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99화 (99/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99화

대한민국 엔터계 1강.

구조적으로는 VVV엔터가 VMC의 계열사 중 하나로 되어 있지만, 먼저 생긴 것이 VVV엔터이고, 사업을 확장하며 만들어진 것이 VMC였다.

뭐가 어쨌든 분명한 건 VVV가 VMC와 한 몸이라는 건데…….

계열사들끼리 경쟁하고, 사이가 나쁜 꼴이야 많이 봐왔지만, 이런 경우는 어떨지 모르겠다.

나는 궁금함을 못 참고 VVV엔터에서 일하는 배신자에게 연락을 했다. 박중운 전 매니저가 전화를 받자마자 내가 물었다.

“형, VVV엔터랑 VMC랑 사이좋지?”

그러자 박중운 전 매니저가 대답했다.

-그렇게 좋진 않지.

“왜?”

-브엠(VMC)는 자기들이 본사라고 생각하는데, 브삼(VVV)은 또 자기들이 오리지널이라고 생각하거든.

“둘 다 틀린 말은 아니네.”

-그렇지……. 아무튼 임원들도 어느 쪽에 붙어야 대표가 진짜라고 인정해 줄지 모르니까 눈치 보는 게 좀 있나 봐.

사이가 안 좋은 모양이다.

그래서 VMC가 퍼스트라이트에서 소년들 여섯 명을 찢으려 할 때, VVV엔터는 그 반대로 가겠다는 건가?

이쪽이나 저쪽이나 음흉하기 짝이 없게 느껴지는 건 마찬가지지만, 개중 퍼스트라이트를 유지해 주려는 쪽이 나에게는 낫다.

-근데 그건 왜?

“아. VVV엔터에서 일간 차트 1위 축하랑 퍼스트라이트한테도 덕담하는 문자가 와서. 내 번호 형이 알려줬어?”

-VVV엔터가 네 번호를 모를 리가 있냐, 국선아를 했는데. 내가 그렇게 모든 걸 유출하는 사람은…….

“알았어. 끊어.”

-넌 전화해서 형 안부도 안 물어보냐.

“뭘 배신자 안부까지 물어봐.”

-……아무튼 누가 연락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VMC 방침이 있는데, 퍼스트라이트한테 덕담하는 사람이 있나?

“A&R팀 강효준 씨라는데.”

-아…… 거기 팀장이 대표 조카인가 그렇다더라.

“……형 사실 그 회사 잘 다니지? 모르는 게 없네.”

-아냐, 힘들어……. 입사하고 계속 혼자 밥 먹어…….

“응, 그래도 회사 열심히 다니고, 진짜 끊어.”

-그래. 아직 추우니까 옷 든든하게…….

“어, 고생해.”

또 구질구질해지기 시작해서 나는 전화를 끊었다. 저쪽 회사 일이 많이 힘든 모양이다. 아니, 그러니까 누가 배신하라고 등 떠밀었나…….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는 고민을 하다가 일단 VVV엔터 A&R에게 답장을 보냈다.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역시 VVV엔터의 순항을 기원하겠습니다.]

……이렇게 보내면 되나?

적의 적은 내 편이 될 때도 있으니까.

TRV가 VMC로 인수되어도 남은 계약 기간은 1년.

하지만 엔터계를 넘어, 그냥 대기업이 된 VMC에서 내미는 제안을 거절하는 건 어려운 일일 것이다.

재계약. 할 수 있을까.

내 멤버들을 믿어도 되나.

그런 복잡한 생각에 심장이 쿵쿵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다시 통기타를 집어 들었다.

* * *

그렇게 먹고, 소화시킨다며 족구를 해 없는 체력까지 끌어다 쓴 출연진들은 소주 한 잔을 약처럼 들이켜고 잠이 들었다.

나는 새벽에 멤버들과 이야기를 좀 하려고 했지만, 멤버들이 머리를 대자마자 잠들어 깨울 수가 없었다. 아쉽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혈관에 카페인이 흐를 정도로 커피를 마시며 스케줄을 버티는 빅 블루 최정민만 먼저 일어나서, 이제 절친한 친구인 메인 피디와 웃고 떠들고 있었다.

나는 깨어 있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최정민에게 물었다.

“형 벌써 일어나셨어요?”

“어, 해원이.”

진짜 대단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런데 정작 최정민은 나를 신기하다는 듯이 보며 말했다.

“어떻게 벌써 일어났어?”

“형도 일어나계시는데요, 뭐.”

“나야 아는 현장이고, 다 아는 사람이잖아. 게스트들이 체력 소모가 더 크지.”

나는 최정민의 이야기를 들으며 커피를 얻어 마셨다. 계속 잡담이 오가던 중에, 협찬 브랜드가 잘 보이게 놓인 친환경 페인트를 보며 내가 말했다.

“진짜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하네요, 일을.”

“그러니까! 좀 아르바이트생도 뽑고 하면 좀 좋냐.”

최정민이 그렇게 투덜거리며 메인 피디에게 말했다.

“너 들으라고, 너.”

“아, 방송에 진정성이 있어야지.”

“너무 있지 않냐는 거지, 내 말은.”

둘이 한마디도 안 지고 티격태격하는데도, 두 사람 사이에 두터운 신뢰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잠시 후 출연진이 전부 일어난 후 우리는 페인트칠을 시작했다. 확실히 리모델링 후 청소만 했을 때는 여전히 허름한 느낌이었는데, 도장을 마치니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안주원의 주도로 꽃시장팀이 함께 사 온 실내 장식 소품들을 여기저기 장식했다.

모든 작업이 끝나니 뿌듯하고 근사해서 멤버들도 나도 사진을 여러 장 남겼다. 강대형이 말했다.

“캬, 지금까지 한 작업 중에 역대급이다.”

“확실히 사람이 많으니까 하루 만에 이게 되네.”

최정민이 맞장구치더니 우리에게 말했다.

“다음에 또 손 많이 필요하면 좀 와봐.”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리 멤버 중에서도 특히 이 방송과 성향이 잘 맞았던 한효석이 대답했다.

“불러주시면 바로 오겠습니다.”

“진짜 부른다? 카메라 앞에서 약속한 거지?”

“네. 그럼요.”

그렇게 다음을 기약하기까지 하며, 촬영이 종료되었다.

촬영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오는 단톡방이 시끌시끌했다.

[민조 : 해워니 형아, 방송 또 잡아 와!]

[아니, 내가 잡아 온 게 아니라니까.]

[안쭈 : 왜 아니야 대충 맞지.]

그렇게 영문 모를 공치사를 해주고는 다들 제초, 요리, 청소, 인테리어 자기가 한 일들에 대해서 떠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신나 있는 멤버들을 보며 낄낄거리는 동시에 방송이 잘 나오기를 기도했다.

* * *

며칠 뒤 뮤직비디오 촬영이 있었다.

이번 뮤직비디오는 CG 장면이 특히 많았다. 지금까지는 비교적 CG가 적은 편이다 보니, 멤버들이 크로마키 스크린 앞에서 연기하는 것에 바로 적응하지 못했다.

그래도 촬영진이 한 명씩 데려가 뮤직비디오에 대해서 하나하나 상세하게 설명해 줬기 때문에, 오래 지나지 않아 제대로 몰입을 할 수 있게 됐다.

나도 내 촬영 차례가 가까워져 메이크업을 하고, 멤버들과 같은 스타일의 흰색 제복을 받아 입었다. 은색 장식이 많이 들어간 의상이 절대로 낮은 가격에 맞출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회사에서 우리 쪽에 많은 투자를 하지 않으려 드는 걸로 아는데, 이 의상비를 어떻게 마련했는지 궁금해서 스타일리스트 이예영에게 물었다.

“누나, 이거 옷 제작비 많이 들지 않아요?”

“협찬도 꽤 있고, 제작비 넘어가는 건 우리가 한 땀 한 땀 만들었지.”

“……진짜요?”

“예쁘게 보여야 할 거 아니야.”

그 이야기에 감동해서 내가 우는 시늉을 하니까 이예영이 말했다.

“뭘 감동해. 너희 스타일이 내 명함인데.”

“그 말까지도 감동적이에요.”

그 덕에 우리 의상에서 돈 냄새가 팍팍 났다.

준비가 일찍 끝나 내 차례를 기다리다가, 여유가 생긴 김에 집에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가 전화를 받았는데, 주변이 시끌시끌한 것이 느껴졌다.

“엄마, 손님 왔어?”

-응, 오늘 ‘찾아가는 일꾼’ 보려고 다들 왔지! 외할머니도 오고, 이모네도 오고…….

기존에 내가 출연한 서바이벌은 어른들이 보기에는 흥미가 떨어지기도 했고, 내가 방송에서 별로 좋은 이미지를 보여주지 못했으니 이렇게 모여서 보는 일은 국선아 중반에 사라졌다.

그런데 오늘 저렇게 명절처럼 친척들이 모인 걸 보니, 부모님 마음에서 그런 아픔이 한 겹 가신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 마음도 편안해진다.

“우리 거기 가서 일 진짜 많이 했어.”

-그랬어? 기분만 내는 거 아니고?

“응, 아니더라. 진짜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가 일 다 해.”

나는 그렇게 어머니에게 엄살을 한동안 부리고 나서, 전화를 끊고 촬영을 위해 이동했다.

촬영장에서 이번 타이틀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결국 나는 믹싱까지 끝낸 곡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다시 수정했다.

멤버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이 이 수정 작업에 말려들었지만,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말라고 하며 동참해 줬다. ‘올해는 만나자’ 저작권료 들어오면 챙겨야 할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 수정 녹음을 하는 동안, 나는 내 모든 감각이 평소보다 훨씬 예민해져 있다고 생각했다. 아마 ‘창작자의 민감 S’ 때문인 것 같다.

그 예민해진 상태는 확실히 창작을 하기 좋았다. 트라이얼 기간 동안 특별히 부작용을 느끼지도 못했고. 이 정도면 계속 써도 괜찮지 않나 싶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대기실을 나와 크로마키 스크린 앞에서 촬영 중인 신지운을 구경했다. 그러자 집중이 깨진 신지운이 말했다.

“아, 부담스러우니까 보고 있지 말라고.”

“나만 보는 것도 아닌데 왜.”

“멤버가 보는 건 다르지.”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몰입해서 연기하란 말이야.”

나는 약을 올리며 자리에 서 있었다. 지금 놀리느라 내 차례에 쟤가 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 했다…….

내 파트가 시작되자 신지운은 서서 보고 있다 못해 멤버들을 부르기까지 했다.

“해원이 형 연기한다.”

“오. 구경할래.”

“우리 중에 연기 안 배운 사람 해원이 형밖에 없지 않아요?”

한효석이 말해서 내가 대답했다.

“나도 배웠어, 이 사람아.”

“진짜요?”

“그럼. 한 세 시간 정도…… 아니, 근데 너희 다 보고 있을 거냐?”

“빨리 집중해. 이쪽 보지 말고.”

신지운이 고개 돌리라고 손짓한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건 이런 걸 거다. 허허.

이번 뮤직비디오는 ‘불을 켜’를 함께한 OIN 스튜디오가 맡았다. 지난번에 우리를 촬영한 홍 감독은 촬영 내내 뭔가 사이다 한 사발 마신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들어보니 ‘불을 켜’ 촬영 때, 내 이미지가 어떻든 상관없이 내가 잘 나온 장면을 넣자고 TRV 직원과 싸운 적이 있다는 모양이었다.

그때 내 이미지 진짜 바닥이었을 텐데,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내 편이 되어준 사람이 있다는 걸 지금까지 몰랐다는 게 황당하다.

저작권료 받으면 챙길 사람이 또 늘었다.

뭐, 돈은 나중에 모으면 되니까.

나는 의자에 앉아서 촬영하는 씬이 있어, 화려하게 장식된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와이어로 의자를 45도 정도 뒤로 눕히기 시작했다.

의자가 천천히 뒤로 누우니까 겁 많은 박선재가 스태프들에게 물었다.

“저거 안전해요? 진짜 안전하죠?”

어련히 알아서 튼튼하게 해줬겠지, 막냉아……. 그렇겠지?

내가 생각하는 사이 의자가 홍 감독이 원하는 정도까지 기울었다. 홍 감독의 가이드대로 눈을 감고 한쪽 팔을 의자 아래로 늘어뜨렸는데 의자가 와이어에 끌려 천천히 원형으로 돌았다. 와씨, 솔직히 좀 쫄리긴 한다.

촬영이 시작되고, 내 파트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달빛 위를 걸어 우주에서 만나]

의자가 움직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움찔거리게 된다. 하지만 나는 별이 쏟아지는 무중력 상태에 있다는 설정이니, 얼굴에 두려움이 드러나면 안 된다.

그래서 나는 나를 가장 안심시키는 생각을 했다.

퍼스트라이트의 곡을 만들 때, 가장 첫 번째로는 햇살이들이 좋아할까를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두 번째로 멤버들이 좋아할까를 생각한다.

우리는 팬들에게 이번 타이틀에 대한 아무런 스포도 하지 않고 있었다. 팬들도 이런 판타지적인 분위기일 거라는 건 알지만, 어떤 장르의 어떤 음악이 나올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 팀 서치왕인 안주원의 말로는 엄청 세고 어두운 노래일 거라고 짐작한다는 듯했다. 정반대의 예측이다. 그래서 오히려 좋다.

신곡을 듣고 즐거워하는 햇살이들을 상상하고 있을 때, 다행히 두 번째로 좋아했으면, 하는 놈들이 이야기하는 게 들렸다.

“이번 타이틀 너무 좋아서 맨날 이것만 들어.”

“나도! 진짜 이것만 들어!”

다행이네.

덕분에 웃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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