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아이돌의 기술 117화
나는 퍼스트라이트 멤버들과 함께, 회의를 통해서 유닛 무대들을 결정했다.
신지운은 처음부터 한효석과 민지호의 곡인 투 빌런즈를 탐냈고, 원하는 대로 쟁취도 했다. 그 후 이리저리 합을 맞춰보다가 내가 투 빌런즈로 들어가게 됐다.
한효석과 민지호가 만든 춤은 드럽게 어려워서 신지운과 아주 개고생을 했다. 우리가 하도 욕을 해서 두 사람 귀가 간지러웠을 것이다. 히히.
그리고 그 개고생에 결과를 오늘, 팬미팅에서 드디어 공개하게 됐다.
무대에 올라가기 전, 나는 아예 거울을 등지고 수정 메이크업을 받았다.
오늘은 쎄하거나 말거나, 무조건 빌런처럼 메이크업을 해달라고 했다. 컨셉이 명확하게 있는데, 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피해 갈 수는 없는 거니까.
검은색 핀스트라이프 정장. 나는 셔츠까지 쓰리피스를 입고, 신지운은 목폴라 위에 재킷을 걸쳤다.
06즈가 콘서트 무대에서 스펀지 공이 든 장난감 총을 쏘며 장난꾸러기 빌런 느낌을 강하게 뿜었으니, 우리는 아예 ‘누가 봐도 나쁜 놈들’인 컨셉으로 가자는 게 신지운의 제안이었다.
스프레이가 머리 위에 쌓여있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단단하게 세팅이 끝나고, 여자 스태프들이 말했다.
“얘네 진짜 핏 돌았다. 어떡해, 진짜?”
그래서 내가 시계를 차며 물었다.
“저도요?”
내 말에 이예영이 핀잔했다.
“‘얘네’라고 했잖아. 넌 거울도…… 아, 오늘 안 봤지. 으휴, 봐준다, 진짜.”
그 말에 내가 흐흐 웃는데, 강영호 매니저가 달려왔다.
“해원 씨, 체온계.”
의상을 갈아입는데 평소에 땀을 많이 흘리는 편이 아닌 내가 식은땀을 너무 흘려서 셔츠 등 쪽이 젖을 정도였다. 다행히 베스트를 덧입긴 했지만 이예영이 체온을 재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재봤는데, 약간 고열이었다.
“어이씨. 어떡하지.”
강영호 매니저가 자기도 모르게 욕을 하더니 말했다.
“해원 씨, 이번 무대 끝나고 병원 가야겠어요.”
“무슨 병원이에요. 팬미팅 하다 말고.”
“이 정도 열이면 팬분들도 다 이해해요.”
“우리 햇살이들이 누군데 당연히 이해는 해주죠, 걱정도 같이해서 그렇지.”
최기문 그 새끼 때문에 요 며칠 걱정을 하느라 몸살이 났다. 거기다 어제 센 척하느라 악플들을 죄다 읽었더니 아직까지도 속이 울렁울렁했다. 뭐, 결과적으로는 읽어서 다행이었지만.
내가 대꾸했다.
“VVV엔터 쪽에서 홍보 시작해서 제가 카일룸 프로듀싱 참여하는 거 다 알고, 희영 누나 곡도 공개됐는데 지금 몸살이라고 그래봐요. 딴 팀 곡 작곡하느라고 자기 팀 팬미팅을 빠졌단 소리 나오지.”
“그야…….”
역시 아니라고는 못 한다. 그만큼 당연한 이야기니까.
나와 멤버들이야, 내가 1년 뒤 조건부 계약 때문에 다른 그룹의 프로듀싱 중이란 걸 알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다. 남들 눈에는 그냥 돈독 오른 미친놈일 것이다.
나는 오기로 몸을 일으켰다가 띵 울리는 이마를 감싸며 비틀거렸다.
“와씨, 뭐야.”
“아, 진짜.”
강영호 매니저가 한소리 더 하려는데 기다리던 신지운이 말했다.
“그냥 놔둬요, 형. 저 형이 뭐 그런다고 말 듣는 거 봤어요?”
“아니, 어지간히 말을 안 들어야지.”
아, 억울해.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이 사람들이 하는 거 아닌가? 세상에 첫 팬미팅 중간에 빠지고 싶은 아이돌이 어디 있다고?
“무대 올라가면 또 멀쩡해져요. 대기실에서만 이러는 거예요.”
내가 말하자, 신지운이 웬일로 그건 동의해 줬다.
“그건 맞지.”
“그렇다니까.”
나는 억울함을 투덜투덜 토로하며 투 빌런즈 무대를 위해 스탠바이를 했다.
* * *
밤낮즈, 정해원과 신지운이 동시에 가면을 벗었다.
‘와…… X발, X나 섹시하네.’
햇살이들이 튀어나오려는 말을 꿀꺽 삼켰다.
장난꾸러기 악당 같은 느낌을 주던 06즈와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눈매를 깊고 어둡게 메이크업한 두 멤버의 표정과 몸짓은 악당 그 자체였다.
바뀐 분위기에 맞게 편곡한 음악이 대형 스피커로 쿵쿵 울렸다.
[히어로 생활도 힘들겠어?
여기는 빌런의 판이야]
실제로 BPM이 느려지게 편곡한 건지, 아니면 착각인지 음악은 느리게 들렸고, 두 멤버의 안무도 그렇게 보였다.
고개를 기울이고, 총을 쏘듯 두 손을 비트는 동작에서 환호를 넘어 비명이 들렸다.
[순진해 보여도 얌전해 보여도 의심해]
[이 밤이 끝나도 우리의 세상은 끝나지 않아]
몽롱한 상태로 무대가 끝나자마자 관객들이 중얼거렸다.
“빌런미 뭐야…….”
“이거 왜 지금 다시 못 봐? 왜?”
“근데 블루레이에 저 표정 다 담기나? 다시 봤는데 다르면 어떡해?”
충격에 휩싸인 상태로 무대가 끝났다.
곧바로 황새벽의 ‘드라마기를’ 솔로무대가 이어지며 그 충격이 이어졌다. 퇴폐한 분위기의 두 무대가 끝나기 무섭게 파스텔톤의 의상을 입은 민지호와 박선재가 무대로 올라왔다.
두 사람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동요적인 분위기의 커버곡을 부르며 분위기를 완전히 바꿨다.
무대가 끝나는 동시에 표시등이 꺼지는 효과음이 들렸다.
-햇살 여러분, 기류가 안정되고 있습니다. 좌석 벨트 표시등이 꺼졌습니다만 다시 비행기가 흔들릴 수 있으니 자리에서는 항상 좌석 벨트를 매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우와, 다행이다. 난기류를 벗어났나 봐.”
“나 너무 무서웠어…….”
“이런 겁쟁이.”
두 사람의 갑작스러운 상황극에 팬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근데 형들은 어디 갔지?”
“효식이도 없어졌어.”
“어? 그런데 저기 창밖에! 창밖에!”
“창밖에 왜!”
“사람이 있어!”
“그럼 사람이 아니잖아!”
두 사람의 상황극을 끝으로, 무대에는 신선들처럼 디자인한 두루마기를 입은 한효석과 안주원의 코레오그래피가 이어졌다.
국선아 시절부터 춤으로 많이 혼나던 안주원이 한효석과 안무를 준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팬들에게는 선물 그 자체였다.
* * *
오로지 팬미팅에서만 볼 수 있는 무대들과 중간중간 들어간 MC 파트, 팬들이 준비한 슬로건 이벤트까지 순식간에 시간이 흘렀다.
-햇살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잠시 후 선라이즈 국제공항에 도착하겠습니다.
팬미팅이 끝나간다는 것을 알리는 안내 방송에, 팬들이 아쉬움을 드러내는 사이 일곱 명의 멤버들이 무대로 올라왔다.
민지호가 마이크를 들었다.
“햇살이들, 재미있었어요?”
아쉬운 목소리로 하는 대답에 멤버들이 같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나도 안 끝났으면 좋겠어! 안 끝낼래! 그냥 여기서 밤새자!”
“그래도 끝내긴 해야지.”
“시러!”
“민조는 여기 살아. 멤버들은 갈 거야.”
“그건 안 돼…….”
시끌시끌 한바탕 떠들고 나서, 황새벽이 정리하기 위해 말을 이었다.
“멤버들 모두 햇살이들한테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걸 목표로 하자고 하면서 팬미팅을 준비했는데 잘 전달이 됐는지 모르겠네요.”
그렇게 말하다가 공연장에 가득 찬, 빛나는 응원봉을 꿈꾸듯이 바라보는 정해원에게 멘트를 하겠냐고 눈짓했다. 정해원이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맑은 날, 비하인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즈음 멤버들한테, 햇살이들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드냐고 물어봤는데 다들 대답이 똑같더라구요. 우산 같다고. 햇살이들이 우리를 지켜주니까. 솔직히 그때는…… 많이들 아시겠지만 제가 좀 사회 불신이 있었어서.”
그렇게 농담조로 말하자 팬들이 애써 같이 웃었다. 정해원이 말을 이었다.
“안전한, 그런 느낌을 잘 이해를 못 했거든요. 근데 지금은 알아요. 햇살이들이 내 편인 거. 날 지켜주겠구나, 내가 사랑하는 만큼, 그 이상으로. 내가 보답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해 주는구나. 그리고 또 슈퍼파워기도 하구요, 지호 말대로. 운석이 떨어져도 햇살이들을 위해서 다 막아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그 말에 팬들과 멤버들, 그중에서도 민지호가 낄낄거리고 웃었다. 그리고 이어서 박선재가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해원이 형이 작곡할 때 루틴이 멤버들한테 질문을 엄청하거든요?”
“맞아, 진짜 새벽에도 깨워서 해.”
“이건 뭐 작곡에 필요하다니까 화도 못 내고…….”
멤버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한마디씩 하자 정해원이 흐흐 웃었다. 박선재가 말을 이었다.
“근데 진짜 듣고 있으면, 해원이 형은 정말 모든 곡을 햇살이들을 위해서 만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네, 실제로 그렇죠.”
“실제로 그렇다고 하네요. 그럼 이제 다음 곡은 뭐죠?”
“다음 이야기!”
* * *
[달빛 위를 걸어 우주에서 만나]
[구름을 타고 햇살 속에 쉬며]
[아무리 멀어져도 우리는]
[음반 위에서 만나게 돼]
[우리가 다시 만나는 이야기야]
[처음부터 그렇게 정했으니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곡을 만들 때의 나는 불안정한 상태였다.
계단에 서서 순간 헛디디면 어떡하지, 하는 갑작스러운 불안이 들 때처럼. 그저 이유가 없는 불안이었다. 이건 그 불안감을 이기려고 만든 노래였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내가 가진 감정을 너무 날것으로 곡에 섞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든다.
마지막 앵콜까지 끝내고, 팬들에게 인사도 하고 나는 멤버들과 대기실에서 마지막으로 단체 사진을 찍었다.
모든 할 일을 마무리하자마자 강영호 매니저가 나를 불렀다.
“해원 씨, 빨리 병원.”
“넵.”
나는 병원으로 가기 위해 후다닥 옷을 갈아입었다.
차에 타서 X버스에 인사를 올리려고 핸드폰을 확인했는데 박중운 전 매니저에게서 연락이 와 있었다.
[배신자2 : 강효준 팀장이 VMC 대표 자리에 관심이 있는지는 확인이 어렵겠어. 지금은 그냥 준비하는 신인 데뷔시키는 것 말고는 정신이 없나 봐]
하긴. 그건 그렇겠네. 지금까지 인생에서 제일 큰 실적을 앞두고 있는데, 정치질을 하고 있을 여유가 없겠지.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문자가 하나 더 왔다.
[배신자2 : 해원아 근데…… 최기문이 바이럴 업체랑 연락하더라. 네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어?”
“해원 씨, 왜요?”
“아뇨, 아뇨.”
뭐야, 이 스파이.
[형이 그걸 어떻게 알아?]
[배신자2 : 내가 TRV에서 일할 때, 연락하던 바이럴 업체가 있거든. 거기 직원이랑 몇 번 술 마셨는데 나한테 알려주더라.]
[배신자2 : 거기서 네 악플을 달고 있나 봐]
워어, X발……?
아마도 내가 유출범인 배신자2와 연락 중일 거라고 생각 못 해서, 이렇게 정보를 흘린 모양이었다.
이건 너무 큰 수확이라, 나는 ‘배신자2’를 박중운 전 매니저에게 걸맞은 이름으로 바꿔드렸다.
[스파이1 :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아직 모르겠어 놀라서 손이 덜덜 떨리네]
[스파이1 : 아, 이미 알고 있었구나…….]
엇, 어떻게 알았지.
하긴, 내가 감히 스파이 상대로 거짓말을 하려 했네.
[스파이1 : 별로 도움이 못 됐네…….]
[아냐, 엄청 도움 됐어. 고마워. 밥 살게. 아니, 밥이 뭐야.]
[스파이1 : 그렇게 말 안 해줘도 돼. 내가 나쁜 놈이지…….]
그러면서 일단은 바이럴 업체 직원의 명함을 찍어 보내줬다. 뭔가 명함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일반적인 바이럴 업체는 아닌 것 같다. 무서우니까 딴 사람보고 확인해 달라고 해야겠다.
아무튼.
“와, 진짜…….”
진짜, 진짜 다행이다. 최기문 부대표의 행패에 대한 분노보다, 이 악플이 가짜라는 데서 오는 안도가 훨씬 더 컸다.
“……살 것 같다.”
입으론 그렇게 중얼거렸는데 마음이 놓여서인지 시야가 어두워졌다. 잠드는 건지, 기절하는 건지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겸사겸사 쉬는 거지, 뭐…….