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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109화 (109/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09화

TRV 앨범 제작팀 정선미 과장은 정해원이 오래전부터 눈독을 들이고 있는 직원이었다. 정선미 과장 본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정해원이 팀의 프로듀서로 자리 잡다 보니, 정선미 과장과 직접 소통할 때가 많았는데, 둘만 있을 때는 늘 인재 빼돌리고자 하는 야망을 드러내 보였다.

‘누나는 진짜 대단한 것 같아요.’

‘아는 사람 중에 제일 천재예요.’

‘원래 정 씨가 예술가 기질이 있나 봐요. 우리 누나도 그렇고.’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정해원은 인생의 계획이 이미 완벽하게 잡혀 있는 듯했다.

TRV는 비주얼 디렉터라는 직책이 따로 있지 않아, 정선미 과장이 그 업무를 전부 도맡고 있었다. 본인 업무에 비해 회사가 대우해 주지 않는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그냥 직장생활이 그런 거려니 하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복도에서 멱살이 잡혀 있는 정해원을 보고 그대로 얼어 있었다. 정해원은 CCTV 쪽을 힐끔 보며 못 미더운 표정을 하다가, 정선미 과장이 보이자마자 반색하고 촬영을 해달라는 신호를 보내 얼떨결에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정선미 과장에게는 정해원이 모순적인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미래에 대해 청사진을 그리는 사람이, 동시에 기회가 있으면 죽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손찌검을 목격한 정선미 과장은 충격에 휩싸여, 망설이지도 않고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에게 바로 영상을 보냈다.

* * *

민지호와 한효석, 댄스팀 UO는 다음 타이틀의 가이드 버전을 틀어 놓고 안무를 짜느라 매일 연습실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지쳐서 바닥에 잠깐 누웠던 민지호가 핸드폰을 확인하고 벌떡 일어났다.

“해원이 형 때렸어.”

“누가?”

한효석이 휙 돌아보며 묻자 민지호가 말했다.

“부대표.”

그 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연습실을 나섰다. 그때 개인 활동 건으로 개인 소속사에 가 있던 황새벽에게서 전화가 걸려와, 민지호가 멈춰 섰다.

-어, 민조. 형 금방 갈게. 사고 치지 말고. 네가 문제야.

“어느 정도가 사고 안 치는 거야?”

-싸우지 말라고.

“알았쩡.”

민지호가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복도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부대표를 보자마자 말했다.

“야이 X새야, 미쳤냐? 우리 형을 때려?”

라고 민지호가 말할 걸 알았기 때문에 한효석이 한발 늦게 손으로 민지호의 입을 틀어막았다. 정해원은 표정이 굳고, 민지호는 한효석을 밀쳐내고 소리쳤다.

“싸움 잘하냐? 잘하면 쳐봐, 나도 치게!”

맛이 간 상태의 민지호는 한효석의 힘만으로 말릴 수 없어, 정해원이 급하게 와서 힘을 보태며 한효석에게 물었다.

“누가 얘한테 말했어?”

“지금 그게 중요해요? 멤버들이 당연히 알아야죠.”

“이성적인 애들한테만 말했어야지!”

한효석도 거기에 동감하고 있을 때, 민지호가 부대표 쪽을 향해 발길질을 하며 말했다.

“아, 뭐 하냐! 쳐보라고!”

“아니, 저거 미친 새끼 아냐!”

“어, 그래, 나 미친 새끼다! 계약할 때 몰랐냐? 아니, 뭐 관심이 있어야 알지, 이…….”

뒤에 많은 욕이 나올 것을 예상한 정해원이 입을 틀어막았다.

민지호가 퍼스트라이트 내에서는 체격이 작은 편이었지만, 일반인 기준으로는 큰 편이었고, 타고난 운동 신경에 하루 종일 춤추고, 그 춤을 버티기 위해 꾸준히 웨이트를 해왔다. 발레 전공인 한효석과 함께 운동을 해도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민지호였다.

최기문 부대표는 눈대중으로 싸우면 안 될 걸 알았고, 민지호 눈깔을 봐서 말리는 사람 둘이 손을 떼면 진짜로 달려들 기세라는 것도 알아차렸다. 결국 박희택 사장이 말리는 팔에 못 이기는 척 물러나며 중얼거렸다.

“X만 한 새끼가…….”

“이렇게 큰…….”

X이 어디 있냐고 소리치려는 민지호의 입을 정해원과 한효석의 손이 동시에 덮었다.

“지호야, 너 아이돌이다.”

한효석의 말에 정해원도 덧붙였다.

“제발 너의 아이돌 자아를 되찾아.”

그래도 그 말이 효과가 있어 약간 진정한 민지호가 두 사람의 팔을 밀어내고 중얼거렸다.

“아, 지운이 형 있었으면 줘 패게 냅뒀을 텐데…….”

민지호는 진심으로 아쉬워했고, 양쪽의 두 사람은 신지운이 개인 스케줄로 나가 있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마터면 TRV 사내에서 폭행 사건 일어날 뻔했네.”

정해원의 혼잣말에 동생 둘이 휙 그쪽을 봤다.

“뭔 소리야, 이미 일어났지.”

“형, 혹시 충격 때문에 기억상실 생겼어요?”

정해원이 뒤늦게 ‘아’ 하고 중얼거렸다.

“아, 그치.”

그때 민지호가 울리는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말했다.

“해원이 형, 지운이 형이 병원 가래.”

“무슨 병원을 가.”

“일단 가래. 빨리 가봐.”

* * *

나는 얼떨결에 병원에 도착했다. 신지운이 전화로 시켰는지, 민지호와 한효석이 맞은 영상까지 의사에게 보여줘 가며 상황을 알려줬다. 뇌진탕은 없지만, 타박상이 있다고 했다. 그렇다는 건 그냥 놔두면 낫는다는 건데 왜 굳이 여기서 시간 낭비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상해진단서를 떼서 나오며 내가 말했다.

“아주 동네방네 나 맞았다고 떠들고 다녀라.”

“맞은 거 맞잖아.”

“본 직원들도 꽤 있어서 입단속 어려울걸요.”

맞는 말들만 골라 해서 대답을 할 수가 없다. 하여튼 05도 그렇고 06도 그렇고, 동갑들끼리 붙어 있으면 전투력이 올라간다. 근데 왜 나랑 황새벽은 같이 있으면 늘어지지. 새부기 자아가 강해서 그런가…….

차에 타자마자 전 소속사에 가 있던 박선재에게 영상통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아보니 박선재의 얼굴이 보였다.

-형! 어떻게 했어? 형도 팼지? 그치?

“아니, 아이돌이 어떻게 폭력을…….”

-아이, 답답허네. 선빵을 맞았는데 아이돌이 뭐가 중요해?

“그보다, 거긴 왜 갔어?”

-난 그냥 새벽이 형 따라온 거야. 친구들도 보고, 배드원 형들이랑 챌린지도 찍으려고. 아, 말 돌리지 마!

나는 박선재의 잔소리를 한 귀로 흘려보내며, 머리로는 황새벽의 개인 스케줄에 대해 추측했다.

아, 내 염원이 통해서 드라마 OST 하나 해야 하는데.

* * *

황새벽은 개인 활동을 전담하는 소속사 부사장과 미팅 도중 몇 번을 되물었다.

“일본 드라마요? 일본? 한국 아니고?”

“그래, 어차피 퍼스트라이트도 일본 진출할 거 아냐. 드라마 OST로 새벽이가 먼저 발 걸쳐 놓으면 좋잖아.”

부사장이 지난주 공개한 ‘드라마기를’ 스페셜 영상을 정지해 놓고 황새벽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일본에서 벌써 반응이 와. 네 얼굴이. 지웅이 형이 맨날 얘기했잖아, 넌 일본에서 먹히는 얼굴이라고. 이 섹시한 마스크가.”

“전 그냥 피곤한 건데요.”

“넌 왜 이렇게 네가 잘생겼다는 걸 부정하냐.”

“맨날 눈뜨면 보이는 게 우리 멤버들이잖아요.”

부사장은 황새벽을 캐스팅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거의 인생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덤벼든 것이 아이돌은 관심 없다는 황새벽을 캐스팅하는 일이었다.

여느 밴드부와 달리, 황새벽의 밴드부 공연은 그 지역 학군을 들썩이게 만들 정도였다. 고작 중학교 밴드부 공연을 보기 위해 티켓팅을 해야 했을 정도였다.

직접 그 공연을 찾아간 부사장은 드디어 인생을 걸만한 연습생을 발견했다는 것을 알았고, 본인이며 부모를 매일 찾아가 아이돌로 키워보지 않겠냐고 설득했다.

처음 연습생을 시작하던 날부터 황새벽은 지웅이 형이라고 불리는 사장과 부사장의 편애를 받고 있었다. 그 편애가 연습생을 아끼는 마음 이상, 심지어는 자식 사랑 수준으로 변질되어, 퍼스트라이트가 좋으면 거기서라도 잘 되면 된다는 마음조차 가지게 되었다.

물론 그것은 먼저 데뷔시킨 배드원이 예상하지 못한 대박을 터뜨렸기 때문에 생긴 여유와 단기간에 다음 그룹을 준비하는 위험이 번거로워진 것에서 비롯된 것이기는 했다.

황새벽이 의자에 늘어져 말했다.

“아, 해원이가 저 드라마 OST 하길 바라고 만든 건 맞는데…… 저 외국어 못하는데.”

“못해도 돼. 녹음은 할 수 있어. 그리고 지금 한번 일본어 녹음해 보면, 나중에 다 뼈가 되고 살이 되고. 어?”

“아니, 뭐든지 다 뼈가 되고 살이 된대. 뼈가 되고 살이 되는 건 음식밖에 없어요.”

“그건 그치?”

황새벽과 개그 코드가 잘 맞는 부사장이 흐흐 웃었다. 부사장이 말을 이었다.

“해원 씨한테 OST 작곡도 한번 물어볼까?”

“아뇨.”

고개를 젓고 나서 황새벽이 말을 이었다.

“그냥 말도 꺼내지 마세요. 걔 바빠요.”

그리고 힐끔 핸드폰을 확인했다.

[민지호 : 병원 갔다 나왔어]

[민지호 : 진짜 패면 안 돼? 왜 난 안 돼? 그 새끼는 되는데?]

그걸 보자마자 황새벽이 급하게 대답했다.

[안 돼]

[효석아 민조 잡아]

[한효석 : 잡고 있어요]

[신지운 : 그냥 놔둬]

[지운이 옆에는 누구 없냐? 잡아봐]

[신지운 : 난 안 그러지 이성적인데]

[네가 제일 사고 칠 놈이야]

황새벽이 지끈거리는 이마를 손으로 감쌌다. 부사장이 물었다.

“최기문이 진짜 때렸대?”

“그렇대요.”

“내가 언젠가 한 번 사고 칠 줄 알았다.”

[신지운 : 새벽이 형도 임원진이랑 같이 있으면 항의해 달라고 해]

[신지운 : 우리 애 못 맡기겠다, 이런 거 있잖아]

[안주원 : 난 우리 회사라 못 하는 게 아쉽네…….]

그걸 읽고 황새벽이 말했다.

“부사장님도 TRV에 한 소리 해줘요. 우리 애 믿고 맡겼는데 폭행이 말이 되냐.”

“언젠 또 퍼스트라이트가 본진이라며, 이럴 때만 우리 애라고 하지.”

“둘 다죠.”

“알았어, 인마. 아무튼 너 OST는 하는 거다?”

“시켜주면 해야죠. 가사 주시면 발음은 연습해 볼게요.”

“그치? 알았다.”

부사장이 싱글벙글해서 핸드폰을 들며 말했다.

“이거 잡아준 거 다 해원 씨 덕인데, 내가 전화 정돈하지. 열성적으로.”

한 번 만난 적도 없는 정해원에게 호의적인 부사장의 대답을 들으며, 황새벽은 정해원이 활동 1년도 되기 전에 참 여기저기 은공을 뿌려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정해원 : 항의하는 거 좋은 생각이다 난 그냥 공갈 협박 정도 생각했는데 똑똑하네]

근데 이 자식은 지금 속 편한 얘기 할 땐가?

황새벽이 거슬려 하는 사이 정해원이 다시 말했다.

[정해원 : 그럼 일단 VVV한테도 말해야겠다 곡 작업도 빡신데 써먹어야지]

[신지운 : 이이제이네]

[정해원 : 그치ㅎㅎ]

[민지호 : 어려운 말 쓰지 마라!!!!!!!!!!!!!!!!!!!!]

내 편일 때 든든한 개X끼가 이런 건가.

황새벽은 그 대화를 보며 생각했다.

* * *

TRV로 계속해서 전화가 쏟아졌다.

-폭행? 폭행이요?

-우리 애도 팬 거 아냐?

-X발, 장난하나, 우리가 X으로 보여?

뭐 하나 물어뜯을 게 생겼으니, 퍼스트라이트 멤버들의 개인 소속사마다 난리였다. 박희택 사장은 쏟아지는 연락에 두 손으로 얼굴을 벅벅 문질렀다.

그때 상황을 물어보려 대표에게 전화가 걸려오자, 박희택 사장이 전화를 받았다.

-어, 희택아. 어떻게 돼가니.

“지운이가 부모님이 대형 로펌에 있잖아요. 보고 자란 게 있어서 그런지, 온 사방에 알리고 난리 났어요. 이건 뭐 공갈협박단이에요, 거의.”

-어떡하냐.

어떡하냐, 같은 소리 하고 있다.

최기문은 한 놈인 줄 알고 정해원에게 화풀이를 한 건데, 그 뒤에 여섯 명에, 소속사만 세 개가 들러붙어 난리가 났다.

여기서 괜찮다고 하면 자기가 독박 쓰고 끝날 분위기라, 박희택 사장이 한탄했다.

“이거 애들은 그렇다 치고, 소속사는 뭐 하나 얻어먹지 않으면 안 떨어질 것 같은데요.”

-그르냐. 어떡하냐. 그래도 네가 해줘야지.

하, 이 능구렁이 노인네.

그렇게 수확 없이 전화를 끊었는데,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VVV엔터였다.

-저희 프로듀서님과 불미스러운 일이 있으셨다면서요?

그 한마디에, 지금까지 문제는 문제도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VMC를 적으로 돌리게 생기자, 박희택 사장이 다시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그걸 그대로 전달했다.

소속사 세 개가 항의할 때는 알아서 해결하라고 하던 TRV 대표 역시 이번에는 고심하며 침묵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기문이, 내보내는 걸로 되겠냐?

“그걸로도 안 될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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