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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114화 (114/380)

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14화

최기문 전 TRV 부대표와 TYT 김주철 본부장 회동.

김주철 본부장은 TRV 인수가 무산된 이후, 최기문 전 부대표의 연락을 꺼리고 있었다. 김주철 본부장이 확실하다고 호언장담한 전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도장만 안 찍었지, 아무도 못 뒤집을 거라고 큰소리친 일이 뒤집혔다.

사실 처음부터 VMC 내에서 TRV 인수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다. 오로지 퍼스트라이트 때문에 TRV를 인수하겠다는 건데, 그나마도 남은 건 1년뿐. 게다가 멤버들이 개인 활동이라도 하겠다고 나서면 그 1년도 허비하게 될지 몰랐다.

그런 것에 비해서 TRV는 대표가 손을 떼고, 최기문 부대표가 이리저리 휘두른 후부터 뭐 하나 그럴듯하게 내놓은 것이 없었다. 그나마 지금 퍼스트라이트가 라이징 흐름을 탄 것도, 정해원이 합류하며 자체적으로 프로듀싱이 가능해진 후부터였다.

VMC 대표의 아들 이춘형 VMC 이사는 본인이 관여한 일 중에 가장 눈에 띄는 실적, 국선아를 쉽게 놓지 못했다.

똑같은 가업 승계라고 해도, 유학파가 즐비한 70년대 후반, 80년대생 오너 3, 4세대끼리는 이전 세대처럼 ‘어느 날 뚝뚝 떨어져 꽂히던 낙하산들과는 다르다!’에 집착하는 모습이 없잖아 있었다.

이춘형 VMC 이사도 다른 3, 4세대와 비교하며 ‘능력 있는 리더’로 보이는 것에 크게 집착하고 있었다.

그래서 국선아의 연장으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인수를 계획해 놓았는데, TRV의 규모가 생각보다 크다 보니, ‘소년들’이 망했을 때의 후폭풍에 대한 염려가 점차 커지던 차였다.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던 차에, 외사촌 동생인 강효준으로부터 그렇게 위험을 안고 가느니, 1년만 기다렸다가, 수월하게 퍼스트라이트 데려오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들었다. 사람이란 게 편한 길을 선택하고 싶어지게 마련이었다. 결국 이춘형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최기문 전 TRV 부대표가 이춘형 라인인 김주철 본부장과 술잔을 나누며 말했다.

“어떻게 됐든, 1년 뒤에 퍼스트라이트가 꽁꽁 뭉쳐 있으면 VMC도 번거롭잖아요.”

“그야 뭐 그렇죠.”

“안 그래도 VMC가 우리 회사 해원이 때문에 욕 많이 먹었는데, 1년 뒤에 데려가서 그 팀을 갈라놔 봐요. 난리 나지. 그렇게 되기 전에 해원이만 방송 못 나오게 하면 모든 게 다 수월해지는 거라니까?”

“…….”

“아니, 뭐 애를 두드려 패겠다는 것도 아니고. 원래 방송이 성격에 안 맞는 애 맞는 길 찾아주겠다는 거잖아요. 이참에 아이돌 그만두게 하고 곡만 뽑게 하면 회사가 얼마나 든든해요. 음원 차트 1위 작곡가. 걔가 아이돌 할 시간 작곡에 투자하면 그런 거 얼마든지 만들지. 그럼 걔도 좋고, 회사도 좋고.”

“아니, 근데. 서로 얻는 게 있어야죠.”

“제가 새 레이블 준비하는 건 아시죠?”

“그걸 인수하라고?”

“아뇨, 괜찮은 연습생 여자애들. 두 명 정도만 보내주세요. VMC야 차고 넘치는 게 연습생 풀이잖아요.”

워낙 대기업이니 연습생 이 몰리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인수를 통한 것을 제외하면, VMC가 처음부터 길러낸 걸그룹은 아직까지 없었다.

거기에 VMC 정도 규모가 되니, 아이돌 하나 낼 때마다 지나치게 주목을 받았고, 섣불리 냈다가 망치기라도 하면 VMC 주가가 출렁거릴 테니 함부로 내지도 못했다.

생각해 보면 오히려 데뷔 가능성이 큰 건 최기문이 준비하는 레이블일 테니, 그리 미안할 일도 아니어 보였다.

이춘형 이사가 정해원의 악편 폭로로 하락해 쉽게 돌아오지 않고 있는 VMC 이미지를 회복시키라고 성질을 부리고 있는 상황에서, 최기문의 제안이 꽤 달달하게 들렸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하게요?”

“알바 써서, 걔가 뭐 할 때 악플 좀 달면 지가 알아서 내려가요.”

“아니, 그런 게…… 우리랑 관계되면 안 되죠, 안 그래도 이미지 회복하려고 개고생하는 중인데.”

“VMC가 무슨 관계가 있어요. 제가 알아서 다 할 건데.”

“…….”

“나중에 여자애들이나 좀 보내주세요. 아, 이렇게 말하니까 또 이상하게 들리네. 그거 아닌데.”

최기문 부대표가 농담이랍시고 한 말에 김주철 본부장이 허허 웃었다.

* * *

도대체 작곡가에 대하여 14분, 정확히는 14분 6초 동안 뭐 그렇게 할 말이 있나 궁금했다.

영상은 박희영이 곡 설명을 하는 부분에서부터 시작했다.

-‘먼 기억의 사랑’은 결혼 생활을 오래 해온 부부가 함께 길을 걷다가, 서로가 서로의 첫사랑이었음을 알아차리게 되는 이야기에 대한 곡이에요.

-그렇군요. 곡 작곡가가 아주 특이하던데요?

-네, 음. 이제 저랑 아주 특이한 인연이 있는 친구인데요. 퍼스트라이트라는 아이돌 그룹의 정해원이라는 친구예요.

-아, 요즘 퍼스트라이트 잘나가죠. 저희도 신청곡으로 많이 틀어요. 근데 어쩌다가 아이돌이랑 인연이 닿게 되셨어요?

-제 팬분 중에서는 혹시 아시는 분 계실 수 있어요. 짧지만 제 매니저였던 친구거든요.

-아니, 어떻게 그렇게 됐어?

-진짜 신기하죠. 저도 처음에 그 친구가 매니저로 왔는데, 세상에 너무 예쁘게 생긴 거예요. 매니저가 뭐 메이크업을 하지도 않았을 거 아니에요. 근데 막 피부에 잡티 하나 없고 얼굴이 조막만 한 애가.

어우, 뭐야.

내가 한숨을 쉬며 끄려 하니까 안주원이 말했다.

“왜?”

“시작부터 너무 부담스러운데.”

“뭐가 부담스러워?”

그러더니 다시 영상을 플레이했다. 박희영의 말이 이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돌 지망생이었대. 근데 말이 안 돼, 어떻게 이렇게 생긴 애가 데뷔를 못 했어? 스무 살이라는데. 지금부터 연습생 생활 시작한다고 해도 데려갈 회사가 많겠더구만.

-어떻게 된 거래요, 진짜?

-알고 보니까 이 친구가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나갔는데 거기서 막 편집을 너무 안 좋게 했던 거예요. 이 친구가 진짜 성실하고 남 잘 챙기거든. 남한테 막 잘해보자고 재촉하고 있으면 그걸 못되게 편집해 가지구……. 그때 악플을 너무 많이 받아서 이 친구가 말하자면 불안장애 같은 게 생겨서 아예 방송을 못 나가게 된 거예요.

-어머, 세상에. 불쌍해서 어떡해.

-그러고 2년 집에서도 잘 못 나오다가, 우리 회사에서 어떻게 한 번 애 살려보자고 데리고 와서 매니저 생활 시작한 거예요. 그렇게 생긴 애가 엔터계 있으면 눈에 안 띄고 배겨요? 몇 달도 못 하고 채가 버렸어요. 그 짧은 사이에 너무 많은 일이 있었는데…….

박희영은 매니저가 잠수를 타 방송을 펑크 낼 뻔한 일부터, 소소한 사건들을 이야기했다.

-맨날 피곤하니까 쉬라고 해도 지는 어려서 괜찮대.

-세상에 그렇게 성실한 애를 어떻게 그렇게 못되게 만들어……. 어떻게 그래도 무대를 하네요, 이제?

-우리 가수들은 알잖아요. 무대가 부르면 가는 거.

-알죠. 너무 알죠.

-다리가 부러져도 무대는 서고 싶은 게 우리들 아니에요. 처음엔 막 카메라도 똑바로 못 보고 바들바들 떨던 애가 무대 올라가면 또 말짱해지고, 내려오면 또 힘들어서 막 울고. 그래도 또 좋으니까 올라가고…….

“……아니, 사람을 무슨 세상 다시없이 불쌍한 애로 만들어 놨네.”

박희영은 표정과 제스처, 말투 모두가 말하자면 전 연령대 방송인이었다. 한국인에게 보편적으로 먹히는 이야기를 잘 알았고, 애절한 이야기로 만들 줄 알았다. 똑같은 이야기도 박희영이 하면 더 감정이 깊게 느껴지곤 했다.

-아무튼 그렇게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가. 이 곡 줄 때, 그 친구가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경험해 본 후에야 진짜 사랑의 감정을 이해한 어른들의 이야기라더라고 하는 거예요. 두 가지가 황당하죠. 첫 번째로 스물한 살짜리가 그런 곡을 만든 것 자체가 황당하고, 두 번째로 심지어 잘 만들었다는 게 황당하고. 근데 그 친구가 생각이 깊어요.

전혀 안 깊은데요…….

나는 생각했지만, 이미 방송이 다 나갔으니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진짜로 박희영은 14분 6초 동안 구구절절 내 이야기만 했다.

안주원이 손으로 내가 못 보게 핸드폰을 가리고 댓글들을 내려보더니 말했다.

“……희한하네, 반응.”

날 안 보여주는 걸 보니 악플이 많은가 본데…….

“뭐가 희한해?”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하지…… 햇살이들은 당연히 네 편인데.”

“응.”

“희영 선배님 팬분들도 악플러랑 싸우고 계셔.”

“……응?”

“천벌 받을 놈이래.”

안주원이 댓글을 보는 표정이, 아주 많이 즐거워 보였다. 하, 또 궁금하네. 그래도 멘탈이 좀 좋아지면 봐야겠다.

아무튼 그때 모든 멤버가 퇴근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신지운이 우리 쪽으로 오더니, 내 팔을 잡아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갔다. 신지운의 룸메이트이자, 은근 단짝인 안주원은 이미 무슨 이야기인지 아는지 돌아도 안 보고 차로 향했다.

신지운이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말했다.

“나 오디션 봐.”

“옆집 고딩이지?”

“어. 회사에 말하니까 원래 그 역으로 오디션 보게 하고 싶었대. 내 기분 상할까 봐 추천 못 한 거였나 봐. 형한테 되게 고마워하더라.”

그럼 그렇지. 얘가 내 눈에만 싸가지없을 리 없지.

나는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신지운이 말을 이었다.

“그럴 리 없지만, 혹시 되면 우리 다음 활동이랑 약간 겹칠 거야.”

“응.”

“절대 안 빠지고, 다 할 거야. 활동.”

“그래.”

“……뭐, 개인 활동한다고 욕 안 해?”

내가 오디션을 추천한 것과 별개로, 개인 활동을 하면 갈굴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활동 다 할 거라며. 배우 지망생 친구 원일이한테도 들어보니까 고딩 역은 비중도 안 크다고 들었다던데?”

“그건 어떻게 알아? 원일이 형도 나랑 같은 배역 본대? 아. 나 그 형 연락처 알려주면 안 돼? 같이 이야기할 사람 있으면 좋겠는데.”

“아, 내 친구 벌써 떨어져서 울고 있어. 말 꺼내기 그러네.”

미안하다, 뭐 하고 있는지 모르는 원일아. 시기상 입대했을 수도 있겠네. 아무튼…… 그렇게 됐다. 나중에 만나면 밥이라도 사줘야겠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힘내라고 신지운의 등을 두드리며 체육관을 나섰다.

* * *

[악편 X나 울궈먹네ㅎㅎ 저렇게 사연팔이하고 뒤로는 음습하게 VVV랑 계약했쥬ㅎㅎ?]

[↳우려먹다.그리고우리가수님이딱한번.말했는데뭘우려먹었다는말?]

[↳해원이가 가고 싶어서 갔겠냐? VMC가 TRV 인수하면 진짜 X되니까 갔지]

[↳↳저 뉻(뉴데이즈)팬인데 신고 눌렀어요 해원님 생각하면 가슴 아파요ㅠㅠ]

[↳↳↳감사합니다ㅠㅠㅠㅠ진짜 바퀴벌레도 아니고 계속 나오네요…….]

[↳↳↳↳저 스키퍼인데 박멸까지 같이 갑니다^^]

[아니, 근데 정해원 솔직히 얼굴 쎄한 건 사실 아님? 싸패같이 생겼는데]

[↳거울로 네 면상이나 봐]

[↳울 사위가 저 얼굴이면 맨발로 달려나갔지]

[↳니는옥.떨.메야^^]

[어르신들 노인대학에서 스마트폰 좀 배우셨나 봐요ㅋㅋ?]

[↳지랄하네 내가 니보다 스마트폰 빨리 샀다]

[↳네놈 예의 없는 것 보니까 느그 부모가 진심으로 불쌍타]

[↳너처럼 사회성 떨어지는 자는 늙어도 노인대학에서 안 받아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맞는 말씀입니다 희영차!(박희영 팬클럽. 느낌표 필수)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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