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97화 (97/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97화

빅 블루의 곡을 만든 것에는 팬심이 컸다. 지금 당장은 내가 만족할 곡이 만들어지는 족족 퍼스트라이트에게 줘야 했기 때문에, 대부분 거절의 의사를 전했다.

한 사람한테만 빼고.

[대가수 박희영님 : 야!]

[대가수 박희영님 : 서바이벌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쳐. 또 딴 가수 곡을 쓸 거면 내 거부터 가져와야 되는 거 아냐?]

뉴데이즈 곡 만들 때까지도 돌려 말했는데 이번엔 그냥 화를 내버린다.

[시도해 봤는데 트로트 너무 어려워요 누나ㅠㅠ]

[대가수 박희영님 : 넌 천재니까 할 수 있어]

[누가 천재예요…….]

하. 부담스럽다…….

트로트…… 트로트스럽게는 어떻게 만들어 보겠는데 그게 장르적으로 확실히 트로트인지 모르겠다. 그것도 그냥 트로트도 아니고, 행사의 여왕이 부를 트로트를 어떻게 그렇게 애매한 마인드로 만드냐고…….

사실 박희영도 그냥 구박하고 싶어서 구박하는 거지, 진짜로 내가 트로트를 만들어오면 또 그 나름으로 불편해할 거라고 생각했다.

‘박희영의 작곡팀’이 너무나도 확고하다.

어느 정도로 의리가 있냐 하면, 최근 낸 앨범마다 본인과 회사에서 퀄리티가 좀 부족하다고 느끼면서도 그 곡을 수정하지, 다른 작곡가에게 곡을 받지는 않을 정도.

솔직히 거기에 대해서는 참견하고 싶은 말이 많다. 의리를 중시하는 박희영의 성격을 생각해서 다들 말을 못 하고 있을 뿐이지. 나도 만들 수만 있으면 만들고 싶다.

나는 한동안 박희영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향을 생각했다. 그리고 곧 문자를 했다.

[누나 혹시 누나 작곡팀 작가님들이 만들어 놓고 안 쓰는 트랙 있으면 알려주세요]

[제가 비록 트알못이지만 트로트 트랙이 있으면……! 어떻게 한 번……!]

그렇게 조심조심 보내놨다.

지금까지는 내가 반주와 멜로디, 그러니까 트랙과 탑라인을 모두 만들어왔지만, 완전히 낯선 장르인 트로트 같은 경우에는 그게 너무 어려웠다.

박희영의 작곡팀에서 트랙을 보내주고, 내가 거기 탑라인을 얹는다면 트로트라는 장르도 살리면서, 박희영의 작곡팀의 곡이기도 하게 된다.

박희영과 뉴데이즈 강진영을 제외하고, 아예 남인 사람들한테는 팀 활동을 먼저 하고 싶다고 연락해 명확하게 거절을 해두었다. 하지만 피차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르니 문을 완전히 닫지 않고, 언제든 서로 기웃거릴 수 있는 범위 정도까지는 열어 놓았다.

그 후 나는 작곡가 특권으로 백스테이지에서 빅 블루의 무대를 볼 수 있었다.

빅 블루의 팬들이 날 발견하고 환호를 보내주었다. 내가 민망해하니까 빅 블루 박민하가 팬들에게 투덜거렸다.

“아, 왜 다른 남자 봐. 이쪽 봐.”

그러니까 팬 하나가 말했다.

“어휴, 애기다, 애기!”

그 말에 빅 블루와 스키퍼는 물론 스태프들까지 웃음이 터졌다. 확실히 연차가 있으니까 티키타카가 잘 된다. 친구들 같다.

멤버들은 대기실에서는 삼십 대 중반이 되니 관절이 삐걱거리네, 어쩌네, 하더니, 무대에 올라가 팬들의 얼굴을 보자마자 소년으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웃음이 나왔다. 팬과 아이돌은 서로가 서로의 선물이었다.

* * *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상태창을 확인했다.

[‘올해는 만나자’는 A+급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이게 S급이 아니라고?’

아직 초동 기간이 끝난 것도 아닌데 지금 기록이 142만 장이었다. 거기에 일간 차트 1위.

이게 S급이 아니면 뭘 얼마나 히트해야 S급이라는 건지…….

[(히트곡 메이커)의 레드 룰렛]

[프레젠테이션 기술 B

탑라이너 B

L급 히트곡 제작 확률 0%

S급 히트곡 제작 확률 0.1%

A급 히트곡 제작 확률 5%

B급 히트곡 제작 확률 20%

C급 히트곡 제작 확률 60%]

[레드 룰렛 S급 티켓×1]

나는 바로 룰렛을 돌렸다.

그사이 뭐가 나올까 예상해 봤다. 만약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면 뭐 그런 건 없나, 작곡하는 동안 잠을 안 자게 해준다든지? 밥을 안 먹어도 생존이 가능하게 해준다든지?

그렇게 욕망을 드러내고 있을 때, 빨간색의 진한 물약이 떨어졌다.

[창작자의 민감 S]

[히트곡 제작 확률이 상승합니다]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응?

[*부작용 확인을 위한 트라이얼 기간이 시작됩니다]

[7/7 (단위 : 일)]

때마침 지나가던 차가 강하게 클랙슨을 누르는 소리에 나는 멈칫했다.

이것도 불안장애의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큰 소리에 좀 과하게 놀라는 편이었다. 최근에는 훨씬 나아지긴 했는데 여전히 갑자기 들리는 큰 소리에는 정신을 못 차렸다.

그걸 아는 강영호 매니저가 말했다.

“아, 지가 운전 X 같이 해놓고 성질이네.”

아무래도 연예인이 태우면 클랙슨을 막 눌러대기가 그래서, 나도 매니저 생활을 할 때 그런 부분은 좀 조심하는 편이었다.

그러고 보니 강영호 매니저의 목소리가…….

“형, 혹시 노래방에서 ‘지켜줘’ 불러봤어요?”

“어, 그 노래 좋아하는데? 어떻게 알았어요?”

“……그러게요.”

그게 어울릴 것 같더라.

나는 생각하며 바깥 소음을 차단하려고 헤드셋을 썼다. 그리고 상태창을 다시 확인했다.

[트라이얼 기간 동안 히트곡 제작 확률이 상승합니다(임시)]

[L급 히트곡 제작 확률 0%(+0.00%)

S급 히트곡 제작 확률 0.1%(+0.9%)

A급 히트곡 제작 확률 5%(+5%)

B급 히트곡 제작 확률 20%(+10%)

C급 히트곡 제작 확률 60%(+35%)]

……사기템인데?

하지만 부작용이 있다는 부분도 알 것 같기는 하다.

내가 지금 먹고 있는 항불안제는 긴장한 내 몸을 이완시켜 주고 예민함을 낮춰주는 역할을 한다. 근데 이 물약은 반대 작용을 하고 있는 걸로 보이니까.

그나저나 L급 히트곡은…….

[L급 히트곡 제작 확률에는 L급 티켓이 필요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걸 시스템이 알았나 보다. 바로 알려준다. 허허.

그 이후에 퍼스트라이트의 음악을 듣는데, 갑자기 신경에 거슬리는 부분들이 생겼다.

‘여긴 좀 발음을 다르게 할 수도 있었는데.’

‘아, 여기가 폭발하는 부분인데 아쉽네…….’

나는 그런 아쉬움을 느끼며 다음으로 ‘올해는 만나자’를 틀어보았다.

그걸 들어보니.

경력이란 게 정말 무시할 수가 없구나, 싶다.

내 나름으로 생각하는 완성품이 있었는데, 빅 블루 멤버들은 이미 나보다도 더 보컬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보컬의 흐름을 이해하고 있었다고 보는 게 맞았다.

이미 수도 없이 많은 곡을 녹음하고, 우리 멤버들보다 적어도 10년씩은 더 살아오면서 음악을 들어온 빅 블루 멤버들은 시작, 하이라이트, 마무리를 녹음 전부터 머릿속에 담아놓고 녹음실에 들어왔다.

나는 여전히 우리 멤버들과 녹음을 하면, 한 명, 한 명 정말로 긴 시간이 걸리곤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멤버들이 녹음을 하며 노래를 반복해서 부르는 사이에 나와 녹음하는 멤버가 계속해서 타협점을 찾아가기 때문이다.

내가 작곡한 곡이니 내가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는 건 오만이었다.

나는 뮤직비디오 촬영이 얼마 남지 않은 우리의 이번 미니 3집 타이틀곡을 들어보았다. 이미 녹음에 믹싱까지 끝낸 곡인데…….

‘수정하고 싶다.’

나는 녹음실 밖에서는 싫은 소리를 하기 힘들어하기 때문에, 평소라면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들이 자꾸 귀에서 턱턱 걸렸다.

그래. 젊은 게 장점이 뭐냐. 일단 붙잡고 수정해 보자. 엔지니어 누나에게는 죄송하다고 좀 빌어야겠다…….

그때 톡이 왔다.

[민조 : 해워니 형! 이따가 회식하자니까!!!!!!!!!!!!!]

문자인데도 시끄러운 민지호의 재촉에 뒤늦게 단톡방을 확인해 보니 이미 회식하자고 시간을 다 맞춰놓은 후였다.

하긴, 언제 또 일간 차트에 들어갈 줄 알고. 회식할 거면 오늘 해야지.

나는 강영호 매니저에게 물었다.

“형, 이따가 저녁에 시간 돼요? 애들이 회식하자는데.”

“오늘 안 하면 언제 해요. 아, 사장님 오신다고 할 수 있으니까 자컨 찍는다고 해놓을게요.”

천재다. 허허.

* * *

회식은 우리 숙소 근처의 꼬치구이 집을 빌려서 하기로 했다.

작업실을 나와 가게에 들어가 보니 이미 멤버들과 양이형이 와 있었다.

“1위 언제 또 할지 모르는데 꼬치구이로 돼?”

내 말에 신지운이 무슨 소리냐는 듯이 대꾸했다.

“얻어먹는다고 안 먹고 싶은 걸 먹을 순 없잖아.”

“진짜 있는 집 자식들 마인드다.”

나는 말하며 자리에 앉았다. 미성년자 멤버들이 있으니 일찍부터 시작해 빨리 숙소로 돌아가 2차를 하기로 했다.

자컨을 찍는다고 했으니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시끌시끌하게 꼬치구이를 먹었다.

나는 멤버들이 먹어치운 은행 꼬치를 세며 말했다.

“너희 때문에 은행나무 멸종하겠다.”

“그니까. 안 그래도 멸종위기종인데.”

은행을 아예 안 먹는 안주원이 옆에서 맞장구쳤다. 그러자 한효석이 나에게 말했다.

“형, 멸종위기종에 대한 슬픈 노래 만들어주세요.”

“너 콜라 마시고 있는 거 맞니. 술 마신 거 아냐?”

“형…… 멸종위기종이 안 슬퍼요?”

“아니, 슬프긴 한데 황당해서.”

아니, 근데 이렇게 듣고 나니 저 헛소리가 왜 진짜 슬픈 것 같지. 감수성이 민감해졌나…….

* * *

나는 술 한 잔 안 마셨는데도 긴장이 풀려서인지, 분위기에 취해서인지 진탕 마신 사람처럼 술자리를 즐겼다. 술을 안 마셔도 꽤 재미있었다.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신지운의 침대 위에서 양이형이 자고 있고, 바닥에 강영호 매니저가 있었다. 그냥 쓰러지는 순서대로 방에 던져놨다.

거실로 나갔더니 최후의 생존자들이었던 안주원과 신지운이 자고 있었다.

“지독한 05들…….”

내 마음의 소리가 밖으로 나와서 돌아보니 박선재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내가 그 말 하려고 했어. 넌 저런 어른 되지 마라.”

“응, 저렇게 되기도 어렵겠다. 저 둘은 술 마시려고 성인 됐나 봐.”

맞는 말이다.

그때 황새벽의 방에서 알람 소리가 들렸다. 내가 노크를 하고 문을 열어보니 황새벽이 이불 속에서 손만 내밀어 핸드폰을 찾아 쥐고 있었다.

황새벽뿐만 아니라 일어난 다른 멤버들도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13시. 일간 차트가 바뀌는 시간이었다.

멤버들이 한동안 핸드폰을 보더니 중얼거렸다.

“아직 1위네.”

“그러게. 1위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자리에 서서 은근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날 축하해 주려는 건지, 그냥 술 마실 기회에 신난 건지 모르겠지만, 내 팀, 내 사람들을 보니 왠지 모를 든든함이 있긴 하다.

나는 다시 내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모로 누워 일간 순위를 확인했다. 그리고 핸드폰을 던져 놓은 후 나가려고 옷장에서 옷을 꺼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깬 양이형이 물었다.

“어디 가게?”

“작업실.”

“……미친 새끼 아니야, 이거.”

“보컬 수정하고 싶은 부분이 있어서, 일단 수정해 보고. 안 되면…… 좀 미안하지만 수정 녹음하려고.”

“어느 부분이 마음에 안 드는데.”

그 질문에 나는 잠시 생각하다 확신 없이 대꾸했다.

“……전체적인 흐름?”

“점점 더 뭐 하는 놈인지 모르겠다.”

그러더니 욕을 하면서 침대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거실에 던져놨던 점퍼를 주섬주섬 입었다. 내가 물었다.

“형도 가게?”

“뭔 소린지 좀 알아듣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양이형과 함께 회사로 향했다.

회사로 가는 길에 세상 모든 것이 소재로 보였다. 막 시작되는 3월도 멸종위기종도 빅 블루와 팬들이 서로 주고받던 눈빛도. 갑자기 만들고 싶은 노래가 너무 많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작업실에 도착했을 즈음, 박희영에게서 문자가 왔다.

[대가수 박희영님 : 작곡팀에 말했더니 안 그래도 못 쓰던 트랙 있었다더라? 보냈으니 들어봐]

……벌써?

[바로 들어볼게요. 그런데 혹시 작업을 하더라도 저희 미니 3집 작업 끝나야 할 수 있어요]

[대가수 박희영님 : 응 알아~]

나는 미리 일정을 말해둔 후, 박희영이 보낸 트랙을 받아서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트로트 장르의 반주라기보다는 발라드에 가까웠다.

가을의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트랙.

낙엽을 보며 흐르는 세월을 아쉬워하는 동시에, 그 길을 함께 걷는 배우자의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감사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보다, 반주를 듣는 순간 확신이 들었다.

우리 부모님의 취향을 저격하겠다는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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