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07화
[등록하실 작업실에서 사용하세요]
내 손에 색이 진해서 빨갛다 못해 검게 보이는 물약이 들어왔다.
아이고 세상에 이렇게 귀한 걸.
1위 할 때는 복합적이며 결과적으로 행복했다면 지금은 즉각적인 쾌감이다. 20%만큼 더 일해야지. 히히.
유일하게 걸리는 건 작업실을 하나밖에 등록 못 한다는 부분이었다.
강효준 A&R의 말대로 계속 TRV 사내의 작업실을 쓸 수는 없다. 하지만 VVV엔터가 내줄 작업실도 결국 1년 좀 넘게밖에 못 쓰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아, 하긴.
그 뒤에는 그렇게 죽어라 일하진 않아도 되겠다. 그리고 여차하면 돈 벌어서 그 작업실 팔라고 하지, 뭐.
활동이 끝나 마음이 허했는데, 포션의 만족감이 빈 곳을 채워줬다. 이렇게 말하니까 약쟁이 같네. 뭐 아주 틀린 건 아닌데…….
아무튼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지 갑자기 피로가 싹 가셨다. 여유를 가지고 밖을 보니, 길이 벚꽃으로 가득했다. 아, 그냥 숙소에 들어가긴 싫은데.
돌아보니 멤버들이 핸드폰을 보고 있어서 나는 단톡방을 열었다.
[내가 운전할게 새벽에 벚꽃 보러 갈 사람? 우리 집 근처 벚꽃 엄청 핌 돌아오기 피곤하면 부모님 찻집에서 자면 돼]
[안쭈 : 나]
[민조 : 2222222222]
[효식 : 저요]
[리더부기 : 4]
[신지운 : 5]
[막내♥ : 67 번호끝 다 간다!]
[신지운 : 돌아올 땐 내가 운전하면 안 돼? 나 믿지?]
[안쭈 : 나도 시켜주라 나도 믿지?]
[민조 : 안 돼 무서워 이 초보운전자들아!!!!!!!!!!!!!!!]
그렇게 잠이 모자라더니, 활동이 딱 종료되는 순간 잠이 사라진다. 그리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이상한 의욕이 생기는 것이다.
나는 회사에 벚꽃을 보러 가겠다고 전달했고, 내가 있으면 괜찮다고 허락을 받았다. 회사는 한결같이 나를 반 정도는 직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좋다, 이 신뢰. 허허.
* * *
회사 차에 멤버들이 짐을 싣고 구겨져 탔다. 민지호가 말했다.
“다 같이 여행가는 기분이다.”
사실 이렇게 멤버들이 전부 따라나설 줄 몰랐다. 다행히 부모님께 연락드리니까 엄청 반가워하셨다.
찻집 주차장에 차를 대는데 부모님이 나와 계셨다. 신지운이 나보다 먼저 우리 부모님한테 달려갔다.
“자고 갈게요.”
“지금 시간에 왔으면 당연히 자고 가야지.”
“내일 아침에 너 좋아하는 거 다 만들어줄게, 아들.”
걔가 아니라 내가 아들인데…… 라고 말하고 싶지만, 부모님은 내가 방에 틀어박혀 있을 때 몇 번 찾아왔던 신지운에게 애틋한 마음이 있었다.
나도 고맙게는 생각한다. 누나도 멀리 있고, 나도 부모님 속을 할퀴고 있을 때, 그 철딱서니 없어 보이던 고딩 놈이 여기까지 찾아와 줬으니. 언젠가 갚아야 할 빚이다.
아무튼 안 그래도 밥 먹이게 멤버들을 한번 데려오라고 하셨던지라, 부모님이 엄청 반가워하셨다.
한옥을 개조해 만든 찻집에 이불이 놓여 있었다.
아버지가 미리 잔소리하셨다.
“활동 끝났다고 술들 너무 마시지 말고.”
“아, 저희 별로 안 마셔요.”
신지운이 뻔뻔하게 말했다. 사기꾼이다.
그나저나 아버지는 술 너무 마시지 말라고 하면서 직접 담근 매실주를 가져다주셨다. 하여튼 술 좋아하는 사람들은 술에 있어서 앞뒤가 안 맞는다.
개중 싹싹한 안주원은 어머니에게 힘쓸 일 있으면 하고 간다며 이야기 중이다. 역시 퍼스트라이트배 사윗감 1위.
물론 다른 후보가 너무 약하긴 하다. 안 좋은 인상으로 장인, 장모님한테도 낯가릴 놈들.
시간이 늦어 미리 밤 인사를 하고 내가 말했다.
“갔다 올게.”
“어, 그래. 갔다 와.”
“운전 조심하고.”
이제 막 면허 딴 갓 성인 둘이 운전대를 노렸지만 어림도 없다. 내가 쉬러 왔지, 불안에 떨러 온 줄 아나.
시간이 시간이라, 드라이브를 하는 길에 차가 거의 없었다. 창문을 열어놓고 느긋하게 운전하는 것 자체가 힐링이었다.
“벚꽃이 풍성풍성하네.”
“풍성풍성이 말이냐?”
“그럼 아니냐?”
그새 민지호와 한효석이 싸우고 나머지는 무시하고 벚꽃을 구경했다. 나도 처음엔 말렸는데, 이제는 심하게 싸우지 않는 한 놔두게 됐다. 다 중재해 버리면 앙금이 남는 것 같다.
한동안 서행을 하다가 중간에 사진을 찍으려고 내렸다.
황새벽이 말했다.
“X버스 올리게, 단체 사진 찍자.”
“오, 좋다.”
이미 공식 계정에 보낼 셀카를 찍던 멤버들이 모였다. 가끔 보면 의외로 아이돌이 잘 맞는 놈들일지도 모르겠다.
사진 찍고, 꽃구경을 하다가 다시 찻집으로 돌아왔다. 찻집 앞에 둔 야외테이블을 제외하면 전부 좌식이었다.
박선재의 제안으로 우리는 제일 큰 방에 모두 모였다.
부모님이 주신 간식을 먹으며 밤새도록 떠들다가 하나둘 기절하듯이 잠들었다. 나도 등 따습고 피곤하니 잠이 쏟아졌다.
그래서 깜빡 잠들었다가, 밖에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깼다. 몸을 일으켜서 머리를 세보니 두 개가 모자란다.
“아, X발.”
여기 끌고 와서 사고 치면 내 탓이니까, 급하게 카디건을 찾아 껴입는데 황새벽이 웅얼거리는 게 들렸다.
“뭐라고?”
“술 마신다고…….”
밖에서 한잔하는 걸 파악만 하고 일어나진 못하고 있다. 파악이라도 한 게 대단하다.
“넌 진짜 리더 감이야.”
나는 말하고 이불을 다시 덮어준 후 방을 나왔다. 그랬더니 정면 야외테이블에서 조용히 2차 중이던 신지운과 안주원이 보인다. 나는 툇마루를 내려와 신발을 구겨 신으며 말했다.
“하여튼 05들이 문제야.”
“어, 그라데이션즈.”
“진짜 그라데이션즈네.”
신지운의 말에 안주원이 맞장구쳤다. 내가 의자를 끌어 오는데 신지운이 말했다.
“술이 술술술 들어가네.”
“주원아, 쟤 많이 마셨냐?”
“응? 아니? 나 안 취했는데?”
“아, 너도 취했구나.”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감시역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확실히 취한 신지운이 말했다.
“난 형이 방에서 나와서 참 좋다.”
“……하.”
취한 놈들 사이에 맨정신으로 있기 괴로워서 난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안주원도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행이야, 다행이야.”
“닥치든지, 딴 얘기 해, 이 취객들아.”
“매실주가 진짜 맛있네.”
“그러냐. 일단 잔만 채워줘.”
신지운이 잔을 채워줘서, 나는 매실주의 향긋한 냄새를 맡아본 후 내려놨다. 신지운이 혀를 찼다.
“진짜 지독하다.”
“야이씨, 나의 전두엽을 지켜야 한다고.”
내 말에 05즈가 낄낄거린다. 슬픈 얘기에 웃는 걸 보며 만취 상태라고 확신했다.
그 후 두 놈이 취해서 헛소리하는 걸 낄낄거리며 듣다가, 신지운이 말했다.
“형 말고, 부모님 뵈러 온 거야. 밥도 얻어먹고.”
“…….”
“미안해하는 것 같길래.”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신지운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나도 그렇지만, 다른 멤버들도. 눈빛만 봐도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슬슬 알게 되는 것 같다.
* * *
다음 날 제일 피곤한 건 나였다. 쟤네는 간에서 헛개나무가 자라나 보다.
그래도 부모님이 해주신 아침을 먹으며 내내 졸다 보니 잠이 깼다. 다행히 멤버들은 꽃구경도 잘하고, 밥도 잘 먹고 숙소로 돌아간 게 좋은 추억이 된 것 같다. 피곤해도 꽃구경을 다녀오길 잘했다.
서울로 오자마자 X버스에 멤버마다 찍은 사진을 올렸다.
[막방하고 다 같이 해원이네 집 갔나 봐ㅠㅠ]
[저기 가면 햇살이들 진짜 많더라ㅋㅋㅋㅋ]
[난 일본 팬을 진짜 많이 본 듯]
[↳그니까 우리 일본 활동도 안 했는데 어떻게 알고ㄷㄷ]
[사진 진짜 따듯하다]
[방에 이불 펴고 굴러다니는 거 뭐야 어린이들이냐고ㅋㅋㅋㅋㅋㅋ]
[얘네 진짜 친하구나]
[올해 벚꽃 못 봤는데 힐링이야ㅠㅠ]
[↳근데 나도 저기 끼고 싶어서 힐링 안 돼]
[↳↳맞아 햇살이들 끼워줬어야지]
나는 X버스를 보며 흐흐 웃었다. 멤버들도, 사진을 보는 햇살이도 좋아하는 걸 보니, 피곤해도 운전해서 다녀온 보람이 있다.
* * *
활동 종료 후 보름 정도 지났을 때 VVV엔터 강효준 A&R에게서 연락이 왔다.
계약서에 사인하기 전에, 작업실을 보여주겠다는 연락이었다.
나는 회사를 나서며 주머니 속 포션을 만지작거렸다. 회사에 비밀로 하고 다른 회사 A&R과 접촉하려니 뭔가 스파이가 된 것 같고 그렇다. 허허.
카페에 좀 있다 보니 강효준이 도착했다. 나는 카페에서 예의상 사 온 커피를 건네줬다.
“커피 드실래요?”
“네.”
강효준이 고민도 안 하고 커피를 받아 바로 들이켠다. 역시 워커홀릭들에게 커피는 필요불가결이다.
작업실 방향으로 향하며 내가 말했다.
“주소 알려주시면 알아서 갈 텐데.”
“성의 없잖아요.”
“그렇다고 직접 오실 건 없는데.”
“성의요.”
“성의가 부담스러운데요.”
“잘됐네, 부담스러우라고 하는 건데.”
피곤에 쩐 상태로 대답하는 걸 들어보니, 하나하나 자기 손으로 안 하면 안 되는 타입인 것이다. 뭐 그 부분은 내가 남한테 뭐라고 할 자격이 없다.
작업실은 서촌 방향으로, 회사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었다. 양이형의 작업실까지는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곳이다.
“우워어…….”
작업실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와…… 어? 어!”
내가 서치하며 군침만 흘리던 템들이 죄다 구비 되어 있었다. 트랩인가. 트랩이지. 워씨, 이 작업실 돌려주고 나가면 이 맛을 못 잊겠지? 그래도 놓고 가야겠지?
구해달라는 장비는 다 있었다. 그것도 어떻게 구했는지 빈티지도 있고, 새삥도 있다. 스피커는 물론이고 조명과 의자도 고가 브랜드였다.
나는 이 계약 건에 대해, 멤버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알고 있는 양이형에게 전화하며 강효준에게 말했다.
“잘 쓰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아, 열쇠.”
빨리 가야 하는지 몸이 반쯤 밖으로 향해서 전화하던 강효준이 나에게 열쇠를 던져주고 바로 떠났다. 나는 보나 마나 자느라 안 받는 양이형이 깰 때까지 전화해서, 받자마자 말했다.
“형, 주소 보내줄게. 빨리 와.”
-개X끼야, 꺼져.
“베어풋 있는데, 26으로.”
-어쩌라고. 돈 많다, 새끼야.
“노이만 U87 빈티지는?”
-주소 뭐라고?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포션을 꺼내 들이켰다.
[작업실을 등록합니다]
[주간 히트곡 메이커 L급]
[등록된 작업실에서 체력 저하가 20% 줄어듭니다(1/1)]
[현재 상태 15/100% (10% 이하에서 슬립 모드가 시작됩니다)]
오. 이런 것도 알려주네. 어제 밤샘 작업을 해서 맛탱이가 갔나 보다.
양이형이 오면 밥 먹으면서 쉬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막 밥을 시켰는데, 양이형이 도착했다.
“뛰어왔어? 와씨, 나 형 달리는 거 살면서 처음 본다.”
“너 보러 온 거 아니니까 비켜봐.”
양이형이 날 밀어내고 장비를 하나, 하나 확인하더니 말했다.
“한번 써보고 밥 먹자.”
아니, 왜 내 주변에는 저런 도라이 일 중독자들밖에 없지?
어차피 밥 올 때까지 시간이 있으니 나는 겸사겸사 박희영에게 보낼 곡을 한번 불러보다가 감탄했다.
장비 덕에 1년 뒤 이 넓고, 체력 저하를 줄일 수 있는 작업실을 포기하는 게 더더욱 어려워졌다. 이 치밀한 VVV 놈들…… 내가 돈 벌어서 사고 만다…….
밥이 오고 나서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박희영에게 보낼 곡을 작업하는데 경고창이 떴다.
[현재 상태 10(+1)/100%]
오, 이렇게 포션 효과를 알려주는구나. 하마터면 쓰러져 잘 뻔했다.
“형, 밥 먹고 마무리하자.”
“웬일로 네가 먼저 밥 얘기를 하냐? 맨날 귀찮다고 쓰러져서 자더니.”
포션이 나에게 쓰러지기 전에 알려주는 기능까지 하는 모양이다. 크, 오늘 얻은 장비 중 최고네.
식은 밥을 먹으며 양이형이 물었다.
“근데 이 계약하고 나면, 너희 부대표가 가만히 있겠냐?”
그럴 리가.
안 맞으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