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03화
[해원 : 햇살이들. 컴백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떨리니까 저랑 우리 멤버들 손 꼭 잡아주세요. 절대로 절대로 놓으면 안 돼요. 우리 끝까지 같이 있어요.]
사전녹화에 멍해져 있던 팬들은 밖으로 나온 후에야 X버스에 올라온 정해원의 글을 확인했다. 이미 많은 댓글이 달려 있었다.
[ㅠㅠㅠㅠㅠㅠ]
[야심한 시간에 이러는 거 아니야…….]
[여자 무서운 걸 모르고 컸네]
[햇살이들 불안할 때마다 해원이 꾸준히 안심시켜 주네ㅠㅠㅠㅠ]
[우울했는데 마음 놓인다]
[해원이 믿는데 혹시 안 좋은 일 생겨도 해원이가 노력한 거 알아]
사녹이 끝나고 글에 멤버들의 대댓글이 달렸다.
[↳지우니 : 저렇게 말하고 멤버가 손잡으면 때림]
[↳↳새벽 : 백퍼지. 햇살이 한정임]
[↳↳막내 : 난 아니던뎅?]
[↳↳↳해원 : 막냉이는 내 최애니까]
[민조 : ‘오늘도 민조는 무대를 찢었다’ 헤헷]
[↳효석 : 어떻게 자기 입으로]
[↳막내 : 아냐 찢는 건 내 거야!!!!!!!!!!!!]
[↳↳새벽 : 너희 둘이 바뀐 거 아니냐]
[↳↳안주원 : ㅋㅋㅋㅋㅋㅋㅋㅋ]
[또 애들 다 왔네ㅋㅋㅋㅋㅋㅋ]
[퍼라 참 몰려다니는 거 좋아해ㅋㅋㅋㅋㅋ]
[귀여워ㅋㅋㅋㅋㅋ]
[오늘 사녹 못 갔는데 무대 신났었나 봐요. 애들 다 흥분한 게 보여가지구ㅠㅠㅠㅠ]
[↳진짜 얼굴…… 우리 애들이 과한 컨셉이 참 잘 어울려요…….]
[↳사녹 끝나고 한참 지났는데 아직도 손 떨려요ㅠㅠㅠㅠ]
* * *
그리고 오후 1시가 가까워졌다.
팬들이 지난 자컨에서 연결되는 스토리, 티저에서 공개된 가사 등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 뮤직비디오와 음원이 동시에 열렸다.
퍼스트라이트의 팬들은 티저 마지막 장면이 오프닝일 것으로 추측했고, 그 예상대로였다.
얼굴을 가까이서 클로즈업한 첫 장면에서 눈을 감고 있던 정해원이 눈을 뜨며 뮤직비디오가 시작되었다.
거의 은발에 가까울 정도로 색을 뺀 백금발에 회색 렌즈를 낀 눈동자가 드러나는 장면은 대부분의 퍼스트라이트 팬들의 핸드폰에 이미 저장되어 있었다.
첫 장면의 반응이 워낙 좋아서인지, 뮤직비디오가 공개되고 몇 시간 후, 뮤직비디오를 제작한 스튜디오 감독의 인스타그램에 편집 중인 첫 장면이 업로드되었다.
[‘불을 켜’때 너무 넣고 싶은 해원 씨 얼굴이 있었는데 못 넣어서 이번엔 첫 장면은 무조건 해원 씨로 마음먹었어요. 햇살님들 보셨죠? 성공적인듯^^]
[↳농담 아니고 계좌 좀 불러주세요 홍 감독님]
[↳감사합니다ㅠㅠㅠㅠㅠ]
[↳저 햇살이도 아닌데 홀린 듯이 저장함ㅋㅋㅋㅋ]
[↳↳저도요ㅎㅎ 미친 얼굴…….]
그리고 정해원의 취향대로, 황새벽의 도입부가 시작되었다. 깨진 유리 조각이 흩어져 있고, 무릎을 꿇어앉은 황새벽의 보컬이 흘러나왔다.
[세상이 끝나고 우주에 흩어진]
[우리는 어디에서 다시 만나게 될까]
이어서 허공에 뜬 의자에 앉은 정해원과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안주원의 파트가 이어졌다.
[달빛 위를 걸어 우주에서 만나]
[구름을 타고 햇살 속에 쉬며]
[아무리 멀어져도 우리는]
[음반 위에서 만나게 돼]
[우리가 다시 만나는 이야기야]
[처음부터 그렇게 정했으니까]
그리고 어두운 감옥 한구석에 웅크린 민지호가 고개를 들며 프리코러스가 끝났다.
태피스트리가 걸린 판타지풍의 방에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아 있는 신지운과 한효석의 모습이 지나가고, 유일하게 앉아 있지 않고, 들판에 선 박선재가 후렴을 시작했다.
[멀어지는 너를 놓쳐도 (달릴게)]
[다음 이야기에서는 만날 거야]
[그리움을 간직하다 우주에서 우리]
[음반 위에서 우리가 만나면 서로]
[‘안녕’하고 인사를 하게 돼]
[그건 우리의 다음 이야기]
시간을 거꾸로 돌린 것처럼 황새벽의 주변에 깨진 유리가 투명한 배로 바뀌고, 허공에 떠 있던 의자는 지상으로, 감옥의 벽은 부서졌다.
1절 후렴부터 분위기가 반전되며, 멤버들은 물에 빠지고 있는 안주원을 구하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물속으로 가라앉던 안주원이 누군가의 손을 힘있게 마주 잡으며 뮤직비디오가 끝났다.
상징물이 수도 없이 많은 뮤직비디오였으므로 뮤직비디오가 끝난 후, 팬들의 분석이 이어졌다.
[지운이랑 효석이가 세력 싸움? 같은 거 하는 거지?]
[↳이건 확실한 듯]
[↳진짜 충격적인 비주얼이다]
[↳그 사이에 주원이가 가라앉고 있나 봐]
[↳↳물속에서도 진짜 오지게 잘생겼다ㅋㅋㅋㅋ]
[↳↳↳주원이 평소에도 잘 생겼다고는 생각했는데…… 수장되고 있으니까 더 잘생겼어…….]
[↳↳↳↳수장이라니 이 사람아 철렁하게 하지 마러ㅠㅠㅠㅠ]
[↳↳↳↳↳근데 뭔 소린진 알겠어 약간 어둡고 차가운 바다 배경 때문에 뱀파이어 같은 게 너무…….]
[근데 퍼라 진짜 하나 같이 잘 달린다 뛰는 거 X나 후련함]
[↳역시 운동으로 1티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햇살이들 퍼라 운동 신경에 자부심 있음]
[↳↳↳↳아니 자부심 퍼라 얼굴에 가지라고ㅋㅋㅋㅋㅋ 왜 운동 신경에 가지는데ㅋㅋㅋㅋㅋㅋㅋ]
* * *
컴백 음악 방송은 더 라이징을 진행한 KQS에서였다.
우리 대기실 문에 붙은 퍼스트라이트 대기실 표시에 하트가 그려져 있었다.
여기서 서바이벌을 촬영한 이후에, KQS에서 유난히 신경을 써준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다. 마치 퍼스트라이트의 한 10% 정도는 지분을 가지고 있는 회사 같다고 해야 하나.
그런 의미에서 VMC는 퍼스트라이트의 70% 정도는 지분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테니, 멤버들에게 집착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다.
나는 멤버들과 대기실에서 생방송을 기다리고 있었다. 생방송 중간에 인터뷰가 있고, 거기서 컴백곡 소개를 해야 해서, 받은 대본을 열심히 외웠다.
생방송에서 멘트는 주로 박선재나 한효석 몫인데, 이번에는 곡 설명도 할 겸 내가 하기로 했다.
멤버들과 TRV 직원들 모두 뮤직비디오 반응을 보며 흐뭇해하고 있었다. 나는 쓸데없이 멘탈 갈릴 일을 하지 않고, 구석에 앉아서 얌전히 대본을 외우며, 멤버들이 좋은 댓글을 던져줄 때를 기다렸다.
이번 ‘다음 이야기’는 한 번에 이어지는 두 곡을 동시에 작업했다. 이번 곡에서는 다음 이야기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다음 곡에서는 실제로 우주에서 만나는 이야기를 썼다.
나는 최대한 햇살이들을 안심시키고 싶었고, 퍼스트라이트가 계속 함께할 거라는 걸 TRV, VMC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이미 다음 앨범 타이틀까지 나오니 회사는 무지하게 바빴지만, 멤버들은 처음으로 미리 앨범 일정을 아는 게 대기업에 온 것 같다며 신나 했다.
잠시 후 멤버들이 보내준 댓글들을 보니 반응이 좋았다. 일단, 곡이 좋다는 소리가 많았다. 뭐, 멤버들이 내가 좋아할 걸 알고 골라서 보내준 걸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는 그렇게까지 음원 차트인을 기다리지 않았는데, 오늘은 아니었다. 더 라이징 이후 유입된 팬이 많아, 이제 슬슬 기대할 만큼 궤도에 올랐다고 생각한다.
‘제발 음원 성적 잘 나오게 해주세요’
내가 그렇게 기도하고 있는데, A&R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뮤직비디오…… 추이 이상한데?”
“이거 맞아요? 이런 속도 괜찮아?”
TRV는 아무래도 초반에 뮤직비디오 프로모션을 돌리는 편이라, 어느 정도의 조회 수는 만들어주는 편이었다. 덕분에 뮤직비디오 조회 수가 꾸준히 천만을 넘겼다.
반대로 그렇게 만들어지는 조회 수가 일부 포함되어 있다는 걸 아니까, 멤버들은 뮤직비디오 조회 수 오르는 것에 관심이 덜한 편이었다.
그런데 지금 반응을 보니 그런 추이가 아닌 모양이다.
그 웅성거림에 드디어 멤버들도 핸드폰으로 유튜브 조회 수를 힐끔힐끔 확인했다. 그리고 솔직한 민지호가 중얼거렸다.
“멤버들, 이거 잘 나오는 거야?”
그러자 신지운이 대답했다.
“전혀 모르겠는데.”
멤버들이 다들 조회 수를 봐도 모르겠다는 표정이라, A&R들이 얼척없고 답답해하며 말했다.
“……멤버분들, 뮤직비디오 조회 수에 관심도 가지고 그럽시다, 우리.”
“이것도 중요한 지표거든요……. 특히 해외 인기는 뮤직비디오 조회 수가 많이 중요하죠.”
‘더 라이징’부터 해외 반응이 오고 있는 건 우리도 체감하고 있었다. 특히 해외 시상식 스케줄에서 더욱 확실하게 느꼈다.
아무튼 나도 뮤직비디오 조회 수에 그렇게 신경을 못 썼던 터라, 내가 봐도 이게 좋은 추이인지는 알기 어려웠다. 민지호가 말했다.
“근데 공개하고 진짜 몇 분 지나니까 백만이긴 하더라. 그건 신기했어.”
“맞아, 신기했지.”
안주원이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동안 조용해졌다가, 황새벽이 한숨을 쉬고 드러누우며 말했다.
“……갑자기 미친 듯이 긴장되네.”
조회 수가 잘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나니, 더 긴장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인터뷰를 하러 MC석으로 이동했다. 음악 방송 MC 두 사람은 다 퍼스트라이트와 비슷하게 데뷔했는데, 아무래도 나를 제외한 멤버들은 재데뷔라서 그런지 우리를 선배님이라고 불렀다.
“선배님, 이쪽으로 오세요.”
“새벽 선배님, 핸드 마이크…….”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진짜 선배는 아니니까, 오히려 더 불편해져서 서로 꾸벅꾸벅 고개를 숙여가며 인사하고 자리에 섰다.
“아, 생방송 너무 떨린다…….”
내가 중얼거리며, 저리기 시작한 손을 탈탈 털었다. 그러자 멤버들이 티가 날 정도로 날 본다. 하여튼 뭔 말을 못 하게…….
“형 할 수 있어?”
박선재가 묻고, 이어서 황새벽이 말했다.
“힘들면 말해. 나도 외우긴 했어.”
그 말에 긴장이 탁 풀리며 웃음이 나왔다.
“네가? 생방송에서 멘트를 친다고?”
“……안 시킬 거지?”
“마음은 고맙다. 감동이네.”
곧이어 온에어.
MC 두 사람이 해맑게 멘트를 했다.
“다음 이야기, 기대해 주세요!”
“네에? 벌써 다음 이야기라뇨!”
“라는 신곡으로 찾아온 일곱 남자, 퍼스트라이트!”
음악 방송 특유의 하이한 분위기는 우리 멤버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분위기였다. 아이돌이 음방을 힘들어하다니. 어느 날 하루 빡세게 교육해야겠다.
다행히 MC들이 타이밍을 잘 잡아줘서, 황새벽이 깔끔하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민지호가 포인트 안무를 보여주었다.
“멀어지는 너를 놓쳐도……. 네,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와, 정말 멋있네요.”
민지호가 안무를 끝내며 무안해하는 걸, MC들이 짝짝짝 손뼉을 쳐주며 호응해 줬다.
“마지막으로 ‘다음 이야기’를 작곡하신 해원 씨, 햇살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이 곡을 들어줬으면 하시나요?”
드디어 내 차례가 오자, 나는 핸드마이크를 받아 들고 이번 곡에 관해서 설명했다.
‘다음 이야기’는 지금 우리가 서로 멀리 떨어지더라도, 다음 이야기에서는 반드시 만나게 될 거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어쩌면 팀이 찢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을 때, 신지운이 무너지지 않는 곳에 의지하라고 했을 때.
나는 퍼스트라이트의 앨범을 꺼내 들었다. 내가 의지할 수 있는 무너지지 않는 곳은 결국 우리의 음악이었으니까.
음반을 내려놓고 바라보니 그게 꼭 달빛처럼 보였다. 그러고 나서 나는 우주를 떠돌다가도 저 빛을 따라가면 서로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내용의 음악을 떠올렸다.
어쨌든, 만약에 우리 팀이 찢어지게 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음악을 할 거고, 그러면 다시 만나게 될 테니까.
그래서 나는 이번 곡 작업이 유난히 더 즐거웠다. 한 번 뚫리기 시작하니 가사도 음악도 줄줄 나왔다. 아마 작업할 때 신났던 내 마음이 인터뷰 중 얼굴과 목소리에 드러났던 것 같다.
“해원 씨, 혹시…… 다음 주 MC분이 해외 스케줄이 있다고 하셔서, MC 땜빵 해줄 수 있냐는데요?”
인터뷰가 끝나고 이런 말이 나온 걸 보니.
강영호 매니저가 말을 이었다.
“생방송 불안하면 말해도 돼요. KQS에서도 다 알고 물어본 거거든요. 어차피 MC분이 귀국하셨다가 찍고 촬영장 돌아갈 계획이었대요.”
음방 MC……?
“……제 이미지 괜찮대요?”
나는 궁금해서 그것부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