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04화
더 라이징의 책임 피디가 워낙 오래 KQS 음악 방송 PD이었어서, 지금 제작진과도 잘 알고 지내는 사이인 모양이다. 그래서 내가 땜빵으로 이름이 나온 모양이다.
이래서 사람들이 인맥을 만드는 모양이다.
개인 활동.
나는 한동안 생각해 봤지만, 생방송 카메라 앞에 서는 것도 그렇고, 다른 곳에 신경 쓸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나는 1년 3개월 내내, 다른 그룹의 프로듀싱을 해야 하니, 사실상 그만큼 큰 개인 활동도 없다. 여기서 개인 활동을 늘리는 건 이기적인 짓이었다.
무엇보다 아직까지는 멤버들 없이 생방송 카메라 앞에 혼자 설 자신이 없다.
거절은 하더라도, KQS와 이왕 만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에, 나는 직접 제작진을 찾아갔다. 그리고 ‘더 라이징’ 출연진 중 한 사람을 추천했다.
우리 멤버면 제일 좋겠지만, 퍼스트라이트에 생방송에서 안 떨며 방송을 할 거라는 믿음을 주는 놈이 한 놈도 없다.
진짜 어느 날 붙잡고 하나하나 개조 좀 해야겠다. 어휴.
다행히 내가 추천한 대타에 대한 반응이 좋았다. 왜 걔를 생각 못 했나, 하는 반응들이었다.
직접 찾아가길 잘했다. 얼굴 보며 거절해야 죄송한 표정도 짓고, 서로 유연하게 넘어갈 수 있으니까.
바로 연락이 갔는지, 촬영 후 이동 중에 문자가 왔다.
[뉴데이즈 강진영 : 형…….]
[왜? 바빠?]
[뉴데이즈 강진영 : 아뇨 감사해서요. 형한테 신세 진 건 다 기억해 놨다가 꼭 갚을게요.]
그냥 떠넘기려는 마음이었는데 민망하다. 허허.
아무튼 강진영은 약아서 어디든 뿌리만 내리면 아주 자기 X대로 휘두르고 다닐 놈이다.
어쨌든 고마워하니까 이걸로 곡 달라는 부탁은 퉁 쳐야겠다. 히히.
다음 주 MC를 거절한 것에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이번 주 분위기를 봐서, 다음 주에 어쩌면. 뭐. 1위를 하게 될 수도 있지 않나 싶다.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그 순간을 온전히 누리고 싶다.
* * *
의상을 갈아입고, 렌즈를 뺀 후 라디오 스케줄에 도착했다.
막 주차장에서 내리는데 다른 차에서 직원들의 환호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멤버들이 냉큼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실시간 차트를 확인하더니, 제일 먼저 민지호가 나한테 달려와 와락 끌어안았다.
“뭐야, 왜, 왜?”
“우와아!”
그리고 안주원이 내가 본 이래 처음으로 큰 소리를 냈다.
첫 탑백 진입.
98위.
더 올라가자, 더. 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듣는 것에 보수적이다. 듣지 않는 음악은 잘 듣지 않았다. 반대로 말하면, 듣기 시작하면 그 음악을 계속해서 듣는다는 의미였다.
남돌인 퍼스트라이트보다, 내가 작곡가로 캐릭터성을 가지는 것이 음원 차트를 뚫기 좋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퍼스트라이트’의 음악, 보다는 ‘천재 작곡가’의 음악이 접근성이 좋으니까.
멤버들이 하도 날 자꾸 천재 작곡가라고 하니까, 다른 사람들도 세뇌됐는지 슬슬 그런 줄 안다. 이래서 삼인성호라는 말이 있나 보다. 허허.
아무튼, 캐릭터성을 만드는 데 의외성만 한 게 있을까. 그리고 남돌이 트로트 가수의 노래를 만드는 것만 한 의외성도 드물 것이다.
물론 최고로 의외이면서, 내 취미도 되어줄 일은 영화 음악에 참여하는 거겠지만.
그건 너무 동떨어져 있으니 짬이 좀 차면 도전해 봐야겠다. 그래도 트로트와 아이돌 음악은 대중음악으로 묶이기라도 하지…….
박희영에게 얻은 건 정말 좋은 기회였다. 반주를 따로 받아서, 트로트라는 몰드가 이미 잡혀 있는 상태에서 내가 색을 입힌 탑라인을 들이부어 잘 경화시키기만 하면 된다.
‘창작자의 민감 S’ 덕분인지, 나는 ‘찾아가는 일꾼’ 촬영장에서 감성적인 탑라인을 어느 정도 만들었다. 이제 가사만 붙이면 된다.
그 외의 컨셉은…… 천재들이 뭐 하더라. 영화 보면 골방에 틀어박혀서 밤낮 바뀌는 것도 모르고 작업하면서 골골거리던데…….
어휴, 우울한 이미지밖에 안 떠오른다. 천재 컨셉은 포기해야겠다. 저러다 단명하지. 쯧쯧.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오픈 스튜디오로 들어갔다가 멈칫했다.
“와.”
오픈 스튜디오 밖에 팬들이 보였다. 일찌감치 와서 여유가 있어 내가 팬들에게 밥 먹었냐고 물어보니까 다들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진짜 먹은 건가, 좀 걱정되는데 진짜냐고 또 물어보면 분명 너나 잘하란 말이 돌아올 테니 그만해야겠다. 난 너무 궁금한데…….
아무튼 라디오 DJ는 우리와 같이 TRV에 있는 이정석이었다.
원래 8인조 아이돌이다가, 나머지 멤버들은 재계약을 하지 않고 이정석만 TRV에 남아 솔로로 활동하고 있었다.
이정석이 말했다.
“그래도 같은 소속산데 평소에 너무 안 챙겨줬네.”
“저희가 특이케이스라 그렇죠, 뭐.”
내가 대답하자 이정석이 대본을 확인하며 말했다.
“그래도, 오늘은 챙겨줄 테니까 잘 해봐요.”
“네.”
대답은 동시에 했다. 그래도 멤버들이 대답은 잘한다.
* * *
이정석 DJ가 말했다.
-아니, 제가 회사 가면 퍼스트라이트 멤버분들이 항상 회사에 있더라구요. 집에 안 가요?
그 말에 멤버들이 민망해하며 웃었다. 이정석이 말을 이었다.
-특히 해원 씨.
-아, 네!
-해원 씨 작업실은 비활동기에는 비어 있는 걸 못 본 것 같아요.
-제가 작업실을 너무 좋아해요. 전망도 좋고. 그리고 룸메가 지운인데, 걔가 룸스프레이 쓰는 거 싫어해서 작업실에서 맘대로 뿌리고, 먹고 자고 하면 마음도 편하고. 아, 멤버들도 자주 들락거리니까 외롭지도 않아요.
그 말에 황새벽이 핀잔했다.
-생존 확인하러 가는 거야.
-어휴, 잘 살아 있을게.
-너 쓰러진…….
-쓰러질 뻔한 거? 아, 그거 진짜 그냥 잠깐 어지러웠던 거야.
황새벽이 무심코 뱉은 말에 놀라서 굳고, 정해원이 바로 수습했다. 맞은편에서 그 모습을 보던 신지운이 오픈 스튜디오 밖의 팬들을 보니 이미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팬들 입장에서는 ‘쓰러질 뻔한 것’도 충격적이긴 마찬가지였다. 그걸 듣고도 사색이 되어 있는데, 그게 과호흡으로 아예 복도에 쓰러져 있었다는 이야기라는 걸 알면 당장 아픈 애를 갈아 넣냐고 회사에 항의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멤버들 모두, 언제든 이런 상황이 다시 올 수 있다고 어느 정도 받아들인 상태였다.
두 번째로 그런 상황이 오면, 그때는 한동안 정해원이 무대에 오르지 못할 거라는 것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라디오가 끝나고 정해원이 황새벽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새벽아, 잘 좀 하자. 아니, 뭐 평소에 말도 별로 없으면서 그 짧은 사이에 말실수를 하냐.”
“넌 모르겠지만, 원래 내성적인 사람들이 말실수를 많이 해. 당황해서.”
“어, 모르겠다. 확실히.”
그렇게 투덜거리며 바로 숙소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도 계속 차트를 보던 안주원이 단톡방에 글을 올렸다.
[안주원 : 실차 계속 유지 중]
[황새벽 형 : 다행이네 근데 주원아 단톡방 여기 아니다]
[안주원 : 아 그러네 다시 올릴게]
정해원 없는 여섯 명 단톡방이었다. 안주원이 다시 일곱 명이 있는 단톡방에 글을 올렸다.
[안주원 : 실차 계속 유지 중]
[정해원 형 : 오!]
[정해원 형 : 오오!]
[정해원 형 : 얘들아 반응 좀]
두 번째 읽는 거라 반응이 없으니 정해원이 재촉했다. 안주원이 같은 차의 신지운과 한효석에게 말했다.
“누가 좀 반응해 줘.”
“형, 진짜 실수하면 안 돼요.”
“미안.”
팀을 유지하기 위해 정해원의 일이 늘어났을 때, 멤버들 역시 방법을 생각했다.
처음에는 민지호가 ‘다 같이 작곡을 배우자!’는 의견을 내놓았지만, 곧바로 ‘근데 해원이 형이 만드는 게 최선이겠지……’라며 본인이 취소했다.
그 이후 이런저런 고민해 봤을 때, 멤버들이 보기에 최선의 방법은 개인 활동기를 가지는 것이었다.
이미 만들어둔 곡으로 올해 팀 활동을 끝내고, 멤버들이 각자의 회사에서 개인 활동을 하며, 거의 팀 활동에 몰빵하는 바람에 화가 나 있는 회사를 달래주는 것이었다.
그래야 1년 뒤에 퍼스트라이트를 이어가더라도 각자의 회사에서 개인 활동 계약으로도 만족하게 될 거라 생각했다.
[박선재 : 난 멤버들 믿어. 어차피 배신자에게는 죽음뿐이니까. 배신하면 다 같이 찾아갈 거야]
[신지운 : 우리가 한 대씩만 패도 최소 여섯 대]
[안주원 : 죽겠다 그러다가. 하긴, 배신을 안 하면 되긴 해]
[민지호 : 받고 손가락]
[한효석 : 받고 삭발]
[황새벽 : 훈훈하다 목은 남겨주네]
신지운이 지난 톡을 잠시 보다가 같은 차 두 사람에게 말했다.
“이 단톡방은 정해원이 아니라 그냥 누구도 알면 안 되겠다.”
“형이요, 형.”
“아, 뭐. 없잖아.”
“그럼 저도 형 없을 때 형 뗄 거예요.”
“넌 말이나 놔라.”
“예체능이잖아요.”
그러자 안주원이 말했다.
“나도 예체능이야. 넌 체육인이라 그런가?”
“예술이요, 예술. 발레는 예술.”
한효석이 지겹다는 듯이 말하고 다시 음원 차트를 보다가 소리를 냈다.
“어? 형들, 실차 끝까지 보셨어요?”
“끝까지? 왜?”
“아래 쭉 내려보세요. 99위.”
다들 ‘다음 이야기’의 순위만 보고 있을 때, 99위에 ‘드라마기를’이 있었다. 한효석이 바로 단톡방에 이 사실을 알려주며 말했다.
“저쪽 차는 난리 났겠네요.”
* * *
수록곡이 처음, 실시간 차트를 진입했다는 한효석의 톡에 멤버들이 바로 X이섬 차트를 확인했다.
그리고 민지호가 제일 먼저 소리쳤다.
“수록곡! 진입!”
“첫 진입!”
“우와!”
지금까지 수록곡이 실시간 차트에 진입한 건 처음이었다. 음원을 공개한 첫날 음원 차트는 사실상 팬덤의 힘이었다. 우리의 팬덤 규모가 확실히 커졌다는 게 느껴졌다.
나는 심호흡 한 번 하고, 두 손을 모아서 기도하며 중얼거렸다.
“드라마 관계자님들 한 번만 들어주시죠. 열심히 했는데.”
“들어주시죠!”
민지호도 따라서 기도했다. 멤버들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은 다 같다. 물론 본인도 팀도 잘되어야 하고.
그렇게 한바탕 소란 후 차 안은 조용해졌다.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려고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숙소로 돌아갔다가 세 시간 뒤에 출근이라 지금 자둬야 하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3월의 끝 무렵, 드문드문 일찍 핀 개나리와 하얀 목련이 보였다.
나는 꽃 사진을 찍어 부모님께 보내드렸다. 부모님이 꽃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해놔서인지, 꽃을 보면 부모님 생각이 난다.
그러고 나니 부모님이 서로가 서로의 첫사랑이라고 말했던 게 생각이 난다. 솔직히, 진실 여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첫사랑이 끝 사랑…….
나는 녹음기를 켜고 떠오르는 가사를 흥얼거렸다.
“그대 아주 먼, 기억의 사랑.”
엇. 입에 딱 붙네.
나는 바로 녹음기를 꺼내서 지금 흥얼거린 부분을 녹음했다. 크, 트로트. 좋다. 진솔해서.
“그대를 내가 처음 보았을 때, 떨리던 마음을 간직했소. 오늘 나 그대와 길 걷다 보니 아주 먼 사랑이 떠올랐소. 그때는 사랑인 줄 모르다가. 그대 얼굴 보니, 알게 되오. 그대 아주 먼, 기억의 사랑.”
혼자 흥얼흥얼거리며 녹음을 끝내고 나서야 멤버들을 봤다. 내가 평소에도 해언어를 흥얼거리며 작곡하는 걸 많이 봐서 익숙해진 줄 알았는데, 황당한 표정들이었다.
“희영 누나 곡.”
“누가 몰라.”
황새벽이 대답했다. 그리고 박선재가 민지호에게 물었다.
“지금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었지?”
“저 사람 뭐야, 무서워.”
하여튼 가끔 보면 우리 부모님보다 더 콩깍지가 씐 게 멤버들 같다. 뭔가 잘못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