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106화 (106/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06화

강효준이 말을 이었다.

-VMC 쪽에 계약 건은 얘기해 뒀어요. 그쪽은 문제없을 겁니다. 조만간 날짜 잡으시죠.

“네, 멤버들한테도 말해둘게요.”

어휴, 다행이다.

내가 안심해 한숨 쉬고 있을 때 강효준이 물었다.

-그건 그렇고, 혹시 작업실 옮기는 건 어떻게 생각해요?

웬 작업실?

“작업실을 옮겨요?”

-좁아 보이던데요. 그리고 TRV 사내 작업실에서 우리 신인 곡 작업하는 거 좀 그렇잖아요.

좁긴 하지. 문 열어 놓고 복도까지 진출해야 퍼스트라이트 멤버 7명이 다 모일 수 있으니까. 전자도 후자도 맞는 말이다. 내가 중얼거렸다.

“그렇다고 그쪽 회사도 안 가고 싶은데요.”

-그 정돈 압니다. 양이형 작가님도 같이 작업하셔야 하니까. TRV 가까운 곳에 구해드릴게요. 광화문 근처로.

“그럼 좋죠.”

너무 덥석 받았는지 상대방이 멈칫했다.

-고민할 시간 필요 없어요?

“없어요. 어차피 거절한다고 제가 할 일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잖아요.”

-하긴. 그럼 원하는 장비 목록 보내요.

“1년밖에 안 쓸 장비를 다 사시게요?”

-사야죠.

“그러셔도 저 1년 뒤에 VVV엔터 안 가는데.”

-하지만 나머지 멤버분들이 남으면 별수 없죠.

화끈하게 지르는 미친놈인가, 했더니 그냥 우리 팀 의리를 안 믿는 개X끼였다. 뭐, 장비값 좀 날려보면 정신 차리겠지.

* * *

초동 기간은 지난번의 두 배인 15만 장 정도로 종료되었지만 그 후 추이도 좋고 음원 성적도 만족스러웠다.

토요일. 음악 방송이 끝나갈 무렵, 대기실의 멤버들은 모두 초조한 상태로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었다.

음악 방송마다 집계 방식이 약간씩 다른데, 오늘 방송사의 집계 방식이 우리에게 유리한 편이었다.

직원들은 계산상 우리가 1위일 확률이 높다고 했다. 사실 이 정도 말해줄 정도면 거의 확실하다는 얘기였다.

나는 소파에 반쯤 누워서 멤버들에게 말했다.

“긴장 풀리게 누가 재미있는 말이라도 해봐.”

내 말에 한효석이 말했다.

“저 재미있는 얘기 있어요.”

“딴 사람 없어?”

“저 있다니까요.”

“재미있는 얘기라고 시작하면 보통 재미없어.”

하지만 내 말에 짜증이 난 한효석의 표정은 재미있었다. 히히.

1위 후보로 무대에 올라가는 건 정말로 이상한 기분이었다. 멤버들의 얼굴이 평소보다 굳어 있었다. 남 얘기할 것 없이, 나도 긴장으로 손이 차가웠다.

“점수 공개해 주세요.”

이어서 MC가 우리가 외울 정도로 확인한 집계 방식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퍼스트라이트!”

우리 이름이 불렸다.

귀 옆에서 폭죽이 터진 것 같다. 순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한발 늦게 퍼스트라이트 놈들 중에 1위 소감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걸 떠올렸다. 그래서 핸드마이크를 든 신지운 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내 생각을 읽었는지, 황새벽이 등을 툭 치며 말했다.

“괜찮아.”

황새벽의 그 말은 내가 급하게 현실로 돌아오지 않아도 멤버들이 알아서 잘 해결하리라는 이야기였고, 그 말대로 아무런 문제 없이 서로 마이크를 넘기며 멘트를 준비한 멤버들이 말을 했다.

처음은 팬들, 두 번째가 우리 일곱 명의 부모님, 세 번째가 함께해 준 모든 사람. 미리 준비한 만큼 깔끔한 인사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앵콜 무대 전에 황새벽이 구호를 했다. 그건 거의 반사적인 거라, 놓치지 않고 나도 인사를 했다.

펑펑 울고 있는 멤버들이 보이는데 달래줄 정신이 없었다. 내가 울고 있는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퍼스트라이트에 합류하던 그 날부터 눈앞에 보이는 협곡의 너덜너덜한 다리가, 한차례 보수를 거친 듯한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다음 걸음을 내딛기가, 조금 덜 불안하게 느껴진다.

* * *

[1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퍼스트라이트 사랑해ㅠㅠㅠㅠㅠㅠ]

[축하하고 많이 사랑한다ㅠㅠㅠㅠㅠㅠㅠ]

[진짜 골 아프게 울었다…….]

[버스에서 우니까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휴지 주셨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갑자기 사연있는 여자됐네ㅋㅋㅋㅋ]

[↳아니 그게요 우리 애들이요ㅠㅠㅠㅠㅠㅠ]

[퍼라 첫 1위ㅊㅋㅊㅋ]

[아 퍼라 첫 1위야?]

[멤버들 엄청 우네ㅠㅠ]

[↳국선아 때부터 재데뷔랑 멤버 영입까지 생각하면 울만햐ㅠㅠㅠㅠ]

[근데 퍼라 의외로 앵콜 라이브 잘한다 저렇게 생겨서 못할 줄 알았어 몬줄알지?]

[↳알지ㅋㅋㅋㅋㅋㅋㅋ나도 의외더라]

[↳보컬멤들 잘하는 건 알았는데 효석이도 음색 개좋아…….]

[해원이 완전 넋 나갔네]

[↳해원이야말로 그럴만하지]

[↳그 욕 다 먹으면서 어떻게 될지 모를 그룹 끌고 올라왔으니까…….]

[↳그와중에 앵콜은 잘함ㅋㅋㅋㅋㅋㅋ]

[정해원 보컬 왜 이렇게 늘었어ㄷㄷㄷ 국선아 때랑 딴 사람인데???]

[↳답은 연습이요]

[↳↳솔직히 내 새끼지만 미친놈임 오래 못 살까봐 진짜 무서워]

[↳↳거기에 악편이랑 그때 분위기 생각하면 본 실력도 안 나오지]

[내가 퍼라 영입 초기 해원이처럼 욕먹었으면 X 같아서 때려치웠을 듯 심지어 곡 작업하는 것도 까였잖아]

[↳다행히 해원이가 X버스 말고는 인터넷을 아예 안 본대]

[↳↳이건 진짜 다행이네]

* * *

첫 1위를 했으니 X이앱을 안 할 수 없다.

회사에 가보니 304호에 이미 풍선이며 케이크며 준비를 해뒀다.

하도 울어서 다들 노곤해진 상태로 X이앱이 시작되었다. 팬들 앞에서는 시끄러운 민지호가 말했다.

“우리 혹시 1위 할까 봐 올라가서 할 말 엄청 준비했잖아. 근데 1위 하자마자는 진짜 햇살이 생각밖에 안 난다?”

그러자 옆에서 황새벽이 말했다.

“진짜 그래.”

“그치? 직후는 진짜 그래.”

나는 기운이 쭉 빠져 있어서 대화에 끼어들지 못했다. 단체 X이앱을 할 때, 내가 채팅창을 보고 있으면 싫은 소리가 올라올 때가 있어서 오늘처럼 기분 좋은 날은 피하려고 채팅창도 읽지 않았다.

멤버들은 한 번씩 내 쪽을 봤지만, 내가 말할 만한 상태가 아닌 걸 알고 재촉하지 않았다.

첫 소속사의 연습생이 되었을 때 가장 많이 상상한 장면이다. 음악 방송 1위.

그때 내 상상 속에는 여기 이놈들이 아니라, 지금 MII 멤버들인 우하정, 박재원이 있었다. 거기다 내가 작곡한 곡일 줄은 더더욱 상상 못 했다.

아무 일도 겪지 않고 그렇게 데뷔를 했다면, 지금과 달리 훨씬 깨끗하게 기쁨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그 순간이 지금보다 낫지 않으리란 것을 알았다.

우리는 기다림을 발판으로 더 높이 올라갈 것이다.

생각이 끝나자마자 내가 옆에 있던 막냉이에게 어깨동무를 해 당기자 박선재가 황당해하며 물었다.

“뭐야, 갑자기 왜?”

“너희가 있어서 좋다.”

내 말에 신지운이 말했다.

“저 형 취하면 저러는데.”

“그러게, 누가 해원이 술 먹였어?”

한마디 했다고 멤버들이 날 취한 사람으로 만든다. 안 그래도 힘들게 금주 중인 사람한테…….

하지만 취한 것 같은 건 틀린 말이 아니다. 나는 말을 이었다.

“햇살이들이랑 너네랑 같이 1위를 한 게 생각할수록 너무 좋네.”

내 말에 민지호가 흥분해서 말했다.

“맞아! 나도!”

“또 하자. 내가 작업실에서 좀 더 열심히…….”

황새벽이 내 말을 끊었다.

“그만 열심히 하라고, 너는.”

“열심히 한 결과가 좋잖아.”

그렇게 이야기하며 나는 다시 평소 상태로 돌아왔다. 그때부터는 멤버들과 낄낄거리고 웃으며 X이앱을 마쳤다.

* * *

2주 차로 음악 방송 종료, 그리고 마지막 팬 사인회도 끝나가고 있었다.

나는 이번에도 팬싸템으로 화관을 받았다. 내가 뽑은 그 꽃포카의 꽃과 같은 꽃으로 만든 화관이었다.

그리고 내가 보라색을 좋아한다고 해서인지, 한 팬이 나에게 엄청 큰 보라색 플라스틱 큐빅이 있는 반지를 줬다. 그리고 대뜸 말했다.

“해원아, 결혼하자!”

“아, 프러포즈 반지예요? 이름은 뭐예요?”

팬이 이름을 말해줘서, 나는 사인을 하며 대답했다.

“좋아요.”

“응?”

아니, 이 사람이 방금 프러포즈해 놓고.

나는 반지 낀 손을 보여주며 말했다.

“결혼이요.”

“엄마야.”

햇살이가 화들짝 놀라며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나는 웃었는데, 햇살이는 안 웃고 후다닥 사인을 챙겨서 떠났다.

뭔가 실수했나? 아니, 프러포즈를 받으면 답을 해주는 게 당연한 건데…….

아무튼 그 이후에도 팬 사인회가 이어졌다. 다행히 이제는 날 보며 사인을 안 받으려 하거나, 묵언 시위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내 영입을 반대하던 햇살이들은 표정에서 티가 났다. 대부분 미안해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었다.

지금 내 앞에 앉은 햇살이가 딱 그래서, 나는 테이블에 머리가 닿을 때까지 기울였다. 그리고 눈이 마주친 후에 소곤소곤 물었다.

“왜 나 안 봐요?”

그러니까 얼른 고개를 들고 날 본다. 여전히 내가 싫었으면 이렇게 말해도 안 봤을 것이다. 그때부터 장난치고 이야기하면 보통 표정이 풀어진다.

영입을 반대했던 것만큼은 정말로 이해한다. 팬들이 얼마나 새 멤버 영입을 싫어하는지에 대해선 연습생들도 전문가만큼 잘 안다.

원래 내 역할은 어그로를 끌어주고 나가는 거였지만, 어쩌다 보니 이렇게 남게 됐다. 앞으로도 그럴 거고.

그래서 나는 그건 얼마든지 없었던 일로 할 수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은 정말로 듣고 싶지 않다. 오히려 지금은 마음을 바꿔 내가 있는 퍼스트라이트를 지지해 준다는 게 고맙다.

더불어, 반대로 다음에 내가 VVV엔터와 계약하는 건에 있어서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그때가 되면 분명 내가 뭘 해도 싫어했을 사람들이, 그렇게 난리더니 결국 VMC 계열과 계약했냐고 비꼬기 시작할 거다.

햇살이들은 거기 휘말리지 않고, 날 싫어하지 않아 줬으면 한다.

솔직히, 이미 무슨 일이 있어도 햇살이들은 내 편이 되어줄 것 같긴 하다. 히히.

사인회가 끝나며 이번 활동은 완전히 마무리.

우리는 차로 돌아가는 길이 아쉬워서 팬들을 돌아보며 인사했다.

“조금만 기다려 주면 금방 다시 올게!”

“진짜 곧 와요, 곧.”

우리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차에 탔다. 창문이 다 올라갈 때까지 손을 흔들고 인사하던 멤버들은 창문이 닫히고 조용해졌다.

그리고 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을 한마디씩 꺼낸다.

그때 다시 상태창이 떴다.

[‘다음 이야기’의 뮤직비디오 조회 수가 2,000만을 달성했습니다]

[‘다음 이야기’가 일간 82위(최고)에 등록되었습니다]

[‘다음 이야기’가 음악 방송에서 1위(2회)를 달성했습니다]

엇. 우리가 1위를 한 건 집계 방식이 유리한 곳 한 군데였는데?

아무래도 다음 주, 활동 종료 후에 1위를 하는 곳이 있는 모양이다. 캬, 좋다, 좋아.

[‘다음 이야기’가 B급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히트곡 메이커)의 레드 룰렛에서 사용할 수 있는 티켓이 도착했습니다]

[레드 룰렛 A급 티켓×1]

오.

지난번에 A급 히트를 하고 나서는 S급 티켓을 줬으니, 이번엔 B급 히트라 A급 티켓인 모양이다. 나는 바로 룰렛을 돌렸다.

한 번 S급을 받아봐서 좀 감흥이 없었는데 오늘은 룰렛이 바늘처럼 얇은 선에 멈췄다.

번쩍번쩍한 게…… 지난번에 S급 돌렸을 때보다 훨씬 좋아 보이는데……? 이펙트가 훨씬 화려한데?

잠깐만. S급보다 좋은 거면…….

[주간 히트곡 메이커 L급]

[등록된 작업실에서 체력 저하가 20% 감소합니다(등록 0/1)]

[*체력 한정 회복 포션입니다]

이건…….

20%만큼 더 일해도 된다는 뜻인가?

나 올해 뽑기 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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