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98화 (98/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98화

우리 부모님은 내가 작곡하는 노래를 다 종일 듣는데, 어차피 그럴 거라면 취향에 맞는 음악을 만드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올해는 만나자’의 저작권료가 들어오면 그걸로 선물을 사드릴 생각이었으니 효도는 물질로 하겠지만, 박희영이 내가 작곡한 노래를 불러준다면 빅 블루가 부르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신기해하실 것이다.

[누나 트랙 뭐예요 이거? 이렇게 좋은 게 왜 갑자기 있어요??]

[대가수 박희영님 : 만들어 놓고 멜로디가 안 나와서 묻어놨대 네가 물어봤다고 말하자마자 꺼내주더라]

아마도 지금까지 넘치는 에너지로 승부해온 박희영에게, 이 트랙은 너무 모험처럼 보여 보류된 모양이다.

박희영이 작곡팀의 곡을 거절하지 않기 때문에, 작곡팀에서도 안전한 선택을 하게 된 것 같다.

내가 느낀 것을 박희영이 모를 리 없었다.

[대가수 박희영님 : 작곡팀도 그동안 말 못 한 것들이 있었나 봐]

박희영 정도 연차의 가수도 시행착오를 겪는 모양이다.

* * *

며칠 뒤, 우리는 촬영 장소에 도착했다.

빅 블루 멤버 최정민이 MC를 맡은 ‘찾아가는 일꾼’.

화제성 좋은 예능에 출연한 이 기회를 잘 잡아야 하는데, 멤버들이 낯가리는 게 걱정이다.

첫 촬영은 방송국 근처의 카페에서였다.

다행히 서바이벌을 두 번 경험하고 나니, 멤버들이 카메라를 덜 어려워했다.

이제 나만 잘하면 되겠다. 여전히 스태프들과 친해지기 전까지는 심장이 좀 울렁울렁한다.

우리가 카페에 모여 있는 사이, 최정민이 근사한 코트를 입고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나타났다. 그 옆에는 찾아가는 일꾼의 레귤러 출연자 나머지 세 명 중 하나인 공채 코미디언 강대형이었다.

최정민은 카메라 앞이 자기 집인 것처럼 여유로웠다. 저 여유가 진심으로 부러웠다.

최정민이 벌써 일하기 좋은 옷을 입고 있는 우리에게 말했다.

“출발 전엔 이쁜 거 입었어야지. 거기 가면 이쁘게 잡힐 일이 없어.”

그러면서 끝으로 빼둔 의자에 거만하게 앉아서 맞은 편에 앉은 강대형에게 말했다.

“아, 간만에 아이돌 후배 나오니까 좋다. 드디어 내 후배들이 나왔네.”

“너희들 조심해라. 쟤가 형들도 그렇게 부려먹는데 직속 후배는 또 얼마나 부려먹겠냐.”

“내가 누굴 또 얼마나 부려먹었다고 그래.”

빅 블루에 있을 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거기서는 아이돌 그 자체였는데, 여기서는 또 예능인 그 자체였다.

아이돌 출신이며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 능숙한 사람.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에게는 신기한 존재 그 자체였다. 두 사람이 이야기하느라 애들이 껴들지를 못해서 내가 손을 들고 말했다.

“저희 혹시 구호 좀 해도 될까요?”

그러자 강대형이 격하게 반응해 줬다.

“아, 있었어?”

“네, 사실 있었습니다. 저희 리더가 너무 내성적이라 구호 타이밍을 잘 못 잡거든요.”

그 말에 최정민이 마시던 아메리카노를 뿜었다. 그리고 끅끅 웃으며 한효석이 급하게 건네준 휴지를 받아 닦은 후 황새벽에게 말했다.

“리더가 구호 타이밍을 못 잡으면 어떡하냐! 나 또 저런 리더 처음 봤네.”

“아, 제가 리더가 성향에 안 맞아서…….”

“안 맞으면 다른 멤버가 했어야지!”

그 말에 황새벽이 ‘아…….’ 하고 끝이었다. 이러면 티키타카가 안 되고 그냥 황새벽이 선배에게 혼나고 끝나는 거라, 내가 급하게 껴들었다.

“원래 제가 좀 리더 성향이 맞았는데요, 새벽이가 리더는 작곡을 자유롭게 하기 힘들다고 대신 맡아줬어요.”

“그래? 그건 또 감동이네.”

내가 말 좀 하라고 멤버들을 보며 눈치 주니까 저 중에는 인싸인 안주원이 말했다.

“그래도 저희 리더가 인원이랑 위치 파악은 늘 정확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민지호가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맨날 누워 있는데요, 도어락 소리 들리면 ‘누가 나갔냐…….’ 하면서 일어나요.”

“언뜻 들으면 멋있는데…… 누워 있어?”

멤버들의 내성적임을 눈치채고 최정민이 아예 내 쪽을 보고 물어서 내가 말했다.

“저 친구가 퇴폐미가 있어 보이지만 사실 그냥 피곤한 사람이에요.”

그 말에 최정민과 강대형이 으하하 소리를 내며 웃었다. 워낙 리액션이 좋으니까 금방 자신감이 생긴다.

무엇보다, 지금까지는 멋있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방송이 많아서 드러내지 못했던 멤버들의 내성적임을 초반부터 최정민이 캐릭터 적으로 잡아줬다. 이렇게 수월하게 느껴지는 방송은 처음이었다. 이런 게 MC의 역량이구나, 싶다.

강대형이 말했다.

“근데 얘네는 전반적으로 되게 힘이 좋아 보인다. 너네 족구 좀 하냐?”

“이따가 하실래요?”

운동 좋아하는 신지운이 바로 묻자 강대형이 거만해져서 말했다.

“햐, 도발하네. 우리가 만취해도 이겨.”

“저희도 정예는 잘해요.”

“누가 정예야?”

최정민이 묻자 박선재가 말했다.

“저희 멤버들이 분야는 다른데 운동 신경은 다 좋아요. 아, 힘도 좋아요! 저희 오늘 진짜 일 많이 하려구요.”

“아, 애들이 내성적인데 파이팅이 좋네.”

그렇게 허허 웃으며 오프닝을 마치고, 본격적인 녹화에 들어갔다.

멤버가 많아서인지, 이번엔 일이 좀 컸다. 폐교된 이후 쭉 방치된 분교가 있는데, 이곳을 정돈해, 다문화 가정과 어르신들을 위한 한글 학교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학교가 위치가 좋지 않아 너무 오래 방치되어 있어, 일이 많다고 들었다. 확실히 스태프들이 사전답사에서 촬영한 영상을 보니 제초만 해도 한나절일 것 같았다.

찾아가는 일꾼은 이미지가 워낙 좋은 예능이다 보니 협찬도 많이 들어왔다. 미대생인 안주원이 영상을 보며, 협찬받은 친환경 페인트 색상을 신중하게 골랐다.

색 조합을 마친 후, 최정민이 말했다.

“주원이 너는 지금 바로 호현이랑 꽃시장 갔다 와.”

“넵.”

안주원이 일어나서 최정민이 가리킨 카페 밖을 봤다가 흐흐 웃었다. 1톤 용달차에서 찾아가는 일꾼의 레귤러이자 미술을 전공한 모델 출신 배우 박호현이 기다리고 있었다. 안주원이 우리 쪽으로 꾸벅 인사하고 조경을 위해 떠났다. 최정민이 나머지에게 물었다.

“제초해 본 사람.”

“저 명절마다 벌초합니다, 선배님.”

한효석이 손을 들자 최정민이 말했다.

“너네 멤버 중에 체력 좋은 애 하나 더 뽑아.”

“지운이 형이요.”

“오케, 대형이 형 따라가. 제초의 신이야, 저 형.”

강대형이 일어나 멤버 둘과 카페를 나서며 말했다.

“이야, 세 보이고 든든하다.”

최정민이 나머지 멤버들과 일어서며 말했다.

“나머지는 청소하고, 한 사람만 수경이 형이랑 요리하자. 내일은 다 같이 도장하고.”

김수경은 강대형과 마찬가지로 공채 코미디언으로 손이 미친 듯이 큰 걸로 유명했다. 지금도 아마 이 자리에는 없지만 미리 우리가 먹고 싶다고 말한 음식들의 음식 재료를 사고 있을 것이다.

오프닝이 끌나고도 오전 일곱 시였다. 전체적인 분위기와 컨셉 자체가 인력소이다 보니, 촬영 시간까지도 거기 맞춰져 있었다.

* * *

차로 두 시간 반을 달려 촬영장소에 도착했다.

폐교된 지 5년 정도가 된 학교지만, 이미 부분부분 리모델링을 해놨기 때문에 내부는 깔끔한 편이었다. 하지만 청소는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도 인원이 많으니 눈에 보일 정도로 쓱쓱 청소가 진행되었다. 최정민이 나와 함께 건물을 나와서, 고압 세척기를 보여주며 물었다.

“써봤어?”

“어…….”

처음 보는데 왜 써본 것 같지…….

“쓰는 거 보여주시면 따라 해볼게요.”

내 말에 최정민이 바로 고압 세척기를 쓰는 시범을 보여줬다. ‘찾아가는 일꾼’에서 워낙 온갖 노가다를 다 해봐서인지, 레귤러 출연자들이 못 하는 게 없었다. 제초팀은 익숙하게 제초 중이고, 꽃시장팀은 시멘트를 개서 깨진 곳들을 보수 중이었다.

나는 고압 세척기를 받아서 최정민이 보여준 시범을 따라 건물 외부를 청소했다. 최정민이 말했다.

“아니, 왜 잘하냐?”

“적성을 찾았습니다.”

나는 대답한 후 청소를 이어갔다.

원래도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살지, 복잡한 건 안 좋아하는 편이라 고압 세척기로 묵은 때가 씻기는 모습에 속이 후련해졌다.

앞으로 이곳으로 셔틀버스가 다니며 배움의 공간이 될 것이라 생각하니 더더욱 건성으로는 할 수 없었다.

* * *

저녁을 먹기 전에 우리는 분교 마당에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휴식을 취했다. 화목 난로를 켜고 침낭 속에 누우니 괜히 들떴다.

나는 좀 자려다가 멤버들을 불렀다.

“자니?”

“……정해원, 자라. 질척거리지 말고.”

황새벽이 대답했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얘기 좀 하다가 자자. 캠핑 설레서 못 자겠다.”

내 말에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던 박선재가 부스럭거리며 일어나 말했다.

“뭐 하고 놀아줘?”

그 말에 신지운이 핀잔했다.

“오죽하면 막내가 놀아준다고 하네.”

“잠이 오냐, 이 조명, 온도, 습도…….”

“오늘 춥고, 건조하네요.”

한효석이 내 말을 끊었다. 형 말은 웬만하면 안 끊는 앤데 많이 빡쳤나 보다. 히히.

“새벽에는 놀아주라.”

나는 침낭을 최대한 잠그며 말했다. 멤버들이 그럼 차라리 지금 놀아준다고 했지만 잠든 척했다.

점심 밥차도 맛있었는데, 저녁은 아주 진수성찬이었다.

역시 일보다 먹는 데 더 중점을 두는 방송다웠다. 물론 일을 더 많이 하긴 했지만, 방송에는 그리 길게 나올 수 없으니까.

그저 고기밖에 모르는 멤버들은 고기와 면을 원했다. 신나게 일하고 난 멤버들이 잠깐 휴식 후에 완전히 되살아나 고기로 달려들었다.

김수경이 황새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방송 시작하고 내가 사는 양 보면서 모자라지 않겠냐고 하는 게스트 첨 봐.”

“저희가 좀 많이 먹어요.”

“이게 좀이냐?”

숯불 위에서 고기, 가리비, 소시지가 익어가고 있었다. 거기에 한효석의 요청으로 샐러드와 과일도 넉넉했다.

나는 진이 빠져서 잠이나 더 자고 싶었는데, 김수경의 차돌 된장을 먹고 눈을 떴다.

“……와, 이거 미쳤다.”

그러자 신지운이 김수경에게 말했다.

“이 형이 이렇게 말하면 진짜 맛있는 거예요.”

그 말에 황새벽이 말했다.

“해원이가 가끔 밥 먹기가 귀찮대요.”

그러자 김수경이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으로 날 본다. 그러더니 날 불러서 말했다.

“오늘 내가 너 3㎏ 찌워 보낸다.”

“오, 좋아요.”

잘됐다. 히히.

* * *

멤버들은 준비한 걸 깡그리 때려먹고 사 온 라면도 전부 먹었다.

그렇게 실컷 먹고 나서, 김수경이 행복한 표정으로 안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강대형이 말했다.

“아니, 얘네는 녹화 끝나고도 먹네.”

그러자 오늘 함께 제초하느라 약간 친해진 신지운이 말했다.

“이거 다 방송 나가면 저희가 이상한 애들 같잖아요.”

“너네 위장이 이상해. 몰랐냐.”

최정민이 나에게 물었다.

“퍼라…… 식비 괜찮니?”

“평소엔 식단 관리 해서 이 정도론 안 먹어요.”

내 말에 최정민이 강영호 매니저 쪽을 보며 낄낄거렸다.

“매니저님 표정이 아니라는데?”

허허 민망하네 허허허허…….

최정민이 민망해하는 나에게 말했다.

“오늘 녹화 분위기 좋다. 너희 멤버들처럼 독기 있게 해서 반응 나쁜 거 본 적 없어.”

“진짜요?”

“응. 아, 그리고 너 애쓰는 거, 언젠가 다 알게 될 거야. 멤버들도, 시청자분들도.”

최정민은 뜬금없는 소리를 하고, 내 등을 툭툭 친 후에 떠났다.

* * *

먹다 지친 나는 핸드폰과 통기타를 들고 분교 후원으로 향했다.

미술 전공자 두 사람이 꾸민 근사한 화원에 놓인 벤치에 앉아, 약음기를 끼운 통기타로 아무거나 코드를 쳐보았다.

작곡을 배운 이후로 작곡 프로그램을 앞에 놓고, 실내에 앉아 작업을 한 게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야외에서 통기타 하나 들고 작곡을 시도한 건 처음이었다.

그걸 즐기며 멜로디를 떠올리는데 핸드폰에 불이 반짝였다. 도착한 문자를 보니 묘해졌다.

[VVV엔터 A&R팀 강효준입니다. 일간 1위 축하드립니다. 퍼스트라이트의 순항도 기원하겠습니다.]

뭐 원하는 거 없는, 진짜 그냥 축하 문자였다.

그런데 앞도 의아하고 뒤는 더 의아하다. VMC는 소년들과 나를 나눠서 써먹으려 하던데, 한패일 VVV엔터가 퍼스트라이트의 순항을 기원한다고?

……상대가 상대라 모든 것이 드럽게 음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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