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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111화 (111/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11화

“무슨 역으로 오디션 보래?

내 질문에 신지운이 대꾸했다.

“훈남 대학 선배.”

“너랑 너무 안 어울리는 거 아니냐.”

“왜 또 시비야.”

“넌 대학생도 아니고, 혹시 대학생이어도 선배가 아니고 심지어 훈남도 아니잖아.”

“아, 나도 잘생겼다며.”

“야, 훈남이 뭔지 몰라? 훈훈한 남자잖아. 넌 안 훈훈하고.”

“하, 씨…….”

거기에는 할 말이 없나 보다. 짜증을 내며 말끝을 흐리는 걸 보니.

솔직히 요즘 훈남이라는 말이 잘생겼다는 말로 왜곡돼서 그렇지, 잘생긴 것까진 아니지만 인상이 호감 가고 훈훈하다, 쯤 되는 원뜻을 생각하면 거기서 반대 극점에 있는 게 신지운이 아닌가 싶다. 쟨 잘생겼는데 인상이 더러우니까.

나는 드라마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보다가 물었다.

“거기, 주인공 좋아하는 옆집 싸가지없는 고딩 있지 않냐?”

“진짜 어떻게 알아?”

“어, 친구가 배우 지망생이라.”

“뭔 소리야, 형 친구 없잖아?”

“나도 친구 있어, 이 사람아.”

없다. 하. 젠장. 이 나이에 가상의 친구 만들게 생겼네.

내가 친구가 없으려고 없는 게 아니라, 피아노 치던 애들 멀어지고, 막 친구 생길 즈음 연습생 시작하며 멀어지고, 연습생 시절 친하던 놈들은 배신 때리고…….

남은 게 진짜 이 새끼들밖에 없구나……?

그러니 내가 이러고 얘들한테 집착하지. 친구라곤 딱 쟤네 여섯 명이 전부 다 보니.

내가 물었다.

“오디션을 볼 거면 그쪽이 낫지 않냐?”

“나랑 안 어울리잖아.”

“아니. 그냥 딱 넌데.”

“일단 난 이제 싸가지가 있고, 고등학교도 졸업했잖아.”

“고등학교 두 달 전에 졸업했고, 여전히 싸가지없어, 너는.”

“아니라고.”

“저 형한테 말대꾸하는 거 봐.”

“나흘 일찍 태어난 걸로 유세 떠네, 또.”

“나흘 전으로 시간 돌릴 수 있냐? 없으니까 이게 넘을 수 없는 벽인 거다, 인마.”

내 말에 신지운은 짜증이 나 미치려 하면서도 더 대꾸를 못 한다. 하여튼 어차피 질 말싸움을 꼭 건다.

아무튼 마약, 불법도박, 음주운전이 모두 터진 그 아이돌 출신 배우가 했던 역이 그 옆집 고등학생이었다. 신지운보다 다섯 살 많은데도 고등학생 연기 잘만 했다.

그 배역이 임팩트는 컸지만, 아이돌 활동을 병행할 수 있을 만큼 비중이 그리 크지 않았었던 걸로 기억한다. 리허설을 빠지는 일은 있어도, 본 무대는 양쪽에 빌어가며 어떻게든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매니저 형들만 고생하겠지. 맛있는 거 많이 사줘야지.

어쨌든 그 배역, 어차피 개X끼한테 갈 거라면 우리 집 개X끼가 가져가면 좋을 것 같긴 한데…….

* * *

치킨을 펼쳐놓고도 나는 딴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 황새벽의 ‘드라마기를’ 영상이 시작되며 정신을 차렸다. 놀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우왕, 황새벽이 잘 생겼네.”

“닥쳐주라, 제발.”

“잘생겼다는데 왜.”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마…….”

그렇게 말해둔 보람도 없이, 몇 초 지나지 않아 황새벽이 치명적인 표정을 지으며 자기 목을 문지르는 장면이 나오자마자 모든 멤버가 치킨을 내려놓고 환호했다.

“새벽이 형 끼 부린다! 새벽이 형이!”

민지호는 그렇게 놀리고, 신지운은 정지해서 앞으로 되돌리고, 박선재는 화면을 핸드폰으로 찍고 있었다.

황새벽은 그걸 하나하나 지적할 체력이 없어 그냥 손으로 얼굴을 벅벅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너희 차례는 안 올 것 같냐.”

그 말에 박선재가 찍어온 사진을 바로 그리기 시작한 안주원이 말했다.

“넌 그때 되면 귀찮아서 못 놀릴 거잖아.”

“……하.”

괴로워하는 황새벽에게 한효석이 말했다.

“형, 전 안 놀렸어요.”

“넌 차라리 놀려. 어색하니까.”

“어색해서 놀리기 좀 그래요.”

퍼스트라이트에서 제일 바지런한 멤버와 제일 느긋한 멤버의 유일한 대화 주제가 둘 사이의 어색함이라는 건 참 아이러니다. 뭐라도 맞으니 됐다, 허허.

아무튼 멤버들이 놀릴 땐 놀려도 칭찬할 땐 확실하게 칭찬했다. 동시에 보완 의견도 숨기지 않는다. 업로드 된 영상을 모여서 볼 때는, 놀리는 것을 제외한 모든 순간이 브레인스토밍이었다.

나는 어차피 프로듀서라 의견을 다 냈기 때문에 거기 끼는 대신 유튜브 댓글을 확인했다.

영어 댓글이 상단 대부분을 차지하는 퍼스트라이트와 달리, 황새벽의 솔로 영상은 일본어 댓글이 첫 화면에 비교적 많이 보였다.

설마 황새벽 솔로 영상에 내 악플이 달리진 않겠지, 싶어서 슬쩍 번역을 눌러 보았다.

[새벽 씨 얼굴 좋아 몇 번째 보고 있어]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고 싶었어…….]

[일본에도 햇살이 있어요]

[해원의 곡은 대단해 늘 멜로디가 아름다워]

[이 페어 자주 보고 싶어 하는 햇살이는 나뿐이야!!??]

[↳한국 햇살이들도 좋아해요ㅋㅋㅋ]

[↳함께 있으면 전투력 하락하는 맏형즈ㅠㅠㅠㅠ내가 진짜 사랑함ㅠㅠ]

햇살이들 보기에도 나와 황새벽이 같이 있으면 전투력이 하락하는 것이 보였나 보다. 아무래도 느긋한 애 옆에 있으면 같이 늘어지는 경향이 없잖아 있다.

아무튼 반응이 좋은 건 확실해 보였다. 특히 일본어 댓글마다 얼굴에 대한 반응이 엄청나게 좋았다.

내 핸드폰을 힐끔 본 황새벽이 말했다.

“부사장님이 퍼라 일본 활동에 도움이 될 거라고 하던데, 그냥 꼬드기려고 하는 말이겠지?”

“진짜로 되지. 얼굴도장이라는 말이 괜히 있냐.”

황새벽이 솔로 활동을 신경 쓰여 하길래 그렇게 장담했지만, 사실 진짜로 자신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 많던 치킨이 싹 사라지고, 나는 늘어지기 전에 빨리 일어났다.

“형 어이 아?”

룸메이트인 민지호가 양치질하다 물어서 내가 대답했다.

“작업실 가서 자려고.”

오늘 그 난장판을 겪고 작업실을 가려니까 민지호가 인상을 쓴다. 나는 민지호가 양치질하는 사이 잽싸게 숙소를 나왔다.

그때 신지운이 따라 나왔다.

“형. 그 친구.”

“어?”

“배우 지망생 친구.”

아, 내 가상의 친구?

“어, 원일이?”

내가 학교 다닐 때 본 친구 중에 제일 잘생긴 놈 이름을 대충 대자 신지운이 되물었다.

“그 형은 이게 재밌대?”

“왜?”

“난 뭔 재미인지 모르겠어.”

“네 취향이 아니긴 하지.”

장르 문제는 아니고, 신지운은 기본적으로 무거운 분위기의 극을 좋아하는 편이다. 같은 로맨스여도, 서로 싸우고, 울부짖고, 가슴 찢어지는 스타일을 좋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분류하자면 로맨틱 코미디, 심지어 정극보다는 예능적인 부분이 크다. 그러니 의심이 가는 것이다.

내가 대꾸했다.

“원일이가 얘기해 주는 거 들어보니까 무조건 흥행할 것 같던데.”

“……그래?”

“오디션 보고 말고는 네 자유지만, 난 되는 드라마라고 봐.”

“음.”

“물론 네가 훈남 선배 역만 아니면. 그게 말이 되냐?”

“알았다고, 어휴, 내가 감히.”

“그치, 네가 감히.”

흥행할 거라는 건 알려준다. 대신 선택은 본인이. 이렇게 가기로 했다. 나는 말을 이었다.

“내가 진지한 얘기 할 테니까 비웃지 말아봐.”

“되겠냐.”

“그치, 그냥 비웃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내가 쉬는 동안 영화 많이 봤잖아.”

“어.”

“그때도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보면 웃음이 나더라고. 근데 의외로 잘 만든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진짜 몇 개 없다?”

“…….”

“흔해 보이는데 아니더라. 재미있는 로맨틱 코미디 극본은, 절대 자주 나오는 게 아니야.”

“…….”

“그리고 혹시 되면 나 OST 참여하게 줄 좀 잡아주고.”

“시간이나 있냐?”

“흥행드라마면 해야지.”

나는 그렇게 농담 반, OST 계에 한 발가락 정도 담가 놓겠다는 야망 반으로 대화를 끝냈고, 신지운은 고개를 끄덕인 후 숙소로 돌아갔다.

그 후 작업실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나는 무거워지려는 감정을 떨쳤다. 잘 될까. 맞는 방향일까.

내가 생각하는 방향이 맞나.

고민하며 작업실에 들어서자마자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갈 VVV엔터 새 그룹 카일룸의 자료와 레퍼런스로 보내준 트랙들을 다시 확인했다.

이상적인 방향으로.

이상적인…… 이상향으로…….

이상향을 찾아가려는 천사들의 노래.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을 의심하며, 미래를 확신하지 못하는. 하지만 그래도 멈추지 못하는…….

나는 음보다 먼저, 로그라인을 적었다.

[꽃놀이 가자 이상향으로 흰 꽃 만개한 장소를 찾아]

* * *

최기문 부대표는 아버지인 TRV 최동국 대표에게 호되게 혼나고 차로 돌아왔다.

마흔여섯까지도 이렇게 혼날 줄은 생각 못 해서, 자존심이 상해 울분이 치밀었다.

진작 알아봤어야 했다. 정해원 그 애새끼가 능구렁이 한 마리 삶아 먹은 것처럼 굴 때 싹을 잘랐으면 이런 일이 없는 건데, 속아 넘어간 셈이었다.

VMC를 뒤에 끼고 있으니 더는 쉽게 건드릴 수도 없게 되었다.

투자자도 잃고, 크게 손해만 본데다 회사에서 자리까지 잃게 생겼다.

그쪽에서 뒤통수를 쳤으니 이쪽도 치졸해져도 상관없으리라. 윗대가리 다 날려버린 TRV에서 정해원이 활개를 치고 다닐 꼴은 곧 죽어도 볼 수 없었다.

정해원의 약점은 너무 확실했다. 최기문 부대표는 TRV로 돌아갔다. 이빨 빠진 호랑인 걸 알고 건성으로 구는 직원들을 피해, 죽든 살든 자신과 한배에 탄 임원을 통해 팬들이 고소 목적으로 보내온 PDF 파일을 전부 받아냈다. 어마어마한 양의 악플이었다.

* * *

내가 곡을 만들고 있을 때 벨 소리가 들렸다. 귀찮아하며 일어나 열어보니 강효준 A&R이었다. 워낙 4본부 A&R들이 들락거려 열쇠를 하나 가져가라고 할까, 하다가 한 번 유출된 후유증으로 그만뒀다.

강효준이 들어와 작업 화면을 보며 물었다.

“작업을 시작하긴 했네.”

“우리 팬미팅 전까지 드린다고 했잖아요.”

“작가님들 시간 개념을 믿기 힘들어서요.”

“편견이 심하시네.”

나는 대꾸하며 강효준이 들고 온 봉투를 확인했다. 에너지 드링크는 꺼내서 냉장고에 넣고, 홍삼은 바로 꺼내 입에 쏟아 넣었다. 강효준이 말했다.

“박희영 씨 쪽에 얘기해 봤는데.”

“……왜요?”

“VVV 엔터랑 계약하면서 여론 걱정했잖아요. 의리 쪽으로 끌고 가보면 어떨까 해서. 뭐, 우리 멤버 중 하나랑 알던 사이로 간다든지.”

“그건 거짓말인데요.”

“여론이 걱정되면 그런 방법도 있다는 거죠.”

“대중 상대로 거짓말하는 게 훨씬 멘탈 갈려요.”

나는 말하고 꾸벅 인사했다.

“그래도 신경 써주신 건 감사하구요.”

“다른 방법 찾아볼게요.”

내 악플의 시작이 VMC인데, 해결도 거기서 해주겠다니 좀 웃기긴 하다. 그래도 은근 안심이 되긴 했다. 내가 물었다.

“온 김에 이거 들어보실래요?”

“작업 중인데 괜찮아요?”

“네.”

나는 헤드셋을 건네주며 말했다.

“방향이 잘못된 거면 고쳐야 하니까요.”

나는 천재는 아니다. 내가 음악을 하니까, 좋은 귀를 가지고 있으니까 확신할 수 있다.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아이디어가 멈추는 천재가 어디 있나.

그러니 수많은 사람의 의견이 필요하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별처럼 많은 창작물이 이미 만들어져 있는 지금 시대에, 새로운 것이란 기존의 것과 기존의 것의 뒤틀린 합이다.

“……아. 이런 식.”

“별로예요?”

“의외네요. 그런데…… 이게 컨셉에 더 맞네요.”

당연하다. 컨셉 포토는 천사처럼 찍고, 첫 곡부터 타락한 분위기로 임팩트를 주려 했으니까.

나는 그걸 전환해 봤다.

“아예 천사천사하게 가봤어요. 컨셉포토처럼.”

나는 의자를 끌어 와 말했다.

“의견 뭐든지 좋으니까 자세히 말해주세요.”

“다른 A&R들 와도 되죠?”

“사람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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