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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108화 (108/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08화

하지만 좀 더 생각해 보면 한 대 맞고 끝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긴 하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주먹이 날아오면, 이제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것 아닌가.

아무튼 작업실은 장비도 좋지만 넓기도 무지하게 넓었다. 방음도 잘 되어 있고, 작지만 방도 딸려 있어서 거기 침대 놓고 자면 될 것 같았다.

밥 먹고 컨디션을 회복해 박희영의 곡 작업을 마무리하다가 깜빡 잠들었다. 그리고 일어나 시계를 보니 열두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어, X 됐다.”

나는 급하게 일어나서 짐을 챙기자 양이형이 말했다.

“너 이제 퍼라 놈들한테 쌍욕 먹는다.”

“그걸 알면서 안 깨워주냐?”

나는 투덜거렸지만 양이형은 무시하고 다시 작업을 이어갔다.

회사 사람들이야 내가 내 작업실에 없으면 양이형 작업실에 있겠거니 하지만 멤버들은 아니었다. 핸드폰을 보니 안 그래도 멤버들이 날 찾고 있었다.

[안쭈 : 해원아 너 어디야? 이형이 형 작업실에도 없네]

거의 나오는 동시에 택시를 불러 타고 바뀐 숙소로 날아갔다. 날 보자마자 거실에 있던 박선재가 물었다.

“형, 어디 있었어?”

“어? 어.”

멤버들 중에 감정이 잘 상하는 놈들이 많아서, 새 작업실 입주 첫날 자기들 안 부른 거 알면 양이형 말대로 쌍욕이 날아올 것이다.

그래도 딱히 둘러댈 말이 없었다. 내가 친구나 많으면 모르지, 이럴 때 댈 이름 하나가 없다.

“……새 작업실. 갔다가 깜빡 잠들었어.”

“처음 간 곳에서 잠들었다고?”

“어…… 내가 외향적이잖아…….”

“혼자?”

“이형이 형 있었지…….”

왜 이렇게 쫄리냐, 허허.

하고 웃을 때가 아니었다.

“이형이 형을 불렀는데, 우릴 안 불렀어?”

“회사 모르게 다녀와야 하는데 너희 다 부르기 좀 그렇지. 이형이 형 작업실이 근처기도 했고…….”

내가 변명하는데 주방 쪽에서 미지근한 물을 마시던 한효석이 말했다.

“그만 물어봐. 우리보다 이형이 형이 중요하다잖아.”

“야이씨, 내가 언제 그랬어, 또.”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죠.”

작업실에 제일 많이 붙어 있는 동료 부른 게 이렇게 바람피우다 걸린 기분이 들 일인가?

나는 두 동생의 갈굼을 피해서 내 방으로 들어왔다.

룸메이트가 민지호로 바뀌었다. 원래 룸메이트이던 신지운이 나랑 방 쓰는 건 독방이나 다름없어서 외롭다고 하는 바람에 방을 다시 골랐다.

방에 들어가니 민지호가 날 힐끔 보곤 인사도 안 하고 좋아하는 댄스팀 유튜브로 고개를 돌린다. 내가 별수 없이 물었다.

“궁금하면 지금 가볼래?”

“가자.”

민지호가 냉큼 핸드폰을 끄고 일어났다.

그치, 형이 피곤해 뒤져도 너희는 작업실을 가봐야겠지…….

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랬다가 진짜 더 피곤한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에, 나는 다시 작업실로 갈 준비를 했다.

결국 나는 멤버들에게 새 작업실을 보여준 후에야 갈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 *

나는 바로 박희영에게 곡을 보냈다.

박희영은 다행히 곡을 무지하게 마음에 들어 했고, 다음 앨범에 선공개곡으로 회사에서 결정이 났다고 했다.

지금까지 박희영이 부른 스타일과 달리 조용한 곡이라 걱정했는데 잘 통과가 됐다.

하지만 우리 쪽과 달리 트로트는 뭔가 느긋해서, 앨범 수록곡 채우고 뭐 하고 하다 보면 아주 빨라도 올해 가을 무렵에 앨범이 나올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들은 박종렬 엔터 A&R의 말이 놀라웠다.

-방송에서 그냥 먼저 불러도 돼, 해원 씨.

이게 무슨 파격적인 소리인지.

-홍보되고 좋지, 뭐. 희영이도 아마 행사에서 기회 되면 부를걸? 뭐, 신경 쓰이면 희영이가 먼저 한 번 부르고 부르든가.

우리는 머리색도 스포를 안 하려고 비니나 후드로 머리카락을 완전히 감싸고 있는데, 곡을 스포해도 된단다.

어차피 박희영은 이 한 앨범의 수록곡으로 짧으면 3, 4년 정도 활동할 것이다. 그리고 혹시 히트를 친다? 박희영이 은퇴할 때까지 부를 것이고, 트로트 가수의 수명은 길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이 길다.

우리처럼 두 주 활동하고 바로 다음 앨범 준비에 들어가는 것과는 다른, 느긋한 트로트계의 시간 흐름에 빠져 있으니 괜히 나까지 느긋해지는 기분이었다.

계약서는 내 새 작업실에서 썼다. VVV엔터 4본부 직원들은 낯을 가리는 우리 멤버들을 최대한 배려해 줬다. 그리고 우리에게 기사가 나가는 날짜를 미리 알려줬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기사가 나간 당일, 나는 바로 사장실부터 찾아갔다. 그리고 이미 기사를 확인한 후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박희택 사장에게 말했다.

“제가 멤버들 꼬드겼어요. 이렇게 된 거, VVV로 가자고.”

“그냥 있으면 어차피 가는 걸 뭐하러 그래.”

“지금 가면, VMC에서 팀 쪼갤 거거든요.”

박희택 사장이 한숨을 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다행히 박희택 사장은 상황 받아들이는 게 빠른 편이라,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이미 결정됐으니 어떡하겠냐.”

“화 안 내시네요.”

“너한테 성질낼 상황이 아니잖아. 일이 이렇게 됐으니, 여기서 제일 수익성 좋은 건 네가 좋은 곡 뽑아서, 일 년 동안 조금이라도 더 히트하는 건데.”

“아시네요.”

나는 히히 웃고 말을 이었다.

“그럼 대표님한테 그것 좀 전달해 주세요. 그렇게 방향을 잡으시라고.”

박희택 사장이 한숨을 쉬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고 전화를 들었다. 그리고 내가 보는 앞에서 바로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다행히 TRV의 대표는 아들인 최기문 부대표와 달리 애초부터 회사를 팔고 싶지 않아 했던지라, 잘 설득이 된 모양이었다.

박희택 사장이 나에게 말했다.

“웬만하면 남은 전속 계약 기간 동안 기문이 눈에만 띄지 마. 너 진짜로 맞는다.”

“맞으면 좋죠.”

“맞아서 그걸로 협박이라도 하게? 네가 무슨 인맥이 있다고.”

“지운이 부모님 법조인이시잖아요.”

“……아.”

“이제 VVV엔터 법률팀도 제 편이겠네요. 계약은 1년 뒤지만, 그 사이에 프로듀서로 일해주기로 했으니 사실 전 이미 VVV엔터 사람이거든요.”

나는 그냥 막 던지는 말인데, 박희택 사장이 보기엔 다 그럴듯하게 들렸는지 고개만 끄덕인다.

“전 작업실 가 있을게요. 이제 빼셔도 돼요. 새로 작업실 구했으니까.”

“벌써 옮겼어? 일찍도 작업했다.”

그렇게 이야기한 후, 나는 사장실을 나와 TRV 사내에 있는 내 작업실로 향했다.

“잘 있어. 잘 썼다.”

한동안 먹고 자고 하던 작업실과 인사하려니 괜히 마음이 허하다. 그래도 TRV 한복판에서 VVV엔터 아이돌 곡 작업을 하는 건 확실히 좀 그렇다. 그것도 인수까지 어그러뜨린 마당에.

내가 자료들을 한 번 더 백업 후, 포맷하고 있을 때 작업실 문을 부술 듯이 두드리는 게 들렸다.

최기문 부대표였다.

박희택 사장은, 솔직히 나에게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는 사람이다. 이유가 뭐든 내가 다시 무대에 설 수 있게 기회를 준 사람이니까.

내가 아이돌이 되고자 결정했던 날부터의 모든 날, 나는 무대를 꿈꿨다. 그걸 나에게 쥐여줬다. 나는 다시 무대에 설 수 있게 되었다.

최기문 부대표는 반대였다. 어떻게 얻은 팀인데. 어떻게 얻은 무대인데, 그걸 VMC 손에 넘겨 부수게 하려 했다.

내가 작업실을 나오자 최기문 부대표가 바로 멱살을 잡으며 말했다.

“너지, 그치. 짱돌 굴릴 새끼가 이 새끼밖에 없지.”

그 와중에 그거 하나는 맞게 파악했다. 허허. X 같은 새끼.

내가 말했다.

“저도 살길 찾아야죠.”

내 말에 금방이라도 최기문 부대표가 주먹을 날릴 것 같았는지, 박희택 사장이 급하게 사이를 막아섰다.

말리는 사람이 있으니 최기문 부대표가 참는 시늉을 하며 심호흡 한번 했다.

이미 다 확정된 일인데 기사는 모호하게 나간 모양이다. 최기문 부대표는 늦게라도 날 설득하면 될 것 같았는지, 좀 부드러워진 투로 말했다.

“어차피 그 회사 갈 생각이면, 뭐하러 1년을 더 이런 중소에서 구르다 가.”

“지금 가면 저희 그룹 쪼개져요.”

“그게 뭐 어때서.”

……뭐 어때서라고?

내가 지금 이 지랄을 하는 건, 그룹이 쪼개지는 게 싫어서. 그거 하나다. 누군 좋아서 생전 처음 보는 애들 프로듀서가 된 줄 아나?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이 없으면 나는 여전히 카메라도, 무대도 이기지 못하는 히키코모리로 돌아간다. 나는 이미 내 상태를 너무 잘 안다. 국선아로부터 2년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상흔으로 나에게 남아 있으리란 것을.

최기문 부대표가 되지도 않는 설득을 이어갔다.

“너, 작곡해서 충분히 먹고살잖아. 먹고살기만 해? 아이돌 생활 뭐 좋아, 욕이나 먹고. 조용히 틀어박혀서 작곡하는 게 네 정신건강에 훨씬 좋지.”

“…….”

“솔직히 말해보자. 한 번 대중들한테 찍힌 거, 쉽게 안 바뀐다? 네가 남들이랑 똑같이 삐끗하면, 남들은 그냥 넘어갈 거, 넌 바로 매장이야. 이미 대중들한테 한 번 비호감으로 찍혔는데, 사람 마음이 그렇게 쉽게 바뀌겠냐? 다들 마음 한구석에 너 X 같아 하는 그게 있을 거란 거 너도 속으론 알잖아.”

워어, 저걸 저렇게 다 알면서 나까지 VMC에 넘기려 했다고?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악플러를 직접 본 건 처음이네.”

내가 인터넷을 안 한다고 해도, 별수 없이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다. 굳이 내 라방에 찾아오는 악플러들, 팬인 척, X버스에 숨어서 묘하게 날 괴롭히는 사람들.

레퍼토리는 다들 비슷하다. 악편이라는 걸 머리로 알아도, 눈으로 보고 가슴에 남은 짜증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냐는 말. 내가 대중들에게 진정으로 용서받는 날은 오지 않을 거라는 말.

나는 말을 이었다.

“사실 그것도 좀 있어요. 부대표님이 너무, 인수를 원하셔서. 꼴 보기 싫은 거.”

“뭐, 새끼야?”

“결국 TRV가 팔리는 건 우리 덕인데, 우리가 고마운 줄 모르는 게 좀 그렇더라구요.”

한 대 맞고 깔끔하게 끝내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주먹이 안 나온다. 거기다 박희택 사장이 한 손으로는 최기문 부대표를 말리고, 다른 손으로는 어디로 전화를 걸고 있었다. 대표한테 거는 거겠지.

나는 말을 이었다.

“근데 혹시 이미 레이블 만드셨어요? 걸그룹 만드신다면서요. TRV 안 팔리면 무슨 돈으로 하세요? 진짜로 궁금해서 그러…….”

나도 막말하기 싫었다. 아이돌은 무슨 상황이든 막말해서 유리할 수 없으니까.

그래도 다행히 보람 있게 한 대 맞았다.

어우, 어지러. 상처가 남게 때려야 남 보기 좋은데 머리를……. 그 와중에 내가 아이돌이라 얼굴은 아끼나 보다. 엇, 그럼 이성이 멀쩡한데 그냥 때린 거잖아?

나는 또다시 날아오는 팔을 붙잡았다. 내가 비실비실하긴 하지만 힘은 괜찮은 편이다. 히히.

나는 최기문 부대표를 밀치고 골이 울리는 머리를 한 손으로 감싸며 말했다.

“그 나이에, 아버지가 TRV 대표인데 엔터계에서 이렇게 이룬 거 없기도 쉽지 않겠어요. 대단하시네.”

내 말이 역린이었는지, 최기문 부대표의 눈이 뒤집히는 게 보인다.

욕도 끝까지 못 뱉고 입만 뻐끔거리는 걸 보는 건 재밌지만, 그래도 우리 계약이 1년 남았는데 너무 했나, 싶을 때였다.

박희택 사장이 핸드폰을 붙들고 말했다.

“기문아, 너희 아버지가 잘나가는 애 패면 뒤진대!”

그 말에 최기문 부대표가 사색이 되어 멈춘다.

“아, 아버지가?”

부전자전이다. 주먹 나가는 걸 문제 삼는 게 아니라, 잘나가는 애 패면 안 된다는 사람이 자식 교육 어떻게 했을지 빤하다.

최기문 부대표가 넋 나가 있을 때, 나는 멀리서 입을 못 다물고 굳어 있는 앨범 제작팀, 정선미 과장에게 몰래 손짓으로 사진을 찍었느냐고 물었다.

정선미 과장이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진은 남았다.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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