간절함이 없다더라.
그 말에 다니엘이 공감의 웃음을 터뜨렸다. 이준희가 한숨 쉬며 말했다.
-아, 웃지 마.
-어떻게 안 웃어? 스키퍼들도 다 웃잖아. 어쩐지 요즘 셀카가 좀 늘긴 했어.
-후배한테 셀카 잘 찍으란 말 들으니까 확 와닿더라. 내가 진짜 못 찍긴 하는구나.
이재희는 그 에피소드를 들으며 빅 블루 두 사람을 따라 웃다가 댓글을 확인했다.
예상대로 댓글에 보이는 빅 블루 팬마다 충격에 빠져 있었다.
[주니가 직접 해원 후배님한테 가서 곡 달라고 했다고????]
[↳아니 X발 내가 주니 눈을 못 믿고 후배님 경력 짧은 걸 걱정 했네…….]
[↳↳나도ㅠㅠㅠㅠㅠ 후배님 죄송해요ㅠㅠㅠㅠ 아니 아무래도 후배님이 04년생이라니까…… 그해에 사람이 태어난 것도 놀라운데 나는…….]
[↳↳스키퍼 평균 연령이 후배님보다 높다 보니까 너무 어려서 못 미더웠어요…….]
[↳↳하 해원 후배님 내가 낳았어야 했는데]
[↳↳↳아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해원 후배님 진짜 덕심으로 모셔온 분이셨네ㅠㅠㅠㅠ]
[천재에 나이가 어디 있냐 하 내가 뭐라고 의심을 했네…….]
빅 블루의 일간 최고 성적은 개편 전후 할 것 없이 4위였다. 그리고 지금, 그 성적을 경신했다.
비록 공백기 동안 빅 블루의 인지도가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물어보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알아볼 정도로 상승했다지만, 음원은 또 별개의 문제였다.
인지도는 음원을 차트에 올려줄 수 있지만, 최고 성적을 경신하게 해준 건 곡 자체의 힘이었다.
댓글을 보니 퍼스트라이트 팬들은 잘 보이지 않았다. 이재희는 아마 다들 자신처럼 빅 블루 팬들의 댓글을 보며 흐뭇해하고 있으리라 추측했다.
댓글을 읽는 사이 다니엘이 말을 잇는 것이 들렸다.
-내 스케줄 때문에 녹음 시간도 넉넉하지 않은데 그날따라 갑자기 박자가 입에 안 감기는 거야.
-그럴 때 있지.
-넌 없잖아.
-난 없지. 있다고 들었어.
이준희가 태연히 대답하고 계속 말하라는 듯 다니엘을 보았다. 다니엘이 말을 이었다.
-시간은 줄지, 박자는 계속 안 감기지. 난 너무 초조한데 디렉팅하는 해원 님이 너무 침착하더라. 급할수록 더 침착해지니까 나도 같이 침착해지더라고. 그러다 시간 다 돼서 밖에서 부를 때 드디어 딱 입에 감긴 게 들리니까 해원 님이 3분만 더 달래, 늦으면 자기가 운전한다고. 그때 당시엔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녹음실 나와서 이동하니까 선배로서 자괴감이…….
-그날 형 진짜 시무룩했잖아. 난 녹음이 마음에 안 드나, 했더니 그건 또 아니고.
-녹음은 잘 나왔는데 과정이 미안했지…… 근데 진짜 너무 고맙더라. 주니가 우리 눈엔 막내지만 해원 님 보기엔 진짜 대선배잖아. 우리 곡 작업을 한다는 게, 사실 진짜 부담스러울 텐데 그걸 했잖아. 후밴데 어른이더라.
-내가 형들 모으기 쉽지 않을 거라고 말했거든. 그러니까 우리가 모일 수밖에 없는 곡을 써왔어.
-응, 나도 곡 듣는데 이건 뭉칠 수밖에 없겠더라고. 우리한테 주는 편지잖아. 그만 미루고 뭉치자고. 해원 님이 스키퍼잖아. 그러니까 이건 스키퍼가 우릴 불러 준 거고, 또 우리가 스키퍼를 위해서 뭉친 거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
[미치겠다 진짜 팬들 위해서 낸 앨범 그 자체ㅠㅠㅠㅠ]
[눈물 난다…….]
그리고 댓글에 빅 블루팬들과 퍼스트라이트 팬들의 생각이 엇갈리는 부분도 있었다.
[햇살이분들 퍼라 앨범 나오면 제발 알려주세요 아무리 바빠도 품앗이 갈 테니까]
[저도 품앗이……! 해원 님 진짜 대담하고 어른이네요ㅠㅠㅠㅠ]
[↳근데 아직도 무대공포증 있어요ㅠㅠㅠ]
[↳↳!!?????????? 그래요????!?? 왜요????????]
[↳↳↳국선아 후유증이요ㅠㅠㅠㅠ]
[↳↳↳↳국선아가 왜요? 빅 블루 쉬는 동안 저도 케이팝이랑 멀어져 있었어서…….]
[헉 해원 님 악편 지금 봤는데 VMC 진짜 개X같은 새끼들이네요?]
[누가 해원 님 까면 저 불러주세요]
[빅 블루도 까면 안 되지만 스키퍼는 더더욱 까면 안 되거든요ㅎㅎ]
* * *
음원 공개 직후부터, 여기저기서 빅 블루의 노래가 나왔다.
특히 예능의 힘이 대단해서, 빅 블루 리더인 최정민이 출연하는 예능마다 나가서 계속 타이틀을 불러제끼니까 다른 예능에도 백그라운드에 ‘올해는 만나자’가 깔렸다.
우리 부모님은 탑백을 돌려놓는 카페에 들어가서, ‘올해는 만나자’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데 재미를 붙이셨다.
다니엘이 출연 중인 드라마의 공식 계정에도 극 중 다니엘의 등장씬을 편집한 짧은 영상에 ‘오늘만 만나자’를 입히고 이런 글이 올라왔다.
[우리의 캐빈(다니엘의 극 중 이름)이 원래 케이팝 아이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요?]
이준희가 촬영 중인 드라마 OTT 공식 계정, 유찬희의 뮤지컬 팬들과 박민하가 중심적으로 활동 중인 일본의 팬들이 건 광고가 도심 곳곳에 걸렸다.
인지도의 힘이 무섭긴 했다. 방송이고 거리고 할 것 없이, 세상이 홍보판이 되어주며 계속해서 음악이 노출되니, 일간 순위도 꾸준히 유지되다 못해 겨우내 포진되어 있던 음원 붙박이들을 서서히 뚫어가며 한 계단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응원차 빅 블루의 새벽 사전녹화를 찾아갔다가 한 소리를 들었다.
“네가 뭔데 도시락을 사냐?”
이준희도 우리 촬영장에 커피차를 보내줬으니, 나도 뭔가 성의 표현을 하고 싶어서 응원 도시락을 보냈다가 다섯 명 모두에게 욕을 먹고 있었다.
“팬심과 성의 표시를 한 건데요…….”
그렇게 해명하다가 빅 블루 박민하에게 헤드락이 걸렸다. 하, 억울하다, 억울해.
“내가 방금 일본에서 솔로로 돔 투어를 하고 왔는데, 너 같은 핏덩이한테 얻어먹어야겠냐?”
“저 이제 진짜 얻어먹기만 할 테니까 밥 사주세요.”
“어, 당연히 그래야지, 어디서 감히 대선배들한테 밥을 사려고.”
먼저 커피차를 보내준 이준희라도 내 편을 들 줄 알았더니, 멤버들 말에 동조한다. 하, 팔은 안으로 굽는다더니…….
뭐라고 하는 것치고는 공식 계정에도 올려주고, 인스타그램에도 몇몇 올려줬다.
그때 갑자기 빅 블루 스태프 중 한 사람이 소리쳤다.
“이, 일간 1위! 1위! 1위!”
너무 흥분해서 뒷말을 못 잇고 1위만 반복했다.
결국 일간 1위를 찍어버렸다.
내 눈으로 음원 순위를 보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1위 소식을 듣자마자 멤버, 스태프, 거기에 나까지 끌어들여 둥그렇게 뭉친 후 짐승들처럼 포효했다. 진짜 한 팀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피가 뜨거워지게 하는 세리머니였다.
나는 다른 이유로 또 한 번 피가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언젠가 퍼스트라이트도.
그때가 오기만 하면…… 아, 그때의 감정을 지금과 비교할 수 있을까. 이것보다도 더, 몇 배는 더 행복할 테니.
사람이 너무 행복하면 불안하다고, 갑자기 인수와 재계약 같은 아직 닥치지 않은 걱정이 쏟아진다. 그날이 안 올 것만 같다는, 괜한 두려움이 드는 것이다.
곧장 고개를 저어 그런 불안들을 털어냈을 때, 상태창과 핸드폰 연락이 동시에 도착했다.
[일간 차트 1위(빅 블루) 달성으로 (히트곡 메이커)의 레드룰렛에서 사용할 수 있는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레드룰렛 S급 티켓×1]
오?
지금까지 받아본 적 없는 최고 등급의 티켓을 받았다.
그리고 핸드폰 쪽을 보니 일간 1위 순간부터 많은 축하 연락이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그 축하들 속에, 뚜렷한 목적이 있는 연락들도 많았다.
[XX엔터 A&R 강현서입니다. 1위 축하드립니다 작가님! 먼저 저희 XX엔터의 소개를…….]
[안녕하세요. AA엔터 A&R팀입니다. AA엔터에서 신인 아이돌의 데뷔를 앞두고 있어서…….]
[해원이 형, 뉴데이즈 강진영입니다. 너무 자주 연락드려서 죄송해요! 우선 1위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허해준 프로듀서님께서 혹시 또 함께 작업할 수 있을지 궁금해하셔서…….]
1위라는 상징성이 대단하긴 한 모양이다.
음원이 얼마나 유출됐는지 찾으려고 여기저기 A&R들과 연락처를 교환했더니, 작곡 의뢰가 쏟아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